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참나(眞我)’를 찾는 길-어느 불목한이의 깨달음
자, 방법은 깨달아야 된다 그거라.
깨달아가지고 ‘참나(眞我)’를 찾아야 된다 그거요.
우리는 참나를 모르고 잃어버리고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참나를 찾아야 된다. 그러려면 깨달아야 된다.
그러려면 두 가지의 방법이 있어요.
‣화두 참구하는 방법이 있고
‣그냥 참나가 무엇인가 하는 것만 생각을 하고 화두 없이 묵조 하는
묵조선(黙照禪)이 있어요.
자, 그런데 우리나라는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 참선하는 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느 절에 '불목한이’가 있었어요. 불목한을 아십니까?물 길러주고 나무하고 불 때고 짐 나르고, 주지가 시키는 대로 절 일을 해주고 사는 처사.
이런 사람을 불목한이(‘불목한’이라고도 하고 부목(負木)이라고도 한다)라고 해요.
어느 때 불목한이가 있었습니다.
거기가 선방(禪房)인데, 선방은 참선하는 스님들이 한 철씩 와서 사는 그런 절이어요.
선방 아시죠? 선방이 있는 절. 불목한이는 천성이 아주~착했습니다.
천성이 너무너무도 착하고 부지런하고 고지식하고 배운 것은 없고
가진 것은 없지만 성품은 그렇게 아름다웠어요.
그 불목한이가 날마다 보는 것은, 자~ 나도 사람이고 저 스님도 사람인데
세상 하는 일 없이 선방에서 이렇게 졸고만 앉아 있단 말이어.
모두 졸고만 앉아 있어.
자기는 죽~도록 일을 해야 삼시 세 끼를 때우는데
저 사람들은 어째 저렇게 우대받을까? 하면서 그렇게 잘 사니까
부러워 보인단 말이어요. 그래서 주지한테 물었어요.
(불목한) : 도대체 저 스님들은 무엇을 합니까? 앉아서 무얼 합니까?
(주지) : 야! 이놈아! 네가 몇 년을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느냐?
참선을 해 이놈아! 참선!
(불목한) : 참선이 뭡니까?
(주지) : 화두! 화두를 가지고 참구한단 말이어.
그 주지가 아주 박식하고 말을 잘하고 하면 자상하게 이야기하겠지만,
자기는 별로 모르니까 그저 조금 어려운 용어를 섞어 가면서 말하니까 이 사람은 모르지.
사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불목한) : 그러면 나도 화두 하나 주시오! 나도 하나 주시오! 화두 하나주시오!
그랬단 말이어.
(주지) : 그래? 못 줄 것 없지!
화두를 내립니다. 무슨 화두를 내렸나?
(주지) : ‘즉심시불’이라고 해라!
그랬단 말이어. 즉심시불(卽心是佛)은 ‘마음이 곧 부처다’ 그 말이어요.
그런데 주지가 그 해석을 못했어.
(주지) : 즉심시불이라고만 해!
그러고 쫓아버렸단 말이어.
(불목한) : 즉심시불...즉심... 즉심... 짚신이 부처다고?
이제 이렇게 생각했어요.
(불목한) : 짚신이 부처다 그 말이냐? 짚신이 부처? 짚신이 부처?
이것만 가지고 이제 자나 깨나 나무하러 가나 물을 길러 올 때에나 짐을 나를 때에나
밥을 먹을 때에나 잠을 잘 때에나 생각합니다.
너무나 고지식하니까. 화두타파하려면 사람은 고지식해야 됩니다.
생각이 많으면 안 되어요. 하나 하면 그냥 하나예요.
이 사람은 그저 ‘짚신시불...어째서 우리 주지스님이 짚신이 부처라고 했느냐’ 그거요.
이거 환장하겠다 그거라. 이것을 깨치면 부처가 된다 그거예요.
나도 부처가 되어야 되겠다 그거라. 나도 이렇게 살 것 아니다 그거야.
이거 깨치면 큰스님으로 우대 받는다 그거요.
‘야! 나도 이거 깨쳐야 된다’ 해가지고 이제 ‘짚신시불?’, ‘짚신시불?’...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의심이 쌓여요. 의단이라고 해. 의단. 화두타파를 하려면 의심이 축적됩니다. 너무도 착하게 공부하니까 의심이 죽~죽 쌓여가요.
화두타파하려면요, 암탉이 알을 까듯 다른 생각이 없어야 되요.
고양이가 쥐구멍으로 들어간 쥐를 잡으려고 꼼짝않고 나오기를 바라듯, 아셨습니까?
활궁사가 과녁을 맞추려고 조준하듯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안 되어요. 100년을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이 불목한이는 천성이 단순해요. 하나하면 하나밖에 몰라요.
그러니까 그냥 짚신시불이어. 짚신시불만 생각하는 거요.
그러니까 점점 의단이 형성되니까 이제 답답해요.
이제 화두타파하려고 하면 답답해갑니다. 이제 답답해 죽겠어.
이거 이거 큰~뭐 하나가 들어앉았는데, 이 의심을 깨지 않으면 나는 죽겠어.
이 단계에 갑니다. 그러니까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갈 때 산에 가서
그냥 ‘짚신시불~ 짚신시불~... 우리 주지가 짚신이 부처라고 하는데 이거 왜~~
이거 부처냐??’고 그냥 목이 터져라 악을 쓰는 거예요. 그 경계에 가야 됩니다.
