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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짐바브웨에서 생활 중인 권세나입니다.
해외사업분야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 곳에서의 활동에 회의감도 많이 느끼기도 했으나
그 와중에 저희 유네스코 브릿지 사무국 추천도서였던
복지요결을 읽고
제 모습을 바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비틀거립니다. 흔들거립니다.
그때마다 복지요결을 펼쳐보고는 합니다.
친구 '화인'이의 조언으로
이곳에 조심스럽게 저의 삶, 저의 고민, 저의 욕심, 그러나 희망에 대해서
올려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유네스코 뉴스에 기재했던 무편집본 기사를 올립니다.
조언과 슈퍼비전 부탁드립니다. ^^
짐바브웨에서 붕자 올림
* 마음 상태, 사업 내용의 기준은 2011년 7월 15일입니다.
* 사진이 포함된 글은 유네스코 브릿지 블로그 : http://kncu_bridge.blog.me/10129500272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10개월 동안 깨지고, 배우고,
그리고 사랑하게 된 짐바브웨에서의 제 삶의 이야기 들어보시겠어요?
이틀 전 이사를 했습니다. 실은 이사라기보다는 단출한 짐과 함께 새롭게 지어진 옆방으로 옮겨 온 것인데요. 짐바브웨에 온 지 마침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기에 묵은 때를 벗겨내듯, 새로운 방에서 짐바브웨에서의 2년째의 삶을 맞이하게 되어 좋습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이사하기 전에는 왜 그렇게 울상이었나 싶습니다. 기존의 방과 크게 바뀐 것이 없는데도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사하게 된 억울한 마음에 새로운 방의 안 좋은 점들이 더 크게 받아들여져서 그랬나 봅니다. 비교하지 않는 마음으로 제 상황을 보니 이제는 오히려 좋은 점들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짐바브웨 생활 초기는 이런 실수들을 반복했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외국생활, 처음 해보는 국제자원활동, 그리고 브릿지 1기.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해보겠다는 욕심이 짐바브웨 생활 초기에는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이런데 짐바브웨는 이러네. 짐바브웨는 다른 곳에 비해 이것이 부족하네. 이런 것이 없네.’ 내가 채우려는 욕심에 짐바브웨가 가지고 있던 자원보다 짐바브웨의 부족한 점들이 먼저 보였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제가 원하는 것을 보던 시기였습니다.
넘어지고 깨지기
저는 짐바브웨에서 가장 큰 타운쉽* 중의 하나인 ‘타파라(Tafara-’행복‘을 뜻함)'라는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타파라는 약 800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매우 큰 타운쉽입니다. 마을이 큰 만큼 사람이 많고,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 자체가 자원인 마을입니다. 설문조사 때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영업(Self-employment)**을(자영업은 적당하지 않은 번역 같은데 특별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네요.) 타파라 마을의 장점으로 꼽았던 것과도 통합니다. 가용노동인구의 약 90%가 실업자인 이곳에서 self-employment는 살아남기 위해 주민들이 스스로를 단련시킨 삶의 몸부림과도 같습니다.
