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벚꽃길을 지나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밴드 소리는 물을 먹어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비를 피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고스란히 비를 맞아야 했다.
625 행군은 625 전쟁처럼 고난을 이겨내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강릉시내 남녀 고등학생들이 625 행군을 하면서 20 키로 경포대를 돌아서 공설운동장에 와서 마지막 행사를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남학생들은 교련복이었고, 여학생들은 하얀 바지에 각 학교의 체육복이었다.
비가 내리자 다소 웅성거리다가 이내 조용하게 장엄한 행렬은 이어졌다.
625 행군은 당연히 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어야 했다.
앞에서부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웅성거림은 수그러들 생각을 안했다.
“피다! 피다! ”
학생들 속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슨 피야!”
선생님들이 앞으로 뛰어 갔다.
학생들도 선생님을 따라갔다.
아! 우리들은 그녀의 피를 보고야 말았다. 그녀의 피, 붉은 피,
여학생의 하얀 바지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학생은 주저 앉았다. 선생님 한분이 그녀에게 옷을 덮어 주었다.
그녀의 하얀 바지는 겨우 감춰질 수 있었다.
그녀의 붉은 피도 우리들의 대단한 행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분명하게 그날 그녀의 붉은 피를 기억한다.
빗물과 함께 그녀의 붉은 피는 발목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공설운동장에 왔을 때 비는 겨우 멎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고 선열들에 묵념을 했다.
나는 내내 그녀의 붉은 피가 머리에서 가시지 않았다.
내 단편 소설 중의 한편이 이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소설 제목은 ‘625행군 그녀의 핏빛’ 이다.
그 소설을 쓴 이유는, 박정희 정권의 무지막지함이 한 소녀의 너무나 창피한 일에 대해서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녀의 하얀 바지에 흘러내렸던 붉은 피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 지도 몰랐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그것이 사춘기 소녀들의 생리현상이라는 것을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녀 핏빛의 부끄러움은 차라리 지금 윤석열 아내의 뻔뻔함 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