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93장 혈운(血雲)의 장(章)! -1
━━━━━━━━━━━━━━━━━━━━━━━━━━━━━━━━━━━
아아! 피구름(血雲)이 몰려오고 있다.
광활한 대륙 중원을 뒤덮는 그 엄청난 핏빛 구름이...... 그리고
그것은 바로 천은산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경동천하(驚動天下)―!
이것은 현 무림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마디였다.
휘청거리는 무림(武林), 그것은 철퇴로 일격을 당한 것과 같은 상
태였다.
도화선은 바로 천은산장의 육지운이 석원초를 모살했다는 것에서
부터 비롯됐다.
따라서 자소천은 천은산장을 궤멸시키려 했고, 이에 당황한 육도
평은 오히려 하객으로 참석한 자소천 고수들을 전원몰살.
어디 그뿐인가?
무림명가의 성대한 잔치에 혹시나 하고 들렀던 수백의 축하인물
들, 육도평은 천인공노하게도 그들의 입을 죽음으로 틀어막았다.
아아! 그 참혹한 대도살이여!
피가 흘러 내를 이루고, 흔적을 없애려고 태우는 시신의 타는 연
기가 자욱한 뭉게구름처럼 천봉산을 온통 뒤덮었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이 천 리 가는 것이 강호의 통례, 육도평의 참
혹한 도살을 자소천주 빙허잠이 어찌 모를 리 있겠는가!
― 피라미같은 천은산장이 감히 본천을 건드리다니! 모두 죽여라!
빙허잠은 열화와 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이에 흑사신 가경을 비롯한 자소천의 고수 오백(五百)이 급히 대
출동을 했다.
허나 그들은 천은산장이 새북사사천과 밀탁한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혁련소천이 계획한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천봉산 기슭에서 자소천은 일단의 새북사사천 고수와 정면충돌했
다.
사흘에 걸친 대격전, 그 결과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이었다.
자소천과 새북사사천의 충돌은 엄청난 불씨를 피워 던졌다.
헌데, 그 불씨의 장본인 삼수마검 육도평은 천은산장을 버리고 도
주했다.
그러나 그는 천봉산 기슭에서 두개골이 으스러지고 사지가 무참히
절단된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과연 누가 그를 죽였는가?
그것은 영원한 수수께끼의 미궁으로 빠져 버렸다.
천은산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단의 혈전은 실로 많은 의혹을 남
겼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작이었다.
중원의 대혼란시대 도래!
천은산장의 혈겁, 그 작은 불씨는 엉뚱한 곳에 도화선이 되고 있
었으니.......
구천(九天)과 십지(十地)―!
이제껏 암투 속에서 이루어지던 그들의 세력이 드디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마다 신비스러운 의문점이 반드시 남았고 그로인해 구천십지
는 서서히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세인들은 구천십지의 분열을 이렇게 생각했다.
― 드디어 구천십지제일신마의 보좌를 노리는 결전이 시작됐다.
허나 그 누가 이 사실을 알 수 있으랴!
이 거대한 싸움의 움직임을 일 인(一人)이 조종하고 있음
을.......
피구름을 몰고 온 한 사나이, 그는 바로...... 혁련소천이었다.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94장 만남, 그것이 시작이었다! -1
━━━━━━━━━━━━━━━━━━━━━━━━━━━━━━━━━━━
휘이― 이― 잉―!
후우우웅......!
무쇠라도 스치면 그 즉시 가루로 화해 버릴 가공할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시사철 하루도 빠짐없이 미친 듯이 회오리치는 계곡 하나가 있
었다.
당연히 인간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며 일단 접근하면 그 누
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죽음의 계곡.......
흑풍무회마지(黑風無回魔地)!
이곳은 산서성(山西省) 천풍산(天風山)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
고, 십지(十地) 중 하나인 무회마지(無回魔地)가 있어 더욱 유명
해진 곳이었다.
무회마지!
