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 혜근(懶翁慧勤, 1320∼1376)은 고려말의 변혁기를 살다간 인
물이다. 즉, 그가 활동했던 14세기 고려는 정치적으로는 원(元)의
내정간섭과 대륙의 원·명 교체에 따라 국가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
고, 사회적으로는 잦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혼란상이 가중되
고 있었다. 한편 사상적으로는 공민왕이 화엄종 출신의 신돈을 임
용하여 국정의 문란이 더해가는 가운데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사
류의 대불 비난이 강화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불교계 승려들은 원
(元)으로부터 임제선의 직접적 전승을 시도함으로써 활로를 모색하
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선승 나옹이 출현하여 불교계의 인재양성을 통한 선풍
의 진작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1) 나옹은
남다른 경세의식과 대중구제의 서원으로 출가를 단행하고 국내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입원(入元)하여 10년 동안 제선가와의 만남을
통해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선법을 체계화하고, 인도
승 호승 지공(胡僧指空)과 임제계 평산 처림(平山處林, 1278∼1361)
으로부터 법을 이어 받고 귀국하여서는 불법의 재건과 국운의 회복
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
특히 그가 선풍의 진작을 통한 인재양성과 회암사 중병이라는 대
중교화를 통해 위축되어 있던 불교계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던 점
은 당시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가 중국 임제계의 석옥 청
공(石屋淸珙, 1272∼1352)으로부터 전법한 사실을 드러내고 정치적
활동으로 원융부를 설치하고 구산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불교계의 활
로를 찾고자 하였던 점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이처럼 나옹은
수행과 교화에 철저했던 선승으로서 57세의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문도들을 배출하여 고려말뿐 아니라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 불교계와 민중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다.
그러므로 나옹선에 대한 연구는 사대주의적으로 고착시켜 보던 한
국불교의 사승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리라 본다.
그리고 오늘날 '선의 대중화'를 위한 문제에 적절한 시사점을 제공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옹선에 관한 연구는 김포광이 조선불교의 전등이 득도
사의 입장에서 볼 경우에는 보조 지눌(普照知言內, 1158∼1210)―나
옹 혜근(1320∼1376)―조선 승려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제
기한2) 후로 불교학자들과 사학자들 사이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3)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나옹의 사승관계를 통
해 그가 받았을 선사상적 영향관계를 밝히고, 환암 혼수(幻菴混修,
1320∼1392)에의 사법상에 나타나는 태고법통설의 문제점을 지적하
고 나옹법통설을 제기하는 데 이르고 있다. 그리고 나옹선의 특징
을 밝힘에 있어서는 개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옹이 직접 만나볼 수는 없었지만 당시 고려에 유행했던
선적(禪籍)을 통해 받았을 제선가(諸禪家)들로부터의 영향관계에 대
해서는 다루어지지 않고 있고, 나옹선의 본질이나 그 방법면에서도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그의 특징적 선관(禪觀)이 드러나는 <공부십
절목>을 통하여 나옹선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공부십절목은 삼문
구·삼전어와 함께 수행인의 공부점검과 수행지침으로 나옹선을 이
해하는 특징적인 자료이기 때문이다.
논의 전개를 간략히 말하자면, 먼저 <공부십절목>의 성립과 구조
에 대해 간략히 개관을 한 다음,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을 밝히고,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밝히는 순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나옹선의 이해를 돕고, 오늘날 선을 수행하는 공부
인들에게 자신의 공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리라
생각된다.
