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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위에서 유아차를 밀고 있는 모습. 주차 차량과 공사중 표지판으로 횡단보도로 접근할 수 없다.ⓒ이슬기
“네가 장애인으로 살아봤어?”
슬프게도 12년간 에이블뉴스에 재직하며 너무나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수화기 넘어 하소연을 쏟아내던 분들에게 ‘기사화가 어렵다’라는 짧은 대답은 어쩌면 너무 냉정했나 봅니다. 그때는 몰랐죠. 그분들에게 필요한 건 듣고, 공감해주기였단 것을요.
지난해 5월 출산 후, 1년 3개월간의 휴직을 끝내고 이제 복직했습니다. ‘나’를 버리고 오롯이 ‘아기’만을 위해 달려온 기간이었습니다. 배가 나온 임산부부터 영유아 부모인 현재, 저는 3년째 교통약자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죄송합니다.”입니다. 유아차를 끄는 인도가 좁아서, 지하철 공간이 부족해서, 엘리베이터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내 잘못도 아닌데 항상 눈치를 봐야 하는 죄인이 됩니다.
경사로가 없어 커피 한 잔, 반찬 한 팩도 못 사고 집에 올 때도 많았습니다. 육아에 지쳐 백화점 문화센터라도 가려고 지하철역을 찾았지만, 플랫폼까지 접근되는 내부 엘리베이터가 없어 등록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4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조사’를 보면, 편의시설 설치율이 89.2%, 적정설치율이 79.2%로 높다는데, 현실에서의 체감은 너무 딴판입니다.
육아휴직 전에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를 받아 바닥면적 50㎡(약 15평) 이상의 건물에까지 편의시설을 의무 설치한다는 기사를 썼지만, 현실은 편의점은커녕 카페조차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간이 경사로를 설치해 들어가더라도 폭이 좁아 물건을 고를 수가 없습니다. 법 개정 이전 건물들은 적용되지 않는 조항을 둔 탓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단체가 이 조항을 없애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사업자 부담’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유아차를 미는 교통약자가 되어보니, 이제야 ‘독소조항’임을 절실히 공감합니다.
반쪽짜리 법 개정을 보고서도,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소규모 시설 편의시설 의무화’란 제목을 붙여 송고한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저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갓 15개월이 지나 뒤뚱뒤뚱 걷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랜만에 책상에 앉으니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간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독자들에게 복귀 인사를 할지 고민하다가 짧은 글로 대신합니다. 어렵지만, 가슴 한 켠에 공감을 품고 다시 현장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이슬기 기자입니다.”
공원에서 유아차를 끌고 산책하는 모습.ⓒ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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