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8월 15일
해방 1주년 기념식에 참가하러 광주에 간 화순탄광노동자들을 미군헌병이 무력으로 강제해산하여 김판석씨가 사망하였고, 7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108명이 부상당했다.
1953년 5월 28일
미군 제45사단 소속 제임스.H.브런치가 거제도 장승포읍에서 가정집에 침입, 총기를 난사하여 박우선씨외 2명이 사망하고 오경숙씨 등이 중상을 입었다.
1955년 8월 11일
제24사단 32부대 소속 미군이 국군 헌병 김정준씨를 휘발유 절취범으로 오인하여 총을 발사 사망케 했다.
1956년 7월 8일
송세훈(16)씨는 김포공항 주둔부대 디봉 에스 단스에게 꿔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하다 그가 발사한 총에 맞아 즉사하였다.
1957년 7월 6일
미군 도날드.E.파세트는 송유관에서 논다는 이유로 세 살 아기에게 총을 발사하여 즉사시켰다.
1958년 2월 25일
토마스.G.제임스와 마빈.E.캠프는 김춘일(14)씨를 절도혐의자라며 구타하고, 칼로 무릎과 팔을 찌르고,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얼굴에 콜타르 칠을 한 뒤 나무상자 집어넣고 못질을 하여 사망케 했다.
1958년 9월 26일
미제7사단 17연대 수색대 소속 미군은 인재남(36)씨 등이 빵을 훔치려 했다고 총기를 발사하여 사망케 했다.
1962년 1월 6일
미군 수십명은 출입금지구역에서 나무를 한다는 이유로 황광길(25)씨와 유기용(38)씨에게 총을 발사 사망케 했다.
1964년 2월 4일
7사단 31연대 카메룬 로버트는 깡통을 줍던 임신 9개월의 서명자씨에게 발포 사망케 했다.
1966년 12월 1일
미군 콜버트 대위는 결혼 6년이 지나도록 애가 생기지 않자 막노동을 하는 이수길(29)씨의 딸을 고아로 조작하여 미국으로 입양시켜 강제로 그의 딸을 빼앗아 버렸다.
1967년 10월 21일
미1군단 유니스 2세는 매매춘 후 화대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목을 조르고 커튼에 불을 지른 후 도주하여 집을 소실시켰다.
1968년 9월 15일
열차 안의 미군용백에서 손남숙씨로 추정되는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1970년 10월 10일
미36공병대 매추스는 의정부에서 야간근무하던 직공 강문순(17)씨를 강간하려 하다, 반항하자 목졸라 죽였다.
1971년 2월 14일
부평 미보급창의 브라운은 자신이 만나고자 했던 기지촌 매춘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김순화씨 집에 불을 질러 근처 집 5채를 소실시켰다.
1973년 11월 19일
미군 페르트 제임스는 만취상태에서 버스를 훔쳐 달리던 중 권영순(57)씨 등을 치고 뺑소니하여 사망케 했다.
1977년 6월 12일
미공군 제1중대 소속 스티브.알랜.타워맨은 기지촌 여성 이복희(25)씨를 목졸라 죽인 후 방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사체를 유기하였다.
1980년 11월
미육군 K-6기지 셔링 데이빗은 술에 취해 발기하지 못하는 것을 비웃었다고 윤미영(20)씨를 브래지어로 목졸라 죽였다.
1990년 6월 28일
동두천의 여관에 1주일 동안 미군과 투숙하던 박모양(25)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1991년 1월 8일
미8군 수송부대 소속 찰스 유진 버쳐는 최모양(9)등 10세 미만의 어린이 3명을 성폭행했다.
1992년 10월 28일
미제2사단 25보병연대 케네스 리 마클은 윤금이(26)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자궁과 항문에 맥주병과 우산을 꽂아 살해했다.
1993년 3월
경기도 평택의 K-55 미공군기지에서 하루 1천6백여톤의 오폐수를 정화하지도 않은 채 방출하였다.
1994년 3월
미군이 사용하다 1992년에 철수한 캠프 이즈벨(6천평), 캠프 리비(16만평), 캠프 에임즈(1백 19만평)의 토양을 조사한 국립환경연구원은 이 지역의 토양이 일반지역에 비해 납은 최고 24배, 카드뮴은 최고 7배 오염되어 있는 것으로 밝혔다.
1994년 10월 25일
미군 헌병 다니엘 그림 중사 등 4명은 미군과 국제결혼한 딸을 방문한 김금순씨(68)를 미군물품 판매상이라며 그녀의 두 딸과 함께 감금한 후 폭행하였다.
1996년 6월 10일
미7공군 소속 윌리엄스는 평택 에바다 농아원생 김모군(12), 최모군(12), 이모군(16)을 부대내 자신의 숙소로 불러 성폭행하였다.
1996년 9월 7일
미군 제2사단 뮤리크 에릭 스티븐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과의 성행위를 거절한 이기순(44)씨를 안면을 때려 실신시킨 후 면도칼로 목을 잘라 살해하였다.
1997년 4월 3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와 미군속의 아들 아더 페터슨은 이태원의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단지 부딪혔다는 이유로 조중필(22)씨를 잭 나이프로 마구 찔러 과다출혈로 숨지게 하였다.
