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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과 엄장 <삼국유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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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처음으로 국교로 인정될 법흥왕 초기에, 신라에서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성현이 출현하여 왕생극락의 도력을 보여 주었다. 스승도 없이 스스로 공부를 하다가 관음보살의 현신을 만나 도통을 한 두 성현을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길이 보존하려고 했다. 그런 뒤로 신라 사람들은 친구지간에 함께 승려가 되어 누가 먼저 도통하는가를 시험에 보기도 했고, 도력으로 서방정토에 왕생극락하기를 다투기도 했다. 그런 일화는 매우 많지만, 원효대사 시절에 있었던 광덕과 엄장의 왕생극락 이야기는 매우 깊은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삼국유사는 이 설화를 상세하게 기록하여 남겨 놓았다.
광덕(廣德)과 엄장(嚴蔣)은 출가한 승려로서 누가 먼저 도통하는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엄장은 가족이 없이 홀몸으로 입산수도하는 좋은 여건이었지만, 광덕에게는 차마 떨쳐 버리지 못하는 아내가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도통하자면 막힘이 없어야 하네. 막힘이란 겉으로는 형상이 있는 모든 존재이며, 그 형상이 모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인연을 맺고 있는 사물이 항상 막힘으로 나타나기에 그것들로부터 벗어나 걸림이 없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출가를 했으니, 우선 세속의 온갖 사물과 부딪치지 않으니 장애를 없앤 것이요, 번잡스러이 구하는 바가 없으니 이 또한 자유로움이 아니겠는가?"
"인연이 바로 막힘일세. 세상 모든 사물 중에 인연보다 더 무서운 장애는 없을 걸세."
"그래서 모든 인연을 떨치고 조용히 들어앉아 수양만을 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네는 아내를 떨치지 못하고 한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으니 어찌 마음의 자유인들 얻을 수 있으며, 몸의 흐름이 막히지 않겠는가?"
"흐르는 물엔 청정수도 흐르고 탁수도 흐르는 법일세. 함께 흘러간다면 두 종류의 물이 흐름을 막지 않고 오히려 어울려 더 세차게 흐를 터인데 무엇이 걱정인가?"
"세상만사를 돌리는 방법으로서야 하자가 없을지 모르나 세상만사의 굴레를 벗어나는 데야 어찌 막힘이 되지 않겠는가?"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우나, 자네보다는 내가 먼저 도통할 걸세."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자네는 식사준비며 살림살이를 직접 하면서 공부를 하게 되겠지만, 나는 그런 걱정거리가 없으니 두 배나 많은 시간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대신 인연에 끌려 마음을 써야 하지 않는가? 나는 일을 해도 그저 일일뿐 따로 마음을 내지 않으니 장애가 되지 않는데, 자네는 인연에 따라 마음을 따로 써야 하는데 걸리지 않겠는가?"
"자네가 일을 할 때 따로 마음을 내어 쓰지 않듯이 나도 아내와 여러 가지 일을 할 때도 마음을 따로 내어 쓰지 않네."
"그렇다면 어떤 환경이 더 좋은지 한번 겨루어 보세."
"그러세. 어서 가서 공부나 하기로 하세."
광덕과 엄정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헤어졌다. 광덕은 두 목숨을 연명해야 했다. 그래서 분황사 서쪽의 작은 집에서 신발을
만드는 일을 하며 아내와 함께 살았다. 신발을 만들어 놓으면 아내가 팔았고 그 돈으로 끼니를 연명했는데 두 목숨을 지켜가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광덕의 생활은 그대로 생활일 뿐이었다. 평범한 부부가 한 사람은 신발을 만들고 한 사람은 그 신발을 팔아서 먹고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장은 남악(南岳)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혼자 나무를 베어다가 불을 지피고 밥을 지어 먹으며 공부를 했다. 세상의 모든 일과 인연을 끊어 버리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가 하는 일이란 나무를 베어다가 밥을 짓는 일이었다. 공부하기 위해 이미 상당량의 식량은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가장 좋은 도량을 만든 셈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엄장이 저녁노을의 짙은 뭉게구름에 싸여 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광덕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금 서방정토로 가는 길이니, 빨리 공부해서 나를 따라 오게나!"