Ⅱ. 나옹의 <공부십절목> 성립과 그 구성
<공부십절목>이란 학인들의 공부를 시험하는 단계적 물음으로 구
성된 것으로 나옹선의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다. 이는 선사가 51세 되던 공민왕 19년(1370) 9월 '공부선(工夫選)'
의 주맹(主盟)이 되었을 때, 공부인의 근기를 시험하기 위하여 고안
된 것이다.4) 이러한 학인제접의 문답 형식은 이전부터 내려오는
임제 간화선의 수행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인데 10절목으로 구
성된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공부십절목>의 성립 자체는 나옹선의 이해에 매우 중
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승정의 혼란으로 침체되었던 승과가 공민
왕에 의해 공부선의 형식으로 부활되었을 때, 선교 양종의 학인들
을 가려뽑는 장(場)인 매우 비중 있는 공부선을 나옹이 주관하게
되고, 나옹은 이를 학인들의 공부점검을 위해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 불교사적 의의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법계 수여의 기본이 되는 승과가 고종대(1213∼1259) 이후에
는 승정의 혼란으로 침체되고 결행이 잦았다. 그런데 공민왕대에
다시 나옹이 주맹이 되어 '공부선'을 부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신돈을 제거하고 난 뒤 중단되었던 승과의 실시로 분위기 일신과
승풍을 진작시키는 데 일조를 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
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5)
오늘날 나옹이 이 <공부십절목>을 후진 양성이나 불교도들을 지
도할 때에 어떻게 활용하였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두 가지 의미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즉,
화두의 형태로 제시되어 스스로 점검하고 깨달음의 길로 접근하도
록 하는 선수행의 지침으로서의 의미와 종래 견성 이후의 수행에
대해 흔히 돈수를 강조해 온 데 대하여 보림의 측면에서 공부점검
법으로서의 의미가 그것이다.
먼저 경술(1370) 9월 16일·17일 국시공부선장(國試工夫選場)에서
공부십절목이 설해진 경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사(師) 좌석에 나아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 臼]을 모두 부수고 범성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정해(情解)를 털어버리로다. 변통
살활(變通殺活)이 모두 여기에 있고 잡았다 놨다 함이 모두 이 손
안에 있도다. 삼세제불이나 역대 조사나 천하의 노화상도 모두 이
와 같다. 산승은 이와 같은 법으로 우리 임금님의 색신과 법신이
만세 만만세토록 무궁하고 수명과 혜명이 다함이 없기를 봉축하옵
니다. 청컨대 제인(諸人)은 실다웁게 답안을 쓰고 부디 함부로 소식
을 통하지 말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사(師) 다시 말씀하셨다.
"행(行)은 도달했어도 이치[說]가 이르지 못하면 행이 능하지 못한
것이요, 이치[說]는 도달했어도 행이 이르지 못하면 이 또한 도리가
능하지 못한 것이요, 도리나 행이 도달했더라도 이는 모두 문 밖의
일이라 입문일구(入門一句)는 도대체 무엇인가?" 학자들이 모두 말
없이 물러났다.6)
이렇게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
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
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
다. 끝으로 환암 혼수 스님이 오자 스님은 삼구(三句)와 삼관(三關)
을 차례로 묻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로 돌아갔다.7)
여기에서 승려들이 공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입문삼구조차
통과 못하는 상황은 당시 그들의 수행 풍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
다고 볼 수 있다.
뒷날인 17일에는 학인들을 제접한 후 <공부십절목>을 제시한다.
스님께서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
씀하셨다.
"의단이 풀리는 곳에는 마침내 두 가지 풍광이 없고, 안공(眼孔)이
열리는 때에는 한 항아리의 봄빛이 따로 있으니 비로소 일월의 새
로움을 믿겠고 바야흐로 천지의 대단함을 알 것이다. 그런 뒤에 반
드시 위쪽의 관문을 밟고 조사의 빗장을 쳐부수면 물물마다 자유로
이 묘한 이치를 얻고 마디마디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만들고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
을 만드니, 만드는 것도 내게 있고 쓸어버리는 것도 내게 있으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내게 있고 도리를 말하지 않는 것도 내게 있
다. 왜냐하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런 납승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꺼지고 한 걸음 물러나면 허공이 무너지
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면 숨만 붙은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걸음을 내딛겠는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8)
이에 <공부십절목>을 설하니 다음과 같았다.
一.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
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
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二.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
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三.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
은 때는 어떤가.
四.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
는 어떠한가.
五.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 때에
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六. 공부가 지극해지면 근정(動靜)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
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
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
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당한가.
七.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 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
박 끊긴다. 그 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自性)인가.
八.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
인가.