* 흑인 재정착촌 township 흑인이나 빈민 등을 차별적으로 분리시켜 생겨난 집단거주지
* * 의류재봉, 목수, 용접공, 소매상업 등의 self-employment가 있습니다. 고용의 기회가 적은 만큼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발휘하는데 적극적입니다.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마을에 정착하는 것이 차일피일 미뤄지다 짐바브웨에 온지 2개월 만에 좋은 집주인 가족들을 만나 타파라 마을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집주인 아들 칼빈(Calvin)의 도움으로 마을에 들어온 지 약 한 달 만에 국제워크캠프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워크캠프는 저와 브릿지 프로그램을 마을에 소개하는 자리이자, 마을 사람들이 한판 놀 수 있는 스포팅 이벤트(Sporting Event)로 치러졌습니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국제워크캠프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젊은 친구들과 함께 우리 마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보내던 초기 3개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크게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와 친구들 간의 균형 잡힌 관계였습니다. 지역주민 스스로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가도록 한다는 브릿지 철학에 대한 저의 잘못된 해석에 갇혀 제 의견을 내기보다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나보다 마을에 대해서 잘 아니까, 그들은 마을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그들이 진짜 주민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어리석었나 싶습니다. 나조차 브릿지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으면서 만난 지 겨우 얼마 되지 않은 친구들이 나의 의도를 이해해주고 나와 모든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니요.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보니 이 친구들에게는 마을의 변화를 원하는 마음만큼이나 일자리를 얻고 경제적인 안정을 찾으려 했던 마음도 컸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눈을 뜨다
이 때 즈음 시기적절하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브릿지 활동가들을 위한 보수교육 차원의 리트릿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그간 짐바브웨 타파라에서의 일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내 스스로,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나 균형 잡혀있지 못했다는 것을요. 또한 소수의 친구들과 만난다고 정작 중요한, 지역의 자원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내가 보고 싶었던 부분만 보았지, 마을의 진정한 자원인 주민들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참 예쁩니다. 그들 모습 그대로 믿고, 그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저의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제 자신을 믿고 주민들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주민을 만나자. 그 과정에 주민이 원한다면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변변한 프로젝트 하나 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브릿지 1기로서 지역에 대해 알아가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저는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지역에서 낯선 사람들과 무언가를 꾸미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친구들에게 저의 변화된 의지에 대해서 전했을 때 그들이 보여줬던 조롱 섞인 반응은 저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넌 후퇴하고 있다.’, ‘30년 후에 지역학습센터 건물이 지어진다고 하면 어떤 주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너 때문에 우린 마을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그들에게 미안한 만큼 제 마음 속 상처도 컸지만 이를 계기로 많이 배웠습니다. 주민들을 조직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경제적인 이익을 바란 주민들이 저를 중심으로 잠시 모인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함께 변화를 꿈꿨다고 생각했지만, 변화에 대해 말할수록 그들에게 약속하게 되고 그들이 기대를 갖도록 만든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요.
이렇게 저의 짐바브웨 초기 몇 개월의 삶은 실패의 이야기고, 배움의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까지 가서 뭔가 대단한 걸 하는 줄 알았더니, 눈에 띄는 프로젝트 없이 시행착오만 하고 있나.’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활동가들이 성공의 이야기를 적고 있으니, 저 같은 활동가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한 명 쯤은 있어도 괜찮겠지요? ^^
첫째도 만남, 둘째도 만남... 언제나 만남
주민을 만나기 위해 성인문해수업이 열리는 마을의 성당(Roman Catholic Church)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짐바브웨에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알아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지역 리더들의 모임은 정치적 색깔이 짙어서 외국인에게는 위험할 수 있는 반면, 성당은 그런 위험 없이 주민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참 더디어 보였습니다. 주민들을 만난다고는 했는데 그냥 이렇게 만나기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천 명이 넘는 교인 중에서 내가 얼굴을 아는 주민은 겨우 몇몇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주민을 알아간다는 차원에서 섣불리 질문공세를 퍼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정착 초기에 지역조사 차원에서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그런 것은 주민들에게 또 다른 약속을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 그저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성당에 꾸준히 나가면서 성당(이하 ‘센터’라 칭함)이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센터 역할을 해 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하는 일은 센터 아주머니들과 수다 떨고, 밥 먹고, 그러다가 다른 주민들이 오면 그들과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센터의 다양한 모임에 최대한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생활하다 보니 센터와 마을에 대해서 알아갔습니다. 종교를 중심으로 엮인 튼튼한 조직을 이용하여 유치원, 성인문해교실과 같은 학습 모임이 열리고 있고, 재봉, 텃밭 그룹과 같은 자원활동 모임, 소득증대 모임이 있었습니다. 자원이 충분치 않아 빠르진 않더라도 이들 스스로 변화를 위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좀 뭔가를 하면서 주민을 만나자 싶어 타파라 포토 월드(TAFARA PHOTO WORLD)라 이름 붙인 사진 촬영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센터 내에서 내가 무언가를 하는데 발판으로 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보다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브릿지의 돈을 직접 사용하기보다 작더라도 본 프로젝트를 수단으로 주민들의 돈을 모아 마을을 위한 일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주민들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일대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들의 이름을 알아갔습니다. 이제 저는 약 200명의 주민들의 이름을 외웁니다. 이름을 몰랐을 때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와 같이 형식적인 인사들을 나누며 스쳤던 인연들에게, 이제는 “굼베제 아주머니, 잘 주무셨어요?”라며 먼저 다가가 인사합니다. 내가 현지어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주민들이 좋아할 때가 바로 내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줄 때입니다.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라면서 좋아하시고, “내 이름이 뭐라고?”라고 되물으시며 다시 한 번 불러주기를 원하시기도 합니다.
