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나라
박영희
꿈은 유령의 춤추는 마당
현실은 사람의 괴로움 불붙이는
싯벌건 철공장(鐵工場)
눈물은 불에 단
괴로움은 찌꺼기
사랑은 꿈 속으로 부르는 여신
아! 괴로움에 타는
두 사람 가슴에
꿈의 터를 만들어 놓고
유령과 같이 춤을 추면서
타오르는 사랑은
차디찬 유령과 같도다.
현실의 사람 사람은
유령을 두려워 떠나서 가나
사랑을 가진 우리에게는
꽃과 같이 아름답도다.
아! 그대여!
그대의 흰손과 팔을
너 어둔 나라로 내밀어 주시오!
내가 가리라, 내가 가리라
그대의 흰 팔을 조심해 밟으면서
유령의 나라로
나는 가리라! 아 그대의 팔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 중 81
part 4 그대의 귀에 바다가 들어오리
채빈 엮음
[작가소개]
박영희[ 朴英熙 ]
<요약> 박영희는 소설을 통하여 계급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계급사회의 철폐를 주장하지만, 현실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념적이며 우화적인 색채가 짙다.
-출생 – 사망 : 1901. 12. 20. ~ 미상
-출생지 : 국내 서울특별시
-호 : 회월(懷月), 송은(松隱)
-데뷔 : 1921. 장미촌 창간호에 시 「적(笛)의 비곡(悲曲)」, 「과거의 왕국」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아명은 거복(巨福), 호는 회월(懷月) 또는 송은(松隱). 1901년 12월 20일 서울 태생. 1916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0년에 수료하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에서 수학한 뒤, 1921년 귀국하여 『신청년』, 『장미촌』, 『백조』 등의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장미촌』 창간호에 시 「적(笛)의 비곡(悲曲)」, 「과거의 왕국」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23년에는 김기진‧연학년‧이상화 등과 더불어 파스큘라(PASKULA)를 결성하며 계급의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1924년 『개벽』의 문예부 책임자가 되어 신경향파 건설에 주력하였으며, 1925년 카프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부터 시 창작보다는 소설과 평론에 전념, 소설 「사냥개」(1925), 「철야」(1926), 「지옥순례」(1926) 등과 평론 「신경향파의 문학과 그 문단적 지위」(1925), 「신흥예술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논하여 염상섭 군의 무지를 박(駁)함」(1926) 등을 발표하였다. 1926년 말부터 김기진과 ‘내용‧형식’ 논쟁을 벌이며, 1927년에는 「문예운동의 방향전환」, 「문예운동의 목적의식론」 등을 발표하며 카프의 제1차 방향전환을 주도,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신간회의 간부를 지내기도 하였다. 1929년 무렵 임화‧김두용 등의 카프 도쿄지부의 ‘당의 문학’이라는 슬로건에 밀려 카프의 주도권을 상실하였으며, 1934년 「최근 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이라는 전향선언문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 카프를 탈퇴하였다.
1938년 7월 전향자 대회에 참가하면서 친일활동을 시작, 1939년에는 조선문인협회 간사를 역임하는 한편, 「임전체제하의 문(文)과 문학의 임전체제」, 「2천5백만 반도청년에게 격함」이라는 평론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광복 후에는 민족 반역자 명단에 오르기도 하였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문학사 강의를 맡았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설과 평론을 함께 묶은 『소설‧평론집』(1930)을 비롯하여 시집 『회월시초』(1937), 평론집 『문학의 이론과 실제』(1947) 등을 간행하였고, 납북 이후에도 『현대한국문학사』(1958), 『초창기의 문단측면사』(1959) 등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박영희의 문학활동은 현실과 이상, 예술의 심미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 사이의 연속되는 갈등의 과정이라 특징지울 수 있다. 초기 문학활동은 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환영의 황금탑」, 「월광으로 짠 병실」 등을 통해 암울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이상세계 혹은 꿈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1923년경부터 김기진의 영향을 받아 계급의식 혹은 현실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눈뜨면서, 꿈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두운 현실의 변혁을 모색한다.
이때부터 그는 시보다 소설과 비평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즉 「사냥개」, 「철야」 등의 소설을 통하여 계급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계급사회의 철폐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박영희의 소설은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 사상을 유행처럼 받아들인 것이어서 현실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념적이며 우화적인 색채가 짙다. 1926년 말 김기진이 이를 비판하자, 박영희는 문학이란 정치운동에 복무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반박하고 문학이 아닌 문학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이 논쟁 이후 리얼리티가 반드시 요구되는 소설 창작보다는 비평에 주력하면서 문학 자체보다 문학운동, 문학운동보다 정치운동에 주안점을 두는 평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통하여 정치의식 일변도의 문학론이 비판되자 전향을 선언하고 카프를 탈퇴하였으며, 이후 문학의 심미적 가치를 현실과 무관한 자리에서 탐색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결국 박영희의 문학활동은 이상과 현실, 예술의 심미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를 변증법적으로 관련시키지 못하고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박영희의 문학활동은 초기 한국 근대문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며, 또한 그가 행한 원론적 탐색은 한국 비평의 체계화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학력사항>
1916년 ~1920 배재고등보통학교
1920년 ~ 일본 도쿄 세이소쿠영어학교
<경력사항>
1921년 ~ 신청년, 장미촌, 백조 등의 동인지를 간행
1923년 ~ 파스큘라(PASKULA)를 결성
1924년 ~ 개벽의 문예부 책임자
1925년 ~ 카프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
1927년 ~ 신간회 간부
1939년 ~ 조선문인협회 간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문학사 강의
<작품목록>
감상의 폐허, 생, 생의 비애,
자연주의에서 신이상주의에 기우러지려는 조선문학,
체호프의 희곡에 나타난 노서아 환멸기의 고통,
특별히 극에 유명하다 할 현시의 아메리카문학,
남루한 봄, 결혼전일, 애의 만가, 악의 화를 심은 imagefont드레르론,
이중병자, 한담, 조선을 지내가는 베너스, 동정, 전투
공상적 고통과 현실화한 고통, 문학상으로 본 이광수, 창작비평과 평자,
정순이의 설움, 문단을 넘어선 문예, 문학상 공리적 가치여하,
2월 창작총평, 시의 문학적 가치, 재현의 희열과 반성의 비애,
환멸기에 있는 체홉의 일면, 산양개, 문예비평론, 진실을 잃어버린 합평,
고뇌문학의 필연성, 선후감, 문단의 투쟁적 가치, 피의 무대,
화염 속에 있는 서간철, 신경향파의 문학과 그 문단적 지위,
준비시대에 있는 ‘빠사로푸’의 부정적 정신, 사건, 동해안을 끼고서,
문예쇄담(瑣談)을 읽고, 속사포, 신흥문학의 내용, 신흥예술운동의 초기,
푸로문예의 초기, 숙명과 현실,
신흥예술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논하여 염상섭군의 무지를 박함,
실증미학의 기초, 문학의 초월의식과 현대적 의의, 반월성을 떠나면서,
향락화한 고통, 고통화한 현실, 번뇌자의 감상어, 지옥순례, 철야 등
[네이버 지식백과] 박영희 [朴英熙]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첫댓글 유령의 꽃이 피는 사랑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이 비 그치면
가을이 성큼 다가오겠지요.
오늘도 무한 건필 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