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말이고 저녁식사도 배부르게 했으니 초의선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70년 무렵부터 녹차가 건강과 교양 음료로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다도(茶道) 역시 교양인의 예의범절로서 격상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되면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름이 초의선사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의 승명인 초의에 더 매력을 느낌니다.
풀잎인 차와 스스로 풀로 엮은 옷을 입은 스님이라 하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려서 ...
19세기 초엽에 잊혀져간 차문화를 되살려 중흥 시켰으며 차 마시는 행위를 도덕과 도의 경지로 끌어올린 다선일체(茶禪
一體) 를 주창한 초의선사의 속성은 무안 장(張)씨, 스님이 되기전의 이름은 장의순(張意恂) 이다.
전라남도 나주 인동(仁同) 에서 병오년(1786년) 4월 5일 아버지 장삼천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字)는 중부(中孚-미쁠부) 법호(法號-승명) 는 초의(풀草 옷衣) 이다.
1880년 15세때 운흥사 벽봉선사에게서 수계 했다.
1809년 24세때 대둔사에서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과 처음으로 만났음
1815년 30세때 한양에서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등 당대 문인들과 교유
1828년 42세때 화개동 칠불사에 주석시 다신전(茶神傳) 등초 저술
1830년 45세때 다신전 정초(正抄)
1836년 51세때 <동다송> 저술
1839년 54세때 제자 소치(남종화의 대가) 허유를 추사에게 소개함
1839년 58세때 제주도에 유배당하고 있는 추사를 찾아감
1843년 71세때 추사 김정희 사망
1858년 73세때 청명날 추사의 묘를 찾아 제문을 지어 올리고 성묘함
1865년 80세때 (1865년 음력 7월 2일) 해남 대둔사에서 입적
이희풍이 쓴 <초의선사 탑비명>에 보면 달마산 무량회에 참석하여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한다. 선사가 대둔사 제13대
대종사로 입적한 후 나라에서 보제존자란 호를 내렸다.
선사는 덕망이 높은 선승으로서 시.서.화에도 뛰어나 많은 차시와 동다송, 다신전 등의 저술을 남겨 우리나라 차의
중흥조 로서 추앙받고 있다.
선사는 산에서 수양하는 스님이지만 많은 유학자와 문인들과 사귀였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동다송의 저술을
부탁한 홍현주,홍석주,자하 신의, 신천 김명희, 유산 정학연,다정 윤효림 등과 많은 시회(詩會)와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이중 초의는 다산에게서 유시(儒詩)를 배웠으며 추사 김정희와는 동갑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고 선경을 깊게했다.
초의와 다산,그리고 추사는 나이와 출신성분,지위와 종교의 차이를 추월한 교의를 깊게한 것은 차를 매개로 한 것이다.
이 세분의 교유는 옛날 중국의 호계지소도(虎溪之笑圖) 를 생각케 한다.
옛날 중국 여산에 고승들의 종단 백련사가 있었다. 이 종단의 우두머리이며 대학자인 혜원대사가 귀거레사 의 시인 도연명을 초청, 백련사에 가입시키려고 하였다. 어느 날 도연명을 산으로 초청하자 도연명은 술을 마셔도 좋다면 가겠다고 했다. 혜원은 불교의 계율까지 깨면서 좋다고 했다. 그러나 백련사 단원의 명부에 이름을 쓰라고 하자 도연명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곳을 떠나 버렸다. 이 백련사는 당대의 대시인 사영운과 같은 이도 가입하려 무진 애를 썼지만 끝네 가입하지 못한 권위 있는 단체였다.
모든 호의를 뿌리치고 도망간 도연명에게 혜원은 더욱 호의를 베풀었다. 혜훤은 어느날 친구 육수정과 함깨 술좌석을 마련 하여 도연명을 초청 하였다.
혜원은 불교를, 도연명은 유교를, 육수정은 도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였다. 그날 혜원과 육수정이 도연명을 배웅하며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호계교를 지나와 버렸다. 혜원은 매일 산보를 하는데 호계교를 절대 넘지 않는 것을 엄수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세 노인은 파안대소 하였다.
이 세 현자의 이때 이야기인 호계지소도 라는 고사는 두고 두고 중국의 유명한 화제가 되었다.
우연이지만 조선말, 우리 나라에도 강진의 백련사를 중심으로 세속을 떠난 호계지소를 생각케 하는 우정 넘치는 교분이
있었다. 다산, 추사,초의 이 세분이야 말로 출신 성분이나 성장환경, 종교, 나이, 성취 하고자 하는 학문의 길이 각각 달랐다. 다산은 24세나 연상이었고 실학자로서 세례명이 요안인 천주교도였다. 그의 형 정약종과 조카 정혜,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 신도인 매부 이승훈 등은 신유사옥때 순교하였고 큰 형 약종도 흑산도에 유배되어 죽었다.
추사는 초의와 동갑으로 추사체를 만든 세예의 대가였다.
다산과 추사는 각각 18년과 13년 유배생활을 한 불우한 시절 차를 마시며 울분을 삮이고 마음을 딱아 학문에 정진했다.
