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정 행서 원인 시축
소스:차훈아트
명칭 : 행서원인시축
저자: 양시정
특징: 종이책, 행서
크기: 세로 129cm, 가로 56.8cm.
석문:
추억의 성서로마다 좋은 화정에 왔었습니다. 난초는 비를 맞으며 희고, 들죽은 운청으로 들어옵니다.
물결이 봄을 떠다니고, 산빛이 대낮을 비추네. 褰옷은 벽과 마주하고, 서늘한 달빛은 사람을 깨웁니다.
원인의 일률. 양사정.
관서 "량시정", 검 "량시정" 백문인, "샹린" 주문인. "십이루 전 시종인" 주문 타원형 도장.
이 책은 원나라 왕사희의 《제완방정오수》 중 하나입니다. 양시정은 서예를 처음 배운 후 류공권을 배웠고, 이후 조맹부와 문징명을 참작하여 만년에 안진경과 이옹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이 작품은 획이 펴지고 결자가 엄격하며, 뼈가 튼튼하여 여러 사람의 장점을 모아 온화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자 소개: 양시정(1697-1763) 청나라 대신. 자는 양중, 호는 향림, 일명 문렴자, 전당(현재 저장성 항저우) 사람. 옹정 8년에 탐화(探花)를 거쳐 동각대학사에 이르렀고, 급제하여 시호를 문장(文莊)이라 하였습니다. 서예를 처음 배운 류공권, 조맹부, 문징명, 만사 안진경, 이옹. 저서로 《시음집》이 있습니다. 양시정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섯 살 때부터 말을 할 수 있었고, 네다섯 마디 시를 가르쳤으며, 살짝 입에 담으면 바로 외울 수 있었습니다. 문학에 능숙하여 항세준, 진조 등 여섯 명과 함께 '월과시사'를 결성하였고, 《질위집》이 출판되었습니다.
량시정의 글은 난펑과 가깝고 시골이 수려합니다. 그도 서예를 잘합니다. 청나라 사람 오수는 《소대척독소전》에서 "시정공서"라고 말했습니다. 청나라 사람 이원도는 『국조선정사략』에서 양시정의 서예를 언급하며 "공서 초학 유성궁(류공권), 계참문(정명), 조(맹(조 페이지)) 만사안(진경), 이(북해). 청나라 사람 왕창은 《춘융당집》에서 양시정의 서예를 평론하며 "공중의 말에 따르면, 상서방에서 고종을 위해 큰 글자를 짓는 것은 헌법과 황제의 왕림에 적합하며, 여러 신하들이 서서 헌황의 명을 받아 글을 쓰고, 먹물이 소매에 묻으면 다시 고종에게 잡아당기라고 명령합니다.
" "또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양시정과 장조는 건륭제를 위해 《청해루 연구》를 공동 구절했다고 합니다." 《시화》는 량시정의 응제시를 칭찬하며, "장아하고 온화하며, 자연스럽고 절묘하며, 정서와 글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묘미"라고 표현했습니다. 전문가는 이렇게 읊조립니다. "공(양시정)은 느긋함으로 이겼습니다. 매속마공은 제각기 능력이 있습니다. ”
양시정은 오랫동안 관서를 편찬했습니다. 건륭 15년에 《흠정엽운집》 10권을 전공했습니다. 건륭 16년, 《서청고감》 40권을 전공하고 《전록》 16권을 첨부했습니다. 후속 '서청 속감' 2편은 각각 20권입니다. 건륭 17년, 명령을 받아 《서호지찬》 15권을 수필했으며, 《석거보적》과 《비전주림》의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또한, 양시정은 건륭제와 화목한 시집 《공화어제태액빙희원운》을 집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