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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발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았다.
그는 단지 혼자서 이곳에 오고 싶을 뿐이었고 자신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이 장소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이곳은 금기의 장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으니까. 불편한 진실은 듣기 좋고 보기 좋은 허구로 덮어씌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령 누군가 그 잔혹한 진실을 눈치 챘더라고 하더라도 그는 그 진실에 눈을 돌리며 허구에 만족하며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허구를 진실로 믿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낸, 그의 아버지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로 인해 덮어진 진실이 숨겨져 있는 이곳은 그의 가족들은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그는 확신한 것이고, 다른 사람 또한 누군가의 죽음에 깊게 슬퍼할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장소에는 아무도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다시 앞을 보았다.
선객이 있었다.
위아래 전부 검은색 일색(一色)으로 맞추어 입은 그 여자는 묘지 앞에 하얀꽃을 바치고 있었다. 나이는 그와 같거나 조금 어려보이는 정도이다. 그녀는 슬픈 얼굴을 하고 꽃을 바치기 위해서 굽혔던 허리를 폈다.
약간 뽀얀 얼굴에 슬픔이 담겨있는 별 같은 눈동자, 검은 구름같은 풍성한 머리카락은 여전히 넘실거리며 허리춤에서 흔들렸다. 4년의 시간속에서도 그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그리운 기분이 되어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제 돌아가려는 듯 뒤를 돌아봤을 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고운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지며 증오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유…시우”
그녀는 그 이름을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시우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너, 여기 어떻게 있는거지?”
“내 동생의 무덤도 찾아오면 안 돼는 거냐?”
그가 그녀의 증오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자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쥐며 역시 증오에 가득 찬 눈동자로 그를 꿰뚫었다.
“게다가, 너 어떻게 여기 있는거지? 여기는 우리가족 밖에 모를텐데”
“……수 언니가 가르쳐줬어”
“수 언니? 아, 유모 말인가”
쓸 때 없는 짓을 했군, 중얼거리며 시우는 한 발짝 내딪었다.
“오지마!”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그녀는 이렇게 묻는 시우가 가증스럽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몰라서 물어?”
“물론, 동생에게 성묘 좀 하겠다는데 그걸 말리는 거냐?”
“…너는 자격 없어”
그녀의 입술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은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분을 삼키듯 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시우는 약간 마른 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의 형이다. 이 정도면 자격은 충분해, 너야 말로 자격이 없는거 아니야? 내 동생과 어떠한 관계도 아닌 타인인 주제에”
“아니야! 난, 나는!”
그녀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모습에 그는 명백한 비웃음을 얼굴에 만들더니 느릿한 발걸음으로 그의 동생인 ‘유지우’의 무덤으로 발을 움직였다. 이윽고 그의 신형이 그녀의 옆에 서자 그녀가 아주 작고 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우를 사랑했어…”
“아아ㅡ그랬지”
“그걸로 자격은 안 돼는 거야?”
“그래봤자 타인, 애인이란 관계는 애정이란 불확실한 것에 비롯되는 거야, 애인은 가족이 될 수는 없지”
그의 사늘한 말에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들더니 그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어, 정말이었다고! 죽을 만큼 사랑했어! 그러니까 자격은 충분하잖아?!”
“아아, 그렇지 애인이라는 것이 발전되면 배우자의 관계로서 승격 될 수는 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너와 지우의 사이는 가족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너희들을 관찰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누구도 네가 여기에 있는것을 뭐라고 하진 않겠지”
“그, 그럼!”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 생각에는 너는 지우를 사랑 한것 같지 않다. 단순히 가슴의 고동이 조금 빠르게 맥박치고 가슴이 답답하고 처음 느껴보는 신체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의 원인을 지우 녀석에게 찾은 것에 지나지 않아”
“아,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하지만, 넌 우리들을 구별하지도 못했잖아?”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다시 숙였다.
지우와 시우는 일란성 쌍둥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났고 약 1분정도 시우가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형이 된 것이다. 일란성 쌍둥임으로 그 둘을 같은 옷을 입혀놓고 세워놓으면 알아보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를 어렸을 때부터 돌봐온 유모조차 그들이 입고 있는 옷차림세로 알아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사람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분간할 수 있었지, 여렸을 때부터 병약하시던 어머니는 우리를 출산하시고 더욱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우리와의 만남은 일주일에 한 번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를 구별해 냈어, 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같은 말투를 써도 말이야”
“……”
“그래, 어머니는 한달에 다섯 번도 우리를 보지 못하셨지만 우리를 분간할 수 있었다. 그게 사랑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히 ‘지우’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하지만 넌 아니잖아? 그래서 나에게 입술을 빼앗긴게 아닌가?”
순간 그의 머리가 세차게 돌아갔다. 그의 왼쪽 뺨에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고 그녀의 오른손은 어느새 왼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녀는 거친숨을 내뱉으며,
“나쁜놈”
그녀는 말했다.
“그래, 내가 너와 지우를 분간하지 못한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알아 가려고 했어, 그러려고 했어, 너희들은 정말 똑같으니까. 지우가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너희를 분간할 수 있는 건 옷차림과 성격뿐이었으니까!”
그녀는 거친 숨을 다시금 몰아쉬며 눈물이 고인 눈동자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조차 막지 못한 채로 말을 이었다.
