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일지 '해동차실에서'
산업물품유통단지 내를 초저녁에 걷는 느낌은 마치 영화속을 걷는 듯했다. 사각 블록들이 쑥쑥 솟아나는 그런 다소 빈티지한 메트릭스 내부.
낯선 풍경은 어떤 감정들을 소환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그림자 놀이 같은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처럼 영화 음악이 퍼지며 또다른 시공이 겹치지듯이 이 텅빈 밤의 거리에서 어떤 작당들이 도모될 것 같은.
산업유통단지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영화 소재로도 촬영장소로도 좋을 것 같았다는 그런 이야기다.
해동차실은 버디님의 사적 공간이다. 한쪽에는 사무실겸 작업실 겸 다실을 겸한 직사각형의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그야말로 빈티지한 공간인데, 다닥다닥 붙어서 차를 마시고 맛있는 짬뽕과 볶음밥과 튀김만두를 먹었다. 이런 공간은 우리의 기억 저편에 자리잡고 있는 기억을 부른다. 오래된 선술집 또는 찻집에서 벽면에 낙서 가득하고 다소 눅눅한 향기가 날지라도 그곳에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행여 눈이라도 올세라...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 언젠가의 미지를 염원하는 듯한 눈망울들이 기대를 품는 바로 그런 공간성을 소환한다. 작고 소박한 공간은 늘 이런 미지에 대한 동경이 서려있곤 한다.
장소를 옮겨서 진짜 보물창고인 해동차실에서 차회를 한다. 이곳에는 버디님께서 그동안 모아 놓은 온갖 다구와 도자기와 차가 켜켜이 숨겨져 있다. 그러니까 버디님의 놀이터이자 미지의 염원이 서린 보물창고에서 우리는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낡은 박스 안에 아무렇게나 담겨 있는 것 같은 해동차실은 사실은 그 언젠가에는 버디님의 꿈의 장소에서 펼쳐질 보물들이다. 요즘은 거의 일이 인터넷 주문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이 장소도 점차 그렇게 변화해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차차로 준비를 통하여 이 보물창고에 있는 차도구들과 도자기들과 차들은 그 꿈의 차실에 펼쳐질 것이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에 축적하여 온 꿈의 무게를 볼때면 나는 그 사람의 시간성을 존중하게 되고 존경하게 된다. 그 축적하는 시간 동안 찾아온 사람들과 차를 나누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고 차와 미소를 전달한 시간에서, 버디님은 항상 그런 시간이 감사하고 기뻤다고 하였다. 그 자신의 공간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게 공간이란 무엇인가를 또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것만이 이심전심 서로를 소통시키기 때문이었다. 차실이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한 장소에 차실이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차를 알린 버디님의 해동차실은 오랜만에 찾은 나와 나의 일행을 충분하게 환대해 주었다. 차회와 사람들 간의 교감의 여운은 여전히 남아서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 고마운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모여 같이 차를 마시게 되었다. 버디님은 나에게 여자분들만 모시고 와서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제가 아는 남자분들이 없어서요~ 라고 답변드렸다ㅋㅋ. 담에는 어케 섞어서 차 마시러 오는 방향으로 할께요. 여자들만 모였는데도 버디님은 한결같이 차를 내시고 같이 잘 시간을 보내 주셨다.
아주 귀여운 옹기에 차를 담아서 각각 선물로 주셨다. 뚜껑도 있어서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작은 옹기는 차를 담아서 두면 정말 앙증맞게 이쁘다. 안에는 7~8년 숙산차가 들어 있었는데, 맛과 향이 부드럽고 바디감도 있어서 마시기에 좋았다. 탕색도 맑았다. 선물까지 받으니 미리 크리스마스였다. 감사드립니다!
각자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살았는지에 대해서 주거니받거니 대화를 나누면서, 사람들과의 인연에 우리는 많이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각자가 나름대로 살면서 그때에 만난 사람들과 인연지어지고 그 안에서 어떤 삶의 형태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시간들을 이렇게 만나서 또 이야기하게 되는 시간들. 결국 삶의 조건이란 그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의 문제일 것이었다.
집에 오니 4강전이 한창이었다. 브라질이 떨어져서 나름
고소...하다는 야릇한 생각을 하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듯하다. ㅎ...
* 우리가 해동차실에서 마셨던 차들은 다음과 같다.
1.#동방미인東方美人_백호오룡/ 대만차. 동방미인은 어린 잎을 채취하여 만들기에 백호가 많고 대체로 수제로 만든다. 차의 마른잎 색상은 흰색과 연갈색, 회갈색, 진갈색 등이 섞여서 알록달록 예쁘고 향이 좋다. 동방미인 명칭의 유래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이 차를 동양의 미인에 비유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동방미인의 독특한 맛은 6월 정도에 더워지고 비가 내리면 차나무에 소록엽선이라는 벌레가 생긴다고 한다. 부진자浮塵子 곤충에 속하는 소록엽선은 찻잎의 수액을 빨아먹고 타액을 내놓는 과정을 보면, 모기와 비슷한 듯 싶다.
