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드 가든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서 춘천근교에 있는 제이드 가든으로 직원 연수를 갔다.
전엔 방학 직후 직원 여행 겸해서 하던 연수를 ,이젠 대부분의 학교가 날짜를 미리 당겨서 실시하고 있는 추세이다. 큰 학교의 경우 대형 관광버스를 이용하지만 우리학교는 소규모 학교라서 학년 별로 삼삼오오 자가용으로 이동하였다. 간신히 도착한 곳은 “여행하기 좋은 날”이란 이름이 예쁜 농가펜션이었다. 솔직히 말이 펜션이지 그냥 농가를 개조한 것이다.
비는 억수같이 오고 저녁밥도 엉성하고 완전 대학 MT온 분위기였다. 하지만 저녁 식사 후 윷놀이와 보드게임은 정말 재미있었다. 이런 윷놀이는 처음이다. 선생님들이 대부분 젊어서인지 유모어와 웃음이 넘친다. 그러니까 윷놀이 보다는 선생님들의 재치있는 말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윷놀이를 이렇게 시간을 늘려서 오~~래 하는 건 첨 봤다. 이러다간 밤 샐 것 같았다. 보드게임 또한 웃겼다. 보드에 각자 미리 준비해 온 선물들을 올려 놓고 주사위를 두 번 던져 가로 세로 이동한 후 도착한 지점에 있는 물건이 자기 선물이다. 선물도 각양 각색이다. 선물을 그냥 가져가느냐? 아니다. 또 변수가 있다. 선물을 집어 드는 순간 그 아래 보드판에 글이 써있다. “ 그대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시오” “야자 타임” 등등
그 바람에 교감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도 들었다. 여자이지만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교감선생님의 첫사랑은 뜻밖에도 너무나 애틋했다. 분명히 좋아하는 남자였는데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단다. 그래도 매년 연하장은 자기가 먼저 꼬박꼬박 보냈다니 무슨 심뽀일까?
세월이 한 참 흐른 후에 만나자는 전화가 왔었단다. 서로 나이도 먹고 가릴 것 무엇 있나 싶어 만나기로 했는데 하필 그날 따라 멀리서 친구가 찾아와 자기 아파트에서 자고 가게 생겼단다. 그래서 전화로 멀리서 친구가 와서 오늘 못 나갑니다. 했는데 몇 달 후 그 남자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는 이야기다.
교감선생님 첫사랑 이야기에 모두들 끌탕을 한다.
쯪쯪! 어휴, 어째? 이럴 수가! 슬프다. 가슴 아리다.
내 선물은 뭐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인데 밑에 쓰여진 글이 “결혼은 해야 되나요?” 였다.
나는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총각 처녀들이 일제히
“왜요?”하고 묻는다.
“L선생님 말은 다르던데요? 저 보고 결혼 절대 하지 말랬어요. 이혼 하려면 결혼하라고 했어요”
Y 선생님이 L선생님을 가리키며 내게 볼멘 소리를 한다.
모두 L선생님을 쳐다보며
“ 에이 왜 괜스레 총각에게 이상한 갈쳐 주고 그래?”
“아니에요. 정말 맞잖아요. 뭣하러 결혼 같은 거 하냐고요? 안 그래요 들? 다들 경험했음서”
한참동안 자기 주장하느라 옥신각신 했다. 결국 내가 정리했다.
“Y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해야 해요. 설사 후회하는 일이 있어도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보드게임에 시간은 벌써 11시가 넘었다. 너무 졸려 잠시 건넌방에 오니 벌써 누워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 생각에 동의해요. 어쨌든 결혼은 하고 봐야 해요”
행정실 직원이다. 누워 있으면서 다 들었나 보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도 이야기 하는 사람, 자는 사람, 먹는 사람 .... 각양 각색이다. 이부자리도 부족하고 잠자리도 마땅하지 않아 선생님들이 고생이다. 이런상황에서 주인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3-2 선생님이 말했다.
새벽에 화장실이 급해 옆방으로 더듬 더듬 가는데 무언가 발에 턱 걸리더란다. 자세히 보니 남자였는데 요만 깔고 이불도 없이 총각 샘하고 원어민 영어선생님이 화장실 바로 앞에서 자고 있었단다. 그 와중에도 Sorry! Sorry!
하면서 겨우 화장실에 갔다고 한다. 영어공부 확실히 했네요. 남자 선생님들이 잠을 불편하게 잤나보다. 어제 내린 비로 개울물이 엄청나게 불었다. 물구경을 하다가 산을 바라보니 황금색 부처의 몸이 산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생뚱맞게 보였다. 아마도 이 근방에 절이 있나보다. 아침 식사 후에 “아침고요 수목원”에 갈 계획이었지만 비가 더 올지도 모르고 해서 1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제이드 가든에 가기로 했다.
나는 처음이지만 여기서 영화도 찍고 드라마도 찍고 했다 한다. 사진작가들이 와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했다. 야외 웨딩 장소도 있고 예쁜 숲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퇴직하고 보니 직원여행 빠진 게 가장 후회된다고...
그 땐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직원여행에 빠졌었는데 지금 후회가 된단다.
교직원끼리 하는 여행은 현직에 있을 때나 가능하리라.
사는 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지 않고 그대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책에서 읽었다.
나도 현직에 있을 때, 특히나 젊을 때는 직원여행 많이 빠졌다.
버스에서 억지로 노래시키는 것도 부담스럽고, 춤도 추라 해서 싫었다.
괜히 아이 핑계, 시어머니 핑계 대고 빠진 적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나이가 드니 더 적극적이 되어진 것 같다.
너무 적극적이면 주책이 아닐까? 슬쩍 걱정도 된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는게
맞다.
비 온 후라서 사진이 어두운 것 같다. 제이드 가든의 입구이다.
사진 찍기 좋은 건물들과 꽃들이 많았지만 많이 찍지 못했다. 웬지 나대는것 같아서...ㅎㅎ
친구들과 왔더라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웠을까?
첫댓글 너무 좋은 학교 분위기입니다.
교감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는 애틋하고 감명적입니다.
사람이 그 시간을 즐기는 것과 만족하는 것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입니다.
항상 좋은 글 올리는 박수련 선생님 화이팅!!!!!!!!!!1
방학 전 연수 제대로 갔네. 마지막 학교생활일지 내년에 또 할지 모르지만 기회가 주어질 때 그 기회를 맘껏 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