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어린이날도 나는 생방송을 했다.
늘 걸어서 출근하는 터라 그날도 여의도 공원을 걸어 회사로 향했다.
여느 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공원 곳곳에서 꽃잎처럼 흩날렸다.
어린이날을 맞아 나온 가족들이었다.
아이들과 뛰어노는 어울린 젊은 부모들을 보자 문득 슬퍼졌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이제 내 인생에서는 다시 오지 않을 장면이기 떄문이다.
40년 전 부모님과 함께 갔던 창경원 나들이도 10년 전 어들아이와 함께했던 대공원 나들이도 꿈같이 흘러갔다.
내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들에게 아들에게 못다 준 사랑을 퍼부어 줄텐데.
하긴 내게 타임머신이 있다해도 딱히 과거 세대에 큰 유익을 줄수는 없다.
조선시대에 간다 한들 내가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믿기지 않은 미래 이야기만 들려줄 뿐 나는 그들에게 내가 나오는 텔레비젼도 만들어 줄 수 없고,
호환마마 약도 지어 줄 수 없으며, 세탁기도 가스레인지도 심지어 볼펜조차 만들어 줄 수 없다.
이렇게 기술이라고는 하나없는 문과 출신들은 현재에서 버텨야 한다.
하지만 타임머신이 있다면 1923년으로 돌아가 보고 싶기는 하다.
1923년 5월 1일 당시 24살이던 방정환 청년이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버지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던 그가 그 시절에 아이들을 생각했다.
심지어 어린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으며, 어이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그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도 대접 못 받고, 계급마저 남아 있던 그 시절에 어린이라니.
우리나라는 아동인권만큼은 일찌감치 새싹을 틔워 냈다.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세계 명작동화를 번역해 출판했으며, 색동회를 만들었다.
'사랑의 선물'은 바로 방정환 선생이 처음으로 펴낸 어린이 동화책 제목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보다 큰 사랑의 선물이 어디 있으랴.
그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아이들을 이 땅에 남겨 준 채 떠났다.
수많은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아마도 그는 천국에서도 어린 나이에 질병과 폭력으로 세상을 떠나오는 아이들을 볼보고 있지 않을까.
요즘 시대의 아동폭력을 개탄하며 그로 인해 희생된 어린이들을 눈물로 돌보고 있을 것이다.
청년 방정호나이 그 시절 아이들은 상상도 못했던 사랑의 선물을 주었다면,
우리가 이 시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선물이 무엇일까.
워낙 풍족해진 세대라 이제 어린이날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어른도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진짜 풍요로울까.
넉넉한 가정에서는 학원으로 몰고, 가난한 가정에서는 차별을 방치하고,
비정상적인 가정에서는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다.
아이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한 청년이 부르짖던 93년 전의 외침은 아디로 간 걸까.
남의 아이는 고사하고 내 아이라도 사랑해 보자.
밥상머라에 앉혀 놓고 이제라도 대화를 가르치며, 확원에서 늦게 오는 아이들 데려다 놓고 넋두리를 들어 주자.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꼭 껴안아 주자.
의외로 부모에게 아니 아빠에게 안겨 본 경험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꽤 많단다.
그 아이들은 아무 조건없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껴야 할 귀한 존재들이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 누구의 사랑을 쉽게 받아들일까.
이번 어린이날은 돈 안 드는 사랑의 선물을 마음껏 안겨 주자.
나도 다 큰 아들 한 번 안아 보련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