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치아 ‘맏형’ 정성준, 파리 패럴림픽 남자단식 은메달
2일 2024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남자단식(스포츠등급 BC1)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보치아 대표팀의 ‘맏형’ 정성준.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 보치아 대표팀의 ‘맏형’ 정성준(46·경기도장애인보치아연맹)이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금메달에는 못 미쳤지만, ‘무명선수’였던 정성준은 패럴림픽에서 처음으로 시상대 두 번째 높은 곳에 올라서며 세계에 이름 석자를 떨쳤다.
정성준은 2일 오전 11시 40분(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사우스파리 아레나1에서 열린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남자단식(스포츠등급 BC1) 결승에서 홍콩의 존 러웅을 맞이해 1-4(0-2 0-1 0-1 1-0)로 패했다.
정성준 개인으로서는 패럴림픽 첫 메달이다. 2020 도쿄 패럴림픽 때는 개인전(BC1) 10위, 단체전(BC1,2) 7위에 그쳤다. 사실 국제 보치아 무대에서 정성준은 철저히 '무명'이자 '단역'이었다. 2022년 브라질 세계보치아선수권대회 단체전(BC1, 2) 금메달이 국제대회에서 정성준이 따낸 첫 메달이었다. 국제무대 개인전에서는 단 1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그러나 파리 패럴림픽 결승전 무대를 통해 정성준은 당당히 스포트라이트를 '주연'으로 환골탈태했다. 비록 결승전에서는 졌지만, 이제 세계인은 '한국 보치아의 새 강자'로 정성준을 기억하게 됐다.
홍콩의 선공으로 1엔드가 시작됐다. 존 러웅은 경기장 왼쪽 라인부근에 표적구를 던지고 자신의 첫 번째 빨간색 볼을 딱 붙였다. 정성준은 1구로 쳐내기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라인아웃되고 말았다. 머리와 팔의 떨림 증세를 억누르며 2구째를 굴렸다. 빨간색 볼에 맞았지만, 밀어내지 못하고 볼을 타고 넘어가고 말았다. 3구째는 빨간색 볼 옆에 붙였다. 여전히 홍콩이 유리한 상황.
4구째는 표적구를 직접 노렸다. 맞고 왼쪽으로 멀어졌다. 상황이 점점 불리해졌다. 그러나 팔의 떨림을 이겨내고 던진 5구째가 제대로 들어갔다. 표적구를 직접 밀어 자신이 던져놓은 파란색 볼 옆에 붙였다. 포지션 역전을 당한 러웅의 2구째는 표적구를 맞고 라인아웃. 3구를 표적구 근처에 떨어트렸는데, 심판 측정에서 표적구에 더 근접한 것으로 나왔다.
턴을 이어받은 정성준이 던진 마지막 6구째가 오히려 상대의 볼을 표적구 쪽으로 밀고 말았다. 유리해진 러웅은 남은 3개의 볼을 하나씩 표적구 곁으로 보내는 다득점 전략을 썼다. 결국 1엔드에서 2점을 선취했다.
2엔드는 정성준의 턴으로 시작됐다. 약 2.5m 앞 라인 오른쪽 부근에 표적구를 던진 뒤 초구를 표적구에서 약간 떨어진 앞쪽에 던져 장벽을 세웠다. 거리가 약간 부족해 공간이 열렸다. 러우는 초구를 표적구에 가깝게 보냈다. 정성준은 두 번째 볼을 초구 옆으로 보낸 뒤 세 번째 투구로 첫 번째 공을 밀어 표적구 곁에 보냈다. 턴을 이어받은 러웅은 2구째를 표적구에 붙였다. 다시 정성준의 턴.
4구는 벽에 막혔고, 드디어 5구째를 표적구에 가깝게 붙였다. 마지막 볼로 표적구에 붙어 있는 러웅의 두 번째 볼을 밀어내려 했지만, 힘이 약간 부족했다. 여전히 러웅의 빨간색 볼이 표적구와 더 가까웠다.
유리한 위치에서 4개의 볼을 남겨둔 러웅은 1점만 획득하는 안전한 작전을 택했다. 괜히 표적구를 건들여 실점하지 않기 위해 남은 4개의 볼을 표적구와 동떨어진 경기장 반대편에 던져 2엔드를 마쳤다. 스코어는 0-3으로 벌어졌다.
3엔드에서 후공을 하게 된 정성준은 2구와 3구를 표적구 앞에 바짝 붙였다. 벽을 쌓으며 유리한 포지션까지 만들었다. 러웅은 2구째로 정성준의 볼을 밀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3구로 자신의 공을 밀어 표적구에 가깝게 붙였다. 정성준의 4구째 투구 차례. 러웅과 마찬가지로 던져놓은 자신의 공을 밀어 표적구에 가깝게 밀었다.
서로 남은 볼을 조금 더 표적구 곁으로 보내려는 싸움이었다. 정성준은 힘과 방향을 조절하며 볼을 굴렸지만, 이번에도 엔드를 따내지 못했다. 러웅은 3엔드에도 1점 획득 전략을 쓰며 남은 1개의 볼을 던지지 않았다. 얄미울 정도로 냉정한 전략으로 4점차 리드를 만들었다.
정성준은 마지막 4엔드에서 4점 이상을 노릴 수 밖에 없었다. 보치아는 한 엔드에 최고 6점까지 얻을 수 있다. 4점 이상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파리 패럴림픽 예선 2경기와 8강, 4강전 등 총 4경기를 치르는 동안 정성준이 기록한 한 엔드 최다득점은 2점이었다.
4엔드가 잘 풀렸다. 정성준이 표적구 앞에 세운 볼 앞에 러웅의 공 5개가 다 막혔다. 1개는 멀리 나갔다. 볼 5개를 남긴 정성준이 4점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관건은 표적구 앞쪽을 막고 있는 러웅의 5개 볼을 어떻게 넘어가느냐. 2구로 벽을 쳤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전략을 바꿨다. 아예 표적구를 직접 때려 밀어내는 방법. 3구로 표적구를 러웅의 볼들과 떨어트리는 데는 성공. 4구도 잘 붙였다. 하지만 5구가 라인아웃. 마지막 볼도 역시 라인을 벗어나고 말았다. 정성준은 1점을 얻는 데 그쳤다. 패럴림픽 첫 결승 무대에서 정성준은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러웅의 전략에 당했다. 1-4 패배. 정성준은 생애 첫 패럴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성준은 “예선 첫 경기 지고 나서 ‘포기할까’라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코치님이 잘 잡아 주셔서 포기 안 하고 열심히 해서 은메달을 딴 것 같다”면서 “금메달 못 걸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다른 종목이 있으니까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