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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과 대장장의 환상
슥 1:18-21
18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19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
20 그 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21 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1:18-21 / [둘째 환상] 내가 다시 눈을 들어 살펴보니, 짐승의 뿔 넷이 나타났다. 19) 내가 해석해 주는 천사에게 물었다. `내 주여, 이 뿔들의 뜻이 무엇입니까?' 천사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것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 주민들을 온 세상으로 흩어 놓은 이 세상의 4대 열강들을 가리킵니다.' 20) 그 다음에 주께서 내게 대장간의 쇠메를 든 장정 넷을 보여주셨다. 21) 내가 또 물었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하려고 온 사람들입니까?' 천사가 설명해 주었다. `저 뿔들은 유다 백성을 짓밟아 어느 한 사람도 고개를 들 수 없도록 압박하였습니다. 이 대장장이들은 ㄱ) 이제 그 뿔을 모조리 뽑아 내려고 온 사람들입니다.' (ㄱ. 또는 `유다 백성을 흩어 놓기 위하여 유다 나라로 뿔을 곧두세우고 달려든 그 강대국들의 뿔을 모조리 부러뜨리려고 온 사람들입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두 번째 환상으로 네 뿔과 네 일꾼을 보여주십니다.
네 개의 뿔(18-19)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네 개의 뿔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흩어지게 했던 대적들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제국 즉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넷’이라는 숫자를 좀 더 폭 넓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 사방에 존재하는 나라들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성경은 온 세상 사방을 뜻할 때에 '세상의 네 모퉁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사 11:12; 겔 7:2; 계 20:8). 이 땅에 존재하는 나라들이 어느 때에는 약해 있다가도 어느 때에는 강하게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들에 개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시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삼상 2:7).
네 명의 대장장이(20-21) 네 개의 뿔이 힘이 있어 이스라엘을 흩뜨렸습니다. 하지만 그 힘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네 명의 대장장이가 일어납니다. 이들은 네 개의 뿔들을 떨어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나라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 두 번째 환상은 확실히 스가랴 선지자에게 희망적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그 세력을 철저히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나라가 힘과 세력이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현상은 종말론적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종국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겁니다. 최후 승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런 희망으로 지금은 믿음 가운데 서서 현재 겪는 고난을 잘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지만 고난이 끝이 아닙니다. 회복과 희망이 있습니다. 고난도 회복도 희망도 나누어 봅시다.
세계 곳곳을 다니는 어느 여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마을에 현인이 있다는 소식에 곧장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현인의 집은 책 몇 권, 조그만 식탁, 의자 등이 전부였고 가구며 서재도 없이 너무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여행자는 초라한 집의 모습에 놀라 다른 가구며 집기가 어디 있는지 물었고 현인은 잠시 침묵한 뒤 여행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대의 것은 어디 있습니까?" "제 것이오? 저는 여행자 아닙니까. 그저 지나가는 존재일 뿐인걸요." 그러자 현인은 조용히 웃으며 여행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 설 교 >
네 뿔과 네 대장장이
스가랴 1:18~21 /김철한 목사
묵시란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첫 번째 환상을 본 스가랴는 하나님이 시온을 위로하며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리라는 메시지를 알게 되었다. 묵시가 오면 미래의 희망을 갖게 된다. 되어질 일을 알게 되기에 용기백배하게 된다.
오늘 두 번째 보게 된 묵시의 이야기는 슥1:18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선지자가 보았다는 것이다. 스가랴의 본다는 표현이 요한계시록의 표현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요한계시록은 “내가 보매, 내가 보매” 즉 내가 본다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스가랴도 그렇게 “보이기로 본즉, 눈을 들어 본즉”이라는 보았다는 말이 반복되어 사용된다. 보는 것이라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을 보여주시는 계시가 있으므로, 하나님 편에서 알려주심으로써 본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육신의 눈이 제한되어 있어 눈에 띄는 것만 볼 수 밖에 없는데 영적인 것, 미래적인 것,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것, 계획과 섭리에 관한 것은 하나님의 묵시가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 생생하게 인식하고 체험한 본 것이 무엇인가? 네 개의 뿔을 보았다. 이때 스가랴는 천사에게 묻는다. 슥1:19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그때 돌아온 대답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고 하였다. 이 뿔은 무엇인가?
1. 짐승의 뿔이다.
뿔을 말할 때 영서 성경은 ‘Animal Horn’이라고 표현한다.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라고 하였으니 이 뿔이 얼마나 선민들을 아프게 하였으며 괴롭게 하였을까? 선민이 자기 자리에 있지 못하고 흩어진 이유는 뿔이 다가와 찌르고 부딪히는 것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여기 짐승의 뿔에 의해 흩어졌다 하였으니 미친 황소, 미친 염소를 생각하면 될 듯 하다. 투우사들이 소와 싸울 때 얼마나 황소가 자기 머리에 있을 뿔을 가지고 맹렬히 돌진하는가? 억센 뒷다리로 땅을 차며 씩씩거리며 달려와 투우사를 받아 내던지는 황소의 뿔은 무서운 살인 무기인 것이다. 그대로 있을 수 없다. 피해야 한다. 기필코 방향을 틀어 살아남아야 한다. 짐승의 뿔, 무섭다는 뜻이다.
2. 네 개의 뿔이다.
뿔도 뿔 나름인데 뿔이 하나가 아니고 짐승의 뿔로 표기된 이 뿔은 세상의 나라, 또는 세상의 권세를 뜻한다. 강하고 위엄이 있고 힘이 센 것임을 뜻한다. 뿔은 요한계시록 17장을 읽어보면 제국과 왕을 의미하는데 네 개의 뿔이란 동서남북 어디든지 예루살렘을 괴롭히는 권세를 뜻한다.