이름을 알아가니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니 반갑게 인사하게 되고, 포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들과 두 번 인사를 나눕니다. 말로 나누는 인사, 그리고 진한 포옹을 하면서 나누는 가슴의 인사.
브릿지의 국내 훈련 당시 주민의 삶에 스며드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할 때 주민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그리는 활동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밥 함께 먹는 게 무어 그리 어려울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짐바브웨에 온지 겨우 몇 개월 만에 제 스스로가 그려왔던 기본적인 것들을 잊으며 살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다시금 되새기고 제 삶의 나침반으로 삼는데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마을 안에서 관계가 생기면서 타파라 주민으로서의 진짜 제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을 믿는다는 건 그들의 가능성을 본다는 것
이전에는 똑같이 검은 얼굴의 주민이었다면, 이제는 그들 각자의 다른 얼굴 생김새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힘, 그들 스스로의 변화가 보입니다. 그러면서 전 브릿지 활동가로서의 제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자원활동이라는 보기 좋은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은 내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아프리카에 온 것은 아닐까? 내 욕심 때문에 오히려 이들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민들을 조직한다는 이름 아래 그들의 삶에 내가 무례하게 끼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존재 자체가 오히려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전 제 자신을 낮추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오기 전 주민의 삶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원조에 익숙한 주민들이 우리에게 가질 기대를 낮추어야 한다고 많이들 얘기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제 자신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낮추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대하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저를 친구로 받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의 따뜻함이 지금 제가 우리 마을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많은 현지 분들이 얼굴이 하얀 외국인은 돈이 많고 자신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기 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주민들은 이들과 다른 중국인* 루도(Rudo)**를 압니다. 너희 마을은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신에 ‘너희 문화를 배우기 위해 왔다. 그래서 나는 현지어인 쇼나어를 배우고 친구가 되려고 한다.’라고 말하는 루도를 압니다. 국제자원활동가의 정체성에 계속 물음표를 던지던 생활 끝에 하얀 외국인에게 갖는 선입견을 깨뜨리는 것, 진짜 친구가 되는 것에 브릿지 활동가로서의 첫 번째 정체성을 세웠습니다.
* 난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계속 얘기해도 주민들은 또다시 차이나, 차이나 합니다. 하지만 저를 중국인으로 보느냐, 한국인으로 보느냐는 이제 제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한국을 알리기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진정 친구가 되려 했던 중국인 Rudo를 떠올리면 그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는 건 그런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요.
** Rudo는 제 현지어 이름이며 ‘사랑’을 뜻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자극적인 미디어 속 정보에 홀려 짐바브웨를 에이즈의 나라,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넝마를 입은 아이들이 구걸하는 나라로 상상하고는 했었습니다. 에이즈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들은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다양한 영양 섭취는 힘들지라도 끼니를 거르지는 않으며, 한국보다 오히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짐바브웨 사람들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진짜 아프리카를 보는데 소홀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을 홀려왔던 것 같습니다. 진짜 아프리카를 보고, 진짜 짐바브웨를 보고, 이곳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저는 브릿지 활동가로서의 두 번째 정체성을 세웠습니다.
