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골목 어귀를 돌자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전자 올겐 소리였다.
그런데, 음악에는 별관심도 없던 내가, 그 음악에 빠져 들었다.
그 집 앞에 서서 한 참을 들었다.
집에 와서도 음악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오차노미즈 중고 전자 올겐 파는 곳으로 갔다.
나는 마음 먹으면 즉시 해야 했다.
전자 올겐을 사고, 부근의 전자 올겐 교습소에 등록을 했다.
전자 올갠을 배울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전자 올겐을 배우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전자 올겐 교습소의 선생님은 일본 중년 여자였다.
나의 시간적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기가 막힌 제안을 했다.
한 번 배울 때마다 한 시간에 500 엔으로 한다는 것. 오고 안오고는 내 마음대로 였다.
괜찮을 거 같아 수락을 하고 일 주일 정도 지나서 교습소에 갔다.
처음 배운 곡이 ‘unchained melody’ 였다.
그 노래가 나중에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교습소에 두 번 가고 시간이 없어서 다니질 못했다.
‘unchained melody’ 는 겨우 대충 엉터리로 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전자 올갠 앞에 앉아서 그것만 죽어라 쳤다.
옆 방 일본놈이 시쓰럽다 해서 공원에 가서도 연주했다.
당시 한국에는 전자 올갠이 없었다.
주로 중고 전자 올갠이 한국으로 밀수입해서 들어와 사용 되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내가산 전자 올갠을 한국에서 팔면 그 보다 열 배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아내와 결혼을 하고, 아내 앞에서 연주했다.
딱 한 곡, ‘unchained melody’ 뿐이었다.
아내는 내가 전자 올갠을 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강릉의 시골 여자가 전자 올갠이라는 신문물에 대해서 호기심과 함께, 몇 번 만나지도 않고 결혼한 남편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신기했으리라.
한국의 집에서도 술만 취하면 전자 올갠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내가 자랑스러운지 동네 여자들에게 자랑을 했다.
우리 아들이 일본 유학가서 공부도 하고 음악도 한다고.
아버지도 별로 관여하지 않으셨다.
전자 올갠은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운이 좋아 중고 중장비 임대업으로 돈을 벌어, 동남아와 태평양 섬으로 스쿠버다이빙 하러 다니다가, 급기야는 필리핀 두마게테에 스쿠버리조트를 차리고 놀았다.
낮에는 아름다운 바닷 속에서 보냈고, 밤이면 필리핀 대중주 탄두와이에 취해 전자올갠을 쳤다.
오로지 ‘unchained melody’ 만이었다.
동네 소녀들이 구경하러 모여 들었고, 나는 마치 스타라도 되는 양 거만을 떨었다.
내가 교습소에 두 번가서 배운 것이라고는 누구도 몰랐다.
아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내는 죽을 때까지 나를 전자 올갠 연주자로 알았다.
어느 날, 전자 올갠이 사라졌다.
한국에서도 귀한 전자 올갠이 필리핀에서는 오죽했을까.
나의 상실감은 너무 컸다.
나는 영원히 ‘melody’를 ‘unchained’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