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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휘청 거리며, 간혹은 근처의 잔 목 가지에 부딪치며,
움직이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모으려 했다.
오로지, 움직이고 움직여서, 또다시 저 잔인한 향기를 뿜어내는,
숨 쉴 틈 조차 허락하지 않는 악몽에서 벗어나기만을 원했다.
내가 본 것이 무엇이었을까? 들었던 것은?
아니!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생각 할 때가 아니고, 움직여야 할 때다.
내 발이, 나를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주기만을 바라며,
오직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해야한다.
또다시 저 만월의 달이 나를 홀린 것일까?
지금의 나는 사년 전의 나인가?
그 어리석었던 여자아이가,
달에 홀린 채, 지금껏 걷고 있었던 것일까?
그 아름다웠던 남자는 아직 정원으로 나오지 않았고,
내가 들었던 그 잔인한 말들은,
다른 남자의 말 이었던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향기가 짙어,
불안하고도, 불안 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남자를 보았다.
잠시 나의 눈이, 착각한 것이라고,
만월의 달이 다시,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갔을까?
아니,
아니, 죠세핀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가,
아니, 나를 사랑 한다고 말하던 그가,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준 건 누구였을까.
눈에 익은 곳이 나타났다.
저 모퉁이만 돌면 이 지독한 향기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이 앞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땅에 부딪힌다고 생각하는데
허리를 감아올리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 앗! ”
“ 괜찮습니까? ”
“ 아, ..., 저,... 저는, ”
“ 무서워하지 말아요. ”
“ ......, ”
“ ......, ”
“ ......저, 당신은 누구? 아!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
“ 잠깐, 나는 마라 라메스터 라 하오. 아름다운 브리타니 공주님. ”
“ 당신, 저를 아시는 군요. ”
“ 아니, 모릅니다. 당신과 내가 오늘 처음 만났다는 것 밖에는. ”
“ 하지만, 그분, ..., 그분은. ”
“ 쉿, 브리타니 공주님, 그는 내 친구지만, 오늘은 당신과 그의 이야기를 하진 않겠소. ”
“ 당신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시군요. ”
“ 고맙소. ”
“ 저는, 칭찬을 한 것이 아니랍니다. ”
“ 아니, 당신은 칭찬을 한 것이 맞습니다. ”
“ 그런가요? ”
“ 그렇소,”
“ 저, 저 좀 내려주시겠어요? ”
“ 흠, 나는 이 자세가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만,”
“ ......, ”
“프린세스 브리타니, ”
“ ......, ”
“ 나를 보시오. 브리타니, . ”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만월의 밤에, 요기스러운 달빛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는,
핏빛을 풀어놓은 듯 보였다.
눈에선, 금방이라도 핏물이 흐를 듯이 보였고.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살아서 꿈틀 거리는 듯 했다.
그녀의, 핏빛 출렁이는 붉은 눈이,
그의 검은 머리와, 그보다 더 진한 검은 눈동자,
옆으로 긴, 서글서글해 보이는 눈을 지나,
강해 보이지만 약간 휘어진 콧날과,
비웃는 듯 슬쩍 올라간 입 꼬리를 더듬는 동안,
그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녀의 머리카락을,
달래어 가라앉히려는 듯, 반복해서 쓸어 내렸다.
그녀가 그에게 잡힌 허리를, 젖힌 상태로,
그의 얼굴을 다 훑어봤다고 느낀 순간,
그 역시, 그녀의 머리카락을 달래어 놓고는,
넘어지던 그녀를, 안아 올리던 자세로 돌아와,
그녀의 허락을 구하듯 짧은 입맞춤을 했다.
그녀가 짧은 한숨과 함께,
어지러운 듯 그의 어깨로 손을 올리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깊게 포옹 했다.
만월의 달이 유난히 밝던,
어느 작은 궁전의 한 여름 밤 이었다.
밤의 마법이 모두 깨어진 여름 아침, 정원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브란델이, 마라를 침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분명히 내가 페어플레이 하자고 했을 텐데? ”
“ 브란델, 자네는 넋이 나가 있고, 그녀는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네. ”
“ 자네가, 그런 이유로 키스를 해대는 사람이었나? ”
“ 봤나? ”
“ 소드 마스터란 이유로, 피비린내 없이, 황태자 자리를 차지한 나와 자네 아닌가.