그렇다. 유대인들의 현 실정이 뿔의 공격을 받고 있다. 사방으로 우겨싸고 밀어닥친다. 유대인들은 성전 건축을 착수하였다. 앗수르의 뿔, 바벨론의 뿔, 메대와 바사의 뿔 등 연이은 제국의 뿔들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 되었지만 포로 귀환 이후 스룹바벨의 성전을 착공하였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한 대적들이 밀어닥쳤다. 에스라 4장을 보라.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바사 왕 고레스 시대에 반대자들이 뇌물을 주어 건축을 막았고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할 때도 반대자들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였다. 에4: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글을 올려 반대하고 에4: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글을 올려 반대했다. 그래서 에4:23을 보면 왕의 칙령이 발표되고 반대자들이 급히 예루살렘으로 달려가서 권력으로 억제하여 공사를 그치게 하였다. 정말로 집요하였다.
뿔들은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를 의미하지만 선민들을 흩뜨려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뿔들은 바로 앞에서 천명한 사람들, 사마리아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 거룩한 사역에 마음을 모을 때 뿔들이 방해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중단시키려고 달려든다는 것을 유념하라. 마지막 때, 교회가 구속을 완성하기 위해 쓰임을 받을 때 요한계시록을 보면 일곱 머리와 열 뿔은 교회를 들이받으려 한다. 어느 시대든지 뿔의 공격이 있다.
3. 뿔은 반대자 마귀다.
교회가 부서지고 성도가 흩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축소되고 하나님의 일들이 망가지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원수 마귀다. 따라서 역사에 나타난 제국, 반대자로 활약하는 사람들로만 뿔을 보아서는 안된다. 열방의 뒤편에 역사하는 마귀, 사람들의 뒤편에서 역사하는 마귀가 뿔이다. 그 뿔은 하나님의 구원을 가로막으려 한다. 그러므로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렇다.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자들이 제국이든지, 제국을 다스리는 왕이든지, 아니면 인종이 다른 반대 집단이든지 간에 그 반대자들의 뒤편에 서 있는 마귀가 우리와 싸워야 할 대상이다. 사탄이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사용하고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을 사용하여 황소처럼, 사자처럼 덤벼든다. 그러므로 뿔은 바로 하나님의 사역의 반대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하나님의 성전 건축 사역이 네 뿔들에 의해 중단된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옥의 대문을 부수고 마귀의 뿔들을 부숴야 하는데 선민들이 오히려 흩어졌다. 신앙도 흩어졌다. 마음도 흩어졌다. 비전도 흩어졌다. 격려하고 돕는 손길도 흩어졌다.
이것이 스가랴가 본 영적 형편의 환상이다. 우리의 교회 생활도 어떤 교회는 뿔의 공격을 받아 초토화된 데도 있다. 그러나 이 환상은 실망을 주고 낙심을 주려는 환상이 아니다. 슥1:20을 보면 흩뜨린 뿔을 보게 된 그 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보여주셨다. 스가랴는 또 다시 묻는다.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그때 들려진 대답은 이렇다.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그렇다. 뿔들은 선민들이 패배하기를 원한다. 뿔들은 오늘날도 교회가 망가지고 안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흩뜨려서 모이지 못하게 하고 분열되고 대립하게 만들어 교회를 세우지 못하게 하고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게 하려 한다. 사람들 마음 속에 찌르고 아프게 하여 낙심하게, 불평하게 만들어서 거룩한 비전마저도 소멸하게 만들려 한다. 허나 대장장이 네 명이 나타났다.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게 하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쉬고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른 척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방관하지 않으신다. 네 명의 대장장이들로 하여금 역사하신다. 네 명의 대장장이란 누구인가? 무엇하는 자인가?
1. 마귀의 뿔을 꺾는 자들이다.
대장장이를 보여주신 이유는 이 마귀, 여러 나라의 뿔들이 하나님 나라의 원수가 되어 덤벼드는 것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뿔들을 떨어뜨려” 이는 뿔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권세와 제국을 의미하는 뿔을 자르면 제국도 무너지고 권세도 무너지고 다 무너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장장이로 마귀의 뿔을 꺾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2. 철을 다스리는 기술자들이다.
대장장이란 철물을 다루는 전문가란 뜻이다. 대장간에서 불과 물과 싸우면서 철을 달구고 두드리고 패고 잘라서 원하는 도구로 만들어낸다. 장이란 말은 낮춘 말이기는 하지만 숙련가, 전문가란 뜻이다. 그러므로 철을 마음대로 구부렸다, 폈다하는 이 대장장이가 어찌 뿔을 다루지 못할 것인가? 짐승의 뿔을 망치로 단번에 부숴뜨릴 수 있다. 마귀의 뿔을 복음의 망치로 단번에 부숴뜨릴 수 있다. 반대자의 뿔, 아무리 고집스러워도 권능의 망치로 부숴뜨릴 수 있다.
대장장이를 보여주신 환상, 이제 어려움은 끝났다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중단된 것이 시작된다. 일꾼이 다시 모이게 되고 세우게 되고 하나님이 선한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놓은 자들이다.
오늘 본문을 보라. 네 뿔이 보였다. 네 뿔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다. 그런데 네 명의 대장장이가 보였다. 뿔의 수요가 넷이었기에 하나님은 대장장이를 네 명 보내셨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회복시켜 가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어려움만 바라본다. 괴롭고 아픈 것만 바라본다. 허나 원수의 공격에 맞서서 감당할 수 있는 숫자를 정확하게 준비하신다. 뿔이 넷이니 대장장이도 넷이다. 철을 다스릴 대장장이가 짐승의 뿔을 다스리지 못하겠는가?