관계 속 따뜻함으로 치유된 상처를 딛고, 조심스레 전.진.
주민들의 돈을 모아 마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던 바램 속에서 시작한 ‘타파라 포토 월드’. 이를 통해 얻는 수익으로 센터의 부서진 의자와 벤치를 수리하는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온전히 주민들의 돈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사진 판매가 많은 흑자를 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돈을 모으기 위해 센터 위원회와 다음과 같은 예산 구조를 협의했습니다.
‘사진 판매 수익 : 센터 자금 : 브릿지 = 1 : 1 : 1’
약 2개월 동안 사진을 촬영하면서 미화* 100달러를 벌었기 때문에 위의 예산 구조에 의하여 300달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즉, 사진 수익과 센터 자금 200달러는 주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입니다.
*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짐바브웨 화폐 가치 몰락으로 2008년부터 지폐는 미화를 사용하고, 동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란드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게 브릿지 철학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면 마을에서 하루 이틀 정도 조사를 한 후에 새롭게 자원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센터에 가구를 기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브릿지 활동가는 조력을 할 뿐입니다. 가구를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원을 보고 이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수리가 필요한 의자와 벤치를 확인하고, 예산 내에서 수리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여 재료를 마련한 후, 센터의 주민들이 함께 모여 가구를 수리하는 워크캠프를 진행했습니다. 이 모두 센터의 자원 목수 엠마뉴엘(Emmanuel)의 조율 속에 행해질 수 있었습니다. 가구를 수리한 두 번의 워크캠프 후 이 모임에 함께 해 준 주민들에게 고맙다고 말을 한 사람도 제가 아니라 엠마뉴엘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저의 존재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한 주민은 제게 “너는 여기 왜 왔어?”라고 대뜸 묻기도 했습니다. 이 워크캠프를 추진하기 위해 나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이런 질문을 받아 당황스러웠지만, 곱씹을수록 기분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전기가 끊겨서, 센터에 다른 행사가 있어서, 용접공이 없어서 취소되기 십상인 의자와 벤치를 수리하는 워크캠프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두 번의 워크캠프를 통해 17개의 벤치와 18개의 의자를 수리했습니다. 센터 사람들과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즐거웠다고 엠마뉴엘은 얘기합니다.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던 워크캠프였습니다. 또한 센터 유지보수 위원회 의장(Minister of Maintenance)인 쿠리사(Kurisa) 아저씨는 “Men's Club을 만들어서 매주 토요일에 센터를 보수하는 일을 하자.”, 그리고 “직업이 없는 젊은 청년들과 함께 하며 그들이 자연스럽게 일을 배울수록 있도록 하자.”라는 아이디어를 내주시며 사람들을 독려하셨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조직이 탄생되는 건가라는 기쁨에 잠시 들뜨기도 했지만 연달아 두 번의 모임이 취소되는 것을 보면서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워크캠프를 계기로 주민들이 모이고,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알고, 서로를 독려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나 저에게나 의미가 큽니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함께 성장
센터의 의자와 가구를 수리하는 워크캠프는 이렇게 삐거덕대며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빨리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를 부리지는 않습니다. 이 워크캠프 외에도 그들에게는 치열한 그들만의 삶이 있으니, 그들의 삶의 속도, 변화의 속도를 거스르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모임이 그냥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삶을 우선으로 두면서 변화를 꿈꾸는 모임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진짜 삶 속에 녹아들어 오래오래 함께 갈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꾸는 변화
짐바브웨에 온지 열 달이 지나서야 저는 이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넘어지고 깨지며 생긴 상처가 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진짜 치유는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 저는 이제야 조심스럽게, 주민과 함께 하는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 이것이 지금 제가 꾸는 변화입니다.
