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나라 덴마크에 ‘얀테(Jante)’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다음 『얀테의 법칙』 10가지를 지켜야 합니다.
1.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2. 네가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3. 네가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4. 네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5. 네가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6. 네가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7. 네가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8. 남들을 비웃지 말라.
9. 남들이 너를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말라.
10. 네가 남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쉽게 말해 ‘잘난 사람’,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마을이죠. 여러분은 이 ‘얀테’ 마을에 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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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떠올리기 전에 『얀테의 법칙』과 연결하여 먼저 우리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또 세계 행복 최상위권은 어느 나라들이고, 그들의 행복 비법은 무엇일까요? 그 행복 국가들과 비교를 통해 한국 사회의 내면 의식을 비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가 매년 전 세계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합니다.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갤럽 설문조사(Gallup World Poll)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득, 기대수명, 복지,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 등 6개 지표를 고려하여 산출하는데,
『2024년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0점 만점에 6.1로 세계 143개국 가운데 52위입니다. 국가 GDP 순위 12위에 비해 매우 낮고, OECD 그룹 내 하위권입니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핀란드로 7년 연속 행복 챔피언 왕좌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어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인데, 특이한 점이 있음. 7위 노르웨이까지 행복 국가 TOP 7이 이스라엘을 빼면 모두 북유럽의 노르딕 바이킹 국가(네덜란드도 넓게 보면 바이킹 국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유독 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 국가들이 세계 행복 국가 순위 최상단을 싹쓸이하고 있는지 그 비결을 알아보고 행복 힌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얀테의 법칙』의 내용과 의미 >
그 이유의 하나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북유럽문화 특유의 얀테라겐(Jantelagen)임. 『얀테의 법칙(The Law of Jante)』인데요.
『얀테의 법칙』은 덴마크계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의 1933년 소설 『도망자는 지난 발자취를 되밟는다(A Fugitive Crosses His Tracks)』에 나오는 가상의 ‘얀테’ 마을 사람들이 지키던 법칙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얀테의 법칙』은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노르딕 사회에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관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연장자에게는 높임말을 써야 한다”와 같은 생활 규범인 것이죠.
『안테의 법칙』이 10개 항목이 되지만, 핵심은 “너는 특별하지 않다”라는 직설적인 메시지입니다.
그 맥락에서 나와 너 모두를 평범하고 상식적인 보통 사람으로 전제하고, 자신을 과시하거나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합니다. 이런 가치관이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질을 할 필요가 없겠죠.
『얀테의 법칙』이 북유럽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요.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 타잔역으로 열연한 스웨덴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Alexander J.H. Skarsgård)가 에미상을 받고 나서 미국 레이트나이트 쇼에 나와 『얀테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수상을 축하하자 불편해하고, 트로피를 우리 같으면 거실에 잘 보이게 진열할 텐데 친구 집과 여행 가방, 벽장 안으로 이리저리 옮기며 숨겼다고 합니다.
특별함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이죠. 이 정도면 겸손을 넘어 지나치게 눈치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스톡홀름 대학에서 인문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헌주 박사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스웨덴 사람들은 『얀테의 법칙』을 잘 말하지는 않으나 행동 방식은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으리라는 것이죠.
밑바탕 문화가 그렇다 보니 상부구조인 정치도 대화와 토론이 정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정당•시민 단체•기업 등이 함께 참여해 어울리는 정치 이벤트가 활발하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매년 여름 휴가철에 스웨덴은 ‘알메달렌 주간(The Almedalen Week)’이라 해서 발트해 한복판의 섬마을에 수만 명이 모여 각종 세미나와 연설회 등을 열고 편하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정치 박람회를 축제처럼 즐긴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독선과 억지, 거짓, 상대방을 저주하는 ‘너 죽고 나 살자’ 식 정쟁이 활개치기 어렵겠지요.
< 『얀테의 법칙』 때문에 북유럽이 행복한 이유 >
『얀테의 법칙』이 녹아든 사회는 개인주의보다 공동체 중심이 됩니다. 앞서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공을 과시하거나 튀지 않고 서로 존중 협력하며 겸손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죠.
거기에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 시스템과 사회적 안전망이 담보되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끼고, 개인의 돈•지위•명예보다는 공동체의 유대와 일상의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결국 『얀테의 법칙』이 삶을 간소화하고, 겸손과 협력을 앞세우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죠.
< 왜 대한민국은 행복하지 않은가? >
대한민국이 좀 더 행복해지려면 불편하지만 먼저 우리 자화상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비교질’을 하고 또 당하기도 합니다. 남과 비교해 자신을 과시하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반대로 열등감에 빠지는 경향이 강하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내가 누군지 알아?, 갑질, 왕의 DNA를 가진 아이” 이런 말들이 그 파편들이죠.
이런 사회의식은 사람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커지며 개개인의 행복을 갉아먹게 됩니다.
이 현상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얀테의 법칙』을 접하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특별함’을 향한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답지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특별함’을 부정하는 『얀테의 법칙』에서 소박한 교훈을 얻자는 것이죠.
한국 사회가 ‘특별함’에 집착한다? 얼른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예를 들죠. 만약 학교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당신 아이는 특별하지 않다.”거나 “평범하다.”고 말하면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특별’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죠.
또 ‘특별함’에 대한 애착을 나와 내 가족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국가 단위로 확장하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 대한민국에서 발견되는 현상인데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보다 자신이 기대하는 역할을 한 사람을 ‘특별함’으로 포장하고 자신의 희망을 보태 그를 영웅시하며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 후폭풍으로 사회적 스트레스가 양산되는 것이죠.