이 네 명의 대장장이가 누구인가? 이들이 바로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뛰어넘고 스룹바벨 성전을 완성한 스룹바벨, 여호수아, 에스라, 느헤미야라고 생각한다.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 분명히 믿음과 말씀의 지도자를 세워두셔서 악인의 뿔, 반대자의 뿔을 꺾도록 준비하셨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대장장이가 준비되어 있다. 원수들은 그렇게 이겼다고 떠들지 모르지만 대장장이가 세워진다.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지킨다.
사랑의 연가
슥 1:18-21 / 김태영 목사
스가랴가 본 두 번째 환상은 ‘네 개의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였습니다. 이는 첫 번째 환상을 보완해 주는 것으로 고난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의 소망을 주시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감추어진 사랑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의 아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도 없었고, 그 가치를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두 번째 환상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그 사랑에 반응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네 뿔을 세우신 사랑
스가랴는 네 개의 뿔을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학자들의 대부분은 네 뿔이 어떤 특정 세력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그들의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면서 기다리시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몽둥이를 들어 때려서라도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여 돌아서게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몽둥이를 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고통과 시련의 바람이 불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우리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 고통과 장애물을 허락하셨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 고통과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심을 확신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회복과 변화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복과 변화를 이루는 삼락가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네 뿔을 꺾으시는 사랑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네 개의 뿔들을 세우셨는데, 하나님께서 그 뿔들을 꺾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살짝 정신만 차리도록 하기 위해 몽둥이로 세웠는데, 그들이 과잉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교육상 훈계를 주려는 의도였는데, 그들이 왕창 짓밟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 너희에게 그렇게 왕창 짓밟으라고 했느냐, 도리어 너희들이 혼 좀 나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몽둥이로 맞아서 아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몽둥이를 미워하게 됩니다. 결국 그 몽둥이를 부러뜨리든지 버리게 됩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를 아프게 한 몽둥이를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네 뿔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을 돌이켜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세상을 정복해 가는 삼락가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네 대장장이를 보내신 사랑
하나님께서 보내신 네 명의 대장장이는 뿔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뿔들을 멸할 사람들을 준비하셨을까요? 이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위기와 어려움에 직면할 때면 언제나 그들을 구원할 또 다른 세력을 준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더 나아가 멋지고 아름답게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보복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보복하는 가운데 백성들의 손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손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문제의 해결자가 되어 주십니다.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결하고 거룩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며 섬기는 자리에 서는 삼락가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랑의 노래가 우리의 귀와 가슴을 울립니다. 세상 속에서 무디어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알 수 없어 오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바로 눈을 떠서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를 들으며, 그 사랑에 바르게 반응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복과 변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삼락가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슥 1:18-21 / 김광석 목사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중단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학개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다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셨습니다. 학개선지자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중심으로 기록이 되었다면, 스가랴선지자는 성전을 건축하는 마음과 신앙의 자세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개서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기록했다면 스가랴서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마음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기록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1장에 보면
“2.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먼저 과거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진노하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던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셨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구체체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들을 잘 지켜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장 6절에 “ 6.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내가 하나님을 하고 있으면 내가 이미 하나님께로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절대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성전건축을 중단했다가 다시 짓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있었던 과거 이스라엘백성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지금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성전을 건축하고 있지만, 얼마든지 너희 마음이 나를 떠나 있을 수 있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너희가 열심히 눈에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먼저 너희 마음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하면서 무엇보다 너희가 진정으로 내게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앞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스가랴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어도 너희가 나를 떠나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진정으로 내게로 돌아오는 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몸만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여 살아갈수 있는 모드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같이 성전을 건축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스가랴선지자는 제일 먼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앞으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선지자에게 8가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 8가지 환상의 공통적인 주제는 너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서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면 너희들을 대적하던 모든 자들을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실 것이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두 번째 환상인데,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슥1:18.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19.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 20. 그 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21. 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네 뿔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방나라들을 가리킵니다. 뿔은 힘은 상징입니다. 즉 이방나라들이 힘으로 이스라엘백성들 흩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장장이를 일으켜서 그들을 두렵게 하고, 또 그 뿔들을 떨어뜨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대장장이는 이스라엘백성들 멸망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셨던 또 다른 이방나라들을 가리키는데 궁극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면 우리를 대적하고 위협하는 그 어떤 사탄의 권세를 우리가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이 아무리 큰 힘과 권세로 우리를 위협해도 반드시 그들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시간 제일 두려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와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앞에 돌아와있느냐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우리에게 율법의 완성으로 산상설교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있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산성설교의 말씀안에 거하여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말슴안에 거하여 있으면 우리는 위협하는 그 어떤 것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여 살아갈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뿔과 네 공장
슥 1:18-21
하나님의 선지자 스가랴는 참으로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에 숨쉬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조국 유다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자유와 독립을 얻은 이후 조국 재건이라고 하는 새 역사 창조의 마당 가운데 그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바벨론 침략을 받아 없어져 버렸던 성전 재건의 부푼 꿈을 예언하고, 그것을 독려하는 축복의 현장에 부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5년만에 다시 재건되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빛을 그 백성에게 던지는 여호와의 환상을 받아 전하는 중입니다.