九.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十.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9)
이를 구성면에서 살펴보면 성색초월(聲色超越) → 하개정공(下介
正功) → 정숙공(正熟功) → 타실비공(打失鼻孔) → 의식불급(意識
不及) → 오매항일(寤寐恒一) → 수지경절( 地更折) 수연응용(隨
緣應用) → 요탈생사(要脫生死) → 지거처(知去處)의 10단계를 순차
적으로 물어서 그 깨달음의 단계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에서 단계적 점검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
문에 이렇게 설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내용상에 있어서는 1절목에서 7절목까지는 견성의 단계
를 나타내고, 8절목에서 10절목까지는 보림의 단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나옹은 일반적으로 깨달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견성의 단계를 <공부십절목>의 7절목에 해당시키고 성품을 단련하
고 보림하는 8절목 수연응용의 대기대용적 작용을 비롯하여 9절목
요탈생사에까지 이르고 급기야 10절목의 생사를 벗어나서 4대가 가
는 곳까지를 알아야 비로소 이생의 일을 다 마쳤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깨달음의 단계를 점검하여 대
기대용적 응용에 이르기까지의 완성에 이르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
다.
Ⅲ.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
또한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받았을 선적을 통한 사상적
영향관계의 일단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드러난다. 즉 단정지을 수
는 없지만 나옹이 사용한 용어나 형식을 빌어 그 사상적 연원을 유
추해 볼 수 있는 단서는 제공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필자의
식견부족으로 구체적인 연원까지는 추적하지 못하였다. 다만 사상
적 연원을 고찰하는 실험연구의 입장에서 <공부십절목>과 조금이
라도 관련이 되는 부분을 찾아보려 노력하였다.
첫째, <공부십절목>의 깨달음 10단계라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화엄십지(華嚴十地)>와 상통하고, 그 절목
이라는 형식은 몽산의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10)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둘째, '도솔 삼관(三關)'과의 연관성 문제를 주목할 수 있다.
물음의 형태는 전통적으로 선사들이 학인들을 제접할 때 사용된
방식으로 삼관, 삼전어, 문구, 삼구 등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중에
서도 삼관이란 수행자로 하여금 항상 대립적으로 보는 편견을 버리
고 수행에 입문하게 하는 3가지 기관을 말하는데 유명한 것으로는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의 삼관과 임제종 황룡파 황룡 혜남
(黃龍慧南, 1002∼1069)의 삼관, 도솔 종열(兜率從悅, 1044∼1091)의
삼관, 양기파 고봉 원묘(高峰原妙, 1238∼1295)의 실중삼관(室中三
關) 등이 있다.
특기할 것은 도솔의 삼관이다.
<도솔삼관>
一. 번뇌의 풀을 헤치고 도의 깊은 뜻을 참구하여 단지 자성을 보
라. 바로 지금 그대의 참된 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
二. 자성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할 텐데 눈빛 떨어질 때 어
떻게 생사를 벗어날까?
三. 생사를 벗어났다면 갈 곳을 알 것인데 사대가 분리되면 어느
곳을 향하여 갈 것인가?11)
<공부십절목>
九.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十.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이를 보면 도솔의 삼관 중 2가지 질문이 <공부십절목>의 9절목과
10절목에 수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미
루어 나옹이 도솔에게서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단정지을 수
는 없지만 그 영향관계에 관해 간과할 수만도 없다.
셋째, 표현의 유사성을 통해 《고봉화상선요》와 《몽산법어》와
의 사상적 영향관계를 알 수 있다.
즉, 4절목 '자취를 없애고…' 한 구절과, 6절목에 나타난 `개가 펄
펄 끓는 기름 가마솥을 핥느니라' 한 대목이 《선요》의 '신옹 거사
에게 보이는 구절'에서 발견되고, 7절목의 '120근 되는 짐을 내려
놓는 것과 같아서…' 한 구절도 《선요》의 '앙산 노화상께 사법 의
심함을 풀어주는 글'에서 발견된다.
<공부십절목>
四.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
는 어떠한가.
六.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
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
기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그때는 어떻게 해버려야 하겠는가?
七. 갑자기 120근이나 되는 짐을 내려 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
고 단박 끊긴다. 그 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인가.
