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클럽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견 및 중소·벤처기업을 맡고 있는 산업부 박영철 기자입니다. 오늘은 17일자 조선경제 ‘인더스트리 저널’ B23면에 톱기사로 나간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제조업자생산설계) 중소기업 취재 뒷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중복되는 느낌이 있지만, ODM에 대해 설명드리겟습니다. ODM은 제조업체가 주문자 상표를 붙여 납품한다는 점에서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주문자상표부착)과 외견상으로는 같습니다. 그러나 OEM이 제조업체가 원천기술과 제품개발능력 없이 동일한 제품을 주문자별로 상표만 달리 붙여 납품하는 것이라면, ODM은 제조업체가 원천기술과 제품개발능력을 갖추고 주문자별로 원하는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제품을 주문자 상표를 붙여 납품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밖에 OEM과 ODM은 다른 점이 많습니다. 수량면에서 OEM이 비교적 소량이라면 ODM은 대량인 경우가 많습니다. 납품가격도 OEM이 ODM보다 좀더 높지만, ODM은 대량공급을 하므로 기업이익면에서는 ODM이 낫습니다. 또 극단적인 경우지만, OEM은 주문자가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어버릴 수 있는 반면, ODM은 장기적인 공급계약을 체결하므로 기업경영면에서도 안정적입니다.
이처럼 OEM이 OEM보다 장점이 많지만, 우리 기업들은 수년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해외 대기업들의 단순 OEM업체에 불과한 게 현실이었습니다. 과거 기사 검색을 해봐도 ODM기사는 99년, 2000년 무렵부터 비교적 자주 나오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또 ODM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원천기술과 제품개발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규모가 너무 작아서도 안됩니다. ODM을 주는 주문자들은 ODM 계약을 맺기 전에 실사단을 여러번 보내 앞의 조건들은 물론 기업의 생산능력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간도 2년 정도 걸리는 게 보통입니다.
이 기사의 포인트는 자세히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기업에 가까운 중소기업까지 ODM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뉴트렌드죠. 저는 처음에 그냥 중소기업 ODM을 취재하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비교적 소개가 안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벤처기업 휴비딕을 취재하면서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사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휴비딕은 경기도 평촌에서 귓속형 적외선 디지털 체온기 등을 만드는 의료기기 제조업체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에 설립돼 아직 돌도 안 지났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단한 회사입니다. 직원 9명, 올 한해매출 11억원에 불과하지만, 설립 직후 벤처기업 지정을 받았고, 7월에는 이노비즈기업으로 선정됐습니다. 또 지난 5월에 출시한 귓속형 체온기는 10월에 산업자원부 세계일류화상품에 선정됐습니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인 독일의 지멘스는 지난 8월부터 이 회사에 ODM 의사타진을 열심히 해오고 있습니다.
지멘스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이 규모도 조그만 한국의 벤처기업에 일종의 합작을 제의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 회사가 그만큼 기술력과 제품개발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신재호(36) 사장이 메디슨과 비이오시스에 근무한 것을 비롯, 직원들이 메디슨, 바이오시스, 세인전자(가정용 전자혈압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죠), 연세대 의용공학교실 출신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생산공정 일부는 아웃소싱을 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이 회사가 실무경험과 연구경험이 풍부한 고급인력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죠.
저는 휴비딕을 취재하면서 이 정도 고급인력은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이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사실이겠죠. 해외유학파 등을 감안하면 양질의 고급인력이 적잖은 게 우리 현실이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몰라서 그렇지 앞으로 제2의 휴비딕, 제3의 휴비딕이 속출할 가능성도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저에게 제보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 저는 취재를 하면서 우리 중소기업인들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략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사에 나온 에센시아의 경우, 직원 50명에 올해 매출 100억원 정도의 아직 작은 회사입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칫솔살균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독자브랜드로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회사 신충식(42) 사장은 의지를 갖고 ODM을 늘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 전체 매출에서 6%에 불과한 ODM을 내년에는 30~40%로 대폭 늘릴 생각입니다.
신 사장이 들려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그나라 대기업 브랜드를 붙여 파는 게 유리하다. 우리제품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소비자들이 처음 보는 브랜드라고 외면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는 앞으로도 ODM과 독자브랜드를 섞어 시장을 개척할 생각입니다. 그의 생각은 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력이 있더라도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고 판매망과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OEM과 ODM, 독자브랜드를 섞어 전략을 세우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독자브랜드로 시장개척하는 것을 지향해야겠죠. 어쨌든 기업마다 자신의 장·단점과 여건을 감안해서 자신의 처지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해준 취재였습니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영철 드림 yc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