엄장이 깜짝 놀라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보니 저녁노을이 깔린 구름 밖에서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남은 광명이 하늘에서 땅까지 뻗쳐 신비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워 합장을 했다. 엄장은 이튿날 광덕이 살던 집으로 갔다. 과연 광덕이 어제 해거름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광덕은 이미 왕생극락했습니다. 어제 저녁 노을을 타고 서방정토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음은 가고 육신이 남았으니 장사를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사를 지내 주려고 왔습니다."
두 사람은 광덕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내는 조금도 서러워하거나 아쉬워하지를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서러움이 얼마나 컸으면 저토록 태연해질 수가 있을까. 엄장은 갑자기 홀로 남은 아내가 염려되고 측은해 보였다.
"남편이 떠났으니 나와 함께 지냄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공부가 늦었는데, 홀로 남은 광덕의 아내의 아픔을 위로해 주면서 서서히 마무리를 지으려고 마음먹었다. 광덕은 아내와 함께 온갖 정을 나누면서도 먼저 도통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구태여 혼자 공부하면서 외로워할 광덕의 아내를 연민하면서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좋습니다. 그러시다면 생계를 유지해야 할 테니 아예 이 집에서 머무르시지요."
"그럽시다. 광덕이 도통한 집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부디 나도 도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저는 아무것도 돕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할 일만을 어김없이 했을 뿐입니다."
"내게도 또한 그렇게만 해주십시오. 서로 할 일만 하면 걸림이 없는데, 그로 인하여 온갖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인연이 곧 장애로 변하는 것입니다. 서로 걸림만 없다면 인연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표현입니까."
그들은 한동안 잘 지냈다. 광덕 아내가 밥을 지어 주고 빨래를 해주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밤에는 한 방에서 거리낌 없이 함께 누워 잤다. 조금도 불편하거나 걸림이 없었다. 사람이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기만 했다. 그러니 공부할 시간이 먼저 토굴보다 두 배나 더 생겨 주었다. 이렇게 자유로운 인연이라면 더 깊은 정을 맺은들 무슨 장애가 되랴.
엄장은 슬그머니 옆자리에 누워 잠든 광덕 아내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광덕이 그렇게 자유롭게 살았듯이, 자기도 흘러가는 대로 함께 흘러가면서도 서로 막히지만 않는다면 거리낄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인을 품에 안고 속살을
풀고 속정을 흘러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부인은 매우 부끄럽게 여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님께서는 서방정토에 가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고기를 구하는 격이라니, 자신의 공부 방법은 아예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광덕은 어떻게 공부를 했단 말인가?
"광덕도 이미 관계를 했는데, 난들 무엇을 꺼리겠습니까? 함께 흘러가도 서로 막히지만 않는다면 도리어 힘차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남편은 저와 10여 년이나 함께 살았습니다. 오직 서로 할 일을 하는 도반이었지 하룻밤도 잠자리를 함께 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물며 관계를 맺었겠습니까?"
"서로 다른 방에서 잤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밤에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밤마다 단정히 앉아 한결 같은 소리로 아미타불의 명호만을 염불 했습니다."
"십 년 동안이나 장좌불와(長座不臥)를 했단 말입니까? 십 년 동안을 한 번도 눕지 않고 앉아서 염불을 하고 앉아서 잠을 잤단 말입니까?"
"미혹을 깨치고 진리를 달관함이 이미 이루어진 뒤에는, 밝은 달빛이 창에 비치면 때때로 그 빛에 올라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그의 도력이 이미 자유자재하고 정성이 그토록 지극했기에 비록 서방정토를 가지 않으려고 해도 그가 있는 것이 이미 정토인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천 리를 가는 사람도 그 첫걸음으로써 알 수 있는 법인데, 지금 스님의 가는 걸음은 서방정토인지 아니면 동방예토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엄장은 벌떡 일어났다.
"부인! 용서하시오. 서방정토 가는 길을 이리도 쉽게만 생각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광덕이 떠나면서 가르침을 주려고 이리 보낸 듯 싶습니다. 광덕의 은혜를 갚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왕생극락하시기 바랍니다."
등골이 오싹해진 엄장은 그 길로 원효대사를 찾아갔다.
"서방으로 가려면 계속 서쪽을 향해서 갈 일이지 어찌하여 뒤로 돌아 동쪽에 와서 길을 묻습니까?"
"혼자서 먼 길을 가는 것은 무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무작정 서쪽으로만 가는 것은 막힘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잘못 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덕을 돌아가기 위해 동쪽으로 물러가야 할 경우도 있고 때로는 남쪽이나 북쪽으로 돌아가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목적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로군요."
