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의 입에서 떨어진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 한의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하였다. 분명히 재판을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이 온몸을 감싼다.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시예요?”
조심스레 시간을 묻는다. 그에 대답을 해주려던 수하. 차마 입을 열지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기도하는 듯한 한의 팔을 잡고는 취조실 밖으로 나온다. 죄수복 소매의 느낌이 수하의 손으로 전해져 온다. 차갑기 그지없는 옷 이였다. 이 옷을 만든 사람이 누구 길래 이렇게 차가울까? 도무지 따뜻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옷 이였다.
“안 춥냐?”
걱정스러워 따뜻한 말이 한의 심장에 묻힌다. 이 말 한 마디로 온몸에 돋아나 사라질 생각을 않던 소름들은 모두 자취를 감춰버린다. 불안함은 아직 물러나지 않았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불안함 보다 더 크게 몸을 감싼다. 아무래도, 사랑인가보다.
“안 추워요.”
“거짓말을 해도 작작 해야지.”
한의 대답에 무참히 한을 내쳐버린 수하. 굳이 안 춥다는 사람의 어깨를 꽉 부여잡는다. 벌써 점심시간인지 인우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시계바늘이 2시를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아온다. 하지만 한은 그런 건 느끼지 못했는지 수하의 손에서 내려오는 온기에 살며시 미소 짓는다. 수하가 감싸 쥔 자신의 어깨 전체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온기에 다시 한 번 소름이 올라왔지만, 기분 나쁜 소름이 아니였다.
“따뜻하냐?”
또 한 번 수하의 물음에 한은 고개를 젓는다. 무언가를 바라는 눈 이였다. 수하는 한을 내려다보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한의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담고 있다. 간절하게 바라는 눈빛이다. 무슨 뜻일까? 한참을 고민하는 수하. 한과 시선을 마주하고는 입을 열지 못한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시선은 따뜻해져간다.
“추워요.”
갑작스레 튀어나온 한의 말에 수하는 한을 바라보다가 이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뭐.. 예요?”
한의 어깨에서는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싸늘해진다. 가라앉았던 소름이 다시 돋아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수하의 양 손에 들린 이상한 물체가 궁금할 뿐이다. 수하는 답을 주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수갑이 채인 한의 양 손에 이상한 물체를 올려준다. 한의 양 손에 올려 지자마자 온몸이 따뜻해진다.
“손난로. 따뜻할 거야.”
수하의 말에 베시시, 김빠지는 듯 웃어버리는 한. 수하는 얼른 한을 끌어 방에 넣어주고는 자물쇠로 문을 잠군다. 자물쇠를 잡은 손이 차갑다. 손난로의 감촉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 것 같다. 허전했다.
유리창 너머 쭈그려 앉아있는 한을 한 번 바라본다. 손난로를 양손에 꼭 쥔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보였다. 순간 멍해졌다.
“수하야, 뭐해? 밥 먹었어? 오늘 맛있는 거 나왔는데.”
인우가 이쑤시개 하나를 입술에 물고는 수하를 바라본다. 수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미소 짓는다. 뭔가 멍한 미소였다. 하지만 아까처럼 슬픈 미소는 아니였기에, 인우는 안심하며 같이 미소를 보인다. 수하의 미소 뒤에는 한애가 보였다. 수강이 보였다. 딱 한 번 본 적 있는 미소였다. 그리고 이 미소가 두려워졌다.
“오늘 맛있는 거 나왔어요?”
“어, 빨리 가봐.”
“예!”
수하는 기쁜 마음으로 교도소를 나간다. 손난로 없는 품속이 싸늘하기는 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론 누군가가 안아주고 있는 것 같아 따뜻했다. 그렇게 곧장 식당으로 향한다.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간 건지, 이제 식당 안은 거의 비다 시피 한적했다. 수하는 식판을 들고는 인심이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께 미소를 내비친다.
“아이고, 왜 이렇게 늦었데? 젊은 사람이 바쁜 가봐? 사건 터졌어?”
아주머니가 수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수하는 고개를 젓는다.
“저 안 젊어요, 이제 서른 입니다!”
수하의 대답에 아주머니들은 깔깔깔, 큰 웃음을 보인다. 그리고 아주머니들끼리 수다를 떠시며 수하에게 밥과 반찬을 퍼주신다. 인우의 말대로 맛있는 건 꽤 많았다. 무슨 날인가, 할 정도로 잔치 음식 같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수하는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한의 재판을... 아니, 뻔한 죽음을 축하하는 만찬으로 느껴져서.
“총각, 밥 안 먹어?”
이제 식당에 사람은 없는지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계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수하에게 말을 건다. 숟가락을 들지 못한 채 벌써 10분이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은 모두 식어 맛이 없을 듯 했다.
“아... 죄송합니다. 배가 아파서요.”
“아, 그래?”
수하는 식판을 들고 일어났지만 아주머니께서 손수 수하의 식판을 들어주신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시며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그런 모습마저 우울하게 비치는 수하.
강 한이 대체 누구 길래, 나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드는 것일까? 강 한 말대로, 내가 강 한을 사랑하는 것일까?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계속 자신에게 자학하듯 내뱉는 수하. 그 답을 구할 곳은 교도소 밖에 없는 듯 했다.
“수하야, 준비 했냐?”
식당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던 수하를 힘 있게 잡은 경감. 수하는 아무 힘없이 경감의 팔에 휘둘린다. 그렇게 휘청, 경감의 앞에 선 수하. 경감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경감은 기분 나쁜 기색이 없었다. 단지 걱정스러울 뿐 이였다.
“아직 2시 되려면 멀었잖아요. 교도소에 좀 가려고요.”
경감의 표정이 좋지 않게 바뀌었다. 하지만 수하는 상관 쓰지 않는다는 듯, 교도소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계속 눈길을 보낸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 강 한 취조 했으니까, 좀 쉬어.”
경감의 말에 반사 작용이 일어나듯 고개를 저은 수하. 경감은 살짝 눈썹을 치켜 올린다. 하지만 이내 수하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다. 어깨 패드가 주욱 올라가 수하를 미소 짓게 만든다.
“강 한은 벌써 재판장으로 향했다.”
경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하의 미소는 사라지고, 몸에는 더 이상 남아있는 힘이 없었다. 이대로 스르르,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정말... 사랑하나? 이런 상황에서도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지 한숨을 쉰다. 경감의 얼굴 바로 앞으로 수하의 숨이 감돈다. 그 때서야 경감은 수하의 얼굴을 놓아준다. 불안함과 동시에 한숨이 돌고 있다. 수하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수하야.”
경감이 내심 걱정이 됐는지 고개를 치켜 틀고는 수하와 눈을 마주친다. 초점 없는 수하의 눈이 흐렸다. 그리고 슬펐다. 수하의 눈 안에 경감은 담겨져 있지 않았다.
“언제 갔어요?”
경감을 내려다보는 수하. 하지만 수하의 눈에는 경감이 담기지 않았다. 그 눈빛에 경감은 입술을 깨문다. 하지만 홀린 듯 입을 연다.
“방금... 쫓아가면 잡을 수 있을게다.”
어느 새 저 멀리 뛰어가고 있는 수하의 뒷모습에 경감은 멍하다. 처음 맡는 살인사건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첫댓글 수하랑 한이랑 잘 됬으면 좋겠는데....ㅠㅠ 너무 잘 어울려요~ㅋㅋㅋ
ㅎ저도 잘되길 빌고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