쿠리사 아저씨가 제안해주신 Men's Club이 조직된다면 센터를 보수하는 일 외에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대안/적정기술입니다. 전기스토브로 음식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전기가 매일같이 끊기는 현상은 큰 고통 중의 하나입니다. 햇볕이 좋은 짐바브웨의 날씨를 활용할 수 있는 태양열 조리기(Solar Cooker), 땔감의 화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있는 로켓 스토브(Rocket Stove)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센터의 여성 그룹들과는 대안 생리대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타파라에는 이미 그들의 탄탄한 학습 조직(학교, 야학, 성인문해교실, 유치원 등)이 있으니, 그러한 지역학습센터를 운영하기보다는 2년째의 타파라 삶은 제가 관심 있는 대안/적정기술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며 즐겁게 지내고 싶습니다. 편리함이 넘쳐나는 한국에선 웬만한 의지 없인 대안적인 삶을 살기 어렵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삶의 팍팍한 조건들이 대안/적정기술을 나누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너와 나를 믿고 쭈욱~ 가기
남은 1년, 제 삶의 화두는 대안/적정기술 외에 현지어와 현지음식을 즐기면서 주민들과 더욱 진심으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너무 믿지 말라’, ‘조심하라’는 조언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전 관계를 믿습니다. 상처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전 관계 속에서 행복해하고 치유되는 사람이란 것을 알기에 저의 마음을 믿고 이렇게 가고 싶습니다. 그냥 그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2011년 7월 15일
짐바브웨 타파라에서 세나 드림
이메일 : happysaena@gmail.com
블로그 : http://blog.jinbo.net/bungja
페이스북 :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04556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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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흑인이나 빈민 등을 차별적으로 분리시켜 생겨난 집단거주지'
불가촉천민, 유배...
저기 타운쉽과 여기 영구임대아파트. 읽는 내내 오버랩 됩니다.
지원사업을 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지역 주민 보다 높은 자리에 서서
주민을 대상자, 약자 취급하기 쉬울텐데,
끊임없이 자신을 쳐서 주민과 같은 자리, 주민 보다 낮은 자리에서 일하려고 애쓰시는
권세나 선생님.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찬 선생님. 이제서야 저도 답글을 답니다.
감사합니다.^^
부지불식간....
의도치 않아도 저는 계속 주민들보다 높은 곳에 서게 됩니다.
얼굴 색깔이 다른, 돈이 많은 나라에서 와서
이곳 주민들은 쉽게 만나기 힘든 높은 사람들을
저는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을 분들의 넉넉치 못한 살림을 눈으로 보더라도
저에게는 넉넉한 생활비가 있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늘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낮아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도
이미 저는 높아져있습니다.
과연 제가 마음으로 낮아지고 있고, 그렇게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언제나 언제나 선생님 말씀대로 제 자신을 쳐야할 텐데요.
블로그에서 사진과 다른 글을 보았습니다.
권세나 선생님의 자그마한 벽돌집, 집이 허름해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고 사는 이웃 이야기.
http://kncu_bridge.blog.me/10129500272
복지요결 공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동찬 선생님.
복지요결은 정말 풋내기 활동가 저에게 너무나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감사해요.
"지역주민 스스로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가도록 한다는 브릿지 철학에 대한 저의 잘못된 해석에 갇혀 제 의견을 내기보다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나보다 마을에 대해서 잘 아니까, 그들은 마을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그들이 진짜 주민이니까. "
'당사자의 삶이 중요하니,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가?'
시골사회사업팀 활동할 때, 자주 경험하는 주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복지요결에 '방법 2.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 편을 읽곤 합니다.
② 의논하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당사자가 원하면 다 좋다는 식으로 그저 따를 수는 없습니다. 지역주민의 의견이라고 무조건 따를 수는 없습니다. 가치 때문에 양해를 구하거나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략)...
상대방에게 좋게 보이려고, 기쁘게 해 주려고, 인기를 얻으려고, 인기를 잃지 않으려고, 책임을 피하려고, 또는 형식에 매여서, 주관도 없이 묻거나 들을 수는 없습니다.