'소록엽선'이 찻잎 줄기에서 수액을 빨아들일 때 타액을 내놓기에, 찻잎에 소록엽선 벌레의 타액이 섞이게 된다. 상처 입은 찻잎이 홍갈색이 되는데, 그 잎들을 모아 가공 생산하면 특유의 진한 벌꿀향을 지닌 동방미인이 탄생하게 된다고 한다. 동방미인은 오룡차 계열 중에서 가장 높은 발효도를 갖는데 65% 이상이다. 오룡차=청차류는 가장 광범위한 발효 분포도를 가지고 있다. 청차 종류에 따라 15%~, 60~75%의 발효 분포도가 나타난다. 반발효차로 분류된다.
2. #노총소종(老樅小種노종소종/발음은 노총소종으로 발음한다)/ 노총소종은 정산소종인데 오래된 고차수 나무로 만들어서 노총소종이라고 한다. 송연향을 훈연한 노총소종은 향기 가득히 입 안에 퍼지며 그 뒷 맛이 달콤하였다. 이 상표의 차는 처음 마셔보았다.
복건성 무이산 동목촌에서 최초의 홍차인 정산소종이 만들어졌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지역인 동목촌은 기온이 낮은 곳인데 소나무를 주로 땔감으로 사용하다보니, 그 연기가 발효되어 가는 찻잎에 훈연되었다. 이렇게 찻잎 자체가 가진 용안향에 소나무 연기의 향이 첨가되었다. 중국 홍차의 주요 소비층이었던 영국인들이 이 훈연향에 열광하게 되자, 더 강하게 훈연시킨 ‘랍상소우총’이라고 불리는 홍차가 만들어졌다. 랍상소우총은 베르가뭇을 첨가한 얼 그레이를 탄생시켰는데, 랍상소우총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자 얼 그레이 백작이 베르가못을 첨가하여 송연향을 대체한 것이었다.
노총소종의 한자 설명서를 보면( 한자 찾아보느라 진땀 좀 뺐다)
"노총소종산우자연보호구동목소내, 채용평균해발일천이백미좌적차청위원료, 해처산몰생태경우월년령균재백년이상, 속양야생생태적조방관리모식, 해산품위정산소종전통가공공예제작이식, 입구감첨, 종운유장, 자미순후, 이수청철, 내충포, 위정산소종중부가다득적진품" 이라고 적혀 있다.
대략 풀어보면, 자연보호구역 동목촌 내의 평균 해발 1200미터의 찻잎 사용, 백 년 이상 된 차나무 잎으로 만들었다는 뜻인 듯. 야생상태이고 정산소종 만드는 방식인 전통방식으로 만들었다는 뜻인 듯하고, 달고 감미롭고, 맛이 두텁고 부드럽다. 내포성이 좋고, 이 정산소종은 진품이다. 라는 뜻인 듯하다.
3. #노반장老班章/ 라오반장은 중국 운남 태족 자치주 맹해현 남쪽의 포랑산이 생산지이다. 포랑산은 미얀마와 국경지대에 위치한다. 포랑족은 최초로 차나무를 재배하였다. 기후는 아열대 고원 기후 지역이다. 포랑산에서도 북쪽에 하니족이 사는 데 이곳이 오리지널 노반장 생산지이다. 원래의 하니족이 살던 곳이 노반장 생산지이고, 하니족이 일부 이동하여 사는 곳이 신반장 지역이고, 포랑족이 사는 곳이 노만아 지역이다. 노반장은 해발 1700m 고지대에 위치한 고차수 다원들에서 생산된다. 신반장의 위치는 해발 1600m 지대, 노만아의 위치는 해발 1500~1300m. 가장 역사가 오래된 지역은 노만아 지역이다. 노만아가 노반장과 신반장의 어머니인 셈이다. 하지만 세 지역의 차에서 노반장 보이차가 가장 각광 받게 되었다.
* #숙산차/ 7~8년된 숙산차는 숙차이며 산차 형태의 보이차이다. 숙차는 악퇴기법으로 만든 속성 발효차이다. 숙차(숙병)는 오래된 보이차와 같은 탕색이 특징이며, 붉은 탕색을 가지고 있다. 이 숙산차는 맛이 순후하며 탕색이 맑고 향도 감미로웠다.
차는 늘 마시기에 그 자신에게 내재화된다. 차공부나 지식도 그 자신의 몸에 체득되어 자연스러워 지지만, 차공부도 반복이고 되새김질 안하면 지식적인 것은 까먹기 마련이라서 반복학습 차원에서 마신 차들에 관해서 다시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디테일 정보는 검색을 활용하였다. 이상으로 다회일지 마침.
함께한 시간, 감사했습니다.^^
첫댓글 즐거운 모습이 다회의 묘미입니다.茶마시는데 당연히~ㅎ 멋진 해동다실, 볼거리가 많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나눌 수 있는 바로 그 시간이 다회의 정점이자 묘미니까요~ 비밀 아지트 같은 해동다실은 즐겁고 잼나고 멋진 공간이 맞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