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달과 함께 걷는 월류봉 둘레길 트레킹 #1
2025.2.2(일) 맑음
<트레킹 코스 및 구간별 소요시간 : 10.6km, 약 4시간 10분 소요>
반야사 주차장/11:43/11:59-반야사 다리/12:22-관음상/12:42-반야교/12:52-징검다리/13:09-우매리/13:23-백화교/13:41-
데크계단 갈림길/13:58-원정교/14:34-원촌교/15:23-한천정사/15:35-월류봉 광장/15:38-월류봉 광장 주차장/15:45
월류봉 둘레길은 월류봉과 백화산 사이 석천/초강천(草江川)은 맑고 깨끗한 ‘산명수청(山明水淸)’의 경관에 만든 둘레길로
산과 계곡의 자연미가 잘 어울려 힐링하며 걷는 길로 월류봉 광장에서 초강천(草江川)따라 반야사까지 이르는 총 8.4km 세 개 코스로 조성되었다.
<1코스는 월류봉 광장~원촌교~완정교를 잇는 여울 소리길 2.7㎞>
월류봉 광장에서 조방되는 월류봉 다섯 봉우리가 이루는 산세와 절벽 끝에 있는 정자 월류정, 그 아래 유유히 흐르는 초강천을 보며 시작하여
원촌교, 석천돌길, 완정교로 이어지는 월류봉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길로 월류봉 둘레길의 대표 코스이다.
대부분 완만한 숲길이지만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데크길 구간도 있다.
<2코스는 완정교~목교~우매리까지 백화산 자락을 걷는 산새 소리길 3.2㎞>
농촌마을 풍경과 물 흐르는 소리를 감상하며 걷는 길로 완정리부터 시작해 백화마을, 우매리를 지나며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이 코스엔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가득하며 또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3코스는 우매리~반야교~반야사까지 걷는‘풍경 소리길 2.5㎞>
우매리에서 시작해 징검다리를 건너 피드치드가 방출된다는 편백나무 숲을 도는 구간으로 반야교를 지나
편백나무 숲과 전망대, 백화산 호국의 길 기·종점인 영험한 호랑이 형상으로도 유명한 신라시대 고찰인 반야사에 이르는 코스이다.
오늘의 월류봉 둘레길 트레킹 코스는 반야사 주차장~문수전~반야사~풍경소리길(반야사~황간면 우매리 256 번지에 있는 루나마켓)~
산새소리길(우매리 루나마켓~목교~완정교)~여울소리길(완정교~원촌교~월류봉 광장)~월류봉 광장으로 이동하는 코스이다.
11:43 반야사 주차장
반야사 주차장 입구의 황간 개인택시 연락처
황간 개인택시는 3대만 있다고 한다.
반야사 부도 1,2기
조계종 제5교구본사 법주사의 말사인 반야사(般若寺)는 백화산(白華山)에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가 태극 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꽃모양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그 연꽃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지만 성덕왕 19년(720년) 의상대사의 십대 제자 중 하나인
상원(相源)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사찰로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세조 10년(1464년)에 크게 중창하였다.
반야사는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다.
반야(般若)는 불교에서 진리를 깨닫기 위한 근원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그 지혜는 인간의 판단 능력인 지혜(分別智)와 다르다.
그 지혜는 집착에서 벗어난 텅빈 충만의 상태에서 존재를 바라보며 얻는 지혜(無分別智)다.
반야사(般若寺)라는 寺名은 조선 세조대왕이 문수동자를 만나 병이 낫고 감격해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를 어필로 하사한 데서 비롯됐다.
세조가 신미대사의 주청으로 반야사를 중건하고 회향법회에 참석했을 때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망경대(望景臺) 아래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했다.
“왕의 불심(佛心)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사라졌다.
문수보살은 복덕과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목욕을 마친 후 세조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아 어필을 하사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산 상원사 계곡을 찾은 세조와 등을 밀어주고 사라진 문수보살 이야기가 이곳에도 전해진다.
