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차는 IS-3에 적용된 경사장갑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68톤에 달하는 중량 덕분에 충분한 내부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소련전차 답지 않은 넉넉한 거주성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다 1050마력에 달하는 디젤엔진 덕분에 중전차라고는 믿기 힘든 기동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원래는 1500마력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므로 기동력이 더 상승할 수 있었으나, 이엔진 달고 복합장갑으로 소재 바꾸고 반응장갑 붙이면 3세대 MBT 나올듯 엔진의 개발이 지연되자 1050마력 엔진을 탑재한 것이다. 그리고 대체엔진을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주행에서 60km/h에 달하는 속력은 참관한 장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탄약수가 2명이고, 재장전을 쉽게 해주는 보조장치가 있었기에 분당 6~8발의 사격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68톤이나 되는 중량을 가진만큼 장갑을 최대 300mm까지 확보할 수 있어서 시험에서 자기 자신의 주포조차 막아냈다고 한다.
위에서 설명한 특징만 보면 즉시 채용되어도 모자랄 정도 같지만 그렇다고 무결한 건 절대 아니었다.
엔진의 내구도가 약하다. 소련의 전차엔진기술이 한동안 T-34의 500마력 엔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당연한 일. 이렇게 되면 엔진을 소모품처럼 갈아주어야 하는데, 미국같이 킹왕짱에 돈지랄을 할 수 있는 국가도 전차 엔진을 소모품처럼 갈긴 힘들다.
화재가 잘 난다. 앞서 언급된 엔진의 내구도가 약하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으며, 추가연료탱크를 플라스틱 재질을 섞어서 만든 것이 화재의 위험성을 높였다. 그리고 이를 대비해서 장착한 자동소화장치는 제 역할을 못 했다.
현가장치가 중량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현가장치도 소모품처럼 주기적으로 갈아야 하는데 역시 같은 약점이 있는 야크트 티거처럼 운용하기 매우 힘들어진다. 게다가 전차의 특성상 포장도로를 달리는 일보다는 거친 야지를 주행하는 일이 많은데, 현가장치가 이래서야 그냥 퍼져버린 후에 견인도 불가해서 폭파처리하는 불상사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엔진의 출력 덕분에 어지간한 3세대 전차보다도 무거운 68톤에 달하는 중량[1]에도 불구하고 시속 60km라는 무시무시한 속력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을 다 까먹었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내려온 지시는 중량을 40톤선으로 줄이라는 지시였다. 이는 위에서 언급된 장점도 확실하게 제거하는 지시였고 결국 채용되지 못했다.
소련제 답지 않게 준수한 거주성과 자기자신의 공격조차 막아내는 떡장갑을 갖추었고 중전차라고는 믿기 어려운 60km/h에 달하는 속력은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그놈의 중량때문에 현가장치가 잘 퍼졌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채용되지 못한 비운의 전차. 하지만 어지간한 현용전차도 이 전차보다 가볍다는 걸 생각하면 설계에서 너무 과욕을 부린 게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월드 오브 탱크의 10티어 기동 중전차로 등장했다. 고증 스펙대로 나왔다면 아마 12티어쯤 됐겠지만 그랬다간 다른 전차도 고증대로 나올 테니 적절하게 성능을 조절하여 나왔다. [2] 바로 위에 적혀있는 Obj.261/263도 각각 자주포 / 2차(기동) 구축전차 트리의 10티어로 등장.
[2]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밸런스를 위하여 고증을 희생시킨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T-62가 있다. 본래 T-62는 돼지 위에 얹어도 상관없는115mm 활강포를 주무장으로 썼지만, 너무 높은 관통력이 게임과 안 맞는데다 워게이밍이 활강포는 절대로 넣지 않겠다는 방침에 따라 100mm 강선포를 쓰는 T-62A를 게임에 내놓았다. 문제는 성능을 너무 희생시킨 덕분에 한때 10티어 중전차 최약체 소리를 들었으나 2014년 11월 기준으로 HD 모델링 덕에 아주 미세하게나마 장갑이 좋아졌다.. IS-7과 비견되는 10티어 중전차는 중국의 113이 있다.