그가 받은 첫 번째 환상, 곧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홍마 탄 자는 바로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을 보여 주는 하나님의 메세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두 번째 환상은 이스라엘의 모든 재건 역사에는 반드시 원수의 방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하고 말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Ⅰ. 네 뿔의 환상(1:18-19)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네 뿔을 보여 주었습니다. 1장 18절에 내가 눈을 들어 본 즉 네 뿔이 보이기로....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즉시 천사에게 이 네 뿔이 무엇이냐고 그의 정체를 물었습니다.
그 때 천사는 대답하기를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라(1:19)고 하였습니다.
여기 ‘뿔’은 성경에서 자주 자주 인간의 권세와 영화와, 교만과 세상의 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신33:17, 삼하22:3, 시18:2, 75:10, 89:17, 24, 92:10, 112:9).
다니엘은 환상 중에 역사상에 등장한 바사제국과 헬라 제국을 수양과 숫염소의 두 뿔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단8:). 그러니 이것은 이 세상의 무신론적이고, 반신론적이요, 유물론적이요, 우상숭배적인 국가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타락한 교권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컨대,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철로 뿔을 만들어 가지고, 이것들로 전쟁 무기를 삼아 적을 무찌르라고 아합에게 거짓 예언을 한 일이 있습니다(왕상22:11).
이 때 진리의 선지자 미가야는 왕과 백성 앞에서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은 일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 400명대 미가 선지자 한 사람의 경우였습니다. 이런 경우 뿔은 타락한 종교권(宗敎權)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뿔을 손에 든다’ 함은 자기의 힘을 의식하고 교만해 짐을 뜻합니다. 또 ‘뿔로 들이민다’ 함은 권력 투쟁이나, 신앙 박해를 의미합니다. 또 ‘뿔을 손에서 나오게 한다’ 함은 권력 장악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네 뿔이란 무엇을 의미함인가1)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공격하는 사방의 원수들을 의미합니다.
2) 역사상에 적기독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 등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다니엘서에 나타난 4대 제국의 환상일 수 있습니다.
3) 종교 개혁자 칼빈(J. Calvin)은 여기 네 뿔은 여러 시대마다 지상 제국들에 등장했던 하나님 나라의 원수들, 교회의 원수들, 곧 적기독의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1장 21절에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이라고 하였습니다. 1장 19절에는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헤친 뿔’이란 ‘날려 흩어 버림’을 뜻합니다. 그것은 여자적(如子的)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산을 뜻합니다. 1장 21절 중에는 저들이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했다고 하므로 선민들을 괴롭힌 정체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네 뿔’은 선민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 이스라엘의 원수, 교회의 원수를 뜻함이 확실합니다.
Ⅱ. 네 공장(工匠)의 환상(1:20-21)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 선민 이스라엘을 헤치려고 하는 네 뿔을 보았을 때 실로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표현 중 때에 라고 하므로 그 무서운 네 뿔의 환난을 대치하는 또 다른 환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하였습니다(1:18).
다급해진 선지자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그들이 무엇 하러 왔나이까라고 묻게 되었습니다(1:21). 그 때 선지자에게 대답하기를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 치려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1:21).
1. 먼저 공장(工匠)이란 무엇인가
여기 공장이란 히브리어 하라쉼()은 ‘기술공들’(crftsmen)을 의미합니다. 영어 성경 제임스 왕역(譯)은 이 말을 목수(carpenters)로 번역했고, 미국 표준역(RSV)은 ‘대장장이들’(smith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자르고’(cut in) 새기고(engrave), 혹은 파헤치는 것(plough)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이 말은 흔히 나무를 가지고 일하는 목공이나, 쇠를 가지고 일하는 철공이나, 돌을 다듬어 일하는 석공들이나, 기타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2. 어디로부터 보냄을 받았는가
1장 20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필연에 따라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들임이 틀림없습니다.
3. 이 공장들이 언제 나타났는가
1장 20절에 때에 나타났습니다. 곧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네 뿔에 의하여 분산되고, 고난을 겪을 때였습니다. 네 뿔에 찔려 흩어짐을 당할 때였습니다. 선민이 원수들에 의하여 고난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4. 네 뿔보다 우수하고 강한 공장들입니다.
공장은 뿔보다 더 굳은 철퇴나, 돌을 가지고 있으니, 능히 뿔들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공장(工匠)은 자르고, 새기고, 다듬고, 파헤치는 지혜 있는 기능공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익숙한 하나님의 기능공이니 능히 뿔을 부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짐승보다(뿔) 사람은 우수하고, 강합니다.
5. 네 공장들의 임무는 무엇인가
저들은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는가
첫째로, 그 뿔들을 두렵게 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1:21).
이 말은 선민의 대적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 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를 대행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떨어 치려 왔다고 하였습니다(1:21).
‘떨어 치다’는 말 야다()는 ‘내 던지다’, ‘팽개치다’는 말로써 산산조각을 내어 날려 흩어 보내어 버림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선민의 대적들을 멸절시키로 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선민의 구원자’로 왔다는 것입니다. 악인 심판은 선민 구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6. 네 공장의 정체가 무엇인가
몇가지 경우의 해석들이 있습니다.
첫째, 선민의 대적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사용하신 백성들과 국가들이라고 하는 해석입니다.
둘째, 여기 공장을 ‘건축자’로 해석하고 신약 교회의 영적 건축자들인 사도들과 기타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고전3:10).
셋째, 확실히 알 수 있는 해석은 이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자들이고, 선민의 구원을 위하여 보냄 받은 악인 심판의 도구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대하고 중대한 두 번째 환상의 중심 뜻은 스가랴 시대의 성전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는 소망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선민들이 겪는 이 세상의 모든 환난들에 대하여 언제나 만반의 대응책, 곧 구원의 계획이 있다는 뜻입니다.