주인은 백검무회마(百劍無回魔) 적천룡(赤天龍)이란 인물로서 십
지마황 중 가장 소극적인 성격의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무회마지의 주인으로 추대된 이후 백여 년 동안 꼭 한 번 외
부로 나갔을 뿐이다.
육 년 전 소림사가 멸망되기 전 존궁(尊宮)의 사망전(邪望殿)에
다녀온 것이 바로 그 한 번의 외출이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렇듯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
는가?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5권 제94장 만남, 그것이 시작이었다! -2
━━━━━━━━━━━━━━━━━━━━━━━━━━━━━━━━━━━
②
산서성 소양진에 있는 유일한 객잔인 대봉객잔(大鳳客棧).
때는 춘삼월(春三月) 호시절이고 어둑한 땅거미가 몰려드는 저녁
무렵이었다.
여덟 필의 말이 이끄는 순청색 팔두마차(純靑色八頭馬車) 한 대가
대봉객잔 앞에 조용히 다가섰다.
이어 마차의 옆문이 열리고 지체없이 십여 명의 인물이 밖으로 쏟
아져 내려섰다.
"쿨룩...... 쿨룩......."
병색이 짙은 마른 몸집의 청의노인은 마차에서 내려서자마자 연속
기침을 해댔다.
천금병마 담대우리, 십지 중 천금마지의 주인인 바로 그였다.
그의 옆에는 관옥같이 준수한 얼굴에 기도가 범상치 않은 청년 하
나가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담대우리는 밖에 내걸린 대봉객잔의 편액을 흘깃 쳐다보더니 옆의
청년에게 눈길을 던졌다.
"들어가자, 군(君)아야......."
청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예, 사부님."
이름은 상무군(尙武君).
담대우리가 가장 아끼는 수제자가 바로 이 청년이었다.
담대우리 등이 막 객잔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화복차림의 한 노
인이 다가와 넙죽 허리를 숙였다.
"헤헤헤...... 어서 오십쇼, 나으리."
점소이의 노안 가득 떠올라 있는 미소는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하
고 가식이 없어 보였다.
헌데...... 이 노인이 누구인가?
뜻밖에도 그는 바로 광천오제 중의 소절풍마가 아닌가?
그가 느닷없이 어찌 이런 모습으로 이런 장소에 나타났단 말인가?
담대우리는 괴이쩍은 눈길로 소절풍마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그대가 주인인가?"
소절풍마는 손바닥을 비비며 사람좋게 웃어 보였다.
"그렇습니다, 나으리!"
"주인이 바뀌었나 보군."
"헤헤헤...... 얼마 전 소인이 전주인으로부터 사들였습니다. 앞
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담대우리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
순간 담대우리의 눈빛이 또 한 번 미묘하게 변했다.
회계대에 앉아 있는 반들반들한 대머리에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입
은 중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괴승(?)을 보았던 것이다.
불영치마, 바로 그의 모습이었다.
'......!'
담대우리는 어쩐지 석연치 않은 예감을 느끼며 장내를 빠르게 훑
어보았다.
객잔 안의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는데, 그
들 두 명의 탁자 옆에는 천조각을 아무렇게나 찢어 만든 듯한 깃
발 하나씩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옥황상제의 길흉화복까지 점치노라!>
그렇게 쓰인 깃발 옆의 노인은 꽤 청수한 얼굴이었고, 두 눈을 가
늘게 뜬 채 양 손을 소매 속 깊숙이 쑤셔넣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우문창이었다.
또 한 명은 음침한 인상의 흑의노인이었다.
<만병통치(萬病通治) 생사여의(生死如意)!>
생사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수 있다는 글귀...... 그는 바로 독
심광의였다.
'저들은.......'
담대우리의 표정은 그 순간 완전히 굳어져 있었다.
상무군은 그의 그런 표정에 의혹을 느꼈다.
"사부님, 왜......?"
