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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말 탄 자의 환상
슥 1:7-17
7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8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9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슥 1:7-17 / [첫째 환상] ㄴ) 다리오왕 2년 11월 곧 스밧월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베레갸의 아들이며 잇도의 손자인 예언자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ㄴ. BC 519년 2월 15일) 8) 그 밤에 내가 환상으로 적갈색 말을 탄 사람을 보았다. 그는 깊은 계곡의 어린 소귀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고, 그의 뒤로는 적갈색 말들을 탄 기마대와 붉은 말들을 탄 기마대와 흰말들을 탄 기마대가 보였다. 9) 내가 곁에 서 있는 천사에게 물었다. `내 주여, 이들이 무슨 기마대들입니까?' 내게 환상을 통역하며 설명해 주던 그 천사가 대답하였다. `이들이 무슨 기마대들인가를 내가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10) 그러자 어린 소귀나무들 사이에 서 있던 사람이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이들은 온 세상을 순시하도록 여호와께서 파견하신 기마대들이다.' 11) 이때에 그 기마대들이 어린 소귀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여호와의 천사에게 보고하였다. `저희가 온 세상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곳이나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습니다!' 12) 이 말을 듣고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와께 아뢰었다. `온 세상의 주님,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 분노를 쏟으신 지가 이미 70년이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주께서 다시 그곳에 긍휼을 베푸시겠습니까?' 13) 이때에 주께서 통역해 주는 천사에게 위로하는 어조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14) 그러자 그 통역하는 천사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렇게 선포하시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예루살렘을 생각만 해도 속이 탄다. 시온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탄다. 15) 이제 나는 잘난 척하는 저 이방민족들에게 나의 무서운 분노를 쏟아 붓겠다. 나는 그들에게 내 백성을 조금만 타이르도록 시켰으나, 그들은 내 민족을 완전히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16)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넘치는 긍휼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나의 성전이 다시 건축되고, 예루살렘 도성을 다시 건설하는 측량줄들이 띄워질 것이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17) 그대는 또 이렇게 선포하시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내 백성의 모든 성읍에 다시 온갖 물질이 풍부해질 것이다. 주께서 다시 시온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여 복을 내려 주시고, 그곳에 사실 것이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총 여덟 개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본문은 그 중 말탄 자의 환상입니다.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7-12) 약 3개월이 지난 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합니다. 이번에는 밤에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탔는데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습니다. 화석류나무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과 그 근동에 널리 퍼져 있어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화석류나무와 그 뒤에 서 있는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셔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다가오시고 찾아오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라든가(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11)라고 말합니다. 이는 많은 경우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 자신이거나 성자 하나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왕이 오기 전에 사자를 먼저 보내는 관습을 고려하면 이는 결국 하나님이 임하실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분은 붉은 말을 타셨고 그 뒤에 또 다른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서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들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들은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살피고 온 자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살피고 왔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온 땅을 두루 살피시는 분입니다. 이 땅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13-17)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를 의지하고 우상 숭배하는 모습에 크게 질투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거룩한 분노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 나라를 들어 이스라엘을 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조금 노하셔서 이방 나라를 들어 이스라엘을 조금만 손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방 나라들은 이 때를 기회 삼아 힘을 다해 고난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시자 이스라엘의 변화가 예측됩니다. 17절을 보면 세 가지가 나옵니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되는 예루살렘의 번영과 회복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적용: 하나님이 온 땅을 두루 살피십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의 형편과 사정도 알고 계십니다. 모른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앤 그루델'은 어린 시절 구순구개열 장애로 인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앤이 다니던 학교에서 속삭임 검사라는 것을 시행했습니다. 검사는 학생이 한쪽 귀를 막은 채, 선생님이 작게 말하는 소리를 따라 말하게 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집중력을 살피는 검사였습니다. 선생님은 '하늘이 파랗다', '바람이 시원하다' 등의 간단한 문장을 말했고 학생 대부분은 정확하게 큰 소리로 따라서 말했습니다. 앤의 차례가 오자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에게 하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앤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앤은 이후 자기의 장애로 마음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결국 나중에는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 설 교 >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슥 1:7-17 / 장 빈 목사
먼저 스가랴서 1장 1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 1:1 / (읽기) /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언서의 첫 단어 자리에 이방 나라 왕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예언서의 초두에 이방 나라 다리오 왕의 통치 이년이라 적다니요, 어인 일인가요? 그랬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전만 하더라도 선지자들이 자기 나라의 통치 연한으로 활동 연대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만, 망국 백성이 된 지금, 스가랴는 그들을 지배하는 식민 종주국의 통치 연한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해서 선지자 스가랴는 이 서글픈 현실을 파타하기 위해 제일 먼저 이렇게 외쳤습니다. 직접 들어봅니다. / 1:2-3 / (읽기) / 선지자의 안타까운 호소, 한 마디로 어서 돌아오라는 겁니다.
스가랴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가 한 분 더 있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학개입니다. 학개와 스가랴, 스가랴와 학개는 늘 함께 기억되는 이름인데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환상의 영적 콤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스가랴서의 바로 앞 책인 학개서 1장 1절을 보시면, 역시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초하루에 학개가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가랴는 다리오 왕 이년 팔월, 학개는 이년 유월, 그러니까 학개가 스가랴 보다 두 달 먼저 예언 활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학개 선지자의 활동은 4개월 만에 끝이 난 반면, 스가랴 선지자의 활동은 2년 이상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가? 선지자 학개가 시작한 일을 선지자 스가랴가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해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운 콤비인데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 하나는, 내가 시작한 일이라고 해서 꼭 내 손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집착은 버리라는 겁니다. 그럼요, 나는 나에게 맡겨 주신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런데 더러는 내가 시작했으니 반드시 내 손으로 끝내야 한다는 집착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나를 통해 시작하신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서 완성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으로 와 보실까요? 스가랴서 1장 7절인데요, 거기 보니,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이십사일에 선지자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하였다고 하는군요. 1장 1절의 기록과 비교할 때 3개월의 차이가 있는데요, 그랬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첫 예언의 말씀을 선포한 후 3개월 만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가랴에게 환상을 통해 말씀을 주셨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여덟 가지의 환상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요, 선지자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여덟 가지 환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매우 중요한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정리하고 갑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여덟 가지 환상을 본 주체가 선지자 스가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환상을 보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1장 8절을 보실까요? 거기 <내가>라는 단어에 동그라미, 별표 다섯 개, 환상은 누가 본다? 내가 본다! 그렇습니다. 환상은 내가 보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서 내 대신 환상을 봐 줄 수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 하나님 보여주시는 환상을 내가 꼭 보리라 다짐하시고 꼭 보게 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더, 거기 8절에, 내가 환상을 언제 보았다? <밤에!> 이 말씀을 뒤집어 볼까요? 밤에는 무엇을 보라? 환상을 보라! 여러분, 요즘 밤이면 밤마다 무엇을 보십니까? 내 인생의 밤이라 생각되는 날들 동안 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오, 우리가 캄캄한 밤에 보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환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 사시면서, 엉뚱한 것만 쳐다보지 마시고, 하나님 보여 주시는 환상을 많이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여 날마다 보여 주시는 놀라운 환상 속에서, 꿈을 이루며, 마침내 승리하는 한 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선지자 스가랴가 여덟 가지의 환상을 보긴 했지만, 각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무슨 뜻인가? 분명 내가 보긴 보는데, 도무지 보여주시는 환상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때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얼른 주님께 여쭙는 일입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그렇게 했습니다. 1장 9절을 보실까요? 선지자 스가랴가 말합니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주님, 제가 보긴 보았는데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여 주신 이것들이 다 무엇입니까? 주님!> 그렇습니다. 환상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환상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입니다. 본 다음엔 그 뜻을 잘 헤아려야 하는 건데요, 이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실컷 좋은 환상을 보고서도 해석을 잘못 해서 이단이 되거나 사탄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환상을 보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거든, 엉뚱하게 해석해서 엉뚱한 결론으로 가지 마시고, 먼저 주님께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선지자 스가랴가 환상을 보여주실 때 마다, 그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께 여쭙자, 즉시 천사를 통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여쭙기만 하면, 우리 주님, 천사를 통해 그 의미를 다 설명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1장 9절 맨 마지막 대목을 보면, 주의 천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네게 보이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십니다. 이미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환상을 붙들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 사시면서, 늘 하나님의 천사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응답 속에서 일마다 형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상 속에서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상을 보는 주체는 분명 나 자신이지만, 내가 환상을 보는 것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환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지요. 정말입니다. 그 누구라서 하나님 대신 환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환상을 잘 보고, 잘 이해하여, 그 환상을 따라 순종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환상을 보여주십사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하지 않아 평생을 살아도 하나님 보여 주시는 환상 한 자락 보지 못하는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금년 한 해, 하나님 보여 주시는 환상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선지자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첫 번째 환상은 무엇이었나? 일단 본문을 먼저 읽을 텐데요, 이 장면을 영상에 담는다고 생각하시고, 감독의 입장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기 바랍니다. / 1:8 / (읽기) / 가장 먼저 홍마를 탄 어떤 분이 등장하는군요. 배경은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가 많은 어느 골짜기이고요, 그런데 그 뒤로 또 홍마, 자마, 백마가 또 보이는데요, 이어지는 환상을 미리 당겨 읽으면, 홍마와 자마와 백마를 탄 또 다른 분들이 등장하는 거죠.
