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께서 득도를 하여 세상에 나아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겠다고 몰려 들었다.
당장 시급한 것이 의식주의 문제였다.
제자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석가모니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이냐고 물었다.
석가모니께서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빌어먹어라.” 이게 답이었다.
이때부터 무소유의 삶이 시작 되고,
문전걸식이라는 탁발 행각이 이어졌다.
석가모니께서 하루는 그의 수제자인
가섭과 아난을 불러 앉혔다.
“가섭아. 너는 어느곳으로 다니며 탁발을 하는고?”
“선생님. 저는 가난한자의 집에만 다니면서 탁발을 합니다.”
“왜 그러한고?”
“가난한자는 전생의 공덕이 적어 이세상에서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부처님전에 공덕을 쌓으면 다음생에는 보다 넉넉한 가정에 태어 날 것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난아. 너는 어떤집을 다니며 탁발을 하느냐?”
“선생님. 저는 부잣집에만 다니면서 탁발을 합니다.”
“왜 그러한고?”
“가난한 자의 집은 끼니를 잇기도 어렵사옵니다. 하여 저가 가난한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탁발을 하게되면 그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대의 지혜 최고인 이들 두 수제자의 탁발 행각에 있어서의 생각은 이렇게 달랐다. 듣고 보면 두사람의 생각은 나름대로 옳다고 느껴진다.
석가모니께서 두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가섭이여, 다음부터는 가난한자의 집에는 가지 말아라.”고 하셨단다.
왜 그랬을 까?
그러고 보니 무소유라는것도 유소유한 존재들이 있음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
이세상 모두가 무소유의 삶을 산다면, 그러한 삶이 가능하기나 할까?
법정이가 ‘무소유’라는 말을 하며 책을 펴냈는데, 전직 대통령을 지낸 어느 분이 ‘무소유’를 세 번 읽었다며 자랑처럼 늘어 놓은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본적이 있다.
그러면서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물론 칭송받아 마땅하리라. 허나 그분은 퇴직을 하게되면 전직대통령의 예우에 따라 매월 받는 연금으로 평생 써고 써고 또 써도 잔고가 남는 생활을 할 수가 있다.
법정스님은 ‘인간은 소유욕 때문에 괴로움을 겪게 되니...’ 욕심에서 벗어나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무소유의 삶을 살 것을 강조했다.
누군들 거치장 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하리. 도대체 필요한 만큼만 가진다는 것이 내 생활에서 얼마 만큼일까...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체 이기에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수가 없고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또 얼마의 재물이 소요될지 누가 알것인가.
인간은 모름지기 그래서 있을때에 열심히 벌어서 저축도 하고 생활이 풍족하기를 바라는 것 아니겠는가.
법정이가 속세인으로 가정을 꾸리고 슬하에 자식을 거느린 가장이라면 과연 그의 입에서 무소유를 부르짖을 수 있을가!
무소유를 지향하는 자들의 세계에는 유소유한 존재들이 있기에 그 삶이 유지 되는 것이다.
첫댓글 무소유란 쓸데없는 욕심은 갖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이칠 선생님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요 가질 만큼 갖이면 그만 가져야 하는데 자꾸만 욕심을 내니 탈입니다
모 대통령은 삼대를 먹고 살아도 남을 재산을 도둑질해 모아두고 죽었지요
공감하는 댓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