"목적지마저 모르기 때문에 돌다보면 방향을 잃을까봐서 정확한 이정표를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나는 서방정토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아니라 동방의 예토에서 바로 서방정토를 누리는 축지법을 가리키는 이정표라서 어려울 터이니 서방정토를 가르치는 다른 스승을 찾아가 보십시오."
"예토와 정토가 둘이 아닌 경지를 터득해야만 왕생극락이 된다는 것은 이미 광덕의 부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광덕의 깨우침이 깊어 어디를 가든 그곳이 곧 서방정토가 되었다는 말이 제 마음을 묶어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광덕은 무슨 공부를 했습니까?"
"청정무구하여 한 인연에도 때 묻지 않았습니다. 십 년 동안이나 장좌불와를 하면서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의 자유를 얻어냈습니다."
"그래서 광덕은 서방정토로 향해 갔습니까?"
"그토록 공부를 했으니 어찌 왕생극락을 못 하겠습니까?"
"광덕은 아직 대도(大道)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미 도통을 하여 범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력을 보였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먹을 때는 먹고, 할 때는 하고, 잘 때는 자도 막히지 않아야지. 오직 장좌불와만을 십 년간 지속했으니 십 년 동안이나 묶여 버린 그의 마음에 어찌 자유가 있었습니까?"
"그래도 그는 이미 왕생극락을 하지 않았습니까?"
"방위가 본래 동서남북이 있습니까? 우리가 있는 이곳도 북쪽 사람이 보면 남방이요, 서쪽 사람이 보면 동방이요, 동쪽 사람이 보면 서방일 것이오."
"방위라 그렇다 하나 진리의 세계는 다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마음의 울타리가 없어진다면 방위가 어디에 남아 있겠습니까? 본래 온 곳도 없는데 서방을 찾아갔다니 얼마나 다리가 아프겠습니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마음이 열리면 그 자리가 정토(淨土)가 됩니다. 동방과 서방이 한 자리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대도를 어떻게 해야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쟁관법(諍觀法)을 익히시오."
"마음의 자유를 얻으려면 먼저 마음이 편안해져야 하고, 그렇게 되려고 인연을 끊는 법인데 어찌 투쟁하는 마음을 보라 하십니까?"
"세상 만물이 내는 소리가 다 부딪쳐서 생기는 것이니 그것이 투쟁의 소리요, 사랑과 미움의 업장이 다 남녀가 만드는 투쟁의 소리가 아니던가. 말과 말로 싸우는 언쟁을 보고, 일과 일이 싸우는 사쟁(事諍)을 보시오. 언쟁과 사쟁을 잘 보면 모든 것이 하나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오. 어느 한 가지도 피하지 마시오. 가서 부딪치고 그 소리를 들으시오. 그리하면 생사를 여의는 해탈의 문을 열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광덕의 부인도 이미 도통 했단 말씀인가요?"
"광덕의 부인은 분황사의 종입니다. 분황사에 기거하는 관음보살의 화현입니다. 그러니 두 스님 다 함께 왕생극락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엄장의 귀가 탁 트이고 생사의 고리가 끊어져 마음의 문이 열렸다.
엄장은 그길로 공부를 하여 도통을 해서 왕생극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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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으로 간 광덕과 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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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삼국사기 천자문 47
일연 지음
국사교육교재개발원 옮김
하명수 그림
이우태 감수
킹덤하우스
2011년 07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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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어린이(초등) > 어린이만화 > 학습만화 > 고전/명작
아하!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통일신라 이야기
『극락으로 간 광덕과 엄장』. 한자능력검정시험 대비 4급 한자를 수록한 책으로, 만화를 통해 흥미로운 통일신라 이야기를 전한다.
본문의 내용에 해당하는 한자를 눈에 띄게 배치하여 자연스러운 한자 학습을 유도하고 있으며, 본문 내용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나보기’와 ‘알아보기’를 수록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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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일연. 속명은 김견명(金見明)이다. 자는 일연(一然)이고, 시호는 보각(普覺)이다. 경상북도 경산(慶山)에서 태어났다. 1214년(고종1년) 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현재 광주) 무량사(無量寺)에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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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두 친구의 약속
이상한 계시
광덕의 죽음
부인의 충고
광덕의 수양
엄장의 깨달음
첫댓글
고맙습니다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