문제는 환상적인 환상이 내 눈에 보이긴 하는데, 그 환상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해서 선지자 스가랴, 바로 주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주여, 이들이 다 무엇입니까?> 그러자 우리 주님, 천사를 통해 말씀해 주시는데요, 일단 직접 들어봅니다. / 1:10 / (읽기) / 먼저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선 자가 대답합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다. 아하, 홍마, 자마, 백마를 탄 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천사들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이번엔 홍마와 자마와 백마를 탄 사람들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선 그 분에게 이렇게 고합니다. / 1:11 / (읽기) / 저들이 보고하는 말,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더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평온했다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러자 그 보고를 듣고 있던 홍마를 탄 가장 크신 그 분이,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 여호와 하나님께 탄원하기 시작합니다. 직접 들어봅니다. / 1:12 / (읽기) / 지금 홍마를 타신 그 분이 무어라 하십니까? <아버지,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돌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이 벌을 받아 망한 지 70년이 지났건만, 세상은 그런대로 평안하고 정온하다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은데요, 아버지, 정녕 이대로 저들을 잊으시려는 겁니까?> 지극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드릴 수 없는 탄원 기도이지요.
그러자 다음 순간, 어김없이 하늘 아버지께서 즉시 대답해 주십니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홍마를 탄 그 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들어봅니다. / 1:13 / (읽기) / 거기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에 표시하시고요, 역시 별표 다섯 개, 여러분, 말씀이 중요합니다. 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70년 동안이나 죽은 듯 지내던 저들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내는 영적 힘이 바로 말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 하신 것이요, 결코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 사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으로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내 인생이 캄캄한 밤인 듯해도, 선한 말씀과 위로의 말씀 속에서, 새 길을 찾으시고, 새 복을 찾으시고, 하여 환상 속에서 마침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새벽 마다 나누는 인사죠? 다시 굳센 믿음으로 신년 덕담 한번 나누십니다.
<금년에도 말씀 안에서 승리하실 줄 믿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동광 가족들께 한 말씀드리고 갑니다. 우리는 환상 중에, 하나님 주시는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을 받은 성도들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도 선한 말만 해야 하고, 위로하는 말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혹여 입을 열어 말을 하려는데, 그것이 선한 말이 아니거든, 얼른 입을 닫고 그 말을 하는 대신 주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이 말이 당신이게 오히려 상처를 주는 말이거든, 얼른 입을 닫으시고 말하는 대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부모님들께 고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이 시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것,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그전 아이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녀 세대를 향하여 아무 말이나 막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요, 우리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향하여 하는 말, 모두 선한 말이요, 위로의 말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으로 양육하실 때, 우리 자녀들, 그 말씀 안에서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소망 담아 신년 덕담 나누기!
<주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군요. 화석류 나무는 무엇이고, 홍마를 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점인데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화석류 나무란, 당시 초막을 지을 때 많이 사용되던 매우 흔한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흔한 나무가 골짜기에 널려 있으니 더 흔한 존재가 된 것이지요. 해서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나무, 어딜 가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 해서 누구도 소중하다고 여겨주지 않는 그런 나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고 감사한 것은, 홍마를 타신 그 분이, 백향목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에 오신 것이 아니라 그 흔한 화석류 나무가 우거진 골짜기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홍마를 타고 오신 분은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천군 천사와 함께 오실 그리스도, 그러나 헤롯 왕궁이 아니라 말구유에 통해 오실 그리스도, 세상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는 화석류 나무 같은 인생들을 친히 찾아오시는 메시야, 바로 그 분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서 복음이요, 해서 희망의 메시지였던 것인데요, 더욱 감사한 것은, 홍마를 타고 오시는 그 분을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거늘, 그 분이 그냥 오시지 않고 놀라운 복을 가지고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 지금까지 환상적인 환상을 보여 주셨던 것인데요, 오늘 말씀의 핵심 구절, 함께 읽으며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 1:16-17 / (읽기) / 여러분, 올 한 해, 이 말씀 꼭 붙드시고, 이 말씀 가운데 약속된 복을 다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소망하며, 이 말씀 가운데 세 가지만 기억하며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셔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16절에서 스가랴는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심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오기 전 모두 노예들이었습니다. 저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어갔습니다. 굶주리며, 매 맞으며, 평생 종으로 살며, 죽도록 일만하다 모두 불쌍하게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망국 백성들인 저들에게 스스로 해방할 힘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해서, 저들은 오직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어떤 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다시 돌아오게 해 주셨으니, 이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 노예로 잡혀 간 이스라엘처럼 지금 절망적인 환경 속에 신음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여러분, 그래도 절대 낙심은 하지 마십시오. 절망은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십시오. 그 때 긍휼을 베푸시어 이스라엘을 노예 생활에서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도 긍휼을 베푸시어 자유와 해방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둘째, 유다 백성이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신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저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영적 목적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랬습니다. 정치적 해방 이후 영적 목적을 더해 주신 것입니다. 그 영적인 목적이 바로 내 집을 건축하라는 것이니, 이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온갖 어려움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늘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는 일꾼들입니다. 일꾼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일꾼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적 일을 하는 일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5년 한 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여기 아버지의 집을 더욱 중수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돌아온 유다 민족에게 하나님은 넘치도록 복을 더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17절인데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하십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다시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어 종의 멍에를 벗겨주실 뿐만 아니라 여기 돌아오게 하시어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게 해 주십니다. 이 때 그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 넘치는 풍성한 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잘 믿고 잘 순종하는 성도들이 있어 하나님의 성읍들에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 거지요.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 동광 교회가 있어, 우리 서울의 강남에 넘치도록 풍성한 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를 믿는 성도들이 있어, 우리가 사는 이 땅 전체가 풍성한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모두 아버지의 집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버지의 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여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에 차고 넘치는 풍성한 복이 생수의 강이 되어 이 땅을 전체를 적시며,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풍성한 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스가랴 1:7~2:13
정병진 목사
스가랴는 아주 젊은 시절에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 그가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지 3달만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날 하룻밤 사이에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슥1:7~6:8).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열방을 심판하셨으니, 예루살렘에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이라는 환상들이었다. 그중에서 첫번째와 두번째와 세번째 환상은 이 우주만물의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며, 이 세상제국의 흥망성쇠가 누구의 손에 달려있는지, 그리고 한 나라와 성읍의 흥망성쇠도 주님의 손에 달려있으며, 육신으로 이뤄진 민족은 실패할 것이나 영적으로 이뤄진 민족은 성공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럼 그때 스가랴는 무엇을 본 것인가? 그것과 요한계시록은 또 어떤 관련이 있는가?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절반은 환상의 책(1~6장)이고 절반은 예언의 책(7~14장)이라 할 수 있다. 환상은 주로 새 성전의 건축에 대한 환상에 관한 것들이며, 예언은 주로 메시야의 신분과 생애와 재림 예언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스가랴서의 전반부에는 새 성전건축에 대한 환상들이 무려 8가지나 등장하는데, 오늘 이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서 앞의 3가지 환상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스가랴서에 나오는 앞의 3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역사를 어떻게 주관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성전을 떠나갔던 여호와께서 돌아오게 되면 이스라엘 공동체와 이스라엘 지역이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징과 계시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스가랴서는 어떤 구조와 내용이 들어있는 예언서인가?