네 뿔로 인하여 당하는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참상을 보는 선지자 스가랴의 마음은 심히 근심되고, 아팠지만 곧 하나님께서 보낸, 네 공장들의 철장권세의 행사(行事)로 인하여 네 뿔의 떠받음을 여지없이 물리치는 사실을 보고 소망을 갖게 된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보여주는 네 공장과 네 뿔의 환상 계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하신 주권을 보게 됩니다.
네 뿔, 곧 선민의 대적은 하나님의 자주장(自主張) 아래 있습니다(1:18). 그를 물리칠 네 공장도 하나님께서 보냈습니다(1:20). 그리고 악인 심판과 선민 구원을 위한 때 곧 시간도 하나님의 손에서 자주장되고 있음을 봅니다(1:20).
뿐만아니라 구원 역사에 수종자들인 영물 곧 천사도 하나님의 손에서 자주장됩니다(1:19). 그리고 하나님의 종, 선지자도 하나님의 손에서 자주장되고 있습니다. 그의 눈이, 그의 입이, 그의 사고와 판단이 전부 하나님의 자주장 아래 있습니다. 그는 네 뿔도 보았고, 그 공장도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정체와 내용을 묻고, 깨닫고, 전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항상 대적들의 뿔에 포위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1:18-19). 아벨과 셋과 노아와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바벨론에서 포위를 당했습니다. 오늘 지상의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적기독의 도전 속에서 포위를 당하고 있습니다. 온갖류의 유형, 무형의 뿔들 속에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이 무서운 ‘열국의 뿔’들이 대동단결(大同團結)하여 주님의 교회를 포위하고, 도전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계11:,16:).
그럼에도 하나님은 네 뿔의 도전에 네 공장을 준비하였습니다. 네 공장은 네 뿔을 산산조각 내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전혀 재생이 불가능한 완전 파괴를 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백성의 완전 승리, 궁극적 구원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결코 선민 이스라엘이 받은 포로 이후의 대역사인 예루살렘 성전 공사는 기필코 성공하고 말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네개의 뿔
슥 01:18-21
본문에는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두 번째로 보여주시는 네 뿔의 환상과 공장의 환상이 나타납니다.
1. 네 뿔 환상의 의미1).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슥1:19하)
동양 사람들은 특별히 뿔을 왕의 홀로 말합니다.
왕이 홀을 잡았다는 말입니다.
뿔은 권력을 의미합니다.
권력, 힘, 권능을 가진 것을 뿔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무엇입니까” 스가랴의 질문에 대한 천사의 대답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해친 뿔이니라” 였습니다.
이 네 뿔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포함한 하나님의 백성을 흩어 버린 권력을 말합니다.
또한 이 힘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힘입니다.
2). 교만
“유다 땅을 헤친 열 국의 뿔을 떨어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슥1:21하)
뿔이라고 하는 것은 힘의 상징이요 권력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교만의 상징입니다.
뿔을 가진 동물들은 대개가 교만입니다.
이와 같이 뿔이라고 하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요 교만의 상징인데 이 뿔을 가진 것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민족을 흩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까지 헤쳐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뿔은 하나님의 백성을 망하게 한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마리아와 앗시리아와 바벨론 등은 북방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히고 흩어 버린 나라요 남쪽으로는 애굽이 괴롭히고 서쪽으로는 가나안의 원주민들인 불레셋이 있으며 여리고를 넘어서면 가나안 칠족이 남아 있습니다.
가나안 칠족과 불레셋 족속, 아모리 족속을 멸하지 못하고서는 가나안을 완전히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동쪽으로는 암몬과 모압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요단강 건너편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압족이 살던 큰 산이 보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원수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안하게 살지를 못하고 늘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그들은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헤쳐 버리고 유다 민족을 흩어 버리는 일들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2. 공장의 환상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슥1:20)
스가랴가 네뿔의 환상만 보았고 말했으면 이스라엘이나 유다 백성이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불쾌했겠습니까. 그런데 스가랴는 위로를 줍니다.
또 다른 놀라운 환상을 봅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21절)
공장의 우리말 번역은 참 어렵습니다.
공장이란 말은 목수라고 해도 좋고 대장간에서 일하는 대장 쟁이라고도 하는데 만일 쇠를 가지고 일을 했다고 하면 대장장이일 것이고 나무를 가지고 일을 했다면 목수일 것입니다.
그런 네 사람의 일꾼이 나타난 것입니다.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 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 국의 뿔을 떨어 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슥1:21)
유다를 헤치고 이스라엘을 괴롭힌 네게의 뿔을 오히려 떨어뜨립니다.
대패질을 하고 끌질을 하고 톱질을 하는 목수들은 팔에 힘이 있으므로 네 사람의 상대가 나와 가지고 그 뿔을 꺾어 떨어뜨렸다는 말입니다.
힘에 힘으로 대항한 것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뿔을 산산조각 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리오왕 2년 6월에 학개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하라고 했는데 그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지 15년이 지나도록 재건을 안하므로 학개가 외쳤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스가랴 선지자가 8월에 예언을 하고 11월에 또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반드시 먼저 했어야 했는데 15년이나 미루니까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너희가 먼저 할 것은 잊어버렸구나” 말씀을 퍼부었습니다.
또한 “제 구실 못하는 사람은 그대로 둘 수 없지 않느냐 내가 칼을 들어서 치겠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 책망과 심판을 예고하시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기진맥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 짓는 일을 15년이나 못했으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다” 지금 화석류 나무 사이에 심판을 하려고 덤벼들고 있으니 이스라엘이 그만 부들부들 떱니다.