이 사람은 너무도 성품이 단순하고 착하니까 의심이라는 것이 없어.
그냥 믿고 짚신이 부처라는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맞는 것이어.
그렇게 하는 거란 말이어.
이거 이거 이거 나는 의심이 나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환장해 죽겠다 그거라.
자나~깨나 꿈속에서도 짚신시불이야.
그렇게 가면 여러분! 화두타파가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아셨어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말씀하는 거예요.
나도 선방에서 많이 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내 책을 보면 나오지요.
하루는 나뭇가지를 많이 해서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내려옵니다.
산길을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타~악 엎어져버렸단 말이어.
꼬꾸라져버렸단 말이어.
그러면서도 짚신시불인데 꼬꾸라지면서 보니까 자기 짚신 하나가 저리 나뒹굴어져
저기에 떨어졌단 말이어. 그것을 탁 보는 순간에 타~악~깨쳤어요.
생각이라는 것이 없고 시간이 몇 시간을 흘러간 줄 몰라요.
거기에서 그냥 뭘 봤나?
이게 중요합니다. 이제 참나(眞我)를 본 것입니다. 뭘 봤나?
경계가 뒤집히는데 나무도 없고 산도 없고 나도 없고 짚신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
허공같이 텅~비어버렸단 말이어요. 자, 여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허공같이 텅~비었어. 다만 빛이, 이것을 스님이 가끔 이야기하는 본체라고 그래.
그게 우주의 본체라고 해. 그게 이 허공의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단 말이어요.
그것이 우주를 가득 싸고 있어요.
그것이 이 땅덩어리 별 덩어리 이 모든 것을 전~부 품고 있는 거요.
이게,우주가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이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그 본체를 봐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주의 본체를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깨달음.
그런데 우주의 본체를 선가에서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제 마음의 진자리(-참된 자리)를 봐버린 거예요.
그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본성이라고 해.
본성을 봐버린 거예요.
이제 여기는 좋습니다. 내가 하나 하나 시비(是非)를 말해줍니다.
오직 텅~빈 것만 의식한 것뿐이어. 의식이어 의식. 의식 없는 것이 아니어요.
텅~비어버린 것만 의식한단 말이어. 알아차림. 순수한 알아차림.
그 의식, 순수한 알아차림,
이게 나 주인공의 씨의 종자란 말이에요. 씨란 말이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무아(無我)’라고 하네.
그러면서도 깨친 사람들이 소위 선사들이 그렇게~ 보림을 하고,
지금 수백 명 수천 명이 나왔는데 무아라고 합니다.
무아라는 것은 나, 거짓 몸, 거짓 나가 없다 뜻으로는 좋아. 거짓 나, 나가 아닌 것.
여러분, 이 몸뚱이는 나가 아니어요. 이 몸뚱이는 내 것이 아니어요. 가아(假我)입니다.
가짜입니다. 이것은 거짓 나입니다. 이 본체의 그림자예요. 안 그렇습니까?
‘이것이 없다. 이것은 나가 아니다.’ 이건 좋아요. 이것을 깨야 되는 거예요.
이것을 깨야 업을 짓지 않아요. 나쁜 짓 안 해요. 앞
에서 말씀드렸듯이 나쁜 짓 하는 이유는 거짓 나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나쁜 짓 하는 거예요. 생각해봐요. 이거 숙제예요 여러분.
스님이 이렇게 말해주면 여러분! 적어도 많이 법문을 들으셨으니까 집에 가서 알아야 되요.
이제 거짓 나를 봐버린 거예요. 나라고 알고 있던 것이 거짓 나라는 것을 알았어요.
거짓 나가 없어져버렸어요. 오직 텅~빈, 빛뿐. 그것을 의식한 것. 알아차린 거예요.
그것밖에 없어요. 이게 중요해요. 알아차린 것.
알아차린 이것이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한 나(我) 주인공이어요.
이것이 ‘진짜 나’예요.
그러니까 ‘알아차림 + 텅빈 본체․우주본체’, ‘나의 당체 +우주본체’,
이것이 나(我) 주인공입니다. 여러분 이거 알아야 됩니다.
선불교에서는 우주본체, 본성을 진아(眞我)다 그러거든요. 그거 아닙니다.
그게 진아가 아니어요. 이것을 알아야 내 책을 이해합니다. 이거 알아야 되요.
이것을 부처님 열반한 지 2600년 이후로 부처님밖에 모르셨어요.
위빠사나에서도 지금 모두 나(我)가 없다고 하네.
자아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하네. 여러분, 나 주인공이 없으면요, 눈이 있어도 못 봐요.
귀가 있어도 안 들려요.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거예요.
나 주인공이 빠져나가버리면 그렇습니다.
나 주인공이 없으면 아예 오온(五蘊)-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생길 수도 없어요.
형성할 수도 없어요. 이것을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의식적인 동인’이라고 그래요.
의식, 의식적인 동인. 나는 ‘제1원리’라고 그래요. 이것이 없으면 생각도 못해요.
생각할 수 없는 거요. 본체는 의식이 없어요. 비인격이어요. 그렇잖습니까?
이거 알아두세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