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들은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데… 모든 작품들은 이번 전시회만을 위해 일시적으로만 제작되고 보존되어지지 않는다는데….”
지금 개념 미술의 선두주자 솔 르윗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휘트니 미술관의 갤러리를 돌다 보면 여기저기서 관람객들의 불평과 의심 섞인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미술관을 자주 찾는 어떤 사람들은 안내인에게 이 말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미학보다는 수학에 그 근거를 둔 듯한 거대한 벽 드로잉과 건축을 위한 모델을 만든 것과 같은 입체 구조물들은 새롭다고 느끼기에 앞서, 솔 르윗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미술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조차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후 미국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의 하나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솔 르윗의 40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차근차근 짚어보다 보면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된 독특한 미학과 현대미술에 끼친 작가의 업적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본다. 휘트니에 의해 신중하게 선발된 30명의 어시스턴트가 한달 동안 꼬박 매달려 완성한 이번 회고전에서는 솔 르윗의 트레이드마크인 벽 드로잉과 입체 구조물을 포함, 총 150여 개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의 1층에 위치한 로비 갤러리는 솔 르윗이 휘트니 미술관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화려한 색채의 벽 드로잉이 네 벽을 빼곡하게 파노라마처럼 메우고 있고, 갤러리 중앙에는 거대한 입체 구조물들이 놓여 있어 전시를 관람하는 그 출발부터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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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평면성, 벽 드로잉 선사시대로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벽에 직접 드로잉을 한다’는 솔 르윗의 아이디어는 그가 현대미술에 끼친 커다란 성과중의 하나이다. 단조로운 표면 이미지와 평면적으로 표현되는 형태는 이후 900여 개의 작품으로 발전된 솔 르윗의 벽 드로잉의 기본적 요소가 된다. 벽 드로잉의 제작 과정은 작가에 의해 글로 쓰여진 지시서에 근거하여 단순한 도형과 선의 효과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지며, 이미 다른 곳에서 발표되어 알려진 작품이라 하더라도 전시를 위해 일시적으로 다시 창조할 수 있게 허락되어진다. 장소와 크기에 따라 철저하게 한정되어 나타나는 그의 드로잉은 거대한 미술관의 벽면이든 콜랙터들의 개인적인 공간에서든 작품의 제작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작가의 감정이 철저히 배제되기 위해 훈련된 어시스턴트 그룹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 독특한 작품제작과정은 건축, 음악과 함께 유비되어 해석된다. 즉, 솔 르윗에게 있어 작품은 건축가나 작곡가의 그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건축가나 작곡가가 설계도를 그리거나 오선지에 곡을 써서 작품을 완성하여 발표하는 것처럼, 그에 있어서 미술작품의 완성은 글씨와 간단한 그림으로 그려져 훈련된 어시스턴트에게로 남겨지는 작업지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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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르윗이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드로잉을 발전시킨 이유는 극히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드로잉의 기본이 평면이어야 한다고 믿는 그는 최고의 평면성을 얻기 위해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벽에 직접 그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종이가 가지는 얇은 두께마저도 진정한 평면 드로잉을 방해한다는 이론인 것이다. 그의 최초의 벽 드로잉은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이루어졌다. 그래픽 연필로 제작된 작품은 수직과 수평, 두 개의 교차된 사선으로 이루어진 4개의 방향에서 반복되게 포개어진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적인 벽 드로잉 작품 「Five Pointed Star with Bands of Color」에서는 15cm 크기의 눈금이 그어진 4개의 검은 색 벽을 서로 붙여 흰색의 선들이 눈금 위의 포인트를 연결하며 그어지게 하고 있다. 첫 번째 검은 벽은 24의 선들이 중앙에서부터, 두 번째는 12개의 선들이 각각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세 번째 벽은, 12개의 선이 구석에서, 네 번째는 24개의 선은 중앙에서 12개는 가장자리에서 12개는 구석에서 그어진다. 이렇게 검은 바탕에 중앙과 네 모서리에 반짝이는 5개의 점, 기하학적으로 그어진 하얀색의 선들이 분명하게 방향을 지시하듯 보여지는 이 작품은 그의 날카로운 이성과 차가운 논리성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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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그의 벽 드로잉은 분필과 크레용을 새로운 재료의 저장고에 첨가하고 직선 뿐 아니라 동그라미 곡선 등을 이용하여 더욱 복잡해졌으며 색조의 범위를 강조하기 위해 겹겹이 층이 만들어진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프레스코 벽화에 애착을 가진 그는 80년 초 원색과 회색의 절묘한 조화를 벽 드로잉을 통해 소개한다. 