스가랴서는 총 14장으로 구성된 예언의 책으로서, 소선지서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분량을 갖고 있는 책이다. 스가랴서는 스가랴서 젊었을 때에 받고 보았던 예언(1~8장)과 그가 늙어서 받은 예언(9~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그가 총각시절에 보았던 것들은 B.C.520년에 보았던 8가지 환상(1~6장)과 B.C.518년에 들었던 여호와의 음성(7~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바사의 다리오왕 2년 열한째 달(스발월) 24일 밤에 무려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1:7~6:8). 그 환상들은 장차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세워지고 장차 예루살렘 성읍에 사람들이 가득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환상들이다. 이제 8가지 환상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환상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붉은 말을 탄 자의 환상(1:7~17)이다. 그리고 둘째는, 네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 환상(1:18~21)이며, 셋째는, 측량줄을 잡은 사람의 환상(2:1~13)이다. 그리고 넷째는 여호와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를 참소하는 사탄의 환상(3:1~10)이며, 다섯째는,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환상(4:1~14)에 대한 환상이다. 그리고 여섯째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5:1~4)이고, 일곱째는, 에바 안에 앉아 있는 여인의 환상(5:5~11)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덟째 환상은 두 구리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의 환상(6:1~8)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덟 가지 환상은 사실 여호와께서 스가랴 선지자의 영안을 열어 보게 하신 환상으로서, 그가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던 다리오왕 제2년 8월로부터 약 3개월 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인 다리오왕 제2년 11월 24일은 무려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던 제2성전재건사업이 다시 시작된 다리오왕 제2년 6월 24일(학:15)로부터 정확히 5개월이 지난 때였다.
3. 스가랴가 본 첫번째 환상은 무엇인가?
스가랴가 본 첫번째 환상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붉은 말 탄 사람"에 대한 환상(슥1:7~17)이다. 우리는 이 첫번째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어떤 행정을 펼치시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떠나버린 성읍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성읍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함께 알 수 있다.
스가랴가 보았던 첫번째 환상은 "붉은 말 탄 자"의 환상이다. 한 명의 붉은 말을 탄 자가 골짜기에 있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여기서 화석류나무라 함은 '은매화'나무로서, 하얀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 비슷한 나무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붉은 말들과 자줏빛 말들과 흰 말들이 쭉 서 있었다(물론 그 등에는 천사들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스가랴서는 자기와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보게된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리라"고 하였다. 그때 붉은 말을 탄 자가 말하기를 "이들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했다(슥1:10). 그렇다. 이들은 이 땅을 순찰하는 순찰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세상으로 내려가서 이 세상을 순찰한 다음에 그 내용을 하나님께 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곳은 몰라도 예루살렘은 성전 건축으로 인하여 북적거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은 아무 잠잠하고 조용하더라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붉은 말을 탄 사람(이는 "여호와의 사자"다)이 하나님께 호소하기 시작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당신은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당신이 이를 노하신 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슥1:12)."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스가랴에게 말하던 천사에게 대답해주셨다. "너는 외치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시온을 위하여 열심을 많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평온한 여러 이방나라들 때문에 주님이 심히 진노할 것인데, 이는 여호와께서는 조금 노하였지만,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거 돌아왔기에 이제는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집이 건축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읍 위에도 먹출이 쳐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읍들도 넘치도록 풍부해질 것인데 이는 여호와께서 다시 시온과 에루살렘을 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슥1:14~17).
이 환상은 당시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언 천사들(순찰자들)이 땅에 두루 돌아다녀온 것을 대장 천사(붉은 말을 탄 천사)에게 보고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세상에 당신의 종들인 천사를 보내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감찰하시고 그리고 보고를 받는다. 그런데 뭔가를 더 잘 알고 있는 여호와의 천사가 하나님께서 질문을 던진다. 언제 예루살렘과 유다성읍들을 회복시켜 줄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기에 곧 여호와의 집(성전)이 건축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읍이 건축되고, 유다의 여러 성읍들도 건축될 것이라고 했다(슥1:16~17). 이것은 성전공사가 무려 16년동안(B.C.536~520) 중단되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 첫번째 붉은 말 탄 자의 환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 온 우주와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알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은 천사들을 온 세상을 감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시온에 매우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이다. 넷째, 떠나셨던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되면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부가적으로 모르는 환상이나 계시 등은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하늘에 있는 말들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천사들의 이동수단이라는 것이다.
4. 스가랴가 본 두번째 환상은 무엇인가?
스가랴가 본 두번째 환상은 "네 뿔과 네 대장장이"에 대한 환상이다(슥1:18~21). 하나님께서는 첫번째 환상에 이어 두번째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때에 스가랴의 눈에는 "네 개의 뿔"이 보였고 이윽고 "네 명의 대장장이들"이 보였다. 그래서 스가랴는 그에게 말하던 천사에게 네 뿔이 무엇이며, 왜 대장장이들와 왔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스가랴에서 말하던 천사는 "네 뿔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버린 뿔"이라고 하였으며, "네 명의 대장장이들"은 유다를 땅에 흩어버린 여러나라들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온 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니가 "네 뿔"들은 "네 나라"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4"는 사방에 있는 대제국들을 가리키고, "뿔"들은 원래 권세와 힘을 상징하므로, "네 뿔들"은 네 나라의 권세와 힘을 가리킨다. 이 뿔들이 결국 유다를 흩어버려서 유다사람들이 머리를 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에 져서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포로로 잡아간 대제국들(앗수르, 바벨론 등)의 뿔들을 대장장이를 보내어 그들을 두렵게하고 그들을 다 흩어버릴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슥1:21).
이것을 무엇을 말해주는가? 비록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여 대제국에게 포로로 끌려가겠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어떤 기능공들을 보내어 네 뿔을 쓸어버린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대제국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괴롭힌 그들을 다시 없애버릴 자들을 세워 그들을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그들의 대장은 열뿔을 가진 짐승과 같은 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승리는 일시적일 뿐 계속 가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스가랴가 본 세번째 환상은 무엇인가?
이어서 스가랴서 눈을 들어 "측량줄을 자기의 손에 잡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슥2:1~13). 이 사람은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러자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가 떠나갔고, 이어 한 다른 천사가 나타나, 스가랴에서 말하던 천사에게 외쳤다.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스가랴)에게 말하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성 가운데에 영광이 되리라(슥1:4~5)" 이것은 무슨 뜻인가? 예루살렘이 장차 융성하게 발전한 큰 성읍이 되므로, 예루살렘은 그만 성벽이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이 되어주시어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성 가운데에 임재하시겠다고 했다. 이는 지금은 예루살렘 안에 성전도 존재하지 않고, 성읍의 틀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예루살렘도 규모가 매우 커질 것이며, 광할한 성읍으로 변모할 것임을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B.C.520년이후 지금까지 예루살렘 도시가 단 한 번도 이 예언처럼 되어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환상의 의미를 이 환상후에 주어진 다른 천사의 음성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어서 어떤 천사(?)가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하지 않고 살고 있는 바벨론성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한다. "화로다. 화로다. 너희는 북방땅에서 도망할지어다.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도망할지어다.(슥2:6~7)" "여호와께서 나를 노략한 여러나라로 보냈는데, 너희를 범하는 것은 그분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다. 내가 손을 들어 움직이면, 그들의 종들에게 오히려 노략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슥2:8~9)". 그리고 이제는 어떤 천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기를 "이제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왜냐하면 내가 와서 네 가운데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많은 이방나라들이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의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실 것이다"고 외쳤다.
