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암 등대로
사월 첫째 주 목요일이다. 아침 시간은 출근길 들녘을 산책삼아 걸어 어찌 때운다. 퇴근 후 저녁엔 마땅히 보낼 거리가 없다. 텔레비전은 일기예보 말고는 관심이 없는지라 아예 켜지를 않는다. 책을 넘기면 좋으나 눈이 침침해져와 오래도록 보질 못하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절간 스님도 아닌 주제에 면벽 수도만 할 입장이 못 된다. 글을 쓰면 되는데 글감을 찾아야 했다.
내가 생활 속에 남겨가는 글에는 다양한 내용을 담는다. 그 가운데 가장 좋기는 두 발로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서둘러 교정을 빠져나왔다. 날이 어두워지려면 아직 두세 시간 남았다. 원룸으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연사마을 앞 버스정류소로 갔다. 거기서 자주 스쳐가 눈에 익은 버스가 10번이다. 10번은 고현에서 능포로 오가는 노선이다.
거제는 고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권역을 나눌 수 있다. 내가 사는 연초는 고현에서 북동쪽에 해당한다. 근래 거가대교가 개통되어 인적 교류와 물류 이동이 예전과 달라졌다. 부산과 김해, 그리고 진해 창원까지 거가대교 영향이 미친다. 고현의 삼성조선소와 마찬가지로 옥포는 대우조선소가 있다. 이 두 조선소가 거제 지역 경제와 우리나라 조선 산업 풍향계가 된다.
연초에 둥지를 튼 지 한 달이 지난다. 그새 퇴근 후 내가 머무는 연사마을에서 하청 유계로 가는 임도를 걸은 적 있다. 이번 주 39번 버스 종점인 이목마을로 가 연초호 둘레길을 걸어봤다. 초행길에 두세 시간을 걸었더니 산그늘은 금세 내려 어둑해졌다. 연초와 인접한 곳이 옥포다. 옥포는 내가 머무는 곳에서 동쪽이다. 옥포는 장승포와 이어지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능포다.
연사마을에서 고현을 출발해 능포로 가는 10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연초삼거리와 송정마을을 거쳤다. 옥포에서 장승포를 향해 가는 차창 왼편 대우조선의 거대한 도크가 드러났다. 오래도록 채권 은행에서 경영권을 행사하다가 이번에 동종 조선업 재벌회사로 합병이 된다고 노조가 술렁이고 있다. 어떻게 결론 나든 잘 수습되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었으면 한다.
버스는 대우조선 정문과 동문을 지나 장승포로 넘어갔다. 장승포는 거제가 시로 승격되기 이전 군이었을 당시에는 행정 명칭이 읍이었다. 이제 거가대교 개통으로 부산으로 가는 여객선 터미널은 쇠락해 지심도와 해금강으로 운행하는 유람선만 띄운다. 장승포에 이어진 또 다른 포구가 능포인데 국가어항이다. 길도 고속도로와 국도와 지방도로 구분하듯 어항도 급수가 있다.
장승포까지는 들려본 적 있지만 능포는 초행이었다. 거가대교 방향인 북동쪽으로 트인 포구였다. 어선들은 대부분 조업을 나가 포구는 텅 비어 있었다. 서쪽 방파제에서 동쪽 방파제로 향했다. 어디나 그렇듯 방파제엔 낚시꾼이 눈에 띄었다. 포구 인근 몇몇 횟집과 냉동 창고도 보였다. 근해에서 정치망 조업을 많이 해서인지 여기저기 그물 더미가 쌓여 있고 널브러져 있었다.
조업을 마치고 포구로 돌아온 어선에서 두 어부가 아귀를 옮겨 담았다. 박스에는 주둥이를 다물고 배를 씰룩거리는 여러 마리 아귀가 있었다. 방파제 끝에서 양지암 조각공원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산책로 길섶에는 털머위와 자랐다. 산중에서 만나는 엷은 보라색 뫼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 때죽나무 꽃 같기도 하고 산딸기 꽃 같기도 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도 보았다.
갈림길에서 양지암 등대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해안 초소를 지나 갯바위봉우리에 등대가 우뚝했다. 어둔 밤에 옥포만으로 드나드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는 등대였다. 산책 데크가 가팔라 등대엔 오르지 않고 사진만 남겼다. 등대에서 되돌아 나와 양지암 조각 공원으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 오는 데도 바다엔 멸치잡이 어선인지 점점이 떠 있었다. 조각공원엔 가로등이 켜졌다. 19.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