1998년 1월 6일
제473 야전시설 지원중대 소속 핸릭스 티모시 제롬은 함께 자던 허주연(22)씨가 부대로 복귀하려는 자신을 붙잡았다고 명치를 때려 숨지게 한 후 침대에 불을 붙여 방화했다.
1998년 1월 20일
미공군 제9전투 비행단 소속 데일 허프는 군산 기지안 숙소에서 컴퓨터, 스캐너, 컬러 프린터를 이용 만원권 원화와 미화 20달러 지폐를 대량 위조했다.
1998년 2월 8일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쿠니 사격장 폭음 및 진동 피해 때문에 지난 50년간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었던 매향리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매향1리에는 자살한 사람만도 23명이나 되며 방사능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열화 우라늄탄 사용 의혹도 제기되었다.
1998년 3월 7일
경기도 의왕시 백운산 정상 부근에 소재한 미8군 메디슨 통신 부대 지하 송유관이 터지는 사고로 백운산과 왕림천 일대 계곡 청정지역의 토양층이 20m~80m의 두께로 기름이 배이는 회복불능의 오염피해를 입었다.
1998년 5월 30일
마을 주민들이 인근 훈련장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연천군 전곡읍 미산면 동이리의 유일한 마을 입구를 차량으로 막아버린 미군들은 항의하던 주민 윤광진(26)씨, 양경섭(39)씨 등을 폭행하였다.
2000년 2월 9일
미8군 용산기지에서 시체부패방부제로 쓰이는 포름알데히드와 메탄올 혼합액 475ml 480병을 하수구를 통해 한강에 무단방류했다는 사실이 녹색연합을 통해 드러났다.
2002년 6월 6일
2001년 7월 공사장에서 작업하던 중 미군측의 22000 볼트 고압선에 감전되어 팔다리를 잃은 전동록씨가 1년여간의 투병생활을 끝으로 사망하였다. 공사를 해야하니 고압선을 이전해달라고 미군에 수차례 요구했으나 이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재앙을 불렀다.
2002년 6월 13일
미2사단 공병대 소속 부교 운반용 궤도차량은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신효순(14)양과 심미선(14)양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피해자 발견여부, 경고여부 등 그 사고원인에 대해 그 무엇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군측은 누구의 과실도 아니라며 잘못을 부인하고 있다.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재판권 관할 문제가 한미간에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이뤄진 미군범죄의 현황과 재판권등 미군범죄에 대한 처리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살펴본다.
1995년 10월 경기 의정부시에서 미군 제임스(23) 상병이 몰던 군용트레일러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황아무개(43)씨의 승용차를 들이받아 원아무개(29)씨 등 2명이 숨졌다. 미 헌병대는 제임스 상병을 조사했으나 처벌 내용은 한국쪽에 통보하지 않고 있다.
또 87년 11월 경기 동두천시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미군이 택시기사 박아무개씨를 택시 안에서 흉기로 살해하고 달아났지만 미군은 그의 신병을 확보하고도 재판권을 넘겨주기는커녕 신원조차 밝히지 않았다.
살인·폭행 등 미군 범죄가 하루 평균 두차례 일어나고 있지만 미군 피의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1967년 한미행정협정 발효 이후 98년까지 미군 범죄는 공식 통계만 5만82건(5만6904명)에 이르렀고, 그 이후에도 해마다 500~600건씩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군이 재판권 이양을 요구할 경우 대부분 재판권을 미군에 넘겨 주고 있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67년부터 20년 동안 발생한 미군범죄 3만9452건 가운데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사건은 고작 234건(0.6%)에 그쳤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이 재개정된 90년대 들어서도 91년 932건 가운데 918건을 미군에 넘겨주는 등 미군범죄 5508건 가운데 무려 5335건(96.9%)에 대한 재판권을 포기했다. 반면 한국이 미군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 것은 최근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난 10일 요청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미군 손으로 넘어간 미군 피의자 처벌은 대부분 가벼운 징계에 머물고 있다. 98년~2000년 6월까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한국이 재판권을 포기한 미군 피의자 916명 가운데 징역형에 처해진 미군은 4명에 불과했고, 741명(80.9%)이 주의나 견책에 그쳤다.
더욱이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사건도 한국인에 비해 관대한 형량을 선고받고, 그나마 미군의 요청에 따라 특사나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지난 93년 5월 서울 서초동의 한 호프집에서 미군 존 로저(27) 병장이 여주인 김아무개(51)씨를 성폭행하고 온몸을 마구 때려 뇌사상태에 빠뜨렸으나 로저 병장은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된 뒤 이듬해 8·15 특사로 풀려났다. 또 지난 91년 1월 경북 칠곡군에서 미군 찰스 버처(24) 상병이 최아무개(9)양 등 초등학생 3명을 잇따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2년만에 가석방됐다. 법률전문가들은 이런 류의 범죄를 한국인이 저질렀을 경우 통상 징역 10년 이상이 선고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법학)는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구속 기소되는 사건도 미군은 가벼운 처벌에 그치고 있다”며 “피해자 국가가 반드시 재판권을 갖도록 하고, 지나친 피의자 보호 규정도 고치는 등 소파를 재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