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 찌는 여자
그녀는 이미 육십이 넘었고, 손자와 손녀를 둘이나 둔 할머니다.
계룡산 연봉을 타고 동쪽으로 보면, 천왕봉과 황적봉 봉우리가 사뭇 기세등등하게 서 있다. 계룡산 아래 남동쪽으로 흐르는 들판이 신도안, 바로 그녀의 고향이다. 어릴 적 그녀의 집은 계룡산 남쪽으로 보이는 관암산 시루봉 아래, 상원천이 저만치 보이는 남선리 노적골, 그것도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집 앞에 조그만 방죽은 사계절 그녀의 놀이터였다. 방죽 옆에 느티나무는 수호신이라도 되는 양 동네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깊은 산골, 생촌, 시골집 마당에서 모이를 줍는 촌닭처럼 자랐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팔월 한낮 초가집 지붕 위에서 노란 꽃봉오리를 활짝 피워 올린 호박꽃을 연상하게 했다. 무엇보다 순수하고 되바라지지 않아 아름다웠다. 사십 년 넘게 한집에 사는데, 여전히 모나지 않고 호박같이 둥글둥글해서 참 편하다.
산골에서 자란 탓인지 채집을 참 좋아한다.
반찬도 채소든 산채든 심지어 해초까지 나물이라고만 하면 만사 오케이다. 어쩌다 같이 봄 길을 걷다 보면 뜯을 거리 때문에 늘 갈 길이 늦어지기 마련이다. 함께 산행하다 취나물, 참나물, 두릅, 고사리, 고비, 더덕이나 도라지 등 뜯을 거리를 만나면 봄내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겠다는 듯이 반색하여 맞는다. 봄 논두렁길을 타고 다니다 보면 씀바귀, 쑥, 냉이, 달래, 돌미나리, 돌나물, 벌금자리, 민들레, 고들빼기 등 그녀를 즐겁게 만드는 나물거리는 도무지 셀 수가 없다. 언제 넣어 두었나 호주머니 속 비닐봉지와 주머니칼이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언젠가는 남해 연화도로 처갓집 식구들과 봄 나들이를 갔다가 갯바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톳을 따서 차 트렁크를 채운 적도 있다. 채집으로 배부른 그녀의 나머지 여행은 그저 행복 만땅이기만 했다.
그녀는 쌈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신혼 때 살던 시골집으로 삼십 년 만에 다시 돌아와 농막을 지었다. 그녀의 요구 조건은 딱 한 가지, 집터를 네 등분해서 양지바른 쪽, 한곳에 텃밭을 가꾸어보자는 것이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채 풀리기도 전부터 아내의 성화는 시작된다. 청상추, 적상추, 쑥갓에 시금치, 아욱은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모종을 사다 심어야 한다. 고추와 토마토, 오이, 가지는 아내가 즐기는 요리 재료이다. 올봄, 생각지도 않은 호박씨를 한 주먹 들고 와서 호박 타령을 한다. 토마토 심은 옆에 밭에 난 잡초를 뽑아 던져두는 퇴비장이 있다. 그곳에 구덩이를 파 호박씨를 묻어두고 보름이 지나가는데도 싹이 나올 기색이 없다. 할 수 없이 종묘상에 가서 호박 모종 세포기를 사다 심었다. 전에는 재래식 화장실에 모아둔 거름 한 통 부어 주었는데, 그럴 수는 없고 유박을 한 바가지 부어 주었다.
끼니때마다 상추쌈을 즐기던 아내의 식습관은 어느새 호박잎쌈으로 바뀌고 있다. 연한 호박잎을 따 억센 줄기 껍질을 한풀 벗겨내고 양은솥에서 살짝 쪄낸다. 사돈댁에서 보낸 집된장에 고추와 마늘, 양파를 듬뿍 다져 넣고 잔멸치 한 주먹 집어넣어 잘박잘박하게 강된장을 끓여낸다. 호박잎 뒷면이 보이게 짝 펴서 손바닥에 올리고 잡곡밥 한술에 강된장 한술 올려 척척 접어 입속으로 넣는다. 그 맛에 행복해하는 아내가 이쁘다. 유박 거름 덕인지, 올해 우리 집 호박은 대풍이다. 아침에 동료들과 나눌 호박잎 한 보따리를 따서 출근한다. 매일 한 소쿠리씩 따내도 삼십여 평 채소밭이 호박잎으로 가득 찬다. 신이 나 출근하는 아내를 보며 애호박들이 줄기에 매달려 둥글둥글 배웅하고 있다.♧
첫댓글 좋른 글 잘 읽어봅니다. 호박쌈 좋아합니다.
네"청우우표"님 바쁘지만
자주뵐수 있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호박 잎...
우리 애들 아빠가 워낙 좋아해서
한 시절 먹었는데
이미지 담겨진 모습에 맛을 음미해 봅니다
요즘 정말 밥맛인지 입맛인지
장난 아닌데
짜글인 된장이 굿인걸요
새소리 좋네요
요즘에는 호박은 열리지 않고
호박잎이 제철이라서 덥지만
따서 다슬기나 우렁강된장으로
쌈으로 가끔씩 한끼를 해결하곤
한답니다요,
@행운
그런데 호박 잎을 아주 잘 찌셨네요 ㅎ
이젠 전문가의 솜씨인듯 합니다
호박 잎이 아주 새잎이 좋아 보여요
농가의 진맛이 아닐까 합니다
@행운
우렁된장에 호박 잎 먹으로 한번 가야겠어요
준비 해놓이세요
여기도 호박 잎 시골 할매들이 가저다 팔아요
호박잎이 좀 쇤듯하기도
농가에서 나오시는 할머님들 얼마나 짠지 몰라요 ㅎ
요즘 제가 하는
해먹는 일과 너무나 비슷하여 미소 만땅입니다
강된장 만드는 것도 저와 꼭 같네요
제 주변인들이 호박쌈을 넘 좋아하는데
지금은 좀 시들합니다
전철 속입니다 ㅎ
네 보람있는 행복하신 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베베 시인도 음식을 잘 해 드시나 봅니다
하기야
그 많은 성도의 입맛을 함께 하시니요
입맛있을 때 부지런히 잘 드셔요
이번 병원다녀 오면서
입맛인지
밥맛인지
아휴...ㅠ
전철로 어디 출타 중인가 봅니다
오늘은 제법 선선하네요
ㅎㅎ 행운 님~
울 집 구할배 할머니 텃밭 호박잎 사러 전철 타고 4코스 지나
양천구에서 강서구까지 이틀에 한 번씩 갑니다.
여름철 별미 호박잎이 저는 소고기보다 호박잎이 더 맛있어요~
우렁 강된장 끊여서 맛나게 먹는 답니다.
호박잎에는 무슨 영양가가 있을까 했는데
비타민A, 루테인과 베타카로틴의 함량
손상된 세포도 재생시키고 항암 효과와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직접 가꾸어 드시니 많이 드세요~
호박잎도 비싸서 만 원어치 사면
두 세끼 먹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