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28〉
■ 매미 울음 끝에 (박재삼, 1933~1997)
막바지 뙤약볕 속
한창 매미 울음은
한여름 무더위를 그 절정까지 올려놓고는
이렇게 다시 조용할 수 있는가,
지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정적(靜寂)의 소리인 듯 쟁쟁쟁
천지가 하는 별의별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히 빨려들게 하구나.
사랑도 어쩌면
그와 같은 것인가
소나기처럼 숨이 차게
정수리부터 목물로 들이 붓더니
얼마 후에는
그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맑은 구름만 눈이 부시게
하늘 위에 펼치기만 하노니.
- 1987년 시선집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미래사)
*무더위 속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얼마 전부터 한풀 꺾여 뜸해가더니, 처서가 지나서는 신기하게도 귀뚜라미나 풀벌레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제부터는 전국적으로 늦은 장마가 시작되며, 내리쬐던 폭염과 무더위도 끝이 보이는 듯 싶군요.
시골에 살다 보니 땡볕 가득한 무더위 속에도 가을이 저기서 오고 있는 것을 자연스레 감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낮에는 곡식과 과일이 여물어 가는 것을 곁에서 눈으로 볼 수 있고, 밤이 되면 서늘한 바깥공기 아래 밤벌레 소리가 시끄러워지는 게 금세 눈과 귀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詩는 한여름 매미 울음소리를 소재로 사람들의 사랑의 감정과 비교하여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즉, 여름날 그렇게 시끄럽던 매미소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서 정적이 오고 가을로 바뀌는 것처럼, 사람들도 금방 죽을 것처럼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싸늘히 식어버리고 마는 것을 통해 삶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게 보도록 해주는군요.
어쩌면 우리들이 자연으로부터 겸허히 배워야 할 것들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