반야사 종무소인 중화당
용이 반겨주는 감로수
반야사에는 숨겨진 보물이 있다. 바로 백화산 자락에 숨겨진 '문수전'이다.
문수전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대웅전 뒤쪽으로 난 돌계단길을 통해서 가는 방법이고, 두 번째 길은 석천계곡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갈 수 있다.
산길을 따라 만들어진 돌계단을 한걸음씩 오른다.
돌계단을 오르고 나서 백두대간의 줄기인 백화산을 조망한다.
11:59 반야사 대웅전 뒷편 깎아지른 절벽 망경대(문수바위)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전각 반야사의 보물 문수전이 자리하고 있다.
문수동자가 출현한 곳이라고 한다.
문수전이 위치한 곳은 망경대라고 하는 곳으로 이곳에는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의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7대 임금인 세조는 피부병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미대사의 말을 듣고 반야사로 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세조 앞에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망경대 아래 영천에서 목욕을 하라고 했다.
세조는 문수보살이 시키는 대로 영천에서 목욕을 했고 신기하게도 피부병이 다 나았다고 한다.
돌계단에서 바라본 반야사 겨울 풍경
실상원(實相院)
반야사 지장전
대웅전
대웅전 안에는 높이 1m의 석가여래좌상과 좌우에 각 72㎝의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또, 대웅전 안에는 탱화 6폭이 봉안되어 있는데, 1890년 청주 보국사(輔國寺)에서 제작한 후불탱화(後佛幀畫)와 신중탱화(神衆幀畫),
1753년(영조 29) 지례(知禮) 봉곡사(鳳谷寺)에서 조성한 지장탱화(地藏幀畫)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반야사 산신각
반야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
보물 제1371호로 지정된 전체 높이 335cm의 고려시대 반야사 3층석탑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 보물 1371호
석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셨다고 여겨진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유행했던 단층 기단형 삼층 석탑 양식을 따랐다.
신라 문성왕 8년(845)에 반야사가 지어지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반야사 북쪽 석천 계곡 안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지대석 위에 1층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탑 몸돌을 올렸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이슬로,
소반반.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과 복발(覆鉢/뒤집힐 복, 바리때 발, 노반 위에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이 있다.
2층 탑신은 1층에 비해 눈에 띄게 낮으며, 1층의 지붕돌 받침은 5단인데 2층과 3층은 4단으로 되어있다.
이 석탑의 일부는 새로운 부재로 보충되었지만, 백제와 신라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만든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극락전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
배롱나무 보호수 / 수령 약 500년
하늘에 별빛이 붓잘할
때 달에 어린
님 그리노라
반야사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두 그루의 배롱나무
2003년 국가보물로 지정된 보물 제1371호는 3층석탑을 배경으로 서 있는 배롱나무(백일홍)는
조선을 건국할 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꽃아 둔 것이 조깨져서 쌍 배롱나무가 생겨났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높이가 8m에 이르는 수령 500년 이상의 이 나무는 영동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여름의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나무’
<정성욱 시인의 시 ‘반야사 배롱나무’의 전문>
늙었어도 나무가지에 꽃 일만 개쯤 매달 힘은 아직은 있어.
누가 날 보고 늙었다고 하지 젊은 것들은 날보고 늙었다고
뒤담화를 몰래 수근 대지만 한 오백년 살면서도 바람 한번 피우지 않고
꽃피고 질 때를 알지, 한번 꽃피면 백일 동안은 거뜬하게 버티지.
젊은 것들은 꼭 사랑하다가 지치면 배롱나무 아래 찾아와서
세상 떠나가도록 울지만 그래도 나는 외면하지 않아.
더러는 부드러운 입술 같은 푸른 잎을 드리우고 포근하게 위로해 주기도 하지.
눈가에 눈물 대롱대롱 달고 가는 젊은 것들을 보드라운 바람으로 달래주기도 하지,
세상 늙지 않는 건 없어 나처럼 곱게 늙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살다 보면 알아. 이제부터 날 늙은이 취급하지마
반야사 범종각
석천을 따라 문수전으로 가는 길 →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