《선요》
"양기(楊岐)가 자명화상(慈明和尙)을 참례하니 그로부터 9년이 되
던 해에 자취를 없애고 도를 천하에 전파함도 역시 이 하나의 믿음
에서 벗어나지 않는다."12)
오늘 별안간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묻는다면 "개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
을 핥느니라." 하겠다.13)
"화두를 확연히 깨달으니 곧 혼이 나가고 담이 없어진 듯하고 죽
었다가 다시 소생한 듯하였습니다. 어찌 120근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습니까?14)
그리고 5절목의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한 구절
이 《몽산법어(夢山法語)》의 <몽산화상시총상인(夢山和尙示폡上
人)>에서 똑같이 발견된다.
<공부십절목>
五.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 때에
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몽산법어》
"적적성성하여 마음의 움직임이 멈출 때엔 허깨비몸이 이 인간 속
에 살아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오직 면면히 이어지는 화두만이 보이
리니…"15)
이상과 같이 밝혀진 내용들을 간략히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
{{{{ 절목
}}{{ 내용
}}{{ 비슷한 구절
}}{{ 典據
}}{{ 1절목
}}{{ 聲色超越
}}{{
}}{{
}}{{ 2절목
}}{{ 下介正功
}}{{
}}{{
}}{{ 3절목
}}{{ 正熟功
}}{{
}}{{
}}{{ 4절목
}}{{ 旣能熟功 更加打失鼻孔
1,2b; 打失鼻孔時如何
}}{{ 楊岐 參慈明和尙 令充監寺
以至十載 打失鼻孔
}}{{ <示信翁居士 洪上舍>
(《고봉화상선요》)
}}{{ 5절목
}}{{ 心路不行時 亦不知有幻
身在人間
}}{{ 心路不行時 亦不知有幻
身在人間
}}{{ <夢山和尙示聰上人>
(《선문촬요》)
}}{{ 6절목
}}{{ 如狗子見熱油相似
要 又 不得
}}{{ 只向他道 狗 熱油
}}{{ <示信翁居士 洪上舍>
(《고봉화상선요》)
}}{{ 7절목
}}{{ 驀燃到得如放百二十斤何
擔子相似
}}{{ 何 如放百二十斤擔子
}}{{ <通仰山老和尙疑嗣書>
(《고봉화상선요》)
}}{{ 8절목
}}{{ 隨緣應用
}}{{
}}{{
}}{{ 9절목
}}{{ 旣知性用 要脫生死
眼光落之時 作?生脫
}}{{ ① 識得自性 方脫生死
眼光落時 作?生
② 眼光落之時 還用得看也無
}}{{ ① 도솔 종열의 <삼관>
② <示衆>
(《고봉화상선요》)
}}{{ 10절
목
}}{{ 旣脫生死 須知去處
四大各分 向甚處去
}}{{ 脫得生死 便知去處 四大分離
向甚處去
}}{{ 도솔 종열의 <삼관>
}}
}}이러한 사실은 나옹이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여말선초부터
우리 나라 조계선종의 주요 지침서로 쓰였던 고봉 화상의 《선요》
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나타내고, 당시 국내에 유행되었던 몽
산 화상의 《몽산법어》도 이미 접했으며 그에게서도 사상적 영향
을 많이 받았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몽산 덕이(夢山德異, 1231∼?)와 고봉 원묘(高峰原妙, 1238∼1295)
는 원나라 임제계의 선승들로서 한국 선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나옹만이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앞으로 더 밝혀지겠지만 그 당시 고려의 승려들은 거의가
이 두 선승들의 영향하에 선사상을 전개하고 있을 것이라 여겨진
다.
