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70이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이번 풀코스대회.
자료를 들여다보니 매 3년 단위로 평균 10회를 채워왔던 걸로 보이는데 60에서 70에 이르는 시간은 7년을 넘겼다.
그 시간동안 코로나 3년, 또 그 기간과 정확히 겹치는 대구에서의 생활 3년, 결코 만만치 않은 내리막길이었나보다.
지난봄 3년 반만에 달린 동아마라톤에서 역대 최장시간 주행기록을 달성하고 적쟎이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에 그걸 만회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는 잠실종합운동장 공사 때문에 그런건지 기존과 달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출발해 한강을 두번이나 건너고 그러는 동안 여의도와 남대문 시청 종로 등 도심을 지나고 천호등 둔촌동 등 강남 동네를 크게 돌아 잠실로 돌아오는 코스.
아침 8시에 경기가 시작되기에 전주에서는 새벽3시에 출발 하게 되었다.
그것도 몇번의 곡절을 겪은 끝에
클럽시절 이후 이렇게 새벽에 장거리를 다녀오게 된 기억이 없는데 시간상의 문제 보다도 더 큰 난관은 날씨.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릴거라는 예보가 있다보니
잠실보조경기장 부근에 운좋게 주차를 할 수 있었고 야구장건물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떼운 뒤 전철을 타고 상암경기장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이 순조롭게 일이 잘 풀렸지만 이미 쏟아지기 시작한 비가 신경이 쓰인다.
상암역에 내리고 보니 지하철역사와 경기장 주변은 온통 주자들로 북세통을 이루고 있다.
다행히도 비는 잦아들고 있었고 물품을 맡기고 어렵게 용변을 처리한 뒤 바로 출발선에 서게 된다.
3시간5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가다가 상황을 봐서 페이스를 잡으려고 했는데 막상 출발 직후부터 내리 따라가게 된 건 3시간40분 페메, 뭐 어쩌랴 싶었는데 이게 잘못된 판단이란걸 중반 이후에 절감한다.
5:10 페이스를 기준점으로 빠를땐 5분 내외까지 올라가는 진행을 15Km까지 잘 따라갔고 이후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어째 점점 밀리는 기분이 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앞서가는 주자들이 계속해서 많아지고...
체감상으로는 70회 풀코스 중에서 중반도 못미친 시점부터 이렇게 꾸준히 따라잡힌 레이스가 처음.
왼쪽 겨드랑이가 쓸려 몹시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도 비가 시작된 시점과 비슷하다.
왼쪽 무릎내측인대를 중심으로 통증이 일어나고 (이것도 처음 경험)...
햄스트링을 걱정했는데
천호대교를 지난 뒤 강남의 넓다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어느순간 비가 그쳤고 여기서 집중력이 더 떨어지게 되면 완전히 만고강산이 될 게 뻔하기 때문에 숫자세기를 시작해본다.
30Km 무렵부터 내가 앞서가게 되는 주자들의 숫자를 카운트 하는 방법인데 따라잡는다는 표현 보다는 멈춰섰거나 걷거나 하는 수준의 일명 퍼진 런너들을 주워먹는 것이고 당연히 나를 앞지르는 사람은 그런 중에도 최소 두배 이상은 많았다.
35Km 무렵엔 그런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지며 숫자를 세는건 의미가 없어지고 남은 거리는 점점 줄어드니 이제까지 벌어놓은 자원을 잘 활용하고 더 느려지지만 않는다면 48분 내외까진 가능하겠다고 판단이 선다.
그러던 중 50분 페메가 지나가고 의욕이 꺽이긴 하지만 그래도 맨 첫번째 풀코스 기록인 3시간50분에서 초단위로라도 밀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37Km 즈음에 지리하게 반환되는 지점을 지나고 저만치 멀리서 세상 힘겨운 고뇌의 얼굴로 달려오는 안선생님을 발견, 손을 흔들고 소리까지 질러 봤지만 무념무상... 그리고 난 뒤 램프구간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어울리지 않는 의욕이 발동했는지 순간 힘이 들어갔다보다.
전혀 예고도 없이 오른쪽 햄스트링에서 쥐가 올라오더니 이게 바로 풀리지를 않고 발을 땅에 딛는 자체를 힘들게 하는 통에 5분여를 실랑이 하고 서 있었다.
마음은 바쁜데 이제 모든 예측과 기대를 잊어버리고 최후의 플랜을 꺼내야 한다.
이제까지 모든 것들은 다 잊고 남은 거리를 더이상 화가 없게 그냥 달리는 것. 단순하지만 유일한 방법.
그렇게 해서 결승매트를 지나고 보니 3시간55분이 찍혀있다.
나중에 물품을 찾고 나서 핸드폰 문자를 보니 공식기록이 와 있는데 3:55:21
지난봄 동아대회때보다 9초 앞섰다.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고 이런걸 가지고 일희일비 하고 있는 지금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챙피하기도 하고...아무튼 풀코스대회는 매번마다 엄청난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번 겨울은 더이상 쪽팔리지 않도록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계기로 삼겠다는 다짐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