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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종하면, 돌이키면,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명기 30장 1-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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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Metro Goldwin Mayer)라는 유명한 영화사(화면에 사자 나오는)가 있습니다. 이 회사 설립자는 회사 이름의 끝자인 메이어(Mayer) 라는 사람입니다. 메이어가 어렸을 때 친구와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메이어는 친구에게 맞고 집에 돌아와 분통을 터뜨리며 친구를 욕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메이어를 산으로 데리고 가 친구 욕을 실컷 하라고 합니다. 메이어는 산을 향해 소리칩니다. “야 이 나쁜 놈아! 못된 놈아!” 메이어는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육한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10배의 소리로 되돌아옵니다. “야 이 나쁜 놈아!~~~~ 못된 놈아!~~~~”
그러자 어머니가 이번에는 “하나님이 너를 축복 하신다”고 외쳐보라고 말합니다. 메이어가 그렇게 말하자 동일하게 메아리가 자신에게 축복의 말로 되돌아옵니다.(~축복하신다!~~~~) 그때 메이어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남을 향해 한 번의 욕을 하면 그것이 10배로 되돌아오고, 남을 한 번 축복하면 10배로 복이 되돌아오는구나.” 메이어는 이 교훈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자신보다는 남을 축복해주고 용서해주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큰 복을 받아MGM이라는 세계적인 영화사를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복 받기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를 즐겨하십니까? 여러분들의 표정을 보니, 복이고 뭐고 하도 지겹게 들은 소리라 다 필요 없고 빨리 집에 가서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얼굴에 ‘피곤의 연속’이라고 쓰여 있는 게 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책이 분명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일먼저 사람에게 복을 주셨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시고, 그 후손인 우리들이 다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왕에 믿음 생활 하는 것, 복~많이 받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 중의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인터넷에서 사진을 하나 보았는데, 요즘 젊은 부부들은 다 착한 남편과 사나 봅니다. 남편들이 아내의 생일상을 차려서 인증샷으로 올리는 것이 대세라고 합니다. 이걸 또 ‘자랑질’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네요. 갈수록 구세대 남편들은 고개 숙인 세대가 되나 봅니다. 제가 본 사진은 어느 남편이 아내에게 차려준 생일상인데, 밥하고 미역국하고 계란 부침이 전부 다입니다. 너무 빈약하죠. 그런데, 한 상 가득히 차려놓은 반찬은 모두 현금입니다. 전 부침 5만원, 샐러드 3만원, 싱싱회 10만원, 디저트 만원...하는 식으로 반찬은 글씨로 써놓고, 내용물은 전부 현금으로 차려진 생일상이었습니다.
댓글들이 어마어마하게 달렸습니다. “평생 이런 상 한 번 받아 보면 좋겠다” “가장 실속 있는 생일상으로 강력 추천” “역시 돈이 최고야, 복 받았네, 복 받았네” 저는 댓글들을 보면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돈, 현물이이라는 사실은 주님 오실 날까지 변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떠세요. 돈으로 차려진 생일상 받고 싶으시죠. 제가 괜히 이런 말씀 드려서 남편 분들이 부담 좀 느끼실 겁니다. 남편 분들 응원합니다. 힘 내시구요, 돈은 없어도 사랑의 생일상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오늘 말씀은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복 받는 방법에 대해 말씀 하고 있습니다. 한 장 전체가 ‘복 받는 길(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다른 데서 복을 찾지 마시고, 오늘 말씀만 잘 들으시면, 성경이 말하는 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출입구를 찾게 됩니다. 집중하여 말씀을 듣는 모두에게, 세상에서 주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복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9절 마지막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분명하게 말씀 합니다. 혹자는, “한국기독교가 기복신앙이 너무 강하다, 기복신앙 때문에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정 부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복 받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중에, ‘복’이라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가 있습니다. 사람은 갖가지 복을 빌고(축복)하고, 하나님은 복을 내려 주시는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이왕이면 많은 복,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다 받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은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을 내게 주시리라”라는 말씀은, 2절 마지막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이라는 말과 대구법(對句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청종하면,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복 받는 방법, 하나 나왔습니다. 청종(聽從)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청종한다는 말 속에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따로 따로 구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듣는 사람은, 들려지는 그 말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그 말에 찬성하고, 동의를 표하고, 소리 내어 크게 선포한다는 의미 포함 되어 있습니다.(원어가 ‘솨마-듣다’라는 동사) 하나님 말씀을 듣고, 현장에서 적용하는데 까지 이르는 것이 ‘청종한다’는 본래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는, 그리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여 행동에 옮기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복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 나는 하는 일 마다 되는 게 없지, 친구들은 다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는 왜 맨날 요 모양 요 꼴이지, 나는 참 지지리도 복이 없어” 이렇게 한탄하시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그 원인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출입구인 말씀의 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 있을 때 갑자기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면 부보님들이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합니까? 한참 후에 전화가 연결되어 목소리가 들리면, “너 왜 그렇게 전화가 안 돼, 엄마가 너 목소리 안 들으면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몰라” 라고 급하게 말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목소리가 들려야 소통이 되고, 안심이 되고, 만남을 갖고, 먹거리를 챙겨 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어디 있는지 모르면 아무 것도 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오시는 출입구는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 하는 것, 이것이 복 받는 제일 우선의 방법입니다.
