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에 입학할 예정이던 야구선수 구본원군의 자살은 한국 스포츠계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아직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여자친구에게 보낸 전자우편 내용 등을 보면 합숙훈련 도중 선수들에게 정신적·물리적 폭력과 위협이 흔하게 가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구군도 매를 맞은 흔적은 없지만 폭력에 대한 공포감이 컸던 것 같다.
중·고교나 대학 운동부에서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감독·코치 등 지도자들과 선배들의 폭행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에 졌다고 경기장 뒤켠에서 얼차려를 시키기도 한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 운동부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운동실력 만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아도 학과 점수는 나온다. 대학을 졸업해도 머리는 텅 빈 선수들을 양산하는 것이다. 프로구단 등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다수 선수들은 갈 곳도 없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선후배 선수들 사이에 일상적인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995년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데는 당시 신임 핸드볼협회장의 새로운 협회 운영방식 탓이 컸다. 그의 첫 조처는 선수들에 대한 폭행·폭언 금지령이었다.
승패에 집착하는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가 아니다. 과학적인 훈련은 외면한 채 구타와 욕설로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당치않은 생각이다. 대한체육회와 산하 연맹들이 수준높은 선수 육성과 체계적인 지도자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됐다. 폭력·비리 신고창구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 하다. 촉망받던 어린 선수의 죽음을, 본래의 스포츠 정신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제 막 정착단계에 접어든 대중스포츠가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