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과 의료기관을 개설한 비영리법인은 의료업(부대사업을 포함)을 할때 공중위생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감기로 동네 병원만 찾다가
목통증으로 MRI를 찍으려고 하니의료법 시행령 20조(의료법인 등의 사명)의 내용이다. 법에서는 의료법인의 영리 추구를 금지하고 있다. 현실은 어떨까? 병원도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평소 감기 정도로만 동네의 개인병원을 이용하는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병원의 돈벌이를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사원 정모(38)씨는 최근 목에 통증이 있고 손가락마저 잘 안 움직여 사무실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몇 마디 묻지도 않고, 심지어 손으로 아픈 부위를 만져보는 촉진도 없이 대뜸 "목디스크 같다"며 "CT를 찍어야 겠다"고 했다. 10만원 내외의 CT 촬영 비용도 부담이지만 의사가 미덥지 못했던 정 씨는 인근의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다. 증상을 말했더니 이번에는 엑스레이를 먼저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의사는 "목디스크 같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MRI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이때부터 정씨의 머리속은 복잡해졌다. 병원 두 곳에서 목디스크 의심 진단을 받고나니 목은 더 아픈 것 같았다. 비용 부담은 돼도 MRI를 빨리 찍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왕 찍는 것 대학병원에 가서 찍고 경험많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정 씨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비급여진료비 정보를 확인했다. 홈페이지에는 암, 뇌혈관질환, 간질, 척수손상 등 몇가지 질환의 경우 MRI도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목디스크 진단을 위한 경추(목부위) MRI는 보험적용이 안 된다고 고지돼 있었다. 비용은 병원마다 약간 차이가 났다. 사무실 인근 병원을 우선 보니 서울대병원은 72만원이었고, 고려대병원은 70만원이었다. 서울대병원에 진료예약을 하려 하니 대기환자가 많아 한 달 뒤에나 진료가 가능했다. 그나마 고려대병원은 일주일 안에 진료가 가능했다. 그런데 MRI 촬영 비용과 별도로 선택진료비를 포함해 초진비만 2만원이 넘어갔다. 정 씨는 고민끝에 동네 영상의학과에서 35만원에 MRI를 찍고, 촬영 필름을 CD에 담아 동네 정형외과로 들고가서 진료를 받는 쪽을 택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내시경 모니터에 치료제 주입을 위해 구멍을 뚫은 무릎연골이 보이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뉴시스
비영리법인으로 세제혜택 받으면서
돈 벌기 위해 노력하는 병원들
환자 대상 돈 버는 방법 '과잉진료'의료법인,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병원들은 비영리법인으로 세제혜택을 받는다. 의료법인 병원은 소득금액의 50%까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인정돼 법인세가 할인된다. 학교법인과 사회복지법인 병원의 경우 소득금액 전액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인정돼 법인세를 안 낸다. 이들 병원들은 그외 취등록세, 지방세에서도 혜택을 받는다. 모두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받는 혜택들이다. 비영리병원으로 세제혜택을 받으면서도 이들 병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환자를 대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과잉진료를 하는 것이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와 검사를 늘리는 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상업화가 가장 많이 된 곳은 대형병원들이다. 중증 환자들이 많이 찾다보니 진료와 치료를 위해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과잉진료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병원은 부대사업을 통해서도 돈을 번다. 현행 의료법 49조와 의료법 시행규칙 60조에 따르면, 의료법인이 개설하는 의료기관에서는 매점, 음식점, 제과점, 산후조리원, 미용실, 장례식장, 부설 주차장 등의 사업을 직영 또는 위탁 운영할 수 있다.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이 이같은 시설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대병원노조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장례식장, 식당, 커피점, 빵집 등을 병원내에서 운영해 한 해 150억원 가량을 번다. 정부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달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예시로 든 사업은 의료기기 등 구매, 의료기관 임대, 의약품 개발, 화장품·건강보조식품·의료용구 개발 임대 판매, 의료기기 개발, 온천·목욕장업 등이다.가능한 부대사업의 범위만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부대사업을 위한 자회사 설립도 가능해진다. 현재는 병원에서 진료와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더라도 고스란히 고유목적사업인 의료에 재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주식회사인 자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수익의 일부를 배당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이 이익을 가져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교병원 직영 약품 도매상들
병원에 약품 비싸게 공급해 높은 당기순이익 내고
