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너무 자주 올려 식상하지? (*^^*)
헌데... 씨애틀의 규섭이 대마초 얘기에, 시카고의 병훈이가 내게 "바른생활" 운운하며 "YES"라는 다방으로 딴지를 거니, 서울의 명진이가 아스라한 옛 추억이 또 스물스물~ 피어나는데 어쩌겠어?
여자, 미혜
**** 미혜 - 본명을 쓸까 가명을 쓸까 하다 가명을 쓰기로 한다. ***
나와 먼 친척뻘되는 미혜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예쁜 소녀였다.
그녀가 중학교 3학년, 내가 고1 때 서오능에서 보이스카웃 잼보리 대회가 열렸었지.
지금이야 그 규모가 커져 우리나라에서 세계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지만 당시는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을텐데 어떻게 거길 참가하게 되었는진 모르겠으나 좌우간 미혜라는 소녀와 함께 간 거야.
경사진 잔디밭 아래에 무대가 펼쳐졌고 우린 그 위쪽에 앉았는데 미혜의 나폴거리는 치마가 아름답고, 흰 양말을 신은 그녀의 종아리가 예쁘다고 생각 했을거야 아마...
그녀가 잔디 밭에 앉으려는 순간 "잠깐만!" 하는 나의 외침과 함께 잔디와 그녀 엉덩이 사이에 깔개를 끼워줬어. 나의 운동화를 벗어서 말야~ 잔디 물이 치마에 벨까 하는 나의 배려였는지, 엉덩이가 차가울까봐 그랬는지 지금은 확실치 않지만...
그리곤 우린 쇼를 보기 시작했어. 두 장의 종이 사이에 나무를 끼우고 수도로 쳐서 종이는 찢어지지 않고 나무만 자르는 차력 비슷한 형태의 태권도 시범도 있었고 장기자랑들- 노래자랑 춤자랑 등등이 있었지. 양훈과 양석천이 사회를 보았는데 그들의 얘기마다 깔깔대며 웃어대던 그녀가 신나서 들뜬 목소리로 "오빠~ 나 이제부터 저 사람들 좋아할래~" 하는 그 순수한 모습이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 초여름이라지만 밤 기온에 몸을 움츠린 그녀에게 나의 자켓을 벗어줬을 거야. 왜 나라고 안 추웠겠어? 난 추위를 꾹 참고 행사가 끝난 그 장소에서 집으로 그녀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한참동안 걸었을거야. 나중, 고맙다며 내 옷을 돌려줬을 때, 옷에 남아있던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 내 몸에 전달 됐을거야 분명.
그런데 왜, 그 후 그녀와 가끔씩 통화만 하고 말았을까? 어른들을 통해 간간히 들려오는 그녀의 소식은 자기의 정체성 때문에 이상한 행동과 힘들어 한다는 어두운 얘기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지.
내 고등학교 시절 기억에 남아있는 그녀와의 흔적은 그 정도가 전부야.
(참! 크리스마스 이브 때 명동 거리를 함께 걷기도 했었는데... 아하! 그건 나중인가?)
그러던 그녀가 D대학 미대의 대학생이 되어 나를 찾아왔을 때, 마침 난 친구들과 함께 있었지.
가볍게 화장을 했지만 예전의 수수한 예쁨관 전혀 다른 굉장한 미인이 되어서 말야. 그러나 한껏 멋을 냈다곤 하지만 퇴폐적인 헤어스타일과 당시로는 너무 앞서가는 듯한 추상적 무늬의 아슬아슬한 배꼽티를 입고 있었는데 내 눈엔 그 모습이 너무나 야해보여 "오빠!" 하고 날 다정히 부르는데도 난 그저 "뻥~"하고 서 있다가 친구들에게 훅 창피한 마음이 들더군. 순간 내가 취한 행동이란~ 지금 생각해도 너무 한심한 짓이였어.
겨우 한 살 차이 그것도 오랫만에 만난 그녀에게... "넌 하고다니는 꼬락서니가 이게 뭐냐?" 하며 티셔츠를 슬쩍 들췄다 놓았는데 그게 그녀에겐 엄청난 모욕 내지 무안이었나봐. 얼굴이 빨개지며 암말도 안하고 돌아서 갔고~ 순간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런 돌발 상황에 친구들도 내게 막 뭐라며 질타를 하더라.
그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차 한 잔 하자고... 그녀는 명동의 <예스>란 다방에서 만나자더군. 위치를 모른다니까 중국 대사관 입구에 있는 2층 조그만 다방이라더군. 내 딴엔 신경써서 차려입고 나갔지. 다방을 들어서니 귀를 때릴듯한 하드락과 컴컴한 분위기속에 푸르고 창백한 조명, 벽엔 판타지 같은 이상한 그림들, 솜뭉치 같은 것들이 마치 '모빌'처럼 대롱거리며 달려있는게 여느 다방관 다른, 영 심상치 않은 분위기...게다가 담배 연기는 자욱하고 자리는 꽉 찼더군.