반면 『얀테의 법칙』은 사람들에게 “너는 평범하다.”는 전제하에 “네가 남보다 많이 알거나 남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겸손'과 '협력', ‘상대에 대한 존중’을 강조합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도 상대 존중과 협력이 중시되고, 실용적인 생활 방식이 강화되는 등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조선’ 같은 냉소에서 보듯 경제 강국 대한민국은 아직 걸맞은 행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 냉정한 현주소일 겁니다.
< 반(Anti) 『얀테의 법칙』 >
다만 『얀테의 법칙』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인격 향상에 도움 되는 덕목을 담고 있지만
지나치게 눈치를 강조하고 개성을 죽여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얀테의 법칙』이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와 비슷한데, 이쯤 해서 원작 소설 『도망자는 지난 발자취를 되밟는다』의 줄거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얀테 마을은 이상향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특별함이나 개인에 대한 주목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하는 강압적인 사회입니다. 오히려 규범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끼리 서로 감시하면서 개성이 돋보이는 행동을 억압합니다.
얀테 마을에서 자란 주인공 에스펜 아르나케(Espen Arnakke)는 그런 삶이 무척 답답했습니다. 결국 자유를 찾아 마을을 떠나 선원이 되어 다양한 경험을 하죠.
원작 소설이 의미하듯 실제 북유럽에는 반(反) 『얀테의 법칙』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잘난 척 잘하고 자기애가 강하기로 유명한 스웨덴 축구 선수 줄라탄(Zlatan Ibrahimović)이야말로 반(反) 『얀테의 법칙』 추종자라고 볼 수 있겠죠.
여담이지만 줄라탄은 부모가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로 스웨덴의 이민자 밀집 지역인 말뫼에서 자라서 『얀테의 법칙』을 배운 적이 별로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반 『얀테의 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너는 특별하다.
2. 너는 남들처럼 좋은 사람이다.
3. 너는 똑똑하다.
4. 너는 훌륭한 사람이다.
5. 너에게 남들이 관심을 가진다.
6.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
7. 너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
8. 너는 너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9.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10. 너는 남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만약 『얀테의 법칙』과 반 『얀테의 법칙』 가운데 하나를 자녀나 친구에게 권한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 반 『얀테의 법칙』을 고르실 것 같은데요.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고방식에 더 익숙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북유럽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얀테의 법칙』이 반 『얀테의 법칙』보다 더 행복 친화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얀테의 법칙』이 지나치게 겸손과 평등을 강조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을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하고 고소득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성찰을 통해 부작용을 직시하고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고 영상을 만든 목적입니다.
한 예로 스웨덴은 과거 젊은이들이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로 스타트 업 창업 같은 도전보다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고 동기부여가 약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혁신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 오늘날 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혁신 국가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매년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 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GII)를 보면, 2024년 스웨덴이 2위입니다. 같은 노르딕 국가인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도 모두 Top 10안에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 업) 기업 수가 인구 10만 명당 0.8개로 1.4개인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다고 합니다.
탄탄한 복지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로 이어지고 성공한 창업 기업과 신생 기업•대학•기관 간의 상생 공유 문화가 활성화되어 선순환되고 있는 것입니다.
『얀테의 법칙』의 단점을 성찰해 업그레이드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죠.
< 행복 대한민국 만들기 프로젝트 >
여기서 우리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정답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웨덴이 자신의 단점을 개선하였듯이 대한민국도 단점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개선하면 행복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행복 대한민국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제안을 하나 한다면
우선, “너는 특별하다.”의 ‘특별’의 의미부터 재정의하자는 것입니다. ‘특별’이 남보다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의미가 되어 서는 안됩니다. 그런 발상은 갈등과 분열만 일으킬 뿐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특별함’은 남과 다른 유일한 나만의 정체성, 독특함입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자존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간단하게 보이지만 ‘특별함’에 대한 생각을 바꿔 접근하게 되면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그 효과를 크게 3가지만 들어보면
우선 ‘다름’을 인정하기 쉽습니다. 내가 남과 다르듯이 남도 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흑백론이 아닌 토론과 협조가 활발해지고 독선이 줄어듭니다.
둘째로 수직적인 문화가 개선됩니다. 내가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듯 남도 마찬가지니까, 저마다의 생각과 개성, 직책을 존중하게 되어 창의적이고 예측 가능성이 높은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정직한 사회가 가능해집니다. 특히 중요한 사항인데요. 남보다 우월한 특별함을 추종하는 그런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거짓을 묵인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정직의 사회적 가치를 높게 쳐주지 않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제로섬 게임이 되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나라까지 속이려 합니다.
반면 협조와 존중이 강조되면 과정도 중시되고, 거짓이 암약할 공간이 줄게 됩니다. 사실 정직은 믿음이고, 믿음은 공동체의 생명인데, 정직 없이 어찌 그 공동체가 잘 굴러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얀테의 법칙』과 연결해 행복 대한민국을 위한 방안을 살폈습니다.
요점은 나를 인식하는 출발점인 “특별함”의 의미를 ‘뛰어남’이 아니라, 나만의 ‘독특함’으로 재정의하자는 것인데요.
크게 보면 이런 의식의 전환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함’의 의미를 ‘독특함’이나 ‘자존감’으로 재정의하게 되면 ‘다름’과 ‘존중’, ‘정직’의 정신이 함양되는데, 이 3대 정신이 바로 자유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얀테의 법칙』만을 다루려 했는데, 돌멩이에 깨진 유리창처럼 갈라진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얀테의 법칙』을 원용해 대한민국을 성찰해 봤습니다.
행복 대한민국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진정 소망합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