IS-2 전차가 양산에 들어갔을 때 니콜라이 듀호프 설계팀은 신형 중(重)전차의 시제형인 키로베츠 1을 계획하여 1944년 10월에 완성했다. 키로베츠 1은 정식으로 채용되어 IS-3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1945년부터 첼랴빈스크 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갔다.
IS-3이 IS-2와 동일한 주포를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개발 및 양산이 진행된 이유는, IS-2 자체가 원래 85mm 주포를 사용하려는 계획이 독일군 중전차의 막강함 때문에 뒤집어지면서 긴급하게 122mm 주포를 채용한 결과, 실내공간 협소 및 느린 발사속도, 휴행탄수 부족 및 즉응탄수 절대부족이라는 큰 문제점이 발생하였고, 장갑의 경우에도 KV-1전차로부터 물려받은 전방 조종수 직시창등의 약점이 많아서 원거리에서 독일군 중전차에게 핀포인트 사격을 맞고 박살나는 등 믿음직하지 못한 모습이 자주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IS-3은 최대한 경사장갑을 채용하고, 적의 핀포인트 사격에 대응하기 위해 약점을 줄이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차체높이가 매우 낮고, 포탑도 버섯의 갓처럼 특유한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차체도 전면장갑이 뱃머리처럼 5각형 모습으로 돌출하는 특유의 형상을 가짐으로서 전면공격은 물론이고 약간 측면에서 포탄을 맞아도 버틸 수 있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2차대전중 생산된 전차치고는 특이하게도 차체전면 기관총을 폐지하는 등의 특징이 생긴다. 한마디로 말해서 방어력에 올인한 상황이다. 다만 다른 소련군의 전차와는 달리 곡면이 많아서 초기에는 용접불량으로 인해 진동으로 장갑에 균열이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그리고 IS-3는 중장갑과 122mm 포를 장비한 중전차임에도 불구하고 전작인 IS-2보다 불과 0.5~1톤이 증가한 46톤이라는 중량을 가진다. 이렇게 톤수가 증가하지 않은 이유는 엔진의 성능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문제는 해당 중량이 독일군의 판터와 비슷한 가벼운 중량이며, 덤으로 앞서 말했듯이 차체 높이가 낮은 등 전차의 크기 자체가 제한되었다. 따라서 이런 결과가 합쳐진 결과 전차의 내부용적이 전작인 IS-2보다 더 많이 희생하는 결과를 가져와 주포의 발사속도가 더 느려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여기에 더해서 주포의 상하각도 조절도 IS-2보다 못하게 돼서 진짜로 직사포가 돼버렸으며, 안그래도 인체공학적 구조와는 연관이 없던 소련군 전차의 입장에서도 진짜로 안에 들어가서 전차를 운용하기 곤란한 수준까지 떨어진 덕분에 장시간 운용에 지장을 초래했다.
하지만 방어력 증대효과는 확실했으므로 IS-3는 1951년까지 2,311량이 생산되었다.(약 1,800량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후계자도 있어서 후에 확대발전형인 개량 IS-8은 T-10으로 탄생했고 IS-3 자체도 1960년부터 차체의 측면장갑을 공구상자를 겸비한 공간장갑의 변경과 엔진을 V-55로 교환하는 등의 개량을 가해 IS-3M으로 사용했다.
일단 IS-3도 2차대전중에 양산된 것은 맞지만 양산시기가 너무 늦어서 부대배치 및 차체의 문제해결을 위해 독소전쟁에선 실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8월의 폭풍 작전시에는 1개 전차대대급 병력이 출동하긴 했지만 관동군과의 전투는 일어나지 않은 채 종전을 맞이했다. 여기서 까지 참전 못했으면 맨 오브 워의 is-3는 있지도 않았겠지
1945년 9월 7일 베를린에서 열린 소련군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 퍼레이드에 참가한 제2근위기갑군의 IS-3.