주주들에게 천문학적인 배당잔치그렇다면 주주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자회사의 이익을 최대화해 배당금을 많이 챙겨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모회사인 병원이 자회사의 수익 창출 터전이 될 수 있다. 이때문에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에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의료법인을 영리화시키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모법인인 의료법인이 자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게 되면, 사실상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이 적극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자회사가 이득을 내지 못하면 자회사는 존립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모회사인 병원은 자회사의 수익 창출 루트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병원이 자회사의 수익 창출 루트가 된다면 그 부담은 환자와 국민들이 질 수밖에 없다.이런 사례가 있다. 학교법인 병원들은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자회사를 갖고 있다. 2009년 국정감사 때 이게 문제로 불거진 바 있다. 대형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학교법인의 이사장과 가족 등 특수관계인들이 병원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하는 직영도매상을 설립해 거의 독점적으로 의약품을 공급받았다. 당시 전혜숙 민주당 의원은 모두 8개의 직영도매상들이 계열 병원에 비싸게 약품을 공급했다고 지적했었다. 당시 이들 병원이 직영도매상을 통해 공급받은 의약품 단가는 동일의약품을 국공립병원이 공급받을 때보다 평균 7% 비싸게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240개 의약품을 국공립병원들은 1조2797억원에 구매한 반면, 직영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공급받았던 계열병원들은 국공립병원들보다 86억1200만원 더 비싼 1조3659억원에 구매했다. 사실상 부당 내부거래로,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 것이다. 계열병원에 약품을 비싸게 독점공급한 덕분에 직영도매상들은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당기순이익을 올렸고, 천문학적인 배당 잔치를 벌였다. 당시 전혜숙 의원이 직영도매상들의 감사보고서를 통해 배당금 내역을 확인한 결과, 4313%의 배당률을 보인 곳도 있었다. 1주에 1만원인 주식 1주당 배당금이 43만1373원이었던 것이다. 감사원 감사와 국감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이슈화 되면서 이후 약사법이 개정돼 약품 도매상들이 특수관계에 있는 계열 병원에는 약품을 공급하지 못하게 됐다. "자본투자 허용은 의료 영리화에 쐐기를 박는 정책"
"의료비 증가 속도, 건강보험이 견딜 수 없을 것"정부는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면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자법인 수익은 고유목적사업인 의료분야에 재투자하도록 하고 △모법인의 자법인 출자 비율을 제한하는 등의 규제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식회사 설립을 허용한다는 것은 자본이 의료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이들이 영리를 추구하고 그로부터 나온 이익을 배당금으로 챙겨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보고 미국 보다 더 영리화돼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민간병원이 94%인 나라는 전 세계에 아무데도 없다. 마지막 쐐기를 박는 것이 자본투자를 허용하는 것이다. 맹장수술 1500만원은 괴담이 아니라 우리 현실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체계를 손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우리나라는 민간의료기관이 94%나 되기 때문에 그 민간의료기관을 통제하는 게 정부의 가장 큰 공적 기능이다. 민간의료기관을 통제하는 가장 큰 규제장치가 비영리법인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자회사 설립 허용은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을 영리화하면서 정부의 규제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 민영화다"라고 말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당연지정제 등 건강보험체계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도, 개인병원 중 20%만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면 연 1조5천억원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을 2009년 내놓은 바 있다. 건강보험체계에 변화가 없어도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국민 의료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건강보험 체계에 변화가 없으니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이 논리적으로는 맞아도, 현실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다.우석균 정책실장은 "당시 보건산업진흥원 연구에서는 비급여 진료가 1% 증가할 때마다 진료비는 1천억원 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의료비 증가율이 OECD 국가 중 1위인데,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의료비 증가속도를 건강보험이 견딜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료법인에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병원 인수합병 등을 허용하는 정부 정책 방향이 건강보험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전면적 의료 영리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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