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暴炎)’. 문자 그대로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모두가 시원한 곳을 찾는다. 얼음골로 유명한 경남 밀양은 그래서 여름에 더욱 가볼만한 곳이다. 무더위가 비껴가는 밀양의 매력을 직접 맛봤다.
아름답고 시원한 트윈터널
밀양시 삼랑진읍에 있는 트윈터널은 조선시대 고종의 명으로 산을 뚫어 만든 기찻길이었다. 본래 이름은 ‘무월산 터널’. 하지만 이곳은 2004년 KTX 개통으로 그 역할을 다하게 되면서 더는 기차가 드나들지 않는 폐터널로 남았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터널은 대대적인 새 단장을 거쳐 2017년부터 이 고장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암막커튼을 젖히고 터널 안으로 발을 들이면 서늘한 기운이 엄습한다. 그리고 곧바로 어둠 속을 밝힌 형형색색의 무수한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함과 아름다움에 놀란 이는 비단 기자 혼자가 아닌가보다. 터널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탄성이 터진다. 하긴 상행선 457m, 하행선 443m의 터널을 1억개에 달하는 조명으로 수놓았는데, 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시작한 터널에서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사시사철 16~18℃를 유지하는 내부 온도가 몸에 묻은 끈적한 더위를 씻어내주기 때문이리니. 게다가 용·물고기·하트·우산·단풍나무 등 다양한 조형물들을 휘감은 불빛이 은은하게 어둠을 밝혀 아늑함까지 더해준다. 각종 조명과 조형물을 넋 놓고 쳐다보다 보면 터널 산책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오죽했으면 출구가 보일 때쯤 잠시나마 잊었던 불볕더위가 떠올라 발길을 되돌리고 싶을까.
밀양의 신비, 얼음골
밀양의 3대 신비로 불리는 얼음골. 산내면의 재약산 북쪽 중턱 해발 600~750m에 형성된 계곡은 여름철이면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장소다. 주차장과 계곡을 연결한 구름다리를 건너자마자 뺨을 스치는 바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시원하다. ‘이 더위에 찬바람이라니!’ 생각하자마자 다시금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무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준다. 선풍기나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보다 자연의 바람이 훨씬 힘이 세다는 걸 느낀다. 무더위를 이기는 그 힘 말이다. 이같은 시원함이 어디 바람뿐이랴. 산길 옆 계곡을 흐르는 물에도 발을 담그면 차다 못해 시리다. 그곳이 바로 얼음골이다.
계곡 물놀이 명소, 시례 호박소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 용이 돼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는 곳’ ‘가뭄에 범의 머리를 넣으면 물이 뿜어 나와 비가 되는 곳’.
조선시대 지리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온 밀양의 시례 호박소에 대한 표현이다. 얼음골에서 4㎞ 정도 떨어진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엔 바닥에 우묵한 크고 작은 웅덩이가 여럿 있다. 특히 1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만들어낸 가장 큰 물웅덩이는 계곡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검푸른 물빛을 자랑한다. 깊은 계곡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데 물놀이까지 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다보면 무더위는 저 멀리 달아나고 없다.
밀양=김동욱, 사진=김덕영 기자 jk815@nongmin.com
밀양에서 꼭 맛봐야 할…
면·양념장·육수 ‘삼위일체’ 파향 어우러진 고기 맛 일품
◆ 매콤달콤·시원한 밀면
살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면발. 보통 냉면이 떠오르겠지만 경남지역에선 밀면을 먼저 떠올린다. 밀면은 부산의 향토음식이지만 이미 부산을 넘어 경남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쫄깃한 면과 진한 풍미가 느껴지는 육수, 거기에 매콤달콤한 비빔양념장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맛은 더위에 지친 입맛을 자극한다. 거기에 살얼음이 올라가 시원함까지 더해졌으니 단연 이 계절의 별미다.
◆ 파와 고기의 콜라보레이션 파불고기
얇게 썬 돼지고기 혹은 쇠고기에 빨간 양념을 살짝 버무려 불판에 굽는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역시 얇게 썬 파와 양파를 넣고 버무려 익힌다. 그리고 다 익은 고기는 쌈에 싸 먹는다.
간단한 레시피지만 맛은 간단하지 않은 파불고기. 익힌 고기에 양념 버무린 파를 섞어 먹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이 고장만의 파불고기다.
간이 적당히 밴 파불고기를 양념장에 살짝 찍어 쌈채소에 얹어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술안주로도 두말하면 잔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