그래서 실질적인 등장은 1945년 9월 7일 베를린에서 열린 소련군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 퍼레이드에서 제2친위전차군 소속의 52량이 등장했을 때다. 등장 당시로써는 IS-3는 외형적으로 무척 세련되어 진보된 전차라는 분위기를 강하게 풍겼고, 연합군 수뇌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때문에 미군의 조지 S. 패튼과 소련군의 게오르기 주코프간의 말싸움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말싸움은 말싸움이고 당장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은 M103, 영국은 컨커러같은 중전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냉전이 발생했기 때문에 IS-3이 진짜로 실전을 겪은 것은 한참 후엔 제3차 중동전쟁의 일이다. 이 전쟁에서 이집트군에 매각된 약 100량의 IS-3M이 실전에 참가했다.
전술가인 셰이크 즈와이드가 IS-3의 교전을 언급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군 제 401 기갑여단 소속의 M48A2 전차는 20~30량의 IS-3M과 전투에 들어갔는데 90mm 포탄은 IS-3M의 장갑에 튕겨나왔다. 그러나 미숙한 이집트군 전차병은 후방의 보조연료탱크를 그대로 장착한 채 출진해 이것을 알아챈 이스라엘군은 백린철갑탄으로 저격해 5~6량을 불태웠다. 결국 혼란상태에 빠진 이집트군 전차병은 멀쩡한 IS-3M을 버린 채 달아나버렸다.
그러나 모든 이집트군이 이렇게 한 것은 아니라서 일부 IS-3M은 차체를 은폐시켜 매복했다가 기습하는 전법으로 이스라엘군을 고전시키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론 73량을 상실했고 일부는 이스라엘군에게 포획당했다.
제3차 중동전쟁 이후에 이집트군은 IS-3M의 엔진을 T-55의 물건으로 변경하는 등 개량을 가하기도 했지만 부품조달의 문제때문에 요르단 강 동안에서 차체를 파묻고는 토치카 대신으로 사용했다. 여기서 왜 이집트군 차량이 요르단영토에 있는지 궁금해할 수 있는데, 제4차 중동전쟁까지는 이스라엘을 타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스라엘 주변국들이 서로의 군대와 장비를 다른 국가에 파병 형식으로 보내서 주둔하거나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소련에선 IS-3M은 1970년대까지 장비차량 리스트에 등재했다. 하지만 실제로 전차로 운용하기 보다는 쿠릴 열도나 사할린 섬등의 곳이 연안방어용 벙커 대신으로 이용했다.
소련은 이집트 이외의 나라에 IS-3를 보낸 숫자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실전사례 외에는 전투 기록 자체가 거의 없다. 당장 IS-3은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엔 각각 1, 2량, 북한에는 소규모 부대를 편성할 정도의 숫자만 공급했다. 그 외의 동맹국에서 사용된 스탈린 전차는 IS-3M이 아닌 IS-2M으로, 역시 T-10, T-10M도 소련 이외에선 사용되지 않았다.
