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0월 12일(현지시간) 테러 공격에 인도네시아 발리의 두 나이트클럽이 파괴됐을 때 잔해 더미에서 수십 명을 끄집어 내 영웅으로 떠올랐던 에릭 드 하르트가 갑작스럽게 67세 삶을 접었다고 미국 일간 더선이 17일 보도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태어난 용감한 드 하르트가 전날 눈을 감았는데 기저 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고인은 23년 전 참변 당시 쿠기 돌핀스 럭비 팀의 명예회원으로 팀과 함께 시즌 마감 클럽 여행을 즐기다 테러리스트들이 두 클럽에 미리 설치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33개국 출신 20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 현장에 있었다. 사망자 가운데 28명은 영국인, 88명이 오스트레일리아인이었다. 다친 사람도 수백명이었다.
웨인 핵 사리 클럽 회장은 "쿠기 돌핀스의 평생회원 에릭 드 하르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리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고인은 충직한 일꾼이었으며, 평생회원이며 우리 클럽 후원자였다. 2002년 발리 비극의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사리 클럽과 패디스 바 클럽에 장치된 폭탄이 터진 순간, 친구를 호텔에 데려다주고 사리 클럽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는 겁도 없이 불타는 건물 안에 들어가 다친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 때 드 하르트의 팀 동료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10주기에 호주 ABC 방송 인터뷰를 통해 "패디스 바 오른쪽이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 한 소녀가 지나갔는데 그녀 팔은 그냥 피부 조각에 매달려 있었다"면서 "난 왼쪽을 쳐다봤는데 지독한, 지독한 혼돈이었다. 난 사리 클럽 앞까지 달려갔는데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사람들 몸에 불이 붙어 있는 등 그냥 악몽이었다"고 돌아봤다. "난 소년들을 찾고 있었는데어떤 소년도 찾을 수 없었다. 난 그냥 사리 클럽 안에 들어갔는데 어디에나 누워 있는 몸들이 있었다."
고인은 잔해 더미에서 생존자들을 끄집어내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난 오토바이를 탄 친구를 붙잡고 ‘그를 병원에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이 작은 친구가 날 올려다보더니 ‘내가 어떻게 그를 붙잡은 채 오토바이를 몰겠느냐?’고 되묻더라.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자신의 차를 몰고 달려와 사람들을 데려갔다. 난 온몸에 상처가 있었으며 재들을 걷어차느라 발바닥에 화상마저 입었다. 그 때라면 여러분은 자신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항상 여러분은 사람들을 끄집어내려 한다."
당시 테러는 극단주의 이슬람 집단 제마 이슬라미야의 소행으로 밝혀졌고 여러 명이 체포됐다. 공격의 밑그림을 그린 이는 2001년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자금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 함발리로 그는 대사관들처럼 경비가 삼엄한 곳들보다 나이트클럽과 바 같은 소프트 타깃을 타격하라는 전략을 지시했다.
폭탄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알리 임란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며, 발리는 "미국인들과 그들의 동맹 국민들이 많이 들락거린다는 이유로" 골랐다고 말했다.
폭탄을 설치한 이맘 사무드라, 암로지 누르하심, 후다 빈 압둘 하크 세 사람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사형이 선고돼 총살로 형이 집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