그렇다면, 천사들의 이러한 외침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첫째로, 유대인들은 빨리 바벨론성에서 도망치라는 것이다(슥2:6~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곧 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B.C.519년과 514년에 바벨론은 바사에 의해 침공을 받아 완전히 멸망당하고 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번째로, 성전에 돌아오셨던 하나님께서는 다시 떠났다가 또 와서 예루살렘 가운데 머물 것이라는 예언이다(슥2:10~13). 이것은 결국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오실 것인데 그때에는 이방나라들도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세번째 환상후 주신 첫번째의 말씀 곧 "예루살렘의 번영"에 대한 약속과 두번째의 말씀 곧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고 그때 이방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뜻은 결국 예루살렘은 물질적인 예루살렘으로 예언이 성취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예루살렘 곧 영적으로 하나님을 모신 교회 가운데서 성취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 에루살렘은 남유다의 멸망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평안한 성읍이 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크게 확장되어 성곽을 치지 못할 정도의 도시가 된 일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말씀은 성도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전 세계가 교회가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것을 가리키며, 그때에는 이방나라들이 하나님께 속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합류할 것임을 말해준다.
6. 나오며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렇다. 그분은 당신의 종들은 천사들을 통하여 온 세상과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천사들은 지금 이 시간도 자신이 감찰한 것들을 하나님께 보고하느라고 바쁘다. 그렇다면 그들은 현재 어떤 소식을 주님께 보고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루살렘에 좋은 일이 있을 것임을 흰 꽃이 만발한 화석류(은매화)나무 사이에 선 순찰자들의 환상을 통해 알려주셨다. 이것이 스가랴가 본 첫번째 환상이다. 그리고 이 세상제국의 흥망성쇠도 주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 스가랴가 본 두번째 환상의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스가랴는 예루살렘이 곧 측량되어 성이 건축될 것인데, 그 성이 얼마나 확장되어 융성할른지 예루살렘이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성의 불성곽이 되어 지켜주실 것이고, 그 가운데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바벨론에 남아있는 포로민들은 빨리 바벨론에서 도망쳐나오라고 하였다. 그 성이 파괴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환상에 대한 예언은 육적인 예루살렘에서 성취되지 못했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으니,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뒤 성령을 보내주실 때에는 이방인들까지 다 구원받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은 1차적으로는 교회(하나님의 성령의 전)를 통해 성취되었고, 완전한 것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취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신자가 누릴 두 종류의 평안
스가랴 1:7-21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1:16)
이스라엘은 성전재건이 주변 방해로 중단되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지 의심하며 나태해졌다. 학개 선지자의 독려로 공사는 재개되었다. 스가랴가 회개하라는 첫 메시지를 전한지 석 달 째 하나님은 8개의 환상을 통해 종말적 구원을 생생한 그림언어로 약속 보증하신다.
첫째 환상은 말을 탄 자들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있었다. 땅에 두루 다녀서 실상을 여호와께 보고하는 자들인데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11절)라고 보고했다. 특별한 고난과 문제없이 평강하게 지낸다는 뜻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공사 중단 이후 안일한 생활에 젖은 영적나태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여러 나라들은 안일하게”(15절) 형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뜻을 대변하고 환상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천사가 “언제까지 유다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 하시려 하나이까”(12절)라고 되물었다. 왜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한지 즉. 그들 열방에 대해 심판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들만 힘든 일을 겪는지 따진 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그에 대해 하나님의 대답이 흥미롭다. 당신께서 “조금 노하였으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했기”(15절) 때문에 진노하셨다고 한다. 열방이 유다의 죄악을 징벌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으나 자기들 탐욕을 채우려고 도에 지나치게 당신 백성을 학대 수탈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나라들과 유다의 죄악상을 비교해 우열을 매길 수는 없다. 인간역사의 눈에 안 보이는 배경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를 알아야 한다. 당신 백성들을 죄에서 회개시키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을 당신의 도구로 삼아 침공을 허락한다. 그들을 강제로 동원하거나 당신의 계획을 미리 통보 준비시킨 것이 아니다. 그들 자의로 계획을 세워 신나게 자행한 죄악이다. 각 개인이나 나라는 자기들 죄악만으로 심판받을 뿐이다. 당신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분의 구원과 심판의 원칙은 선지자의 첫 메시지에서 명백히 밝힌 그대로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그분도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전재건을 시작한 유다에게 당신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성읍들이 다시 풍성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둘째 환상은 첫째 환상을 보완 설명해주는 뜻이다. 네 개의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를 보여주었다. 네 뿔은 유다를 괴롭힌 민족들이고 네 장인은 그들을 심판할 또 다른 나라들 즉, 하나님의 도구이다. 하나님이 절대로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는 일에서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재확인하신 것이다. 인류 역사가 나라들의 흥망성쇠의 연속 같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이처럼 그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따를 뿐이다. 오직 당신의 백성들을 성전에서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해서 당신과 거룩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게 하는 한 가지 목적만으로 역사를 이끄신다. 결국 신자에게 평안은 둘이 있다는 뜻이다. 죄를 범하고 있으나 영적나태에 빠져 회개치 않는데도 아무 일이 없는 평안과, 순전한 회개를 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평안이다. 전자는 폭풍전야의 고요로 최악의 징벌이 언제든 순식간에 닥친다. 후자는 주님의 약속이 재확인되고 신자 인생에 실현되는 주님의 의와 은총을 누림으로써 기쁨과 자유가 따른다. 지금 무사안일한가? 그럼 과연 이 두 평안 중에 어느 쪽인가?
석류 나무 사이에 선 말 탄 자
스가랴 1:7-17 / 김철한 목사
요한계시록처럼 스가랴서는 환상에 관한 책이다. 해석하기 어려운 것 같으나 놀라운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스가랴에 나오는 10개의 환상 중에 첫 번째 환상이 화석류 사이에 보이는 4종류의 말 탄 이들이다. 이 환상을 본 때는 다리오 왕 제 이년 11째달이었다. 그러니까 스가랴가 이 환상을 보기 석달 전인 8째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니 이 때는 학개 선지자가 성전 재건을 격려한 그 때보다 두어 달 늦은 시기였다. (학1:1) 그러므로 스가랴가 말씀과 환상을 받은 다리오 왕 제 이년 8째달과 11째달은 주전 520년이었다. 즉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때가 기원전 536년이라면15년이 지난 후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성전 건축은 멈추어졌는데 성전이 지어진다한들 과연 그 성전의 역할이 과거와 같이 회복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다 회의에 빠져 있었고 다리오 왕 이후 식민지 삶을 사는 저들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바벨론 포로도 끔찍한 고난의 시간이었는데 지금 바벨론을 대신한 페르시아의 지배 밑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욕조차 갖기 어려웠다.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후 그 다음 해 성전 지대를 놓았던 (주전 535년) 뜨거운 열정이 사마리아 인의 반대 운동으로 한 순간에 식어버리고 좌절의 밤을 맞아 세월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스가랴를 일으켜 성전을 다시 건축하도록 격려하였다. ‘여호와께서 기억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주심으로써 길을 잃어버린 백성들에게 새로운 사명 에너지, 봉사 에너지, 희생 에너지를 공급하셨다.
오늘 다리오 왕 11째달 24일에 본 첫 번째 환상은 말 탄 사람과 화석류 환상이다. 그런데 본문의 환상 기록을 자꾸 읽어보면 슥1:8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슥1: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슥1:11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라고 적고 있다. 스가랴가 이 환상을 보고, 묻고 천사가 대답을 하는데 주인공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자다. 그러나 화석류 나무에 선 자를 먼저 해석하기보다 화석류 나무에 대해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4종류의 말을 탄 환상의 배경이 화석류 나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화석류 나무를 보여주셨을까?