그때 소절풍마의 외침이 버럭 터져 나와 상무군의 말을 중단시켰
다.
"야! 원숭아! 손님 오셨으니 썩 나와 주문받아라!"
"오냐! 오냐! 지금 나간다."
그러자 쩌렁쩌렁한 대답과 더불어 성성이처럼 털투성이인 거구 한
명이 주방 쪽에서 어슬렁 걸어 나왔다.
도광 헌원패였다.
그의 한 손에는 날이 시퍼런 부엌칼 하나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
끝에는 지금 닭 한 마리가 통째로 꽂힌 채 시뻘건 핏물을 뚝뚝 떨
어뜨리고 있었다.
헌원패는 담대우리 등을 쓰윽 훑어보며 커다랗게 외쳤다.
"어떤 어른이 주문하실 놈이냐?"
순간 상무군의 눈썹이 쭈뼛 곤두섰다.
"이 놈들! 감히 어느 앞이라고 헛수작들을......."
그는 대뜸 검자루로 손을 가져갔다.
(움직이지 마라. 너는 저들의 적수가 아니다!)
그 순간 상무군의 귓속으로 담대우리의 전음이 빠르게 파고들었
다.
"......!"
상무군은 해연히 놀랐다.
'나의 무공은 현 천금마지의 이 위(二位) 서열을 차지하는 것이
다. 헌데 적수가 아니라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담대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담대우리는 소절풍마에게 묘한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소절풍마는 히죽 웃었다.
"헤헤헤...... 담대나으리께서 우리가 누군지 짐작한 모양이구
려?"
담대우리는 무겁게 말했다.
"추측이 맞는다면...... 당신들은 필시 광천오제일 것이다."
순간 불영치마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회계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 우리들을 아네? 아미타불......."
그 말을 들으며 담대우리는 다시 우문창에게 시선을 옮겼다.
"보아하니 노부를 기다린 것 같은데......?"
우문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유는?"
우문창은 씹어뱉듯 또박또박 대꾸했다.
"절영봉의 맹약(盟約)을 확인하기 위해서."
"......!"
담대우리의 얼굴에 돌연 살기가 번져 나왔다.
독심광의가 괴소를 흘리며 끼여 들었다.
"흐흐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담대우리는 문득 차갑게 냉소했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 절영봉의 맹약은 군마천주가 신강에서 돌아
온 그 날부터 깨어진 것이다."
"이유는?"
"그것은 군마천주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괴이하게도 군마천주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마다 담대우리의 눈에
는 짙은 살광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갔다.
이때 헌원패가 생닭의 다리를 쭉쭉 찢어내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거듭 말하건대 우리가 당신을 기다린 이유는 절영
봉의 맹약을 다시금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뚝...... 뚜뚝......!
짙은 핏물이 그의 손아귀 사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담대우리는 냉소를 머금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
"절영봉의 맹약은...... 진정한 맹우(盟友)가 죽은 이상 파기다."
그 말에 우문장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다.
"진정한...... 맹우? 그게 무슨 말이오?"
"그것은......."
담대우리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좀 들어갑시다."
점잖은 음성과 함께 두 명의 인물이 객점 안으로 들어섰다.
죽립인 한 명과 말 그대로 괴이한 형색의 괴노인이었다.
"빈자리가 많아서 좋구나!"
괴노인 군청위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더니 좌우를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죽립을 깊숙이 눌러쓴 혁련소천은 주위 사람들 누구에게도 일별조
차 주지 않고 한 쪽 구석에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이 자리가 좋은 듯합니다, 형님!"
"헛헛헛...... 좋다, 좋아! 자네만 좋다면 이 우형도 무조건 좋은
것이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털썩 마주보며 앉았다.
이어 혁련소천은 헌원패를 향해 가볍게 손끝을 까딱였다.
"주방장인가? 여기 술 두 병과 안주 좀 가져오시오."
본래의 음성을 감춘 약간 쉰 듯한 음성이었다.