가치 불문하고 그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 듯 묻는 건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묻기만 하지 않고 또한 의논하는 것입니다. "
네. 김동찬 선생님.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
저에게는 제 자신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언제나 과제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참 예쁩니다. 그들 모습 그대로 믿고, 그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저의 마음 말입니다. 우선 주민을 만나자. 그 과정에 주민이 원한다면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변변한 프로젝트 하나 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브릿지사업단의 사업과 실적보다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 사람살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마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많이 배우고 있지만 그래도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왜 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왜 난 더 가까워지지 못했던 걸까. 왜 난. 왜 난.
그래도,,, 부족한 내가 있어 더 나은 내일의 내가 있을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한.
이렇게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정착 초기에 지역조사 차원에서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그런 것은 주민들에게 또 다른 약속을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복지요결 조사편 중
"애당초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 서론에 밝힌 조사 목적은 이 조사를 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알아 낼 수 없는 것인가? 문헌을 찾아보거나, 전문가에게 묻거나, 모여서 논의하거나, 지역사회 두루 다니며 물어봐서 알아낼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듭니다."
각주 35번
"지역사회 조사에 관련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지역사회조사는 매우 유용할 수도 있지만, 과용은 위험하다. 특정 지역사회 문제에 직면한 지역사회 활동가 - 특히 사회과학을 전공한 경우 - 는 먼저 ‘조사를 하자’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 조사를 통해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 조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고민조차 해 보지 않은 채 일단 조사를 하려고만 하는 태도는, 부분적으로는 대부분의 사회과학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조사에 집중하고 있는 데 기인하며, 그 결과 조사가 문제해결을 위한 최우선적인 도구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 지역사회개발, 짐 아이프 저, 류혜정
"(성당에서)아주머니들과 수다 떨고, 밥 먹고, 그러다가 다른 주민들이 오면 그들과 인사하는 것입니다."
<골목에서 꽃이 피네> 저자 정외영 선생님께서 이렇게 시작하셨다지요.
관계만들기가 숙제였을 때는 그조차 괴로웠습니다. 당장 나가서 얼굴도 모르는 주민들을 만나 인사하고 웃어야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하는 것,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어가는데 걸리는 자연스러운 시간들을 뛰어넘으려 했던 저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인 선생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짐바브웨에 친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짐바브웨란 이름을 듣고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자원활동이라는 보기 좋은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은 내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아프리카에 온 것은 아닐까? 내 욕심 때문에 오히려 이들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민들을 조직한다는 이름 아래 그들의 삶에 내가 무례하게 끼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존재 자체가 오히려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전 제 자신을 낮추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깨달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가 들어가 그들의 삶을 주도하려는 마음 경계합니다.
네... 그 경계가 정확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성찰이 필요하더라고요.
화인이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셨군요. 반갑습니다. 올해 10월에 한국에 돌아가면 저도 함께 걷고 싶습니다.^^
한 주민은 제게 “너는 여기 왜 왔어?”라고 대뜸 묻기도 했습니다. 이 워크캠프를 추진하기 위해 나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이런 질문을 받아 당황스러웠지만, 곱씹을수록 기분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복지소학 37p 발전편, 我自然 아자연 / 우리 스스로 했다. 자원활동가에게 넌 여기 왜왔어? 우리가 다하고 있는데 그 사업이 귀하고 그 모습이 귀합니다. 곱씹을수록 기분 좋다는 말 이해가 됩니다.
멀리 짐바브웨에서의 생활 응원합니다. 좋은 선생님 알게되어 좋습니다. 문화인 선생을 통해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박상님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쓰는 많은 단어들, 생각들은 복지요결에서 대부분 배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제 생활의 단어들로 말을 바꾸었을 뿐 복지요결을 베끼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합니다.
어머! 이게 화인이가 말한 슈퍼비전!이군요!
세심한 댓글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인터넷을 오래 쓸 수 없어 하나하나 감사의 댓글은 달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