화석류 나무는 우리나라에 없는 나무다. 초록빛 타원형 잎과 흰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 관목으로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변에서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다른 식물들과 함께 초막절 때 초막을 지었고 상처를 입을수록 좋은 향기를 내는 나무다. 키가 작은 관목이기에 멋지게 뻗어 올라가는 귀족 나무가 아니었다. 이 화석류 나무가 골짜기 가운데 있는 것은 몇 가지 뜻이 있다.
① 이스라엘은 무명의 나라다.
골짜기는 사람의 왕래가 없어서 눈에 띄지를 않는다. 70인역에 보면 골짜기를 그늘친 곳이라 했으니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아무리 영화로운 나라라고 소리를 지른다 해도 이름없는 무명의 나라라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주목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② 이스라엘은 볼품없는 나라다.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키작은 관목, 화석류 나무의 모습이다. 큰 대륙이나 군대의 힘이 강한 나라가 아니고 작은 나라, 제국에 비교할 수 없는 나라다.
③ 이스라엘은 사명의 나라다.
볼품도 없고 무명의 나라라도 골짜기 그늘에 있어도 자신의 꽃을 피운다. 철이 되면 흰색 꽃, 분홍색 꽃을 피운다. 누가 보기 때문에, 누가 보고 멋있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자리, 골짜기의 후미진 곳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의 사명을 다한다. 때를 따라 어김없이 꽃을 피울 줄 아는 화석류 나무는 어려움 속에서도 사명을 다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고난은 실로 컸다. 성전을 불타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백성들, 성이 무너지는데도 막아볼 힘이 없었던 포로 시절의 고난은 너무 컸다. 그러나 화석류는 상처가 있을수록 좋은 향기를 내듯 고난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골짜기 사명을 붙들고 산다. 고난 받는 종이 되므로서 신음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짊어진다. 고난이 깊을수록 사명의 향기를 더 짙게 내는 이스라엘은 화석류 나무인 것이다.
골짜기에 서 있는 화석류 나무. 페르시아 제국의 힘에 눌려 숨을 죽이며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다. 그러나 생명력을 잃지 않고 그 속에서 더 분명히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 백성의 묵시이다. 이제 우리는 깨닫게 된다.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는 붉은 말을 타고 계신 분, 그리고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홍마를 타고 계신 분은 슥1:11에서 “여호와의 천사”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사자, Angel of Lord, 그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대장 천사다. 어떤 면에서 뒤에 있는 붉은 말, 자줏빛 말, 백마 탄 자들의 보고를 받고 있다. 슥1:10~11을 보면 분명히 보고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 붉은 말을 타고 선 자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다. 온 세상의 돌아가는 형편을 슥1:11에서 다른 말 탄 자들에게 보고 받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 통치를 돕는 천사다. 그래서 이 여호와의 천사를 대장 천사라고도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자 하나님이라고도 말한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권세는 요5:22, 30을 보면 아들 예수에게 위임되어 있다. 이 말 탄 자가 대장 천사이든, 성자 예수님의 그림자이든 이 환상의 의미는 세상 역사를 다스리고 주장하시는 이가 화석류 나무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다. 즉 가장 보잘 것 없는 무명의 이스라엘 뒤편에 대장 천사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되신 분이 서 계신다는 것이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1. 하나님 백성들의 처지를 아신다는 것이다.
제국의 지배 하에 살다가 또 새로운 제국의 지배 하에서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들의 눈물, 선민이면서도 성전마저도 짓지 못하고 흩어지고 무너진 정신 세계를 가지고 사는 하나님 백성들의 고단함, 그런데 그 곁에 서 계시니 그 백성들의 처지를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어렵고 힘들 때마다 ‘아무도 몰라,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해’ 그러고는 좌절하고 삶까지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이 환상에서 주는 메시지는 그러면 안된다는 메시지다. 아무도 나를 몰라주는 것이 아니다. 내 뒤에 하나님의 대장 천사가 서 계신다. 나의 호흡, 나의 감정, 나의 애통함을 다 듣고 가까운 곁에서 들어주고 계시니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이다. 이 땅을 살면서 사람이 나를 알아주어도 남편이 나를 알아주어도 위로가 되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의 사정을 알아준다면 어찌 힘이 나고 용기가 솟아나지 않겠는가?
2. 하나님 백성을 신속히 돕겠다는 것이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이 복음 성가의 내용처럼 나의 처지와 형편을 아시는 주님은 위로자로 눈물을 닦아주는 일만 하고 서 계신 것이 아니다. 나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시고 도와주시려고 서 계신 것이다. 주님이 내 곁에 서서 도우시면 못할 것이 없다. 나는 약하고 무명이고 패배자여도 주님의 오른손으로 도우시면 그때부터 나는 강한 자가 되고 유명한 자가 되고 승리자가 된다.
3. 하나님 백성을 주인공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들은 역사의 패권 다툼에서 밀린 자들이다. 강대국에 밟힌 자들이다. 누구와 다툴만한 기력조차도 없다. 허나 화석류 나무 사이에 하나님의 사자가 서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 백성들이 큰 일을 행하는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천사는 아람 군대를 몰아낸다. 앗수르 군대를 몰아낸다. 하나님 사자는 전쟁도 이기게 하시지만 심판의 권세도 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네 천사를 보면 땅의 사방의 바람, 즉 전쟁의 바람을 붙잡고 그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한다. 이들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가 있는 천사들이고 또 다른 천사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천사인데 인을 다 칠 때까지 모든 것을 해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다양한 천사의 대장, 여호와의 천사가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다는 것은 아무도 하나님 백성을 도전하지 못하며 아무도 하나님 백성을 괴롭힐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 중심이 이젠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변방이고 지금은 식민지의 지배를 받는 약소 국가이고 지금은 성전 건축도 강대국의 금지 명령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는 무력한 백성이지만 이젠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페르시아였지만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이에서 일하시므로 하나님 백성들이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정말 이 환상은 변방 나라가 중심 나라가 되고 중심 나라 제국이 변방 나라가 된다는 메시지이다.이것을 보았기에 이 놀라운 하나님의 묵시를 전했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어섰다. 무엇이든지 서울이 중심인데 누가 수원, 대전을 중심을 보겠는가? 그런데 여호와의 천사가 무명이요, 변방이요, 아무 것도 아닌 우리 사이에 서 계신다면 서울은 변방이 된다. 거룩한 나라, 거룩한 사명, 거룩한 백성이 되는 중심은 수원이 될 수 있다. 부산이 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생각을 주는 것이 오늘 환상의 의미이다.
스가랴는 오늘 본문에서 이 환상을 이해했다.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 그 붉은 말 탄자의 의미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붉은 말, 자줏빛 말, 백마의 정체는 알지 못해서 ‘이들이 무엇이니이까’라 묻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는다. 스가랴는 그것이 세상에 임한 심판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열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여호와는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예루살렘을 택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역사의 변장에서 주인공으로 바뀌어지는 것이 눈 앞에 왔기에 하나님의 집이 예루살렘에 건축되고 먹줄이 쳐지리라. 패배자로 살면 안된다.
홍마탄 사람과 네 뿔
스가랴 1:7~21 / 피영민 목사
서 론
스가랴서는 14장으로 소선지서 12권 중에서 가장 긴 책입니다. 조금만 더 길었으면 대선지서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스가랴서는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과 마찬가지로 환상이 많은 묵시록의 일종으로 내용이 어렵습니다. 스가랴서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소선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합해도 스가랴서 한 권에 나오는 것이 더 많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학개 선지자보다 두 달 늦은 B.C. 520년 8월부터 예언을 시작했습니다. 스가랴 1장에는 스가랴의 가족 소개가 들어가 있고 8개의 환상 중 2개의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리오 왕 2년 11월 24일에 두 개의 환상이 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리오 왕 2년은 B.C. 520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달력은 우리와 약 넉 달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날을 1월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11월은 양력으로 그 이듬해 2월경인 것입니다.