헌원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의 코끝을 가리켰다.
"너...... 지금 나보고 말했느냐?"
"그랬소."
"얼씨구? 이것 봐라. 간이 쇳덩이로 만들어진 놈이 들어왔네?"
"여기는 술 파는 곳이 아니오? 시켰으면 냉큼 가져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소?"
순간 헌원패는 닭모가지를 종잇장처럼 찢어 혁련소천이 앉은 탁자
를 향해 내던졌다.
팍!
놀랍게도 닭모가지는 칼처럼 탁자에 쑤셔박혔다.
헌원패는 팔뚝을 걷어붙이며 혁련소천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
겼다.
"이 놈! 썩 달아나지 않으면 네놈 목을 비틀어 그 닭모가지처럼
벽속에 쑤셔박을 것이다."
우문창은 헌원패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담대우리를 응시했다.
"충고하겠소, 담대천주."
"......?"
"지금도 늦지 않았소. 이 길로 무회마지로 가는 발길을 돌리는게
좋을 것이오."
무회마지!
담대우리의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던가?
문득 담대우리의 입가에 조소가 묻어 나왔다.
"어리석은 자들...... 흑백도 구별하지 못하다니......."
"흑백......?"
우문창이 움찔하는 그때 독심광의의 음산한 외침이 불쑥 터져 나
왔다.
"여러말 할 것없이 가부(可否)간 하나만 택하라."
담대우리는 그에게 힐끗 시선을 향했다.
"만약 거절한다면?"
독심광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차갑게 냉소했다.
"흐흐흣...... 담대우리의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
허나...... 우리 광천오제에게 그것이 먹혀들지 모르겠군."
담대우리는 태연하게 말했다.
"해보라."
우문창이 거듭 확인하듯 물었다.
"해보라고? 그럼 절영봉의 맹약은......?"
"끝이다."
스르륵!
순간 얇디얇은 연검 한 자루가 우문창의 허리춤에서 빠져 나왔다.
"흐흐...... 담대우리. 그렇다면 너는 반드시 이곳에 목을 남겨두
고 가야만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우문창은 연검을 가슴 앞에다 수평하게 세우며
왼손은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순간 담대우리의 안색이 미미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 자세는...... 오성마검의 유성백리탄......!"
"역시 담대우리다운 안목이다."
우문창의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소절풍마의 장난기 서린 웃음이
잇달았다.
"헤헤...... 이것은 또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러면서 치켜드는 그의 왼손 속엔 조그만 태극도형 하나가 반점
처럼 나타나 있었다.
"사라태극인!"
담대우리의 눈에 거듭 놀람의 빛이 솟구쳤다.
그는 태극도형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사라옥정을 얻었구나......?"
"헤헤...... 얻은 정도가 아니라 사라옥정의 무공을 모조리 터득
했다."
"......!"
"이젠 말이다. 담대우리, 그대뿐 아니라 제일신마 단우비가 온다
해도 겁나지 않는단 말이다."
담대우리는 묵직한 침음성을 흘렸다.
"흠...... 군마천주 영호풍은 진정 훌륭한 동조자를 구한 셈이
군."
어쩐지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어투라고 느꼈음인지 우문창은 안색
을 굳히며 무겁게 말했다.
"영호풍은 우리의 유일한 친구다. 그는 우리의 생명의 은인이자
하토궁을 멸망시켜 우리들의 원한까지 갚아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부탁이라면 하늘과 땅의 위치라도 바꿔 놓아야 한
다."
담대우리의 눈에 언뜻 이채가 솟았다.
"그 영호풍이 진정한 영호풍이 아닌데도 말인가?"
우문창은 움찔했다.
"무슨...... 말인가?"
담대우리가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순간.
"이 늙은 뼈다귀가 무슨 개소리냐? 나를 원숭이같은 아가라니?"
우레같은 노성이 헌원패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
"......!"