[냉전후 IS-3 전차의 개량형모델로 대형화 시킨 IS-7 전차가 개발되어졌으나 너무 비대한 크기에다 당시 저 작으면서 성능적으로 우수한 T-54/55 전차의 개발로 실험적으로 몇대만 제작된후 개발이 중지된다 사진은 얼마 남지 않은 IS-7 전차의 사진중 하나]
종합적으로는 등장시기를 놓친 전차다. 일단 IS-2의 방어력을 톤수의 증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증가시킨 것은 훌륭하며, 경사장갑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도 칭찬받을만하다. 하지만 소련 전차종특의 특징에 따라 작은 차체와 포탑에 경사장갑을 극한으로 쥐어 짠 결과 승무원들은 엄청 고생 하였다. 하지만 이 전차가 6개월만 빨리 등장했어도 독일군의 티거나 티거 2와 자웅을 겨루면서 나름대로 역사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전에서 정말 저랬을지도 의문. 중동전쟁에서 4호가 센츄리온과 호각으로 싸우고 무개조의 셔먼이 T-55를 격파한 사례와 티거와 판터를 확실히 뛰어넘을 것이라고 예측되었던 IS-2가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꼭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늦게 양산되는 바람에 실전에 참가하지 못했고, 전후의 소련 중전차 계보의 지주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도 중전차 자체가 많이 생산되지도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면서 반쯤 무의미해졌다. 게다가 그나마 치른 실전은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반쯤 구식이 된 상태에서 숙련되지도 못한 이집트군에 의한 것이니 안습 그자체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월드 오브 탱크의 소련의 8티어 기동형 중전차로 등장한다. 속도도 중전차 치곤 기동성이 있는편이고 최종포인 122mm BL-9를 달면 좋은 관통력에 강력한 데미지로 적들을 놀라게 해줄 수 있다. 업글 포탑은 전측후 220이라는 돌머리 장갑에 달걀형 포탑이라 해치를 맞추지 않는이상 튕겨 버리고, 차체는 경사장갑까지 장비 하고 있어서 8티어 중에서는 좋은 축에 속하는 중전차이다. 다만 경사장갑이 졌다고 하지만 차체정면은 110밖에 되지 않기때문에 어중간하게 티타임을 주면 죄다 뚫리고 장전시간이 길기때문에 혼자서 다니는 것보단 여러대가 몰려다니는것이 중요하다.
미니어처 게임 DUST에선 옆으로 잡아 늘리고 앞뒤로 길쭉하게 만든 SSU군 최고의 떡장 IS-48 초중 전차로 등장한다. 특유의 포탑까지 사이즈를 부풀려 놓았으며 122미리를 넘어선 152미리 주포를 장착하거나 테슬라 캐논을 장착 할 수 있다. 지원 전차의 차체마저 똑같은것으로 보아 이 디자인이 양산형으로 채택된듯 하다.
Total Sprues: 25 sprues, lower hull, upper hull and turret
Packaging:
Box Size: 41x26x6.5cm
Qty./Ctn.: 12pcs
MEAS.: 42x40.5x54cm
More Features :
The kit consists of over 310 parts
>the kit w/refined detail
>multi-slide moulded lower hull
>180 individual tracks links
>Etched Photo part included
The T-10 was a Soviet heavy tank of the Cold War, the final development of the
KV and IS tank series. It was accepted into production in 1952 as the JS-10 ,
but due to the political climate in the wake of Stalin's death in 1953, it was
renamed T-10. henceforth Had carried out many times modernized improvement
.T-10A in
1956 Improve on T-10 base.Exchanged a new model gun barrel,and New
observation-aims system.
Item No
05547
Item Name
Soviet T-10A Heavy Tank
Bar Code
9580208055473
Scale
1:35
Item Type
Plastic Model Armor Kit
Model Brief
Length: 269.3mm Width:100.6 mm
Total Parts
310+
Metal Parts
copper cable
Photo Etched Parts
2 pcs
Film Parts
n/a
Resin Parts
n/a
Total Sprues
25 sprues , lower hull , upper hull and turret
Released Date
2016-11
More Features
The kit consists of over 310 parts >the kit w/refined
detail >multi-slide moulded lower hull >180 individual tracks
links >Etched Photo parts included
미라지콤프방 공동구매는 비밀방에서만 진행합니다. 참가하고싶은 분은 아랫글 읽어보시고 부담없이 (단 꼭 공동구매는 참가할수 있는분들만..) 참가해주시고 혹시 매번 공동구매는 부담스럽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다면 언제든 카톡이나 문자로 (010-3209-6098) 로 찔러주세요.. 다만 문의하실때는 까페회원 누구라는걸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워낙 잘 알려진 번호라 이상한 문의나 광고가 많아서 그럽니다.)
첫댓글 보병이 멋진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