Ⅰ. 스가랴의 가족들
스가랴 1장은 스가랴의 가족들을 소개하는데 1절과 7절에 두 번이나 가족의 이름이 나옵니다.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슥 1:1). 스가랴의 아버지는 베레갸이고 할아버지는 잇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 (슥 1:7). 7절에도 동일하게 스가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가족들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서 전체의 메시지와 가족들의 이름의 의미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이름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베레갸는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다’라는 뜻이고 할아버지 잇도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이라는 뜻입니다. 세 사람의 이름을 다 섞어서 말을 할 테니까 무슨 뜻인지 해석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스가랴이시고 잇도가 되면 베레갸 하실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모든 어려움을 다 기억하고 계시고 정한 때가 되면 자기 백성들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스가랴서 전체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스가랴서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예언은 ‘사랑하는 성도들아, 내가 너희의 고난과 어려움을 다 기억하고 있다.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축복하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는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Ⅱ. 스가랴 선지자가 본 첫 번째 환상: 홍마탄 사람
스가랴 선지자는 1장에서 두 개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먼저 본 환상은 스가랴 1장 7~17절에 기록되어 있는 홍마탄 사람에 관한 환상입니다. 스가랴는 이것을 밤에 보았다고 하였는데 홍마는 붉은색의 말을 뜻합니다. 붉은색 말을 탄 사람이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던 홍마탄 사람에 관해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홍마탄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스가랴 1장 11절에 보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스가랴 1장 12절에도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라는 표현은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적인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붉은색 말을 타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붉은색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4절에 붉은색 말이 나와서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사망과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가랴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타신 홍마의 의미는 자기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피 흘리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뒤에 있던 홍마와 자마와 백마는 무엇을 가리키느냐? 이것을 스가랴 선지자가 자신을 인도하던 천사에게 물어봅니다. 그러자 그 천사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분이 대답해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슥 1:10).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보내신 존재들 바로 천사들인 것입니다. 영계에는 하나님도 계시고 천사, 마귀, 악령들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이 세상에 파송하셔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하십니다.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헤롯 왕이 왕복을 입고 백성 앞에서 연설을 하는데 왕복이 햇빛에 비쳐서 빛이 나자 사람들이 헤롯 왕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헤롯 왕이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어야 하는데 자신이 진짜 하나님인 것처럼 계속 연설을 하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충이 먹어 죽게 한 것입니다. 또한, 천사는 우리 성도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보호해주는 일도 합니다. 우리가 위험할 때 즉각적으로 천사를 보내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죽을만한 교통사고에서도 살아나신 경험 있습니까? 재수 좋아서 살아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죽지 않도록 생명을 보호해 주셨다고 믿으셔야 합니다. 남선교회 회장님이신 김선학 장로님의 따님이 어렸을 때 아파트 7층에서 바닥으로 그냥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도 안 다쳤다고 합니다. 지금은 시집가서 애 셋이나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은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혼이 육신에서 떠나면 육신은 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몰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을 천사가 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이방 나라들을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살펴본 것을 스가랴 1장 11절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슥 1:11). 천사들이 화석류나무에 선 예수님께 보고하는데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도 자신들은 평안히 지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이방 나라들은 평안하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은 참된 평안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슥 1:14~15). 안일한 열국을 향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고생하는데 불신자들이 잘 먹고 잘 살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십니다. 질투하셔서 교회를 괴롭히는 불신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신 곳은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입니다. 화석류나무는 영어로 ‘myrtle trees’인데 주로 골짜기에 서식하는 식물입니다. 나무라고 되어있지만 사실은 조그만 관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에 기거할 초막을 지을 때 이 화석류나무 가지를 가져다 지었습니다. 화석류나무는 잎사귀가 검푸른 색입니다. 이 잎사귀를 비벼서 으깨면 달콤한 향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 화석류 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고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교만하고 화려하고 높은데 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레바논의 백향목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수수하고 겸손한 낮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화석류나무 같은 존재들입니다. 성도들은 보면 수수하고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골짜기에 거하고 있습니다. 골짜기 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짓밟혀도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낮은데 거하면서 환란을 당하여도 예수님의 향기를 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골짜기에서 환란을 당하고 있는데 오히려 핍박한 이방 나라들은 평안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슥 1:12).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을 위해 중보기도 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중보기도라는 단어는 예수님께 쓰이는 단어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는 중보기도가 아니라 도고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의 백성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당신의 백성을 핍박한 이방 나라는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70년 동안 이런 고통을 겪었으니 이제는 위로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중보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하고 계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지금도 중보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중보기도를 하시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이방 나라들에게는 내가 심판을 내리겠다. 그리고 내 백성들은 위로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내 백성이 예루살렘이 돌아왔은즉 이제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될 것이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성하게 될 것이다. 내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할 것이다.” 이런 위로의 말씀과 축복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고 무슨 말씀을 하실까 걱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스룹바벨 성전을 B.C. 516년에 완공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지금도 축복하고 계시며 원수들이 번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Ⅲ. 스가랴가 본 두 번째 환상: 네 뿔과 네 공장
스가랴 1장 18절에서 스가랴 선지자가 네 개의 뿔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슥 1:18). 이 뿔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라고 했습니다. 헤쳤다는 것은 흩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개의 뿔은 정치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네 개의 정치적인 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온 세계로 헤쳐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다니엘 2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큰 신상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을 해석하기 위해 바벨론의 무당, 점쟁이들을 다 불러 모으지만 아무도 맞추지 못합니다. 그때 다니엘이 하나님의 계시로 그 꿈의 내용과 해석을 알아맞힌 것입니다. 머리는 금으로, 가슴과 팔은 은으로, 배와 넓적다리는 놋으로, 다리와 발은 철로 된 큰 신상이 꿈에 나왔는데 다니엘이 해석하기를 금 머리는 바벨론 왕을 말하고 은으로 된 두 팔은 메대와 바사 연합국을 말하고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그리스를 말하고 철로 된 다리와 발은 로마제국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영광은 점점 약해지고 강도는 점점 강해지는 것이 역사의 발전 과정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다니엘 7장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교회를 해롭게 하는 정치세력이라고 증거합니다.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 중 첫째 짐승은 독수리 날개를 달고 있는 사자입니다. 이 짐승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뜻합니다. 둘째 짐승은 몸이 기울어진 곰인데 몸이 기울어졌다는 것은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연합국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강한 나라는 바사이고 약한 나라는 메데인데 이 두 나라가 연합국을 이루었다는 뜻인 것입니다. 셋째 짐승은 머리가 네 개이고 날개가 네 개인 표범입니다. 이것은 32살에 전 세계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를 의미합니다. 넷째 짐승은 이빨이 철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뿔이 10개나 달린 이 짐승은 로마를 상징합니다. 다니엘 2장, 7장 그리고 스가랴 1장은 동일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요엘 1장 4절에도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욜 1:4).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을 이방 4대 강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뿔을 보이시더니 이어서 네 공장을 보이십니다. 공장은 목수 혹은 대장간에서 일하는 대장장이를 가리킵니다. 네 뿔과 대칭을 이루어서 네 공장이 나오는데 각 공장이 망치로 뿔을 뽑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뿔들을 멸망시킬 공장들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결국 어마어마하던 바벨론 왕국은 망해버립니다. 지금 바벨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메대와 바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지금은 힘이 없고 무력한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경제적으로 나라가 어려워져서 연금을 줄인다고 하자 노인들이 데모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자기들 연금 줄인다고 데모하는 것입니다. 강대국이었던 로마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마라는 도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온 세계를 지배하던 어마어마한 왕국들이 다 망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짜기에 거하던 화석류나무와 같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태산을 이루어서 전 세계에서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속에서는 항상 핍박받고 멸시당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봐도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거하신다고 나와 있고 스가랴 1장에서도 화석류나무 사이에 거하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예배 가운데도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천사들이 우리가 하는 것을 다 보고 예수님께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살아야 되지만 천사들 앞에서도 살아야 됩니다.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다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하나님, 저 사람은 지금 병에 걸려 아파하고 있으니 고쳐주십시오. 저 사람 마음이 상해있으니 고쳐주십시오. 저 사람 사업이 어려운 가운데 있으니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중보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낮은데 거하여 환란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의 향기를 내며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화석류나무와 같은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악인들이 평안하게 지내며 우리를 조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장을 보내 그 뿔을 뽑아버리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오늘도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다 기억하고 있으니 때가 되면 내가 너희에게 축복을 내려줄 것이다.” 때가 되면 우리를 축복하실 하나님을 믿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향기를 내는 화석류나무 같은 존재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이
슥 1:7-11 / 권오선 목사 예안교회
꽃은 자라는 환경에 따라 온실화와 야생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온실화는 사람이 적당하게 온도를 맞추어 주어야 자랍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향기가 적고 약해서 조금만 추워도 죽기 때문에 사람이 늘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야생화는 자연상태에서 비바람을 맞고 눈비를 맞으며 자랍니다. 강한 추위에도 잘 견디면서 자랍니다. 야생화는 온실화에 비해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강하고 향기가 많습니다.