특이한 것은 시대적으로 300년이나 앞선 도솔 종열의 삼관이 수용
되고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이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인도승 지공과 평산 처
림을 직접적으로 만나서 사승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시대와 분파
를 초월하여 제선가와 폭넓게 사상적으로 교유했을 것이라는 중요
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Ⅳ.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
나옹선의 기저에는 그의 중생구제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나옹이 요연 선사 문하로 출가했을 때16)와 입원
유학기 지공과의 첫대면 때의 문답17)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의 선사상 전반에 시종일관되게 작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자
신의 선사상을 전개함에 있어서 대상이나 방법에 국한없이 대승적
인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철저한 신심과 꼭 이
루고 말겠다는 의지에 바탕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본래면목
에 계합할 것을 강조하지만, 근기에 따라 주장자나 불자, 죽비 등을
번쩍 들어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기도 하며, 때로는
염불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가 선의 방법으로 가장 중요시한 것은 역시 화두참구
에 의한 본지에의 계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밝히기에 앞서
그가 제시한 화두참구의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화두참구의 시작은 각자의 안목에서 제시하는 본래면목이나
세계상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즉, 깨치지 못한 중생의 입장에
서는 자신의 육안으로 파악하는 것들이 실재한다고 믿는데 깨달음
의 안목에서는 이를 달리 설명한다. 그리고 거기에 일호의 의심이
라도 발견되면 기필코 해결해 내리라는 마음을 내고 공부에 돌입하
라는 것이다.
"이 정각의 성품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로는 모든 부처에서 밑으
로는 여섯 범부에 이르기까지 낱낱에 당당하고 낱낱에 완전하며,
티끌마다 통하고 물건마다 나타나 닦아 이룰 필요없이 똑똑하고 분
명하다. 지옥에 있는 이나, 아귀에 있는 이나, 축생에 있는 이나, 아
수라에 있는 이나, 인간에 있는 이나, 천상에 있는 이나 다 지금 부
처님의 가피를 입어 모두 이 자리에 있다. 각경 선가와 여러 불자
들이여!"
죽비를 들고는
"이것을 보는가."
하고는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는가. 분명히 보고 똑똑히 듣는다면 말해 보라.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18)
이처럼 나옹은 죽비를 들되 그 모습에서 정각의 성품을 보고, 죽
비로 치되 그 소리에 정각의 성품의 소식을 듣는데 깨닫지 못한 자
는 그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결국 "그것이 무엇일까?" 여기서 공부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본래면목이라고
도 하는 '그 무엇'에서 모든 시비이해와 선악염정이 일어나기 때문
이며, 그 본래면목을 알지 못하고서는 끝없는 생사고해의 윤회 속
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의문이 일어나면 거기서 당장 깨닫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 본래면목이란 역력고명(歷歷孤明)하게 언제나 드러나 있지만
언설로서 이르지 못하고 명상으로서 나타낼 수 없으므로 부처님도
다만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실 뿐이었던 것이다. 불조의 심인이
심심상연(心心相連)으로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一着子)는 하늘
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하지마는,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닫는 길뿐이다."19)
이 때 철저한 신심과 의지가 요구된다.
"이 일은 승속에도 관계 없고 노소에도 관계 없으며, 초참·후학에
도 관계 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실하고 결정적인 신심에 있을 뿐입
니다."20)
"진정 이 큰 일을 참구하려면 …오직 당사자가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는 데 있는 것입니다."21)
셋째,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달아지지 않을 경우 화두를 참구해 나
간다.
나옹은 "그대들이 그대로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선배
큰스님들이 부득이하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
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22) 라고 밝히면서 화두참구
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한 가지 화두를 계속 참구하고 중간
에 화두를 바꾸는 것을 경계한다. 또 화두의 종류에 있어서는 특정
화두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화두를 들도록 하였지만 시간
적으로는 항상 철저하게 참구해 나갈 것을 강조한다.
"…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 번 앉으면 그대로 눌
러 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만법귀일 일
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든가, '나개시본래면목(那箇是本來面
目)'이라든가, '나개시아성(那箇是我性)'이라든가 하라. 혹은 '준동함
령 개유불성 인심구자무불성(濬動含靈 皆有佛性 因甚狗子無佛性)'이
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
들어야 한다."23)
"부디 다른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지 말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늘 드십시오."24)
넷째, 공안참구의 방법에 있어서는 조작하지 않음과 쉬지 않음을
강조한다.