“나와 지우는 타인이었으니까. 피도 섞여있지 않고 네가 말한 대로 애정이란 것으로, 그런 희미한 것으로 이어졌을 뿐이니까! 하지만 타인이라도 서로 알아 갈 수는 있잖아? 서로 모르니까 서로 알아가려는 거잖아. 단지 몰랐을 뿐이잖아. 그것뿐이잖아. 그런데……그런데..”
“몰랐다는 핑계로 속죄 받을 생각은 하지도마”
그는 왼쪽 가슴을 오른쪽 손으로 압박했다. 심장의 고동이 온몸을 울리는 것 같은 느낌.
“그래, 인정한다. 내가 지우처럼 안경을 쓰고 너의 입술을 빼앗았다는 것, 어린 마음의 질투심 같은 것으로 회피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로 인해 지우가 상처받은 것은 사실이다. 네가 나와 지우를 착각해서 말이야”
그녀는 입을 악 물었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 몸의 떨림, 뭐가 형영 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 마음속의 두 가지 마음이 용솟음치며 부딪친다. 하나는 자신의 대한 수치심, 또 하나는 이런 사태를 만들러낸 시우의 대한 원망이다.
“정말 실망이다. 송유나. 지우도 크게 실망할거다”
죽은자를 우롱하는 듯한 울림에 그녀의 손이 다시금 휘둘러졌지만 그 손은 시우의 손으로 막혔다.
“사람은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법이야”
왠지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시우의 모습에 그녀, 유나도 그의 손에 잡혀 있는 손에 힘을 뺀다.
“겉모습이 사람 관계에 많이 영향을 준다고 해도 그 사람을 그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지-다른 사람과 혼동되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니까-그 속을 봐야해, 물론 그게 쉽지는 않지. 사람은 저마다 가면 하나쯤은 있으니까, 안 그래? 유나?”
울렁거림이 심해진다. 유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이후 눈물을 닦아낸 손을 내리고 트인 시야로 보인 것은 보라색 뿔테 안경이었다.
“이건?”
“지우의 안경이다. 가져가”
“이걸 왜 나한테 줘, 나는 자격이 없다며”
“단순한 변덕이야, 너와 함께 있으면 지우는 확실히 행복했으니까”
유나는 머뭇머뭇 거리며 안경을 받아 들었다.
“조금 기회를 주는 거야, 다시 되 돌릴 수 있는 기회 말이야, 아직도 네가 지우를 사랑한다면 말이지, 진실을 볼 수 있겠지”
그런 알 수 없을 말을 하는 시우를 보며 유나는 안경을 움켜쥐었다.
“누가 너 같은 거한테, 인정받고 싶대? 넌 지우를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 아니잖아!”
“……”
“자기 동생을 죽인 주제에! 이유가 뭐가 됐던 그거야 말로 크나큰 죄야! 아무리 진실을 은폐해도 진실은 바뀌지 않아, 세상이 몰라도 내가 알고 있고, 너 스스로도 알고 있잖아. 사실 지금 이러는 것도 너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려는 거잖아!”
그렇게 소리치고 유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그 작아지는 모습을 시우는 바라보고 있다가 묘지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지우에게 바치는 하얀 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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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에서 시우를 기다리고 있던 그의 유모-이지수는 방금 전에 도망치듯이 계단을 내려온 한 여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그것은 분명히 송유나, 지우 도련님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지우 도련님이 시우 도련님에게 살해당하던 그때 가장 슬퍼하던 인물은 그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그녀였다. 그녀와 시우 도련님의 관계는 그 주변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 그녀의 상심은 당연한 것이었겠지.
유나, 그녀는 그 사건을 직접 본 얼마 안 되는 사람이다. 그 장면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강렬함으로 그녀의 뇌에 각인 되어있겠지.
낮은 비명소리,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에 펼쳐진 붉은 빛의 세계와 똑같이 생긴 남자 아이 둘이서 있는 쪽은 한손에 피를 묻힌 채로 멍하니 서 있었고 또 한명은 쓰러진 채 가슴에 칼 한 자루가 꽂힌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둘은 너무나도 똑같아서 구별할 방법은 단 한 가지 안경이었다. 서 있는 쪽은 안경을 쓰지 않았고 쓰러진 쪽은 보라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역시 왔었구나”
그녀는 멀어져 가는 유나의 뒷모습을 보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렇게 뛰어가는 거지?
잠시 후 저 위에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시우의 모습에 그 의문은 날아갔다. 그녀는 도련님의 모습을 보며 다시 고개를 갸웃해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손에 하얀 꽃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에요?”
그렇게 말하자 그는 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나에게 온 선물이야, 다른 사람한테 잘못 갔더라고”
“네? 그랬어요?”
도대체 누가 어디에서 선물을 줬다고 하는 것일까? 게다가 잘못 갔다는건 또 뭐지? 그런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입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유는 시우의 얼굴이 약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 우는 듯한 웃음.
“그거 누가 준거에요?”
이거? 하고 손가락으로 꽃을 가리킨 시우는 대답했다.
“아주 소중한 사람…”
첫댓글 지우가왜시우인척하고있는지궁금해요!
정말~~ 재미었요. 번외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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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잘 봤습니다!번외 기대할께요~^^
번외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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