내가 보고 있었다는 것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아는 얘기지. “
“ 그럼, 자넨 중간에 사라져 주셨다는 얘긴가? ”
“ 뭐야, 내가 따라 간 걸 몰랐다는 거야? ”
“ 몰랐네, 아! 앉게, 아침부터 힘 빼지 말고. ”
“ 그걸 믿으란 얘기야? 그게 사실이면 그녀는 너무 위험해. ”
“ 그럼, 자넨 조용히 물러나게, ”
“ 흠, 그럴 순 없지. 그녀에게 박힌, 잘못된 이미지도 참을 수 없고. ”
“ 역시, 그녀의 충격과 자네의 충격이, 같은 사건을 모태로 하는 것이 사실 이었군. ”
“...그래, ”
“ 그럼 어느 부분이 잘못된 부분인가? ”
“휴! 나도 밤 새 생각 해 봤지만, 딱히 잘못된 부분이 없다는 게 문제야.
어제 그 얼간이가 한 짓이, 사 년 전 내가 한 일과 거의 흡사하다니까? “
“ 자넨 그녀를 몰랐었잖아. ”
“ 몰랐었다고 해도,... 자네도 봤잖아, 그녀가 날 보던 모습, 밤새 아주 미칠 것 같더라니까.
거기다 자네는 냉큼 기회를 잡아 버렸으니. “
“ 거의 흡사하다고 했는데, 자네도 그녀를 버리겠다고 했나? ”
“ 그렇다니까. 단지 나는 본 적 없는 사람을 거절 했다는 건데,
어제 밤, 괴물 보듯 나를 보는, 그녀를 보니,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
“ 그리고 어젯밤처럼, 그녀는 자네가 거절하는 소리를 들었을 테고 말이지. ”
“ 자네 생각에도 그럴 것 같지? 오! 맙소사. 어제 그 얼간이를 죽여 버리고 싶어.”
“ 아니, 자넨 그 얼간이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멋모르고 접근 했다가 망신살 뻗칠 뻔 한걸 구해 준 셈 아닌가. “
“ 윽! 마라, 너무 고소해 하지 말게. 나 화 나려고 하니까.‘
“ 천만에, 여자 문제를 놓고, 자네를 자극 할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네. 하,하,하. ”
“으...,얄미워, 그런데 루딜 이 녀석은 왜 안 오는 거야.”
“ 오! 저기 오는군. 어이! 어서와 루실! ”
“ 마라, 실력이 좀 늘었나? 루실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만난 김에 몸 좀 풀어 볼까?”
“ 그래 루딜, 혼 좀 내줘 거슬려 죽겠어.”
“ 오! 왜?”
“ 아름다운 아가씨를 발견 했는데, 저 녀석이 앞서 가잖아.”
“ 오! 믿기 어려운 일인걸? 브란델이 선수를 당한 것도 놀랄 일이지만, 마라가 여자한테 관심 을 가진다는 게 더 신기한일 아냐? 웬만하면 양보해라.“
“ 양보가 아니라, 옆에 가지도 못하게 생겼어 저 녀석.”
“ 뭐야? 왜?”
“ 아,몰라. 나중에 얘기해 줄게. 지금은 네 얘기나 해봐.”
“ 무슨 얘기?”
“ 너 이 자식, 나와 마라가 아무리 꼬셔도 안 넘어오더니, 고향 갔다 온다는 녀석이,
몇 년 간 소식도 없고, 고향에서 자릴 잡았으면, 명색이 소드 마스터 란 녀석이,
공작 작위는 받았다는 소리가 들렸어야 할 거 아냐. 나랑 마라가 공작 작위를 준다고 했잖아.
이런 콩 알 만한데서 안준데?“
“ 아! 내가 소드 마스터란 사실은 아버님 밖에 몰라.”
“ 그게 비밀로 한다고 몰라지는 일이냐? 아카데미 에서부터 기사단 훈련 받을 때까지
본 눈이 얼만데. “
“ 내가 브란델 너처럼, 얼굴에 광채 내면서 다니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우리 가문이야, 밥 먹고 하는 게, 칼질 하는 거 밖에 없어서,
시간 지나면 누구나 마스터가 되는 줄 아니까, 알아도 놀랄 사람도 없어. “
“ 그런 가문이 왜 공작도, 하다못해 백작도 아닌 남작이냐고.”
“ 가문의 철칙이야. 수련에 차질을 주는 작위는 사양해라. 우리 가문이 이 구석에 자리를 잡
은 것도, 시끄러운 분쟁이 안 생길 것 같다는 이유에서거든? “
“ 포기해 브란델, 골수 무인이야. 귀찮게 굴면 잠적 할 놈이야. ”
“ 좋아, 그럼 넌 지금도 수련만 하고 잇다는 거야?”
“ 아니, 자네들도 그런 상태지만, 마스터인 이 상태에서 수련은 필요 없지.
각성이라고 할까? 우리 가문에선 깨달음이라고 표현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문제고, 사실은, 돌아왔을 때, 신기한 여인을 만났거든. “
“ 뭐야, 자네도 여자 문제야? 결혼 하려고?”