담대우리와 우문창 등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헌원패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군청위를 잡아 먹을 듯 노려보고 있
었는데 그 기세가 사뭇 살기등등했다.
허나 그를 바라보는 군청위의 표정은 마냥 느긋해 보였다.
"흐흐...... 원숭이같은 아가야. 재롱 그만 피우고 저 아이들 하
고나 놀아라."
헌원패는 두 눈을 찢어지게 부릅떴다.
"이...... 쥐방울만한 자식이......."
말보다 빠른 행동!
슈욱!
시퍼런 부엌칼이 군청위의 정수리를 냅다 찍어냈다.
"흐흐...... 지겨운 재롱을 끝까지 봐주자니 그것도 할 짓이 못
되는군."
순간 군청위는 여유있는 괴소를 흘리며 오른손 식지를 슬쩍 쳐들
었다.
쨍!
부엌칼이 손바닥에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소리였다.
놀랍게도 군청위는 손가락 하나로 헌원패의 일도(一刀)를 간단히
막아낸 것이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안색이 급변했다.
특히 헌원패의 놀라움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 나올 만큼 엄
청난 것이었다.
"마...... 마교의 천강지(天 指)!"
그의 시선이 쫓기듯 군청위의 얼굴로 옮겨졌다.
"너...... 마교의 인물이냐?"
군청위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흐흐...... 원숭이 아가의 안목도 제법 쓸만하구나."
그 말에 헌원패의 안면 근육이 괴이하게 씰룩였다.
"흐...... 이 헌원나으리가 마교라면 겁낼 것 같은가?"
이어 그는 부엌칼을 냅다 팽개치더니 허리춤에 손을 넣었다가 뺐
다.
스릇!
어느새 얇디얇은 면도(面刀) 한 자루가 파리한 백광(白光)을 뿜어
내며 그의 손에 쥐어졌다.
군청위의 눈에 언뜻 희미한 경악이 솟아났다.
"어? 사라백인도(沙羅白刃刀)가 아니냐?"
"아니긴 왜 아냐?"
한 소리 냉갈과 함께 헌원패의 도(刀)가 미친 듯 번뜩였다.
그 순간.
챙!
쇳소리와 더불어 헌원패의 도가 무엇엔가 의해 돌연 가로막혔다.
그것은 바로 혁련소천의 소맷자락이었다.
그 순간 커다란 경악성이 담대우리의 입 밖으로 터졌다.
"단포철삼! 혈왕 나백의 무공이다!"
"뭣이?"
"오오......!"
우문창 등은 그 말에 대경실색을 금치 못했다.
혈왕 나백!
비록 천이백 년 전의 인물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그 누구도 잊지
못하는 영원불멸의 살아 있는 신화(神話)!
혁련소천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며 입을 떼었다.
"모두 그만 두시오."
그것은 쉰 듯한 음성이 아닌 천부적인 위엄이 배어 있는 듯한 그
자신 본래의 음성이었다.
그러자 그 순간 광천오제와 담대우리의 얼굴에 일제히 물결같은
경련이 일어났다.
"이...... 이 음성은......?"
"영호풍! 영호풍의 음성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독특한 음성이었기에 기억 또한 특별한
것인지도 몰랐다.
"너...... 너는 누구냐?"
엉거주춤 다가서는 소절풍마의 물음에 혁련소천은 조용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 하늘의 정기와 땅의 정기를 모두 흡수하여 일만 갑자
의 내공을 얻으려는 사람이오."
"......!"
소절풍마는 그 말에 온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때 불영치마의 당혹성이 독백처럼 흘러 나왔다.
"어? 저게 어떻게 풍마의 비밀을 알지?"
혁련소천은 힐끗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의 황당한 천일연공도 알고 있소."
"어?"
혁련소천은 다시 독심광의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직도 아부에 약하다면 한 마디 해줄 수도 있소. 천하제일의 의
원나으리."
"......!"
독심광의의 몸이 순간 부르르 떨렸다.
"너......."