즉, 간화·공안선에 있어서 대혜 종고(大慧宗 , 1089∼1163)로부
터 지적되고 있는 10종선병은 조작하고 헤아리는 지해(知解)의 병
이라는 말로 축약될 수 있다. 이처럼 나옹에 있어서도 공안을 놓고
헤아리거나 언설로 이해하려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때는 화두가 분명하고 어떤 때는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타
나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
며, 어떤 때는 틈이 있고 어떤 때는 틈이 없거나 하면 그것은 신심
과 의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임"25) 을 지적하고 "빨리 공부를
더하여 앞으로 나아갈 것"26)을 촉구한다.
"도란 첫째는 그 짓지 않는 것[不造]이요, 둘째는 쉬지 않는 것[不
休]임을 알 것입니다."27)
"…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덩어리
로 만들어 그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
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
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28)
다섯째, 화두를 놓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참구하기를 계속하도록
한다.
무슨 일을 하거나 간에 계속해서 의심을 일으켜 나가면 화두를 들
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경지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다시
의심을 더하여 온통 하나의 의단(疑團)이 형성되도록 계속 의심하
여 들어간다. 그 경지에 이르면 자신과 의심이 하나로 뭉쳐져서 경
계를 잊게 된다. 이 때에는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절
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
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만들어야 한
다."29)
이 상태에서도 적적성성(寂寂惺惺)하게 화두를 놓지 않고 계속해
서 의심해 들어가면 자신도 잊고 경계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심신일여(心身一如), 오매항일(寤寐恒一)의 경지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린다. 즉,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말
고 자신을 온통 놓아 버릴 때 공부는 날을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곳에 이르러 가슴
속이 갑갑하더라도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30)
"그저 이렇게 끊임없이 들고 참구하다 보면 어느 새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어, 밥을 먹
어도 밥인 줄 모르고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며, 또 이 허깨비몸
이 인간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같고
자나깨나 매한가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지십시오"31)
여섯째, 공부를 더해가는 가운데 의심덩이가 부서지고 바른 눈이
열려 본지에 계합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성의 원리
를 알게 되고 그 자성의 혜광(慧光)이 발함에 따라 자성의 작용을
알게 된다. 이 때부터는 그 인연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그 작용을
나투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깨달음에 이르른 사람에게 나옹은 정안종사(正眼宗師) 참
문과 보림을 제시한다.
깨침 후 본색종사(本色宗師) 참문으로 마지막 의심을 해결해야 한
다는 점은 태고 보우에게서도 똑같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
한 사상적 경향은 당시 국내에 유행되던 몽산 화상32)이나 고봉
원묘33)의 영향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또한 보림도 "마음 바탕
을 깨닫는 데는 아무런 차별이 없으나 행과 견해가 서로 응하여야
조사라 한다." 한 달마대사에게서 강조되어 온 정신34) 을 계승
하고 있는 것이다.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
도 더욱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
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보아야 좋
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성태
(聖胎)를 길러야 한다".35)
이상과 같이 나옹은 간화선을 지도할 때에도 이런 단계에 따라 상
세하게 지도하고 있다.
즉, 생사를 초월하고 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본래면
목을 알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 의심이 생기면 거기서부터 공부가
시작된다. 의심이 생기면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진행해 나가는데 공
안참구는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틈이 없이 철저하게 의심해 나간
다. 그렇게 공안을 들다보면 의심이 점점 깊어져서 화두가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단계에 이른다. 이에 심신을 온통 하나
의 의심덩어리로 만들어서 계속해서 참구해 나가면 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때 다시 단박에 몸을 던져 공부를 더하면
동정이 한결같고 오매가 항일의 경지를 지나 의심이 타파되고 비로
소 자신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이 단계를 대체적으로는 깨달음의
단계로 설정하지만 나옹은 여기에 다시 정안종사 참문과 보림을 제
시한다.
보림의 공(功)을 더하여 생사해탈을 이룬 후에야 완전한 깨달음의
성취로 보는 것이다.
이를 그 순서대로 생각해 보면 의심의 제기 공안참구 계속 참구
무자미(無滋味) 심신일여(心身一如), 오매항일(寤寐恒一) 단박 깨
침 정안종사(正眼宗師) 참문, 보림 등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
다.
이를 <공부십절목>의 단계에 적용시켜 보면 다음의 표와 같다.
