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dict de Spinoza
맹목과 예속의 삶을 경계한 스피노자의 명언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활동은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이해하면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처럼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싸우고, 한 사람의 허영을 위해 피와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최고의 영예라 믿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넓은 의미에서 미신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비굴하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이 대개 가장 야심차고 질투가 많다.
○사람은 혀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렵고, 욕망보다 말을 조절하기가 더 힘들다.
○의견이 비록 옳아도 무리하게 남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사람은 모두 설득 당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의견이란 못질과 같아서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자꾸 앞이 들어갈 뿐이다. 진리는 인내와 시간에 따라 저절로 밝혀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부귀, 명성, 쾌락의 세 가지로 귀결된다. 사람은 이 세 가지에 너무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좋은 것은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
○음악은 우울증 환자에게는 약이고 고통 받는 사람에겐 좋지 않다. 그러나 귀머거리에는 약도, 독도 아니다.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다.
○최고로 손꼽히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서 자만심에 차 있는 사람만큼 아첨에 잘 넘어가는 사람은 없다.
○마음의 병과 불행은 우리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지나친 애착에서 생긴다.
1677년 오늘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철학자의 그리스도’로 불렀고,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이 “지적인 면에서 그보다 뛰어난 철학자가 있을 수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그를 따라갈 철학자는 없다”고 칭송한 네덜란드의 바뤼흐 스피노자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니체, 헤겔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스피노자에 영향을 받고 그를 격찬하는 명언을 남겼지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모든 철학자에겐 두 명의 철학자가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다”고 했고요.
스피노자는 맹목과 미신을 거부하고 이성적 사유를 좇아 스스로 왕따가 된 사상가입니다.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으로 유대교회의 총애를 받았지만 종교의 예속에 의문을 품고 이성적 사고를 추구해 24세 때 유대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합니다. 유대교회는 “그에게는 밤낮으로 저주가 있을 지어다. … 지금부터 누구든지 그와 대화해서는 안 되며, 서신을 주고받아서도 안 된다는 점을 모두에게 통고한다. …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말라. 그와 함께 한 지붕 아래 살아서도 안 되며 그가 쓴 글을 읽는 것도 금지한다.”고 통지합니다. 가톨릭 교회도 스피노자의 저술이 교리에 도전한다며 저주의 대열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반대자와 논쟁하거나 설득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하고, 고독하게 철학적 사유에 매진합니다.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으므로 주로 다락방을 세 내어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다락방의 합리론자’란 별명이 나온 배경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누이에게 모두 주고 평생 독신으로 하숙 생활을 전전합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공교육 아래에서는 자유로운 철학을 할 수 없다며 사양했습니다. 그리고 안경알을 갈며 진리를 찾는 삶을 펼치다 폐병이 왔습니다.
한때 스피노자가 안경알 가루가 허파에 들어가서 규페증으로 숨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즘 의학자들은 결핵을 사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1676년 급격히 쇄약해졌고 기침과 싸웠습니다. 그의 후원자이자 벗인 외과의사 로데 빅 마이어가 암스테르담에서 헤이그의 하숙집으로 급히 와서 돌봤습니다. 1677년 오늘 일요일, 마이어는 하숙집 주인에게 닭고기 수프를 끊여 벗에게 먹이게 하고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와서 스피노자가 평온히 누워서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이어 부부는 스피노자의 시신을 교회에 안치했지만, ‘악마의 하수인’ 스피노자의 시신이 도난당해 빈 관으로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마이어와 지인들은 스피노자가 남긴 책장을 암스테르담으로 갖고 와서 책장에 숨겨진 《에티카》를 익명으로 발간했지만, 스피노자의 다른 서적처럼 금서목록에 올랐습니다. 그 《에티카》에는 이성적 사유를 위한 스피노자의 처절한 탐구가 농축돼 있었고, 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스피노자는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말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일기에 적힌 글이라고 합니다. 후대 철학자들은 스피노자가 우주 삼라만상에 저마다 고유한 존재의지가 있고, 그 존재의지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신도 그렇게 살았기에 위 명언과 연결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스피노자는 합리성을 통해 삶을 긍정하고 자유를 꿈꾸었기에 유대교와 가톨릭교 모두에게 배척받았습니다. 345년이 지난 오늘은 이성적, 합리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자유로울까요? 특히 우리 사회에선 맹목적 성역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야기를 하면 격렬한 저주를 받고 있지 않나요?
우리 사회는 과연 이성적 합리적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를 떠나 인류의 요원한 꿈에 불과한가요, 아니면 스피노자의 숨은 후원자처럼 합리적인 사람들이 시나브로 늘고 있다는 것이 역사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만족해야 할까요?
<코메디닷컴 '이성주의 건강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