마치 프레스코의 현대적인 표현으로 보여지는 이 시대의 작업들은 색조의 뛰어난 범위를 창조하기 위해 원색과 회색이 겹쳐 칠해지고 평면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도형들은 입체의 착시를 일으키며 벽에서 바깥을 향해 돌출 된 느낌으로 보여진다. 그 후 계속된 그의 색채에 대한 관심은 아크릴을 사용한 최근의 작품에서 더욱 생생하고 풍부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작년에 완성된 작품 「Loopy Doopy(red and purple)」에서는 물결치는 빨간색과 보라색의 넓고 유동적인 형태의 붓자국으로 소용돌이치는 아크릴 페인트의 풍부한 색감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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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의 교량, 입체 구조물 1960년대, 벽 드로잉과 더불어 솔 르윗은 육면체의 표면을 벗겨 내고 뼈대만 남은 듯한 구조물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극히 미니멀리즘적인 이러한 계열의 작품은 속이 비어있는 육면체의 뼈대를 기본단위로 하여 구성된 건축적 성향이 강한 구조물이다. ‘열린 육면체’로 불리는 이 구조물의 기본적인 구성 단위는 이후 30년 간 지속적으로 그의 입체작품에서 보여진다. 이 작품 시리즈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서 그 구조물은 흰색으로 칠해지는데 이는 흰색이 갤러리와 같은 전시공간과 어울릴 뿐 만 아니라 색이 감성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작은 가능성마저도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로서 그의 ‘이성’에 충실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작은 육면체의 단위로 구성된 작품들은 동시에 개념미술의 시초라고 불릴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솔 르윗은 미술사에 있어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Serial Project’를 예로 들면 가로세로 각각4미터가 넘는 사각형 바닥을 36면으로 균일하게 등분하여 육면체나, 사각형의 구조물로 만들어질 수 있는 36가지의 변형체를 만들어 예술작품이 논리적인 시스템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후 작품인 「미완의 열려진 육면체」 에서는 작품의 구성단위인 ‘육면구조’를 122가지의 변형체로 만들어 입체 구조물로서 뿐만 아니라 사진과 드로잉을 동시에 전시하여 그의 공간에 대한 접근방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전시가 끝나고 나면 작업 지시서만을 남긴 채 없어지는 드로잉작품처럼 육면구조 하나 하나의 기본 단위로 해체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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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이고 비계획적인 형태로의 선회 그러나 최근에 보여지는 그의 구조물은 이러한 논리적인 작품경향이 다소 느슨해져 자유로운 동시에 복잡한 크리스탈 모양이나 유기적인 모양의 작품으로 대치되고 있다. 크리스탈 모양의 작품은 그의 직관에 의존한, 그래서 이전의 작품에 비해 비계획적인, 날카롭긴 하지만 그 완성된 형태를 상상할 수 없는 작품의 시작을 보여준다. 모눈종이에 무작위로 설정한 점들을 연결하여 설계된 이러한 작품들은 전문가에 의해 완성되어질 때까지 작가자신도 어떠한 형태의 모양을 결과할지 모르게 된다. 솔 르윗의 작품은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인 제스쳐와 개인적인 감성에 의존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발전된 ‘개념미술운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60년대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트랜드가 된 개념미술은 작가의 이성적 사고에 중점을 두고, 작품의 가치는 작가가 제작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인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아이디어가 그 작품을 제작하는데 기여하였는가에 의해 정해진다. 솔 르윗은 이러한 개념미술의 기본이념을 미니멀적인 조형언어로 시각화하여 독창적인 형태의 작업으로 확대했던 것이다. 벽 드로잉과 입체 구조물을 통해 끊임없이 표현되어 온 그의 작업들은 지극히 기본적인 형태나 선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겹쳐지고 포개어지며 단순한 방향 지시에 근거하는 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방법을 이끌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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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미희(뉴욕통신원) 사진제공/뉴욕 휘트니 미술관
사진설명 |
1. 「Serial project#1(ABCD)」 Steel, baked enamel on aluminum 24×144×144in 1966 |
2. 「Wall Drawing #289」 1976 |
3. 「Seven-pointed star, from Wall Drawing #808」Color ink wash on white wall 1996 |
4. 「Untitled Cube(6)」painted metal 15¼×15¼×15¼in 1968 |
5. 「Run Ⅰ-Ⅳ」 oil on canvas and painted wood 63.5×63.5×3.5in 1962 |
6. 「Drawing for Wall Drawing #444(Asymmetrical pyramid with color ink washes superimposed)」종이에 수채와 연필 9×11¾in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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