그때 헌원패가 자신의 코끝을 가리키며 격동 어린 음성을 내뱉았
다.
"나...... 내가 누군지도 알겠느냐?"
혁련소천은 고개를 끄떡였다.
"어찌 모르겠소? 죽령도에서 내게 첫음식을 주었던 주방제일의 고
수를......."
"......!"
헌원패의 입이 쩍 벌어졌다.
혁련소천의 시선은 우문창에게 옮겨지고 있었다.
"우문노인, 당신은 요즘도 하루에 몇 번씩 성을 갈아치우시오?"
"......!"
우문창은 쉴새없이 혁련소천의 아래위만 훑어볼 뿐 아무 말도 하
지 못했다.
갑작스레 숨막힐 듯한 정적과 긴장감이 좌중에 깔렸다.
그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담대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담대부주, 절영봉의 맹약은 아직 깨어진 것이 아니오."
담대우리의 전신에서 일시 폭풍같은 진동이 일어났다.
"서...... 설마......."
혁련소천은 죽립을 등 뒤로 넘기며 나직이 탄식했다.
"아직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소?"
"......!"
담대우리의 눈빛이 파도치듯 흔들렸다.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설혹 골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눈빛......!
수천수만 명이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드러내 놓고 있어도 자신있게
찍어낼 수 있는 바로 혁련소천만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담대우리, 그는 확신했다.
확신했기 때문에 주름진 눈가로 엷은 물기가 번져 나올 수 있었
다.
"나는 말일세......."
흘러 나오는 음성이 주체할 수 없는 격동으로 확연히 떨리고 있었
다.
"군마천의 주인이 가짜임을 알았을 때...... 자네는 꼼짝없이 죽
은 줄 알았네."
혁련소천은 조용히 웃었다.
"나는 아직 건재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담대우리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혁련소천의 옆에 우문창이 바싹 다가왔다.
"자네가 정말 영호...... 아니, 소천이란 말인가?"
"틀림없소."
혁련소천의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헌원패가 버럭 외쳤다.
"틀리다! 얼굴이 틀리단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으나 그의 음성은 누가 들어도 지극한 기쁨
에 차 있는 것이었다.
소절풍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독백처럼 뇌까렸다.
"얼굴은 문제가 아니다. 소천 외에...... 죽령도에서의 일을 저렇
게 환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우문창이 즉각 동의를 나타냈다.
"동감이다...... 그리고 소천의 얼굴이 저렇게 된 것도 필시 곡절
이 있을 것이다."
혁련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앉읍시다. 내 모두 이야기해 드리겠소."
"좋다. 헌데...... 이 늙은이는......?"
헌원패는 턱끝으로 군청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분은......."
혁련소천이 막 입을 열려 할 때 군청위의 전음이 빠르게 그의 귓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형제, 가능한 노부의 내력은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네.)
"......!"
군청위는 문득 헌원패를 바라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
"노부는 이름이 없네. 그냥 노마(老魔)하고만 불러주게."
"노...... 마?"
헌원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을 둘러보았다.
허나 우문창이나 담대우리 등은 그 순간 혁련소천의 입만 주시하
고 있었다.
혈왕문에서 있었던 그 죽음의 비사가 이미 전음으로 이어지고 있
었던 것이다.
헌원패는 허둥지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 나도 듣자!"
만남이 있었던 그 밤...... 꼭 이백예순다섯 개의 술항아리가 바
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첫댓글 보고 갑니다.......
즐독하고갑니다~~~
즐감.............
좋아좋아
즐감...
즐감!!
즐감~1
즐감
얘기를 듣느라고 술을 엄청 퍼댔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즐감요
감사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이백예순다섯개의 술 항아리면 얼마만큼양인지 모르겠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즐감 ~~~
감사~~
술 항아리가..얼마나 작기에~~ㅎㅎ
잉??나도소주한잔이다
즐감하고 갑니다.
ㅈㄷㄳ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