<표 2> 공안참구 지도체계와 <공부십절목>의 단계
{{{{ 절목
}}{{ 단계
}}{{ 비고
}}{{ 1절목
}}{{聲色超越
}}{{의문의 제기
}}{{ 발심
}}{{ 2절목
}}{{下介正功
}}{{신심과 견고한 의지를 내서 의심을 일으
켜 공안 참구 시작
}}{{ 공안참구
}}{{ 3절목
}}{{正熟功
}}{{의심을 일으켰으면 쉬지 않고 행주좌와
간에 들던 화두를 계속들고 철저히 의심
해 들어감
}}{{ 4절목
}}{{打失鼻孔
}}{{공안과 자신이 한덩어리가 되도록까지
용맹정진함
}}{{ 5절목
}}{{意識不及
}}{{無滋味의 경지에 이르러 空에 떨어질까
두려워 말고 힘을 실어 공부에 박차를
가함
}}{{ 6절목
}}{{寤寐恒一
}}{{心身一如, 寤寐恒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림
}}{{ 7절목
}}{{ 地更折
}}{{견성
}}{{ 견성
}}{{ 8절목
}}{{隨緣應用
}}{{대기대용의 응용/정안종사 참문/長養聖
胎
}}{{ 보림
}}{{ 9절목
}}{{要脫生死
}}{{10절목
}}{{知去處
}}
}}
그러므로 이 <공부십절목>은 수행점검법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깨
달음을 성취해 나가는 수행의 지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Ⅴ. 결론
이상에서 나옹의 <공부십절목>의 성립과 구조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서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을 밝힌 다
음,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밝혀 보았다. 이를 간
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학인들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점검
하는 공부점검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즉, <공부십절목>은 공민
왕이 그 동안 승정의 문란으로 중단되었던 승과를 부활하여 선교
양종의 학인을 가려뽑는 공부선장(工夫選場)에서 학인들의 공부점
검법으로 제시된 성립 배경은 이를 잘 나타내 준다. 그 구성은 성
색초월 → 하개정공 → 정숙공 → 타실비공 → 의식불급 → 오매항
일 → 수지경절 → 수연응용 → 요탈생사 → 지거처의 10단계를 순
차적으로 물어서 그 깨달음의 단계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고, 내용
은 1절목에서 7절목까지는 견성의 단계를, 8절목에서 10절목까지는
보림의 단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 나옹의 <공
부십절목>은 깨달음의 단계를 점검하여 대기대용적 응용에 이르기
까지의 완성에 이르렀는가를 점검하는 데 의의가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깨달음의 기연과 방편에 있어서는 대
중적으로 활짝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실제 서울에 제대로 도착했
는가'를 판별함에 있어서는 그 준엄함이 10절목에 예리하게 지적되
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받았을 선적을 통한 사상적
영향관계의 일단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드러난다. 즉, 그가 <공부
십절목>에서 사용한 용어나 형식을 빌어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
의 사상적 연원의 일단을 추적해 보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여말선초부터 우리 나라 조계선종의 주요 지침서로 쓰였던
고봉 화상의 《선요》와 당시 국내에 유행되었던 몽산 화상의 《몽
산법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거기
에다가 시대적으로 300년이나 앞선 도솔 종열의 삼관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점을 볼 때,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인도승
지공과 평산 처림을 직접적으로 만나서 사승관계를 맺었다고 하지
만 시대와 분파를 초월하여 제선가와 폭넓게 사상적으로 교유했을
것이라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셋째,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수행의 지침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가 참선을 지도했던 내용은 <공부십절목>의 단계와 어느 정도
일치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인생의 고를 벗어나고 생사를 해탈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래
면목을 알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 의심이 생기면 거기서부터 공부
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여 의심제기 → 공안참구 → 계속 참구 →
무자미 → 심신일여, 오매항일 → 단박 깨침 → 정안종사 참문·보
림 등의 단계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학인들의 단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나옹의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사상적 연원을 밝힘에 있어서 제선가의 선사상과 나옹
의 선사상을 세밀히 비교하지는 못했고, 필자의 깨달음의 깊이에
대한 한계로 참선의 수행체계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다루지 못한 아
쉬움이 남는다. 선학의 가르침을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