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의 양지.
‘양지가 하늘나라로 갔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기자의 엄마로부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퇴근길 전철 안이었다. 무방비 상태로 받은 문자 한 통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14년간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반겨주던 시추 믹스견(犬) 양지. 양지는 고향을 지키는 내 막냇동생이었다. 양지의 마지막 순간을 전화로 들으며 울고 또 울었다. 누가 보면 딱 실연당한 여자다.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내 슬픔은 거기까지다. 문제는 엄마였다. 양지가 떠난 건 12월 1일. 딱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의 이상행동에 비하면 먼발치의 객인 기자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엄마의 슬픔은 가족들이 예상하고 걱정한 이상이었다.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오고, 가슴통증으로 숨도 잘 못 쉬겠다고 했다.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못 잤다. 양지를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온 다음 날, 함박눈이 펑펑 내리자 엄마는 커다란 우산을 들고 양지 무덤에 갔다. “우리 양지 추위 많이 타잖아. 눈 맞지 않게 우산 씌워줘야지” 하면서. 또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벌 받을지 모르겠는데,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힘들어. 엄마는 땅에 묻었지만, 양지는 내 가슴에서 떠나질 않아. 숨 쉴 때마다 아파.”
‘펫로스(Pet Loss·반려동물 상실)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애완견을 잃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지칭하는 말이다. 펫로스증후군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애완동물을 잃은 스트레스는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나 자녀를 잃은 슬픔과도 비견된다. 2012년 부산에서는 펫로스증후군을 이기지 못한 40대 여성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엄마에게 양지는 우울증 치료사였다. 엄마는 15년 전 ‘빈둥지증후군’으로 힘들어 했다. ‘빈둥지증후군’이란 자녀를 독립시킨 중년의 여성이 겪는 극심한 정체성 상실감을 말한다. 엄마는 당신 이름으로 산 분이 아니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이 전부였다. 자녀가 장성해 하나둘 서울로 떠나버리자 엄마는 빈자리를 못 견뎌했다. 불면증과 무기력증, 심한 우울감으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고 힘들어했다. 그럴 때 나타난 양지는 우울증 특효약이자 구세주였다. “애완견을 물고 빨고 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된다”던 분이 달라졌다. 이보다 더한 친구이자 연인이 또 있을까. 엄마는 양지와 언제 어디서든 함께했다. 양지 역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봐주며 세 자녀의 빈자리를 아주 충실히 채워줬다. 그것도 절대 배신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충성심으로.
우리 가족은 고향집을 양로원으로 불렀다. 양지가 나이가 들면서 세 노인(?)이 사이좋게 알콩달콩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 아침에 일어나 아빠, 엄마, 양지 셋은 커피를 나눠 마시고, 당근주스를 나눠 마시고 나서야 산책길을 나섰다. 양지가 혈기왕성한 청년일 때에는 저만치 앞서서 이끌더니, 열 살이 넘어서는 셋이 체력이 비슷해졌다. 셋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낮은 앞산을 올랐다. 심하게 뒤처지는 노인이 있으면 다른 두 노인(?)이 매너 좋게 기다려줬다. 여행도, 쇼핑도, 산책도 함께 다니며 양지는 그렇게 24시간을 함께 나눴다. 엄마에게 양지는 대체 불가능한 막냇동생이었다. 양지가 떠난 후 다른 애완견 분양을 권하는 가족들에게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절대 안 돼. 그건 양지에 대한 배신이야. 나는 양지만 사랑하고 양지만 기억할 거야.”
경기도 분당구 해마루케어센터 김선아 센터장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보다 국내에서 펫로스증후군이 더 심각하다”는 의외의 분석을 내놨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국내 대부분의 애완인에게 ‘펫로스’가 첫경험이다. 국내의 애견인구는 2000년 전후로 급속히 증가했다. 2000년 270만명에 불과하던 애견인구는 15년 만에 무려 네 배가 늘어 1000만명이 넘었다. 2000년 전후에 키우기 시작한 애완견은 현재 13~17세가 됐다. 애완견의 평균 수명이 다하는 나이다. 몇 년 전부터 유독 주변에서 펫로스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문제는 처음 겪어보는 아픔이기에 스스로도 그 아픔이 낯설고 극복 방법도 모른다는 점이다. ‘개가 죽었는데 내가 왜 이러지?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하면서 아픔을 부정하다 보니 증세가 오래가고 극복도 힘들다.
둘째,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다. 애완견 양육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애완견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보통 이런 식으로 말한다. “쯧쯧… 개가 죽은 걸 가지고 저렇게까지 난리야. 참 유별나네.” 펫로스증후군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보니 슬픔이 무시당한다. 사람이 죽으면 3일장을 치르면서 주위의 위로를 받고 애도 기간을 거치지만 애완견 사망 시에는 그런 애도 기간이 없다. 죽자마자 화장하거나 묻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애완견에 대한 죄책감도 쌓인다. 슬픔을 나누지 못한 채 순식간에 처리해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김선아 센터장은 “사람과 반려동물과의 유대관계는 사람과 사람 이상일 수 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애견인들은 15~16세가 된 반려동물을 ‘아기’라고 표현한다. 애완견이 죽으면 어린 자식이 사망한 것과 같은 기분을 겪는데, 자녀보다 더 큰 단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녀는 성장하면서 분리과정을 겪지만 반려동물과는 심리적 분리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자녀는 소위 ‘중2병’, 사춘기, 이성친구과의 교제 등을 거치면서 부모와 어느 정도 독립된 존재가 돼 가지만, 반려동물과의 애착관계는 절대적이다. 온전하게 나만을 신뢰하고 나만을 믿는 존재다.”
중요한 건 펫로스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애완견을 잃은 슬픔을 꾹꾹 누르며 참지 말고 드러내는 것이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과 반려동물을 함께 추억하면서 충분한 애도 과정을 겪는 것이 좋다. 김선아 센터장은 “반려동물을 잃고 1~3개월간 우울감이 지속되는 건 정상이지만 그 이상 이어지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에는 아직 이 분야 전문가가 없다. 지난 7월에 개원한 국내 첫 반려동물 호스피스 케어센터인 ‘해마루 케어센터’에서 펫로스증후군을 앓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정도다. 동물병원에서는 사람을 진료할 수 없기 때문에 펫로스증후군 환자를 다룰 수 없다. 결국 정신과 상담의를 찾아가야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펫로스증후군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떠난 반려동물의 빈자리를 채울 다른 동물을 분양받는 것이 펫로스증후군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김선아 센터장은 “정답은 없다”면서도 “만약 분양받는다면 떠난 애완동물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종을 고르되, 똑같은 품종은 키우지 말라”고 권한다. 같은 종을 키울 경우 떠난 반려견의 분신처럼 인식하기 때문에 새로운 반려동물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