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은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결혼을 하고 통영여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때, 홀연히 강사로 부임한 미망인인
대구 출신 정운 이영도에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청마는 1947년 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시와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5천통이 훨씬 넘는 양이라고 한다.
나같은 범인(凡人)은 평생 잠을 안 자고 노력해도 안 될 양이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행 복 -청마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교적 관습을 탈피할 수 없던 정운은 받아들이지 않다가 3년이 넘어서야 마음만 받아 들였다고 한다.
1967년 청마가 교통 사고로 사망한 뒤 그가 보냈던 연서 중 200여통을 추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시집을 냈다고 한다.
그리고 청마의 사망에 대한 추모의 정을 짧은 시로 남기기도 했다.
탑 3 -정운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에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청마의 시를 올리는 김에 나의 중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올라 있던 '바위'와 다른 한편 '그리움'을 올려 본다.
청마는 여기 올린 시 '그리움' 외에도 같은 제목의 시 몇 편이 더 있는 것 같다! 청마의 고향 통영에는 현재 총 52km
거리의 '그리움종주'라는 멋진 걷기길이 있다한다. 아래의 시에서 따온 이름인 듯 한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바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哀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그리움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