“이젠 끝났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버리시지를 않으셨습니다.
3. 하나님의 위로
두 번째 환상은 큰 위로의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게으름과 불 신앙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정직히 대답을 했으면 좋았겠는데 “원수들이 너무 많아서 못했습니다. 물자를 레바논에서 실어 와야 되고 나무를 캐 와야 되고 모든 것을 가져와야 되는데 사방으로 원수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못한 것이 아닙니까” 환경탓을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러면 내가 환경을 도와주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을 해서 환경이 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가 점점 질서가 생기고 편안해지고 온 세계가 코리아, 코리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너희 나라에 평안을 한 번 주어 보지 너희 환경을 한 번 정리해 주마” 교만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뿔로 받아서 헤치려고 하는 원수들을 하나님이 제거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힘센 공장들로 꺾어 버리게 해주시고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자, 이제 내가 환경을 정리해 주마, 너희들에게 평안을 주고 모든 물자를 실어 오는 것을 문제없게 하고 모든 여건을 조성해 주마, 이제부터 한 번 해 봐라.”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한 번 왔다가 속히 지나갑니다.
사람들은 기회가 올 때에 세 가지 종류로 사용합니다.
첫째, 기회를 오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못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건강의 기회, 가정의 평안의 기회, 나라의 평안의 기회, 물질을 주시는 기회, 자기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다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직분 자가 된 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새벽 기도회에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아무데나 있을 것같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회를 오용하면 안됩니다.
둘째, 기회를 남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회를 사용하는데 오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용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회를 바르게 사용해야 됩니다.
셋째, 기회를 선용하는 사람입니다.
기회를 잘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건강한 육신을 주신 기회를 가지고 죄짓는 데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직분을 가지고 마음의 위로나 받고 사업상 내세우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 나갈 때에 명함에 장로의 직책을 찍고 다닙니다.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남용하거나 악용해서는 안됩니다.
선용을 해야 됩니다.
교회를 둘러싼, 성도를 둘러싼, 진리를 둘러싼 모든 대적 자들을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다 산산조각 나게 해주시고 우리를 일단 보호해 주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요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출발하는 기회입니다.
교회는 결코 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무너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누구를 통해서라도 기어코 이루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교회에 주어진 기회를 놓칠까 두렵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협력하고 돕는 자리에 분명히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욕심만 차리고 내 일만 하다가 하나님의 일이 다 끝난 다음에 그때에 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미 기회는 지나간 것입니다.
스무살된 사람은 하루가 빨리 지나가서 얼른 장가들고 시집가려고 할지는 모르나 시간은 빨리 지나갑니다.
또 쉰 살이 되신 분은 하루 스물 네 시간이 다섯 시간 지나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아마 지금 육십이 넘으신 분들은 하루가 한 시간 지나가듯 할 것이고 칠십쯤 되신 분은 하루 스물네 시간이 삼십분 지나가듯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장 네 사람을 시켜서 네 뿔을 꺾어 버리시고 흩어 집어 던져 버리십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모든 평안과 기회와 이 모든 순간을 주셨습니다.
영적인 기회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이 새벽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만한 때가 이미 된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뿔과 대장장이
슥 1:18-21 / 강가에버드나무
바벨론 포로로 있을 때 야훼께서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2번째 환상의 2가지는 4개의 뿔 환상(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리는 뿔)과 대장장이 4명의 환상(뿔들을 두렵게 하고 떨어 뜨리는 대장장이)이었습니다.
1. 성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복을 받기로 작정한 우리들이 왜 고난을 받느냐?
우리 인생의 근심, 걱정,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1)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허물을 들추며 참소 하기 때문입니다.
2) 또한 아담으로부터 원죄를 물려 받았고 우리 스스로도 계속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2. 고난의 기간?
1) 하나님이 정하시는 때까지 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2) 마귀가 물러갈 때까지 입니다. 마귀를 결박해서 쫒아내야 합니다.
3) 내 자신이 깨어질 때까지 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가지고 쫒아오라고 합니다.
인생의 징계가 다가올 때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why?
그것을 통해 내가 깨어질 수 있다면 확식히 변화가 생기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깨어질 때 마귀가 물러나고 그때는 하나님이 청하실 때입니다.
금식기도를 하는 것도 밥을 굶으며 기도를 하다보면 결국 항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고난의 실체?
1) 뿔 :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마귀의 영적인 권세)
2) 4개 : 동서남북 사방
적대적 4개국(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 파사)
뿔은 강력한 무기인데 그런 뿔이 4개입니다.
뿔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괴롭히는 마귀의 힘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한쪽에서 오지 않습니다. 사방팔방에서 다가와 어디로도 피할 수 없습니다.
마귀의 힘은 죄의 권세, 저주의 권세, 질병의 권세, 죽음의 권세로 나타납니다.
나를 괴롭히는 인생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4. 마귀의 권세(뿔)를 깨뜨리시는 하나님
1) 대장장이 : 쇠붙이를 불로 연단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
2) 4명 : 뿔이 4개면 대장장이도 4명 - 문제에 맞게 해결책도 조절하심
대장장이는 쇠를 불에 달구어 엿가락처럼 휘게 합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니 4명의 대장장이를 보내어 우리의 고난, 마귀의 권세를 휘어 버립니다.
나를 괴롭히는 권세를 부수는 대장장이가 있고 이는 하나님이 보내주십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대장장이를 보내주십니다.