“ 브란델, 자네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지 말게. ...음, 자네들도, 우리 가문의 마나 수련이 특이
하다고 했지?“
“ 그렇지, 기의 흐름 이라던 지, 뭐 통로라던 지 그런 얘기를 했었지.”
“ 그래, 어차피 종착지는 같으니까, 상관은 없지. 그런데, 우리가문의 무공이, 마스터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기의 흐름이 보인다고 한말을 기억하나? “
“ 그럼, 나와 마라가 한동안 침을 질질 흘렸었잖아. ”
“ 으! 표현하고는.”
“ 놔둬, 마라. 저 녀석은 여인네들 앞에서만, 이미지 관리에 들어가니까.”
“ 하긴, 그런데, 신기한 여인과 기의 흐름이, 무슨 상관이야?”
“ 무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인이, 온 몸에 기, 즉 마나가 가득 들어 차 있는 거야.
머리카락 까지도 말이야. “
“ 오! ”
“ 그럴 수 가!”
“ 세포 하나하나가 일부러 청소한 듯이 깨끗한 거야. 한동안 얼이 나갈 정도였다니까.“
“ 그래서?”
“ 신기해서, 며칠을 잠복 하다시피 했지. 그런데, 타고난 미모도 있기만, 마나가 깨끗해서인지,
날 파리가 끝도 없이 달려드는 거야. 벌레들이 불 속으로 뛰어들듯이 말이야. “
“ 저런, 그래서?”
“ 브란델, 지금 그 생각 지워 버리게, 좋은 말로 할 때. ”
“ 아니, 내가 뭘!”
“ 억울한 표정 지어봤자 아무도 안속아. 루딜 말 들어. 그래서?”
“ 어쩌다 보니, 경호원 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 손 떼버리고 나서 더러운 일이 생겨 버리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다 발이 묶여 버린 거야. 지금 생각해보니, 브란델 말
대로 결혼해서 가문 안에 놓아두는 것이 안전 할 것 같기도 하고. “
“ 그녀는 자네를 알고 있나? ”
“ 아니,”
“ 그런데, 결혼을 하겠다고?”
“ 어차피 왕가의 여인이라, 정해주는 데로 가야하고, 남작 가문이라지만,
자네들 말대로 공작 대우는 해주는 편이니까. 거기에다, 소문이 안 좋아서,
딸들 팔아서, 힘 키우는 응큼한 베퍼드 노인네도, 오히려 얼씨구나 할 .......,
뭐야! 자네들 표정이 왜 그래?"
" 잠깐! 마라, 루딜이 하는 얘기,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 같지 않아?“
“ 그래, 왕가의 소문 나쁜 여인, 루딜 그여인이 누군지 말해봐. ”
“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아! 인상 쓰지 마, 자네들이 알 리가 없지.
프린세스 브리타니야. “
“ ......,”
“ 으.....,”
“ 뭐야! 알고 있었어? 소문만 들었겠지 헛소문. 아! 어제 연회엔 의무적으로 참석 했으니,
브란델 눈에는 띌 수도 있었겠다. 한 번 더 말하는데, 황태자비로 만들 생각 없으면,
쳐다 볼 생각도 하지 마.“
“ 시끄러, 너 어제 밤에 어디 있었어.”
“ 아버님 호출에 불려갔었지.”
“ 공주는?”
“ 진짜, 분위기가 왜이래?”
“ 말이나 해봐.”
“ 마라, 자네까지, 허! 나 원 참!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걸 보고, 집에 갔다 왔지.
공주 궁에 가보니, 일찍 들어 왔기에, 보초서다, 자네들 보려고 이리로 온 거야.“
“ 날 파리 떼가 공주 궁 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야? ”
“ 아주 난리야. 밤이나, 어제처럼 만월에 가까워지면, 무슨, 악귀 떼들 같아진다니까.“
“ 지금은 ?”
“ 낮엔 괜찮은 편이지. 하지만 자릴 오래 비우진 못해. 이러니 내가 결혼 하는 게 나을 것 같
다고 말하는 거야. 몇 년 동안 문지기 노릇 아주 톡톡히 했다니까?“
“ 이, 바보 자식. 어제 그사이에 마라가 그녀에게 키스했단 말이야. 어쩔 거야.“
“ !!!!!!”
“ 흠, ”
“ 으~”
세 명의 남자는 잠시 침묵을 고수 한 채, 각자의 생각에, 빠져 들었다.
과연 그들은 다른 날 파리 떼들처럼, 그녀의 마나의 향기에 홀린 것 이었을까?
첫댓글 으앗, 이번편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다음편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보시고 느낌표라도 하나씩 찍어 주세요. 강등 되서 6편은 다음 주쯤 올리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