16절 마지막에도,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복 주신다는 말씀은, 17절에, “돌이키지 아니하면”이라는 말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흥청망청 살아가는 모습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고, 반드시 망할 것이고,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누에는 뽕 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른 먹이를 주면 송충이도, 누에도 죽고 맙니다. 이 속담은 자기 분수, 위치, 역할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가장 자주 쓰는 속담 중의 하나이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는 속담이 이와 비슷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는데, 그 양식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하늘양식입니다. “돌이켰다”는 말은 마음이 돌아서서 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복 받는 방법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복 받는 최고의 지름길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앙꼬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코 없는 코끼리요, 등짝 없는 거북이요, 수염 빠진 고양이요, 피오나 없는 슈렉이요, sd카드 없는 디카요, 김빠진 콜라요, 물 없는 호수요, 바퀴 없는 자동차요, 날개 없는 비행기요, 예수님 없는 기도요, 성령님 없는 교회요, 하나님 없는 예배”입니다. 숨차네요. 기독교에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힘도, 능력도, 자랑도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성경의 제일의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나님을 사랑해야 복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복 받고 싶으시면 두 가지 방법만 지키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간단하죠. 우리들이 복 받기를 다 원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복잡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복 못 받았다고 하소연 하는 분들은 이 두 가지도 못 지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먼저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1-12절(초) 말씀에,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복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도 취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입니다.
복 받는 방법은 이미 수백, 수천 번 우리에게 귀가 닳도록 선포되었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에도 ‘복’이라는 단어가 무려 589번이나 나옵니다. 통계적으로, 성경 2장 읽을 때마다 복이 한번 씩 등장하고, 주간성경읽기에 참여하시는 분은 적어도 10번 이상 복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됩니다. 복 받는 방법을 몰라서 안했다는 말은 더 이상 변명 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해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확실한 이유가 있지만, 어처구니없이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축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축복(祝福), 복을 빈다는 말인데, 복을 비는 행위, 즉, 복 달라고 요구하는 일인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한 테 왜 복을 안 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따지면, 하나님이 굉장히 어이없어 하십니다. “너, 나한테 축복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니, 먼저 축복 기도를 해라, 그래야 복을 주든지 말 것 아니니” 낮 뜨거워지는 이야기입니다. 축복기도 하지 않고 복 안준다고 때 쓰고 불평하는 사람은, 밥하려고 쌀을 씻어 밥솥에 넣어두고 전원 코드 연결 안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누전차단기(두꺼비집, a fuse box)가 내려갔는데, 전등이 나갔다고 자꾸 전등만 갈아 끼우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영화를 보려면 영화표가 있어야 하듯이, 복을 받으려면 축복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기도부터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귀 열리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 복 받으려면 당연히 축복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참고적으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할 때는 “축복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축복해 달라는 말이 익숙해져서 대부분 이렇게 기도를 하십니다. 복 달라고 기도 할 때는, “복을 내려 주옵소서, 복 주시옵소서, 복 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 복을 빌어주시는 대리자가 아니라,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복의 근원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축복하고, 복 받으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말 말 안 듣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 들은 체, 못 들은 체, 무시하고 삽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말합니다. “나는 복 받는 것도 귀찮고 그냥 내 식 대로 편하게 살래, 내 버려둬”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복 받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도 되는 걸까요? 16절에,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다”, 19절에, “~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말씀 하십니다.
우리 앞에, 생명과 복이 한 세트, 사망과 화가 한 세트로 놓여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축복 기도하는 사람은 생명과 복을 얻습니다. 그러나 축복하지 않고, 난 아무것도 안 받을래 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망과 화가 자동적으로 선택되어 집니다. 이 말씀은 복이라는 것이 받고 안 받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품이요, 의무 사항 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요? 왜 꼭 그래야만 합니까? 복과 생명이 한 세트라고 말씀 했습니다. 복 받으면, 복이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 안 받으면 저주 받고 생명을 잃게 됩디다. 당장 행복해 지기 위해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살았으나 죽은 목숨이요. 실제로 죽어서는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복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 듣기 싫어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 귀찮아합니다. 복 준다고 해도, 죽어도 받기 싫다는데 하나님이 더 이상 하실 것은 없습니다.
2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고 합니다. 한 구절에 복 받는 두 가지 방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한 말씀으로 우리 귀에 복 받는 방법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아마 우리 인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선포 될 것입니다. 청종하고, 돌이킬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복 받는 것이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돈, 성공만을 바라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 많이 벌고, 잘사는 것,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다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영원한 생명 얻는 복을 충만하게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복을 받아야 정말 복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되, 복 받는 것이 잘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유용한 수단을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복에 대한 대표적인 두 구절을 소개 합니다. 구약 중에 시편 32편 1~2절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신약 성경 중에 로마서 4장 6~8절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두 말씀을 보면, 복은 죄인이었던 우리가 아무 공로 없이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복을 다 받았습니다. 더 이상 복 받지 않아도 될 만한 큰 복을 이미 받아서 누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 사함을 내려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복중의 복 인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할 복은 돈이 아닙니다. 복중의 복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진짜 복중의 복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중요한 복만 말씀 드려 보면, ① 죄와 악을 물리쳐 이길 수 있는 믿음의 결단, ② 탐욕 부리지 않는 자족하는 마음, ③ 다 용서할 수 있는 풍성한 사랑의 마음을 이웃에게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 이러한 좋은 복을 추구하며 살아간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일평생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 새사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이름 부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예수님 이름을 전하는 것을 즐겨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의 목표도, 오직 예수님만을 원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우리 마음에 채워 가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복 받는 방법 두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청종한다” “돌이킨다”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십시오. 많은 요구가 아닙니다. 두 가지 정도는 지켜줘야 예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복 많~이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말씀을 청종 하시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시고, 복 중이 복이신 예수님을 꽉 붙잡으셔서,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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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무한한 생명의 복을 주시려고 복의 통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복 받고 싶습니다. 축복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복 주시고 생명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