교회에도 야생화와 같은 성도가 있고, 온실화와 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야생화와 같은 교인들은 어떤 시험과 환란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을 잘함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온실화와 같은 성도들은 조그마한 시험과 고난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고 방황합니다. 향기가 아니라 때때로 악취를 풍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야생화와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생화와 비슷한 화석류나무를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저자인 스가랴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바벨론에서 태어나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기원전 538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스가랴는 이때 귀환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함께 귀환했습니다. 돌아온 이들은 2년 후인 536년에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기초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15년간이나 공사가 중단되면서 백성들은 낙심과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이때 나서서 성전재건을 독촉했던 사람이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낙심하다가 포기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루터가 집에 와보니 자기 아내가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놀라서 “아니 누가 죽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죽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이 어떻게 죽을 수 있으냐”며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나도 하나님은 안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그렇게 낙심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루터가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스가랴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죽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8가지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그 첫 번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화석류나무 환상입니다. 낙심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화석류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담대하고 소망 가운데 살라는 말씀입니다.
화석류나무는 지중해 연안에서 많이 서식하고 있는 나무로 키는 3m 정도 자라는 관목입니다. 본문에 보면, 화석류나무 사이에 붉은 말을 탄 사람이 있고, 그 뒤에 또 다른 말을 탄자들이 있습니다. 스가랴가 “이들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하나님께서 땅에 보내신 자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화석류나무 환상을 통해서 무기력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석류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도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화석류나무는 어떤 특성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까?
첫째로, 화석류나무는 상처를 받으면 더욱 향기가 납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초막절이 되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40년의 광야생활을 기념합니다. 느헤미야 8장에 보면, 초막을 지을 수 있는 나무는 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 화석류나무와 종려나무, 그리고 무성한 나무, 이렇게 다섯 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화석류나무는 값이 아주 비싸기 때문에 초막의 재료로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비싼 이유는 나무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화석류나무는 향기로 인해 향수의 원료나 차로 많이 이용됩니다. 유대인 처녀들은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신발 속에 화석류나무 잎을 넣어간다고 합니다. 향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석류나무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 두 가지 특징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는, 화석류나무는 상처가 나면 향기가 더 강하게 납니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성도들도 교회와 사회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쉽게 던진 말 한마디로 상처를 받습니다. 봉사하다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소외된다고 느낄 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떤 냄새를 풍깁니까? 받은 상처 때문에 분노하고 비난하고 욕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은 악취를 풍기는 행위입니다. 향기나는 화석류나무와는 다른 삶의 모습입니다.
네덜란드의 영성 신학자인 헨리 나우웬은 “그리스도인들은 상처 입은 치유자다. 그리스도인들의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기 위한 상처라”고 했습니다. 내가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은 신앙생활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이 상처를 받아 괴로워할 때, 나의 경험으로 그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상처를 경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받은 상처를 치유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받은 상처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더욱 향기를 발하는 화석류나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교회는 향기가 아니라 심한 악취를 풍겼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과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다음으로, 화석류나무는 밤에 향기가 아주 진하게 납니다. 사람들은 환란이 닥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밤 같다고 합니다. 말라기에서부터 예수님 오실 때까지를 암흑기라고 합니다. 이 시대는 계속 밤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낮과 밤이 교차했습니다. 그런데 왜 암흑기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못하고 예배가 없어서 힘들고 괴로운 시대였기에 암흑기라고 합니다.
찬송가 311장은 “예수님은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실패와 환란으로 절망하고 낙심할 때가 인생의 밤입니다.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인생의 깊은 밤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악취를 풍기는 행위입니다. 밤에 더 진한 향기를 발하는 화석류나무와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밤이 왔을 때,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것이 화석류와 같은 성도들입니다.
성경에는 고난 중에서 화석류나무처럼 더욱 향기를 날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박국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감사한다고 찬양했습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소득이 없는 밤과 같은 상황인데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밤에 더욱 향기를 풍기는 화석류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다니엘서 3장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서 쇠를 녹이는 풀무불에 던저 죽인다는 위협을 받습니다. 그때 이들은 “우리를 불속에 던져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으셔서 불에 타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욥도 인생의 어두운 밤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찬양했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화석류나무는 상처가 날 때 향기가 더 많이 나고, 밤에 더 많은 향기를 냅니다. 여러분들에게 상처가 있습니까? 인생이 밤과 같이 힘들게 사십니까? 이럴 때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십시오. 이것이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여러분 모두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화석류나무는 생명력이 강합니다.
화석류나무는 죽었다가도 물에 꽂으면 살아난다고 합니다. 모든 동식물 중에 생명력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낙지를 먹을 때마다 신기한 마음이 듭니다. 낙지의 온 몸이 다 잘렸는데도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그러나 꿈틀거리지만 살아날 수는 없는데 비해, 화석류나무는 물에 꽂으면 다시 살아납니다. 생명력이 더 강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삽니다. 천국에서 영생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종교가 아닙니다.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닿는 곳마다 죽었던 나무와 생물이 살아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법궤 속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지팡이는 원래 죽은 것인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났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지만, 다시 살아나서 영생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 죽은 영혼도 예수만 믿으면 살아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화석류나무의 또 하나의 특징은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죽었다가도 살아나는 근성이 있고, 끈질김이 있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려면 끈질김과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하다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장벽에 막혀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화석류나무와 같은 성도들이 아닙니다. 일곱 번 넘어졌다가 여덟 번 일어서야 합니다. 끈질기고 간절한 신앙인들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들린 딸의 병을 고치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개 취급하고 있습니다. 심한 모멸감을 당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을 욕하고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면서 “맞습니다. 그러나 그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끈질김과 간절한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의 딸을 고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불의한 재판관이 나옵니다. 뇌물을 주면 유리하게 판결하고 빈손으로 오면 불리한 판결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가난한 여인이 매일 빈손으로 와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애원합니다. 물론 재판관은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이 여인이 매일 오니까 나중에는 귀찮아서 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끈질기게 매달리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런 분들이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에서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약하고 강팍해 집니다. 참을성도 없고 조급합니다. 조금만 힘들고 상처를 받으면 신앙생활을 포기합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은 넘어졌다가도 일어서고,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끈질기고 간절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과 함께 하십니다.