내가 열심히 산다고 내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대장장이를 보내서 마귀를 깨뜨리십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쉽게 됩니다. 깜짝 놀랄만한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십니다. 마귀의 권세를 휘어버립니다.
일어나라! 빛을 바래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마귀의 죄, 저주, 질병, 죽음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로 말씀, 기도, 찬양, 성령충만의 권세를 받아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학개/스가랴: 성전 재건은 임마누엘 의미
심령과 삶의 성
오늘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학개서와 스가랴서의 배경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는 유다백성들이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선지자들입니다. BC 538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칙령(대하36:22-23, 라1:1-4)을 내렸고, 유다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해에 대제사장 예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1차 포로귀환단 약 5만 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라2장).
2년 후(BC 536년),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라3:8-13). 이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찾아와서 성전건축을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예수아와 스룹바벨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거절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고(라4:1-4) 결국 바사(페르시아) 왕 다리오 제위 2년(BC 520년)까지 약 16년 동안 성전 건축공사가 중단이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유다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성전 건축을 격려하십니다(라4:23-라5:2) 드디어 성전 건축공사가 재개된 지 4년 만에 하나님의 성전이 다리오 왕 제위 6년(BC 516년)에 완공됩니다(라6:15). 성전이 무너지고(BC 586년) 꼭 70년이 지났을 때(BC 516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70년의 징계기간이 지나면 회복시켜 주겠다’는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은 에스겔을 통하여 주신 ‘성전의 무너짐과 성전의 재건’이라는 예언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왜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실까요?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며 통치의 좌소입니다. 그런데 남방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면서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은 유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을 떠났다’는 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재건시켜 주시겠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다시 임마누엘 하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고 화려한 외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다하여 세워지는 성전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심령이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지기를 바라시며, 그들에게 성전을 지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학개와 스가랴서의 내용입니다.
학개서의 내용
다리오 왕 제위 2년 6월 1일에(성전공사가 중단된 지 16년이 지난 BC 520년)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예수아)에게 보내셔서 성전건축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십니다(학1:1). 성전건축이 16년이나 중단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성전건축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들은 ‘판벽한 집’(좋은 주택)에 거주하면서도 ‘아직 성전 건축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학1:2-6).
하나님께서는 비싼 재료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서 짓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학1:8). 왜냐하면 ‘성전건축’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장소입니다(학1:13). 성전 건축은 결국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지금 새로 짓고 있는 성전이 화려하지 못하여도, 그곳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학2:3-4). 하나님께서 임마누엘하시겠다는 약속은 출애굽 당시 성막을 지으실 때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학2:5). 솔로몬의 성전보다 화려하지 못해도 마음을 담아서 건축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학2:8-9).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을 시작한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보다, 우리 심령과 삶의 성전도 거룩하게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과 나라가 행하는 일들이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바람과 곰팡이와 우박을 내리셔서, 곡식과 포도주의 소산이 그들의 기대보다 훨씬 적게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학2:10-17). 성전기초를 완성한 오늘부터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학2:18-19). 즉,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을 하는 그들의 심령이 먼저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질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진동시켜서 (성전공사를 방해하는) 여러 나라들의 왕위와 권력을 무너뜨릴 것이며, 그들의 전차를 엎어버리며, 그들의 말과 기병들이 서로를 죽이게 할 것이다. 스룹바벨아! 힘을 내거라! 내가 너를 주변 나라들 가운데 높이 세우고, 나의 대리자로 삼겠다!’(학2:20-23) 이런 메시지를 들은 유다백성들은 힘이 나서 성전건축을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스가랴서의 내용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이며, 베레갸의 아들입니다. 학개 선지자보다 2개월 늦게(다리오 왕 제위 2년 8월) 사역을 시작합니다(슥1:1).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슥1:3). 유다백성들이 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났던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슥1:4). 조상들의 죄, 즉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조상의 죄를 반복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스가랴는 그가 본 여덟 개의 환상을 선포합니다. 각 환상은 성전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과 성전재건을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환상을 통해 빨간 말을 타고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천사가 ‘하나님, 진노의 기간 70년이 지났습니다. 언제 유다와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묻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슥1:7-12).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예루살렘을 사랑한다. 내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내가 나의 집(성전)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슥1:13-17).
두 번째 환상을 통해 유다를 흩었던 네 뿔과, 그 뿔을 파괴할 네 명의 대장장이를 보여주셨습니다(슥1:18-21).
세 번째 환상을 통해 성전을 건축할 측량줄을 든 사람을 보여주셨습니다(슥2:1). 측량한 대로 성전을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는 불성곽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즉, 임마누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슥2:2-13).
네 번째 환상을 통해 불에 거슬린 누추한 옷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예수아)의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결한 관을 머리에 씌우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슥3:1-5).
다섯 번째 환상을 통해 순금 촛대와 그 곁에 있는 두 감람나무를 보여주시며, ‘성전건축은 너희들의 힘과 능력으로 완성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큰 산과 같은 장애물을 내가 무너뜨려서 평지처럼 만들어 줄 것이다’(슥4:1-10). 여섯 번째 환상과 일곱 번째 환상은 각각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쌀통 속에 넣어져 천사들에 의해서 바벨론으로 옮겨지는 사악한 여인을 보여주셨고(슥5장). 여덟 번째 환상을 통해서 네 가지 다른 색 말들이 끌고 나오는 네 대의 마차를 보여주셨습니다(슥6:1-8).
