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나’를 위한 기도, ‘우리’를 위한 기도 중에 어떤 기도에 마음이 더 머물러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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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9/연중 제27주간 수요일/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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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11장 1-4절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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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준 유일한 기도라고 알려져 있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 기록되어 있지요. 같은 주님의 기도지만 마태오 복음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에, 루카 복음은 ‘어떻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도해야 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 할까요? 저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방법의 핵심에 바로 ‘우리’가 있다고 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나’를 위한 기도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하느님께 비는 건 “우리”로서 가능합니다. 하느님은 아들과의 관계 안에서 아버지시고, 관계 안에서 아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빌고 얻는 건, 관계 안에서의 일이지 개인적인 좋고 싫음에 있지 않습니다. 개인이 강하면, 그것이 전부면 ‘우리’는 죽어갑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전반부에 이어 후반부 역시 모두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나의 기쁨을 위해, 나의 만족을 위해, 나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함께 행복하기 위해 기도드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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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 마르티노 신부(대구대교구)
생활성서 2024년 10월호 '소금항아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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