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 백화산 호국의 길 트레킹 #3
10:36 저승골 삼거리
저승골 안내문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홍지가 금돌성에서 일제히 성문을 열고 나와 앞과 뒤에서
협공당한 몽골군은 우왕좌왕하다 제4의 관인이 화살에 맞아죽고 군사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백화산 기슭 이 골짜기는 몽골군의 많이 죽었다 해서 그 후 <저승골>로 불려왔다.
구중서 소설 <항몽전쟁 - 참혹한 산하 2권>의 한 구절이다.
"몽고장수 차라대가 상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황령사의 승 홍지가 제4관인을 사살하고
사졸의 죽은 자도 반이 넘자 드디어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고려사에 기록된 저승골과 연관된 이야기는 이후 패퇴한 몽골군이 남하하며 사로잡힌 남녀가 무려 20만 6천 8백여 명이나 되었고
살육된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거쳐간 고을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어, 몽골의 난이 있는 이래로 이보다 심한 때가 없었다고 하였다.
<저승골>에서 패퇴한 보복으로 여겨지며 <저승문>, <저승골>에서 <저승폭포>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몽골군을 유인한 방향이고
초겨울 빙판을 이룬 <저승폭포> 부근에서 협공을 당해 아비규환을 이뤘으며 간신히 도망친 몽골군이 내를 건너자
건너편 <전투갱변>에서 매복하여 대첩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백화산 최고봉 한성봉은 원래 한성봉인데 몽골군 총사령관 차라대가 물러가며 '한을 남긴 성과 봉우리'에서 유래되고
"방성재"는 몽골군이 방성통곡하며 퇴각했다 하여 구전된 지명이다.
육군본부 간행 고려 전쟁사에도 대승첩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 역사의 현장은 대첩이후
고려가 몽골군에 항복하며 반역의 장소로 격하되어 혹은 순수 민간인들의 항쟁이었기에 세간의 이목에서 사라진 듯 하다.
백화산 등산로 안내도
붉은 글씨로 새겨 놓은 저승골 표시석
10:42 구수정
임천석대(林千石臺)
구수천의 침식에 의해 생성된 하식애로 이곳에는 불사이군의 지조를 지킨 고려의 악사 임천석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상주의 역사서 상산지에 따르면 고려의 영관(怜官) 임천석은 태종이 음률을 잘 아는 것을 알고 부르자 거절하고 다시 강압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명사를 남기고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임천석대 위에서 건너편인 저승골을 바라보며 임천석은 몽골군이 방성통곡하며 물러간 방성재의 역사를 되새기고
거문고를 켜며 망국의 한을 달랬을 것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임천석대 를 알리는 안내판
임천석은 북과 거문고를 잘 켜는 고려 영관으로 고려가 망하자 건너편 높은 절벽 위에다 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거문고를 켜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고려 악사이다.
태종이 음률을 잘 아는 것을 알고 부르자 거절하고 다시 강압을 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명시를 남기고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상주의 역사서 상산지에 전한다.)
왕조실록 정조 편에 김광우가 '우주 간에 길이 빛날 충절이니 비를 새겨 남기자' 상소하자 정조대왕이 윤허했지만 현재 비는 찾을 수 없다.
이곳으로 낙향하기 백오십여 년 전 파죽지세로 남하한 몽고의 강적을 만나 적의 과반을 사살하여 대첩을 이룬
건너편 백화산 저승골, 저승폭포, 저승문을 바라보며 또 몽고군이 방성통곡하며 물러간 방성재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임천석대 위에서 북과 거문고로 망국의 한을 달랬을 것이다.
성해응의 '44명의 신라, 고려인 행적을 담은 신라유민전에도
"임천석대 아래 떨어져 죽으나 수풀 사이로 새들이 슬피 울고 산하가 참담하였다."고 임천석을 기린다.
조선후기의 학자 경현재 강세진의 임천석대의 노래
백화산 한성봉 정상 가는 길
10:48 조선후기 유학자 장원 황원선의 진불암 옛터 한시
주임천석 / 임천석대에서 항신술 올리고
사쟝정계수 / 석양에 암자 찾았다.
인무진불견 / 사람없고 암자 보이지 않으니
백일고은음 / 한낮에도 아직껏 느늘음 하네
장원 황원선, 정조 22년 고종 10년
자 : 진부. 호 : 장원 본관 : 장수
저승골 0.1km. 위 저승골 입구 갈림길로 연결된다.
지나온 곳 수봉리 2.6km, 진행할 반야사 옛터 1.2km로 표시되어 있다.
반야사 옛터 1.2km 방향으로 진행한다.
구수천 오탄(보장골~전투갱변) 안내도
명소 : 임천석대
10:54 돌다리를 건너간다.
구수천 육탄(전투갱변~저승골) 안내도
몽고군을 협공으로 몰아 승병들이 전투갱변에서 매복하여, 저승골에서 몽고군을 저승을 보냈다는 구수천 육탄
11:02 돌다리를 다시 건넌다.
11:11 반야사 옛터(도경계석)
반야사 옛터는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의 도 경계이자 군 경계이다.
호국의 성지 상주 땅을 뒤로 하고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로 들어선다.
11:20 반야사 호랑이 너덜길로 진입한다.
11:28 반야사 호랑이 너덜 안내도
반야사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반야사 호랑이 형상
11:39 반야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7.12km, 3시간 10분이 소요된 상주 백화산 호국의 길 트레킹을 마치고
이어서 두번째 트레킹 일정인 반야사를 기점으로 영동 월류봉 둘레길 트레킹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