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죽음은
서울 서초구에도 있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남자는 거리에 있었지만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남자를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세상에 드러난 사건
남자의 말에 따라 경찰과 함께 남자가 살던 빌라로..
겹겹이 쌓인 이불과 비닐 아래 가려져 있었던 건 남자의 엄마
지병으로 인한 변사였음.
남자를 찾아간 제작진
동욱씨(가명)는 현재 민간 사회복지사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함
불과 얼마 전까지 노숙 생활을 했지만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제작진을 맞아줌
어머니 곁을 계속 지켰지만
우연히 집밖을 나왔다가 녹슨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됨
하지만 복지사들의 말에 따르면 처음 봤을 때
동욱씨의 모습은 그의 말과는 전혀 달랐다고 함
찬바람에 부르튼 손, 동상에 부어오른 발
무감각해진 몸으로 길에 앉아있던 동욱씨가
이수역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했던 얘기는 오직 한 가지
7개월 동안 왜 이웃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제작진은 주변집들을 찾아가 봤지만
사람이 없는 집들이 대부분이였음
동욱씨와 엄마가 세들어 살던 곳은 방배동의 빌라 밀집 구역
강남권 재건축 사업의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곳이라고
재건축으로 들어설 아파트 분양권의 호가가
23억원을 넘어선 동네.
하지만, 싼 집을 찾아온 세입자들이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 곳은, 죽음을 알아챌 이웃 자체가 없는
유령 도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긴 시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집을 찾아올 이는 정말 없었던걸까?
모자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본 제작진.
동욱씨가 엄마의 시신과 함께 보낸 한 계절의 삶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보일러가 고장나서 다 얼어버렸고
거름망에 있는 라면 스프들은
식사가 아닌 생존의 흔적을 보여준다.
전기, 가스요금이 오랜 기간 체납된 상태
위기가구를 관리해야할 해당 자치단체에서는
왜 모자의 비극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의아한 얘기.
2019년 5개월간 동네 방역을 해서 받은 128만원과
비정기적으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이
수입의 전부였던 어머니 장씨.
하지만 당시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일부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감지시스템에서는 제외가 됐다고.
게다가 장씨가 받고 있던 기초생활수급액은
주거 급여 28만원이 전부.
생계, 의료급여도 받을 수 있었지만 받지 못했던 이유는?
그렇게 끝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장씨.
장씨가 숨진 뒤 주거실태 파악을 위해 두 차례
방문했던 LH 주택조사원
스티커를 붙여놓고 돌아섰던 그들이 진짜 주거실태를
파악했더라면, 모자의 비극은 좀 더 일찍
세상에 알려졌을까.
게다가 동욱씨에겐 도움을 청할 또 다른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복지사들의 도움으로 확인한
동욱씨의 병명
스스로의 상황을 증명할 수 없는 상태
'신청'이라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기도 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방배동의 모자.
그리고 이제 동욱씨는 혼자 남았다.
도시 곳곳엔 1인 가구가 아니라서,
충분히 나이 들지 않아서,
한 달에 5일 꼴로 버는 비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서,
가난과 질병을 스스로 증명하지 않아서,
분명 존재했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죽음들이 있었습니다.
방배동 모자 사건이 알려진 뒤 서초구에서는
동욱씨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고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돕는 한편
장애 등록을 위한 심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동욱씨의 경우처럼,
빈곤에 시달리는데도 부양할 가족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생계급여 심사에서 배제했고
의료급여 심사에서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로써 가난한 이들은 모두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행복을 맞을 수 있게 된걸까요?
사실 법과 제도는 늘 존재했습니다.
2014년 생활고로 숨진 이른 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은 뒤 정부는 공과급 체납과 단전 단수 등 33가지 항목을 정해 위기 가구를 찾는 등 관련법을 개정했지만
또 다시 빈틈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실
몹시도 선명한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눈꽃 속엔 늘 앙상한 가지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보이는 얘기입니다.
생사가 오가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고려해야할 상황은 무수하고
책임은 오직 담당자의 몫.
법도, 제도도, 시스템도 있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죽음.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걸까?
어머니의 시신과 한 계절을 보내고 노숙을 하고 있었던
방배동 동욱 씨의 사연을 뒤늦게 접한 이들 중에는
우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동욱씨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어떤 죽음은, 삶만큼이나 불공평합니다."
한 사회학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다리의 속력은 가장 약한 교각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어떤 사회의 건강도, 가장 가난한 계층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나 전염병이 돌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이들은 어김없이
취약계층이고는 했습니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고립된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지금도 누군가는 얇은 벽 안에서
위기에 처해있을지도 모릅니다.
동욱씨가 우리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괜찮아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도와줬잖아요."
였습니다.
누군가에게도 그 도움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 2021. 1. 30 그것이 알고싶다 <단칸방의 유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