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된 이야기, 십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전라남도 광양시에 있는 옥룡천에 승용차로 나들이를 간적이 있다.
옥룡천은 여름철 계곡 피서지를 즐기기에 참 좋은 곳으로 우선 물이 맑고 깨끗하다.
옥룡천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로 차를 운전하며 언뜻시야에 들어오는
하천을 바라보면 오후의 햇살을 받아 은비늘을 반짝거리며
수없이 물위에서 튀어오르는 피라미떼를 구경할 수 있다.
옥룡천에 피라미가 많다는 것은
오늘날 극심한 환경오염과 물질만능주의에 숨이 막힐듯한 세태속에서
그래도 우리의 심신을 자연환경으로 잠시 돌리게 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해 주는 이유가 되리라.
그런데 목적지까지 갔다가
차를 되돌려 나오면서 어느 지점에선가 족대를 가지고 한무리의 천렵을 하는 소년들을 보았다.
아까는 미처 그들을 발견못했는지
아니면, 그사이 내가 잠시 지나치는 틈에 그들이 천렵을 나왔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초등학교 5, 6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애들이 세명,
그리고 그들보다 유독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큰 아이가 하나,
언뜻보기에 큰 아이는 대략 중학 2, 3학년 쯤 되어보이긴 했으나 찬찬히 뜯어보니
얼굴이 앳띠고 골격이 튼실하지 못했기에 다만 덩치만 컷을 뿐 같은 초등생 또래로 보였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설령 나이 차가 있을지라도
이문열 소설의 ‘우리들의 일그러징 영웅’ 에 나오는 엄석대처럼
동기생들보다 나이는 2살이나 많으면서,
동급생임과 동시에 대장(두목)노릇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구성된 그들은 한참 족대에, 마침 금방 포획된 물고기들을,
바께스(일본어, 우리말로 양동이라고 하면 무리가 없을 듯)에 퍼붓고 있었다.
나는 차를 멈추고 잠시 그들의 하는 양을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양동이 안을 들여다 보는데.
뜻밖에 몸색깔이 푸르뎅뎅하며, 화려한 큰 피라미 한 마리를 발견 하였다.
다른 잔챙이 피라미들과는 확실히 구별되었다.
“ 야! 이 고긴 무슨 고기야! 참 멋지게 생겼다. ”
나의 물음에 그 중, 큰아이가 얼른 그 피라미를 손에 쥐고 들어 올리더니
“ 이거요? 이건 참피리요! 참피리! ”
하고 손을 펴 보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 참피리라니? 그런 피리도 있는 거야? 그럼 다른 피리는 뭔데? ”
“ 아! 다른 피리요, 그건 그냥 피리라고 해요. ”
“ 그냥 피리? 보통 피리라는 말이지? 그럼 종류가 다르다는 말이야? “
“ 예, 맞아요 ”
아이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였다.
피리라고 하는 말은 피라미의 전라도 방언이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이 참피리와 그냥 피리라고 하는 뜻은 예컨대 옛날 우리나라 어른들이
호랑이와 표범을 통칭, 같은 범이라고 싸잡아 부르긴 하되,
참호랑이와, 개호랑이라고 약간 종류가 다른걸로 구별했던 것처럼 그런 의미와 같은 것이다.
또 과거 먹을게 부족했던 60, 70 년대 가난했던 시절,
떡 한 번 해먹기도 변변치 못한 시대에,
밀가루를 대충 버물러 솥안에 밥을 앉힐때,
밥과 함께 익혀 먹던 밀가루 떡을 개떡이라고 일컬었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즉, 오늘날처럼 쉽게 먹을 수 있는,
인절미, 송편, 경단, 증편(기정) 시루떡, 등등,
진짜 맛있는 떡을 참떡 이라고 은연중 여기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아닌게 아니라 그때 먹은 개떡은 정말 맛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개떡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밥알을 일일이 떼거나 함께 먹는 것은
좋다고 해야 할지 못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운치는 있었지 않았을까.
추가로 하나 더 예화들 들면
참기름의 원료가 되는 고소한 맛과 향이 일품인, 참깨가 있는 반면에
들기름의 원료로 쓰는 깨는 깨이로되, 고소한 맛은 좀 덜하고 구수하다고나 해야 할까,
왠지 튀김, 오뎅(어묵), 부침개등에 나는 향내가 짬뽕된 듯한 뭐, 그런 느낌을 주는, 들깨였다.
그러니까 앞에 말한 천렵 나온
그 아이들의 ‘참피리’와 ‘그냥 피리’ 의 개념은 그런 뜻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도 그 순간은 뭐라, 달리 대꾸 할 말이 없었다.
얼른 듣기로 피라미가 참피리와 그냥 피리로 각각 종류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착오였다.
피라미는 종류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참피리라고 힘주어 말했던 개체는 바로 산란기 중에 있는 혼인색을 띤 피라미였다.
시골에 살고 있긴 하지만 민물고기에 대한 바른 지식이 미처 정립되지 못했던지라
그냥 어른들로부터 주먹구구식으로 주워 들은 무식(?)의 소치였던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그때 아이들의 힘있고 당찬 주장을 떠올려 보니 웃음이 나온다.
첫댓글 물고기에 대한 얘기는 항상 정겹고 재미있습니다.
엣날엔이런일이잇엇군요~잘봣습니다 ㅎㅎ
구수한 옛날 이야기 참 재미 있게 보고 갑니다 .
이거 들으니 올해초 고기 한참 잡으러 다닐때 혼인색띈 갈겨니 큰놈보고 대물 잡았다고 좋아하다 친구한테 무안 당한 기억이 나네요.ㅋ
갈겨니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