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기 전에 현실을 보라
채효정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해직 강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저자
환영합니다. 경희대학교 신입생 여러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빼앗긴 들에 다시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설레고 반갑습니다. 오늘 입학식장에서 아마 여러분은 총장님의 환영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해왔던 공식 환영사에 담기지 못했던 ‘다른 목소리’로 여러분들을 환영하며 맞이하려 합니다.
경희대학교에는 ‘미래’라는 이름이 아주 많습니다. 미래문명원, 미래정책원, 미래혁신원, 미래인재센터, 아마 여러분이 입학을 하게 되면 학교에 다니는 동안 가장 많이 듣게 될 말이 이 ‘미래’라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날 기업들은 미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아마 현재의 총체적이며 세계적인 불황과 자본주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대안이 현실에는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이제 ‘미래’라는 시간의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끊임없이 미래로 가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대학의 공식 환영사에서도 ‘미래’가 강조될 것입니다. 미래는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며, 야심가적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자본과 권력은 청년들에게 그런 사람들이 되라고 합니다. 배에 돛을 올리고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러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과거에 해상무역단과 해적선을 가리키는 말이었단 설명은 물론 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지난 세기에 어떤 사람들의 모험과 정복은 어떤 사람들에겐 침략과 수탈이었습니다. 희망의 땅 대신 희망의 시간을 찾아가는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침략적 정신을 모험가적 진취성으로 변모시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이라며 찬미합니다. 새로운 시간을 향해 떠나는 그 배에는 노예와 죄수들과 추방자들이 또한 실려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미래라는 시간에 도착하게 될까요. 도착할 곳 역시 유토피아라고 전망할 근거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결과입니다. 현재를 딛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발 딛고 선 밑돌을 빼고 자꾸만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미래만을 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정반대로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과 현재를 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현실이 어떠한지를 알려주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대학생활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며 대학에 왔겠지요. 대학에서의 공부는 고등학교 때의 입시공부와는 뭐가 달라도 다를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요. 강의실에서는 교수와 동료학생들과 자유롭고 평등하게 소통하며 토론하는 것을 꿈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노래도 부르고, 잔디밭에 누워 낮잠도 자고,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고, 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해보고, 사랑도 하고, 혁명도 하는, 그런 대학을, 미안하게도 너무나 미안하게도, 여러분은 아마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해마다 일어나는 ‘수강신청전쟁’에서는 듣고 싶은 과목을 듣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주워서 들어야 하는 현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어쩌면 여러분도 필수 과목을 듣기 위해 강의를 사고파는 일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많은 강의들이 온라인 강의로 개설되어 고등교육을 ‘인강’으로 대체하는 것을 오늘날 대학들은 ‘기술혁신’이며 ‘미래대학’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아마 점점 더 많은 과목을 온라인 수업으로 학점을 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동일한 면적에 학생들을 가장 많이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강의실은 움직일 수 없는 일자형 책걸상이 수업 시간 내내 여러분의 몸을 감금할 것이고 초중고에서도 사라진 추억의 콩나물 교실을 새로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조경과 오늘 입학식 날 하루 말고는 한 번도 써보지 못할 평화의 전당 같은 멋진 건물 역시 이곳에서 공부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몫은 아닙니다. 강의실, 세미나실, 자치공간, 등 모든 공간이 부족하고,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학교 당국의 허가를 맡아야 할 겁니다. 보이는 이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빠르게 깨달아가겠지요.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입학했던 학과가 없어지거나, 이름이 바뀌거나, 통폐합되어 사라지는 일을 겪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환영하며 맞이하고 있는 저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를 하다 해고되었습니다. 저는 대안사회 구상하기, 예술과 정치, 포스트모더니즘 미학과 예술 등의 강의를 해왔습니다. 학생들로부터 ‘가장 후마니타스다운 강의’라는 좋은 평가를 받아왔고 ‘예술과 정치’는 우수융합과목으로 선정되어 학교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수강신청 사이트에서 이 과목들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과 정치는 아예 과목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나머지 두 과목도 지난 2년간 개설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미래를 위한 대학 혁신의 과정에서, 후마니타스칼리지의 교과개편과 구조조정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그 혁신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혁신이었을까요.
오늘 대학의 구성원들은 교수 학생 모두 대학평가를 위한 수단적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강의의 존폐 여부는 그것을 원하는 교수와 학생 등 대학구성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가지표의 유․불리함과 경제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행정당국에 의해 결정됩니다. 대학평가는 대학의 가치 및 수입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학생 여러분의 미래를 담보해주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강의하고 연구해서 대학의 공동자산을 만드는 데 기여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대학강사의 몫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이런 나의 현실이 앞으로 여러분의 미래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대학에서부터 인간의 수단화, 도구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대학 바깥의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인간을 ‘쓰고 버리는 부품’으로 만드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여러분이 가장 많이 들었고 해왔던 말이 아마 ‘대학 가서 하자’는 말이었을 겁니다. 그 유보시킨 현실, ‘나중에’가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여러분의 이 현실로 돌아와 있습니다. 앞으로 듣게 될 말은 ‘졸업하고 나서’, ‘취업하고 나서’일 것입니다. 또다시 미뤄놓는다면 그 ‘나중에’는 더 엄혹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미래로 추방당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미래라는 시간으로 유보되거나 추방되는 존재가 되지 말고 지금 여기서 현실을 변화시켜나가는 존재가 되자고, 부탁드립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미래라는 시간을 우리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길입니다. 지난 2년간 포기하지 않고 대학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워왔고 이제 여러분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학의 손님이 아니라 대학의 주인이 될 때, 그래야 비로소 사회의 주인이 되고 나라의 주인도 될 수 있습니다. 비판과 저항이 없는 대학은 죽은 대학입니다. 이 불모의 땅에는 비판과 저항으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빼앗긴 대학에 봄처럼 오는 사람이기를! 뜨겁게 환영합니다!
2018. 2. 28.
첫댓글 과거를 탐구하고 현실에 닻을 내려야, 비로소 미래가 희미하게나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