이 환상들을 보여주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들과 함께 거주할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슥8:1-8).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겸손하여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오십니다(슥9:9-10). 이 말씀에서 예언된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마21:1-11). 그 분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며(슥12장), 죄와 더러움을 씻어 주시는 샘이 되실 것입니다(슥13장).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동원하셔서 예루살렘을 징계하셨지만 남은 백성들은 끊어지지 아니하도록 보호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슥14:1-3). 과연 하나님은 온 천하의 왕이십니다(슥14:9).
승리를 바라봅시다
슥 1:18-21 / Leeseil
서론
우리는 실패에 집중하기가 쉽습니다. 저 역시 연약함이 있는 사람인데 여러 곳에서 나의 연약함을 발견할 때면 마음이 어려워 집니다. 가정에서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것 같을 때, 일터에서 나의 실수들이 드러날 때, 교회에서도 내가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며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감사함이 있다가도 때로는 그에 걸맞지 않은 내 모습 때문에 그러한 타이틀이 더 부담과 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기에 비해 세상은 너무나 타락해 있고 구조적인 악이 지배하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과연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게 되고 어느 순간 내 믿음을 지키는 수준에서만 머무르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은 생각과 마음에서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탄도 그것을 알기에 우리의 마음의 연약함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진 인간입니다. 우리 속에서 선한 것을 찾고자 한다면 이 싸움은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영적 싸움을 이기기 위해선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만 승리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이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같이 나누었듯이 스가랴서는 포로시대에 대적들의 반대로 성전건축이 너무나 힘들어 포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다시 격려하기 위한 성경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두 번째 환상입니다. 첫 번째 환상인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홍마를 탄 여호와의 사자 환상은 고난의 현장 가운데 함께헤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그 환상의 연장선에서 네 뿔과 같ㅌ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의 권세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이 보내신 대장장이에 의해서 멸망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승리를 보여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연약함으로 더욱 하나님을 의존하여 승리를 꿈꾸게 하시며 결국 그 승리를 누리게 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느끼기에 더디 오는 것처럼 보여도 가장 적절한 때에 완전하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어려움과 고통을 성숙의 과정으로 여기고 기쁘게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눈을 들어 본즉: 눈 앞에 나타난 사물이나 광경을 주목하고자 의도적으로 시각을 고정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가랴는 첫 번째 환상에 이어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에 주목하기 원하였습니다. 우리도 문제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거기로부터 소망과 승리를 보게 될 줄 믿습니다.
보이기로: '그런데 보라’라는 감탄의 외침입니다. 우리도 스가랴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것들에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영적전쟁에 승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승리를 바라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우리의 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19).
네 개의 뿔을 본 스가랴는 질문합니다.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바로 이러한 태도가 중요합니다.환상을 보는 신비한 체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비한 체험은 다른 종교도 다 흉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으로부터 정확하게 그 뜻을 알기 원했기에 주목하면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 대답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
뿔은 성경에서 권력과 힘의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뿔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라고 합니다. 흩뜨렸다는 것은 원어상 ‘키질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끌고가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스가랴가 네개의 뿔을 봤다는 것은 특별한 4개의 나라를 의미하기 보다는 이스라엘을 압박한 4방의 모든 나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너머에 그것을 공격한 뿔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슬픔, 염려, 죄책감, 두려움 등 수없이 많은 고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제공하는 적이 있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분별하지 못할 때 영적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렇다고 베뢰아 이단처럼 모든 것을 귀신이 그랬다고 해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여러가지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는 사탄의 정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 어렸을 때 시골에서 문풍지 너머 그림자를 귀신으로 착각 -> 아침에 보니 선풍기 날개
어둠 속에 있을 땐 막연한 두려움으로 있던 것이 빛으로 드러나 보게 되니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되었습니다.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빛을 비추면 어둠은 물러가기 마련입니다. 어둠이 주는 고통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빛으로 그 정체를 분별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통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20).
하나님의 환상은 네 뿔에서 멈추지가 않고 네 대장장이까지 보여 주십니다. 우리의 적을 보는 것은 분별력을 위해서 중요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21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스가랴는 이번에도 이 대장장이의 의미를 질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얻게 됩니다. 고대 세계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땅에 댄다는 것으로 철저한 복종과 굴종을 상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뿔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대장장이가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할 것이라고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장장이는 뿔을 다스릴 줄 아는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를 찌르는 뿔이 아무리 날카로와도 하나님이 보내신 대장장이는 다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적이 아무리 거대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대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경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하나님 빛 앞에 우리의 대적들은 아무것도 아닌 정체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 대적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이 온 세상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통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주권앞에 자신이 인도되고 있음을 알 때 진정한 승리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21).
스가랴가 본 것은 아직 현실이 아닌 환상으로 주어진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직 약속으로 주어진 것으로 그 약속을 붙들고 신뢰할 때 그 승리를 현실에서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싸움에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 권세를 위임하였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피의 권세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싸움의 승리에만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작은 전투의 승리가 아닌 최후 승리를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70명의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떠나간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도 그것보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영원한 승리, 완벽한 승리가 약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승리를 어린 아이들 같이 순전한 자들에게 보여 주심을 감사하셨습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승리의 비결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를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를 약속받았습니다. 오늘 잠깐 넘어지는 것 같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결 론
우리 안에는 선한 것, 소망이 없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약점을 건드려 공격하여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으로 어둠을 비추어 적은 정체를 드러낼 때 적은 떠나갈 것입니다. 온 세상을 통치하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진정 우리가 두려워하고 경외할 분은 한 분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모든 죄값을 치루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승리를 보장받은 자입니다. 그 약속을 붙들 때 매일의 치열한 영적 싸움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어떤 자리 어떤 모습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실 때 승리의 삶이 성도님들에게도 허락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