이 세분의 공통점은 차를 좋아 했고 차 때문에 전라도 해안 궁벽한 곳에서 우정을 쌓게 되었다.
정약용선생은 당시에 여유당이란 호를 사용 했으나 이후 다산이란 아호를 사용했다. 다산선생은 이무렵 차에 관한 많은
글를 남겼다.
내가 몹시 차를 탐하는 것은 약으로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독서의 묘한 버릇은 육우의 <다경> 심편을 모두 통달했고, 몸에 병이 깊어도 식욕 좋은 누에처럼 노동의 칠완을 다마셨습니다. 하오니 제발 차좀 보내 주십시요, 목마르게 바라는 것을 생각해서 은혜 베풀기를 아끼지 마십시요.
귀양 살이중에 병든 마음을 달래려 혜장스님에게 차를 구하는 애절한 편지이다.
초의선사는 그의 동다송에서 다산의 <걸명소> 한 구절을 인용하여 나이 많은 다산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다산 선생의 걸명소에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맑은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떴을 때,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밝은 달이 시냇가에 떠 있을 때가 한잔의 차 맛이 좋을 때라고 인용하고 있다.
다산 선생의 저서인 <아인각비> 과 <다신계목절>의 차 부분을 보면
차란 겨울에 푸른 나무이다. ......이것을 차라하며, 생강차, 귤피차, 모과차,라 하여 상습적으로 차라 부르는데
이는 잘못이다. 중국에도 이런 법이 없다.(생강탕, 대추탕 이렇게 부르는 것이 옳은 호칭이다)
......
곡우날 어린 차잎을 따서 덖어서 한 근을 만들고(우전차), 입하 전에 늦차를 따서 떡차 두 근을 만든다.
이 잎차 한 근과 떡차 두 근을 서찰과 함깨 부친다.
남긴 시를 보면 다신 정약용 선생은 지리산 유산에 나서 화개동천에서는 직접 차를 만들어 부치고 배를 타고 섬진강으로
떠나 갔다
조랑말 고개늘여 골짜기 벋어나니
나룻배 뜬강에 봄풀이 푸르구나
...... 이렇게 시를 읊으며
추사선생은 정조10년(1786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시.서.화 삼절로 불리는 박제가 밑에서 공부 하였고 중국 유학 시절에 차를 즐겨 마셔 아호를 승설(勝舌)이라 하였다.
유배시절에도 그의 주변에는 늘 차와 차화로가 있었다.
그는 차를 좋아해서 무수히 여러차례 지리산과 쌍계사등지를 내왕했었다.
그는 가까운 곳의 보성차가 있었으나 화개동 죽로차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애용했었다. 그는 죽로차는 중국에서 제일가는 용정.두강 보다 질이 훨씬 나으며 ,인도 유마거사의 주방에도 죽로차 만큼 묘미있는 차는 없을 것 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는 초의선사로 부터 차 선물을 많이 받았고 ,초의가 보내준 차를 마시며 붓을 들어 명선(차싹명茗고요할禪) 두자를 써서 존경하는 친구 초의에게 보내기도 했다.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
-당시 동은 우리나라를 뜻하므로 우리나라 차를 칭송함 이런뜻이 될것 같습니다.
동다송은 노래 가사로서 차나무 찬가입니다.(25절송 까지 있는데 줄입니다)
하늘이 좋은 차 나무를
귤나무 같은 덕을 갖게 했네
달콤한 잎 우박과 싸워
겨우내 푸르고
서리에 씻긴 하얀 꽃
가을 경치를 빛내네
고야산 신선같이 깨끗하고
연부단금 같이
초의가 끓이는 녹향(차이름)의 향기
찻잎은 곡우 전인데 작설처럼 너울거리네
단산(차이름), 운간월(차이름)만 들먹이지 마라
가득한 뇌소(차이름)로 길이 살리니
향기로운 열매를 맺네
............
-지리산 화개동 칠불사에는 이를 기려 <초의선사의 다신탑비> 가 세워져 있다
첫댓글 다산과 초의선사, 추사선생의 차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주셨네요
그런데 하동산 작설을 죽로차(竹爐茶) 방식으로 차맛을 볼수 있을지 몰러지만 산사에서 먹는다면
제격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가야불교의 발상지이고 문수보살님의 상주도량이고 동국제일선원인
칠불사에 있다는 초의선사의 다신탑비도 궁금함을 더합니다..
감사히 읽고갑니다..
40여년전만 해도 죽로차를 일품으로 쳤겠지만 제픔개발이 계속이어져 이제는 3등품 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눈속에서 차순을 딴것을 특상품, 곡우전에 어린잎을 딴것을 1등품 우전,
2등품은 작설(찻잎이 새혓바닥 만한크기).3등품이 죽로차,4등품이 가랑잎 수준이라 할수 있겠네요.
예전에 전혀 몰랐던 좋은글 주신 고문님 잘읽고 갑니다. 환절기 감기조심하세요.
퇴근길에 잼나게 읽었습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ㅡㅡ
차사랑이 정말 남다르셨군요
노이처사님의 귀한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