본문 10절을 읽겠습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자가 누구입니까? 8절에는 “사람”이라 하고, 9절에는 “주”라고 합니다. 11절에는 “천사”라고 합니다. 성경해석학자들은 이분이 모두 성육신하실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계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진정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축복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교회 다니시면서도 하나님의 축복, 성경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지금의 발달된 문화나 과학의 혜택을 많이 누리는 사람이 있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잘 하시는 분들이 주로 많은 혜택도 누립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원시인과 같아서 동시대에 살면서도 혜택을 별로 누리지 못합니다. 누구는 많은 혜택을 누리지만, 누구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믿음의 혜택,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화석류나무와 다른 삶을 사는 성도들은 믿음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계시는 예수님의 환상입니다. 이 환상은 예수님은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과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들이 축복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축복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축복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축복, 험한 세상길을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계시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예안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인 스가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의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영적 육적으로 힘들고 지쳐서 신앙생활의 회의에 빠진 시대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서 화석류나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스가랴 시대의 백성들처럼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힘들게 사시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없이 고독하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십시오. 상처와 아픔이 있고, 인생의 밤이 왔을 때 더욱 향기를 발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으로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이것이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도들 가운데 계시면서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화석류나무와 같은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
스가랴 1:7-17 / 이상웅 목사
오늘부터 스가랴서를 설교합니다. 구약성경에 선지서가 17권 있는데, 그 중에 5권은 대선지서라고 하고, 나머지는 소선지서라고 합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를 구분한 것은 글을 남긴 분량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12장을 남겼는데 대선지자이고, 호세아와 스가랴는 14장까지 있는데 소선지서입니다. 그래서 불공정사례라고 생각했는데 다니엘이 12장이지만 한 장의 길이가 길어서 내용은 다니엘이 더 많았습니다.
1절과 7절에는 스가랴를 소개할 때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으로 구약성경에만 동명이인이 20명 정도 등장합니다. 그만큼 흔하고, 신앙적인 이름입니다. 유대인들은 조상들중에서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아서 동명이인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을 함께 적어야 구분이 됩니다. 이 가족의 이름이 느헤미야서의 1차포로 귀환 제사장 명단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스가랴는 제사장이면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잇도’는 ‘정해진 시간’이라는 뜻이고, 아버지 ‘베레갸’는 ‘여호와께서 축복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연결해보면 ‘정한 시간이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이 약속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가 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스가랴는 학개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 동안 학개서를 말씀드렸기에 시대적인 배경을 다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학개는 4번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 때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지으려다 중단된 지 16년이 지난 BC 520년입니다.
BC 520년 6월 1일 – 너희 행위를 살피라 / 6월 24일 성전건축 재개
7월 21일 –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9월 24일 – 오늘부터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9월 24일 –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라
스가랴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은 같은 해 8월이었습니다. 그러니까 9월에 학개를 통해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말씀하신 것에는 스가랴가 전했던 말씀의 영향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스가랴에게 말씀하신 것은 11월 24일이었습니다. 학개의 마지막 말씀이후 두 달이 지났을 때입니다. 두 번째 11월에 주신 말씀은 모두 환상이었습니다. 8개의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구약의 요한계시록 같은 책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스가랴의 말씀을 31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스가랴서를 이해해야 요한계시록도 바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스가랴 1장을 통해 주신 말씀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내게로 돌아오라
스가랴에게 주신 처음 말씀의 핵심은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이 말씀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스가랴를 통해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신앙 때문에 바벨론의 삶을 정리하고 멀리 예루살렘에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몸은 돌아왔는데 마음은 아직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돌아가고 싶은데 너희가 내게 돌아와야 나도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5-6절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먼저 하나님이 스가랴를 통해 백성들에게 던진 질문은 3가지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죽고 없습니다’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입니다. 그 답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도 영원하지 않습니다’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입니다. 답은 ‘예,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에게 임하여 징계를 받아 포로가 되었습니다’입니다. 이 세 질문을 던지고 났더니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돌이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는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이 자리에 몸은 와 계신데 마음은 다른 곳에 계신 분은 없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치 않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세상적 상황은 우리를 자꾸 불안하고 두렵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믿기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2. 내가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첫 번째 스가랴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후 3개월후에 다시 스가랴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에는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스가랴는 이 환상을 보면서 대화를 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8절입니다.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이 구절을 읽다보면 우리는 화석류나무가 뭔가하는 의문이 들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골짜기에 흔하게 있는 나무입니다. 우리나라 사철나무 와 비슷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가지를 꺾어 심어도 잘 살아나고, 으깨면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한 생명력, 고난속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골짜기처럼 낮은데 거하면서 수수하고 겸손하고, 환란을 당하여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 화석류나무의 히브리어가 ‘하닷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했던 여인 에스더의 히브리식 이름이 ‘하닷사’였습니다. 환상으로 하닷사 나무를 보여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겠구나 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환상의 장면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붉은 말을 탄 사람이 있고, 그 뒤에는 3마리의 말이 있는 장면입니다.
스가랴를 환상속으로 안내했던 천사에게 ‘이것이 무엇입니까?’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을 누가 했습니까? 10절입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내가 너에게 특별한 것을 보여줄게’하고 TV를 틀었습니다. TV안의 광경을 보면서 ‘저게 무엇입니까?’ 질문을 했더니 TV속에 있던 사람이 대답을 해주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이 사람은 여호와의 천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붉은색 말, 자주빛 말, 백마도 하나님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도 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신 천사를 수종들도록 한 천사들입니다. 이들이 말로 표현된 것은 세상을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천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붉은 색은 주로 전쟁을, 자주빛은 주로 축복, 흰색은 주로 평화를 상징합니다. 다양한 색깔의 말이라는 것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천사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이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분에게 보고를 합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다’는 보고를 들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신 여호와의 천사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12절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이 장면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를 불쌍히 여기실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70년후에 다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충분히 징계를 받았으니 이제 이스라엘에게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하는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다는 보고를 듣고 이런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꾸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보면서 질투하여 주변 민족들에게 징계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들이 너무 힘을 내서 이스라엘에 고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0대만 때리라고 했는데, 그들이 100대를 때린 것입니다. 과하게 때린 놈들은 평안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직도 고통속에 있으니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하나님의 천사가 마음 아파하면서 하나님께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3개월 전에 내게로 돌아와라, 나도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셨으니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학개서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지만 스가랴에서는 내가 내 집을 건축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먹줄을 친다는 것은 건축할 때 수평을 맞추기 위해 줄에 먹을 칠해서 표시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전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도 사람들이 살만한 곳으로 변화되어지고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뿔들을 떨어뜨리리라
두 번째 환상이 첫 번째 환상과 연관이 있어서 18-21절의 내용까지 다루겠습니다. 두 번째 환상은 4개의 뿔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뿔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라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보통 성경에 4라는 숫자는 동서남북 4방, 즉 온 세상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뿔은 권력을 상징합니다. 4개의 뿔은 당시 세상의 정치적인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서는 느브갓네살이 본 큰 신상을 통해 바벨론, 페르샤,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네 제국의 등장을 예언하였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이 등장하여 교회를 해롭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4개의 뿔들이 나타나서 유다를 흩뜨린다는 것은 뿔로 들이받아 괴롭히고, 뿔뿔히 흩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장장이들에게 명하여 그 뿔을 땅에 떨어뜨리라고 명하시는 것이 두 번째 환상입니다. 세상의 권력이 아무리 강력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꺾어버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립니다. 강대국들의 횡포가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트위터로 몇 문장 올리면 전세계 금융권들이 들썩거립니다. 요즘 중국이 선교사들을 무더기로 쫓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교회를 괴롭히고 뿌리를 뽑아낼 것 같이 활동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절대로 이런 세력에 의해 교회가 무너지지 않으며, 아무리 강력한 권력도 도를 지나치게 되면 하나님께서 대장장이를 시켜서 망치로 그 뿔을 꺾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고 있는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신 분이 누구입니까? 여호와의 천사라고 했는데,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화석류나무 사이에 계시는 분입니다. 화려하고 울창한 나무가 아니라 수수하고 겸손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좋아하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는 세상을 두루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세상은 막강한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평안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위장된 평안이요, 안일한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고통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뿔을 꺾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개입하기 원하십니다. 우리 삶에 오셔서 다스리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외치시는 것입니다. 내게로 돌아와라. 몸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돌아오고, 그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