안상호가 가지고 있던 땅 크기
"세상물정 모르는 母 위협해 파주 땅 강탈"..
하영 증조부,피소 사건 100년만 재조명
배우 하영(33·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매국 행위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일제강점기 시절 안상호가 토지 소유권 이전 문제로 피소됐다는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13일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는 1923년 12월 28일 발행된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소유이전말소로 안상호 피소'라는 제목의 기사가 확산되고 있다.
해당 보도에는 파주군의 한 토지를 두고 박승학이라는 인물이 안상호를 상대로 경성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경위가 담겼다.
이 기사에선 "파주군 파평면 이천리에 사는 박승학은 시내 종로 삼정목에 살던 안상호를 걸어 경성지방법원 민사부에 토지매매증명말소신청 소송을 제기했다"라고 다뤄졌다.
보도에 따르면 문제가 된 토지는 파주군 천현면 래문리에 위치했다. 해당 토지는 본래 소송을 제기한 박승학의 소유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엔 "이제 그 내용을 보건대, 파주군 천현면 래문리에 있는 시가 일천이백원가량의 토지는 본디 원고 소유인데 피고는 원고가 없는 사이에 아무 세상 철을 알지 못하는 원고의 모친을 무리한 말로 위협하고 자기가 그 토지를 산 것처럼 만든 후 그곳 군청에 증명을 냈다"라는 안상호의 만행이 적혀 있다.
박승학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는 안상호가 1914년(대정 3년) 11월께 박 씨가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어머니를 상대로 토지 소유권을 이전받았다는 주장이 담긴 것이다.
특히 소장에는 "피고(안상호)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험악한 말로 위협한 뒤, 마치 해당 토지를 정상적으로 매입한 것처럼 꾸며 관할 군청에서 토지 매매와 관련한 증명서를 발급받았다"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당초 박 씨는 안상호에게 수차례 증명서를 말소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경성지방법원 민사부에 토지매매증명 말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안상호는 이완용 등과 함께 매국노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했다. 또한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의 거사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제강점기 당시 이토 히로부미 추모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한 기록까지 전해지며 안상호의 과거 매국 행적을 뒷받침하는 기록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https://m.entertain.naver.com/now/article/108/0003462117
빽이 이완용인데 무언들 못했을까
우리나라는 주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수탈 당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물론 우리 조상님들도 많이 학살 당했죠.
저기는 전쟁하는데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 수십만 명을 단순히 화풀이로 학살한 건 기본
중일전쟁에서 수천만 명 단위의 인구를 갈아버림.
대표적인 학살이 난징대학살이죠.
반일 감정은 한국인들 그 이상임.
근데 왜 중국에 사과를?
일본한테는 사과 안하나?
중국 샤오홍슈에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중국어로 사과문 올리고 욕먹고 있네. 중국 활동도 못 할 듯.
우리나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일본을 싫어하는 게 중국인데 ㅋ
친일파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지른 독립운동가 홍재설 선생.
그 아들 홍종욱 지사도 3·1운동에 앞장섰다 체포됐습니다.
출소 후에는 '주동자'라는 낙인에 경제 활동이 막혔고,
빈곤 속에 눈을 감았습니다.
"어린 나이엔 할아버지가 왜 폐인으로 사시나, 왜 경제활동을 안 하시나 싶었다. 독립운동을 하신 지도 몰랐다"
손자는 회상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3·1 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
그의 혈육은 80대 나이에 청소를 하며 100만 원 남짓의 월급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2·8 독립선언을 이끌고 해방 뒤에는 친일파 청산에 앞장선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그의 아들은 우유와 신문을 돌리며 삶을 버텨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세월이 우리 편에 서서 고맙게 흘렀다"
최근 친일파 후손인 한 연예인의 아버지가
과거에 쓴 글이 논란입니다.
그에게 세월은 반성이 아닌 죄의식을 덮어준
조력자로 인식되었을까.
하지만 시간은 결코 불의의 편일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
이 눈물겨운 정설을 우리는 반드시 오답으로
결론지어야 합니다.
앵커 한마디였습니다.
첫댓글 혹 제 조상도 친일행적이 있진 않을까 확인해봤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확인이 어려울만큼 정보가 없자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집은 전 재산 탈탈 털어 독립운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도 재산이 없을 수 없다는 생각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