마침 어떤 장발 녀석이 머리를 푹 숙이고 음악에 심취 해(?) 긴 머리통 흔들고 있는데 그 옆 자리가 비워 있기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어도 녀석은 머리만 계속 흔들 뿐 가타부타 말이 없더라. 내 그냥 앉아 불편한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리는데 조금 후 들어온 그녀에게 "빈 자리가 없으니 나가자" 하니 여기서 한 대 피우고 가잔다. "뭐? 뭘?" 물으니.... "오빤 와서 보고도 여기가 어딘지 몰라?" 한다.
지난번 티셔츠 사건으로 사과도 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함께 하며 분위기 잡으려 했던 내 계획은 "팡!" 하고 터지더군. 그곳은 한마디로 대마초 피우는 사람들이 모이는 은밀한 아지트였어.(박정희 시절인데 어떻게 그런 업소가 존재 했을까?)
내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지, 아님 얘가 피우려는 걸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못 피우게 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확실한 것은 그 후로 얘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 후로 조용필등 여러 연예인들이 줄줄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방송에서 난리 칠 때 "도대체 그게 뭐길래?" 하고 은근히 땡기는 거야. 마침 한 놈이 그걸 어디서 구해와 (얘 말로는 자기가 은밀한 곳에 심어 놓은 것이라나?) 당시 사진반 동아리이던 난, 암실에서 융단으로 된 두터운 커튼을 치고 빨간 불만 켜 놓고 친구놈과 둘이서 그걸 빨아 댄거야.
조금 지나자 이 친구는 동공이 풀린듯한 눈으로 기분 좋은지 히죽히죽 웃는데 난 도무지 그 아롱거리는 느낌이 오지 않더라구. 아마도 깊이 빨아대질 못 한 거 같아.
에혀~~ 이 얘긴 이쯤에서 끝내자. 대마초에 관련되어 그 환상적 기분은 못 느끼고 잠시 추억 여행을 다녀왔구먼.
그런데.... 그 후ㅡ 미혜에 대해 조금만 더 얘길 할까?
미혜는 육사 졸업한 육군 대위와 결혼을 했지.
결혼식은 육사 생도들이 예도를 들어 입장과 퇴장시 축하를 해주는 멋지고 성대한 결혼식이었지.
그리고 그 후 아들도 하나 낳았고...
미혜의 친정 부모는 상당한 재력가 였는데 이런저런 사업체 외에 경포대 바닷가에 전망좋은 모텔도 갖고 있었어.
(* 우리 고3, 여름에 잠시 쉴 때- 현재 베트남에 있는 박홍순, 동해시에서 치과 하는 이세종, 현대모비스 이사인 조원봉, 주유소 하는 김권, 김동환과 이 모텔 앞 백사장에서 텐트 치고 기타치며 놀던 기억도 나는군- 고3 때 다들 놀아도 지금 먹고들 사는 거 보면 자식들 잡을 필요는 없는 거 같아 ^^ )
그 후, 나도 결혼을 하여 그 모텔로 가족과 함께 놀러 갔을 때 우연히도 그곳에서 미혜를 만났다.
예전의 그 아름답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이혼녀가 되어 쓸쓸한 모습으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있는...
뒤에 보이는 한창 짓고있는 모텔이 위에 얘기한 그 집이고 (좌로부터 이세종, 김권, 박홍순, 조원봉, 김동환, 박명진) 요들을 잘 부르던 김동환은 졸업 후 완전 연락두절이다.
첫댓글 반전이 씁쓸하네....
그러게~ 비 오니 아침부터 소주도 생각 나는걸?
내 아침부터 캐나다로 연락을 하여 위와같은 글을 올렸으니 사진 찾아 보내다오~ 했더니... 사진은 찾았는데 스캔이 잘 안된다나? 하여, 할 수 없이 디카로 찍어서 보낸 사진이라 선명도는 좀 떨어짐.
네 글이 식상하다니 천만의 말씀 ! 아주 재미있게 잘들 읽고 있는데.. 모두들 계속 그리고 많은 네 글 기대한다. 사진에 친구들 밀짚모자를 세명이나 쓴것도 재밌는데 권이가 쓴 모자는 뭐야 바닷가에서.. ㅎㅎㅎ 74년도 까지는 대마초 단속 안했을걸....
대마초 청바지 통기타 그리고 우리들의 미혜 소녀들...이제와선 낯설겠지만..글쎄 그래도 저 흑백사진에 담겨 있는 저 풋풋한 고삐리들의 순박함처럼 우리에게는 늘 소중히 간직되겠지... 맴이 아리숭해 뒤숭숭~~해..............
으째 맹진이는 35년도 지난 엉덩이 밑에 운동화 깔아준일이 기억날까?? ㅋㅋ
그때 예스에서 한대 빨았으면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까?미혜씨 연락해서 한번 만나보면 안뙈나 사진두 하나 올리구........
명진아 M 얘기 좀더 해주라!
연정이 희미해졌으니 이제 한번 만나 미혜 아줌마의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