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순례
청산 파티마의 모후 성당
신성근 신부(문화유산교육지도사)
「푸른 산 아래 머무는 기도의 숨결」
깊은 들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산과 하늘 사이에
조용히 자리한 작은 성당 하나를 만납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을 붙드는 곳.
바로 청산 파티마의 모후 성당입니다.
청산별곡이 품었던 ‘청산’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소란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신앙의 모습을 닮아있습니다.
급히 흔들리지 않고, 오래 견디며,
계절 따라 색은 달라져도
결국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산처럼 말입니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이 생각납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오래전 사람들에게 청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었습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마음 기대어 살아가고 싶은 곳,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자리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청산성당도 그렇습니다.
삶이 버겁고 세상이 소란할수록 사람은
결국 마음 머물 푸른 산 하나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 푸른 산이 곧 성당이고, 기도이며, 신앙이 됩니다.
작은 농촌 성당이 품고 있는 시간
청산 본당은 1959년 9월 1일 설립되었고,
1960년 5월 30일 파 주교님께서 성당을 봉헌하셨습니다.
청산성당은 농촌의 진솔한 시간을 간직한 성당입니다.
신자들은 넉넉해서 성당을 세운 것이 아니라,
힘들었기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벽돌을 쌓았습니다.
당시 농촌의 신앙은 단순한 종교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삶 자체였습니다.
논과 밭에서 흙 묻은 손으로 일하다가도
저녁 종소리가 울리면 성당으로 모여들었고,
기도는 하루의 마지막 숨처럼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농촌 성당에는
도시 성당에서 느끼기 어려운 시간의 깊이가 남아 있습니다.
파티마의 모후, 그리고 시대의 불안
청산성당의 주보는 ‘파티마의 모후’입니다.
파티마의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회개하십시오.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0년이 넘는 시간(1917년)이 흘렀음에도
그 요청이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더 불안해지고,
건물은 커지는데 공동체는 더 쉽게 갈라집니다.
풍요로워졌는데도 서로를 향한 인내는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청산성당 앞에 서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얼마나 새로워져야 하는가?”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오래된 성당이 아름다운 이유
단순히 세월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 ‘불편함을 견디어 낸 신앙’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낡은 마룻바닥, 조금은 좁은 공간,
겨울이면 차가운 공기까지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었겠지만,
바로 그 시간을 지나며 공동체는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배려를 품고 살아가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조금 불편해도 함께하려는 마음,
조금 느려도 기다려 주는 마음,
조금 부족해도 감사하는 마음.
그것이 결국 공동체를 지켜 왔습니다.
그래서 청산성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견디어 낸 시간의 신앙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푸른 산은 말없이 남아 있다」
잠시 산을 바라봅니다.
청산의 산들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신앙도 어쩌면 그렇습니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의 쉴 곳이 되어 주는 것.
청산성당은 바로 그런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 더 아름답고,
크지 않아 더 따뜻하며,
오래되어서 오히려 깊어진 성당.
그리고 조용히 묻는 듯했습니다.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 ‘청산’으로 남아
오늘도 묵묵히
기도의 숨결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