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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현봉
표 1. 조선시대 樓?亭?臺의 도별 분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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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 |
정자 |
대 |
소계 |
경기도 |
21( 6.6) |
43( 18.1) |
8( 7.3) |
72( 10.8) |
충청도 |
33( 10.4) |
30( 12.7) |
15( 13.6) |
78( 11.8) |
경상도 |
108( 34.1) |
56( 23.6) |
20( 18.2) |
184( 27.7) |
전라도 |
71( 22.4) |
44( 18.5) |
20( 18.2) |
135( 20.3) |
황해도 |
19( 6.0) |
12( 5.0) |
5( 4.5) |
36( 5.4) |
강원도 |
30( 9.5) |
21( 8.9) |
23( 20.9) |
74( 11.2) |
함경도 |
16( 5.0) |
13( 5.5) |
7( 6.4) |
36( 5.4) |
평안도 |
19( 6.0) |
18( 7.6) |
12( 10.9) |
49( 7.4) |
소계 |
317(100.0) |
237(100.0) |
110(100.0) |
664(100.0) |
자료 : 안계복(1991), 안계복(1993)을 밑바탕으로 재구성 |
표 1은 1530년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누정대를 도별로 집계를 내어 분포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표다. 우선 누정대의 전체적인 숫자를 보면 누각이 317개소로 제일 많고, 정자가 237개소, 臺가 110개소로 누각의 1/3 정자의 1/2 수준이다.
표 1의 樓・亭・臺의 도별 분포를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에 해당하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에는 樓・亭・臺가 10% 이상 많이 분포하는 道이다. 그 반면에 북한 지역인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는 10% 미만으로 적게 분포하는 道이다. 또 다른 특징은 일반적으로 누각과 정자가 많은 道가 역시 臺도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臺가 일부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樓・亭・臺의 전체 분포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 맞지 않는 道가 강원도이다. 강원도는 樓亭의 구성비가 10% 미만임에도 불구하고, 臺의 구성비는 20.9%로 8개 道 가운데 제일 높다. 타도에 비해 강원도에 臺가 제일 많은 이유가 곧 臺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강원도에 제일 많은 이유는 강릉 경포대와 허이대(許李臺), 간성 무송대, 삼척 릉파대, 양양 비선대, 의상대와 같이 동쪽으로 향한 해안에 절벽이 발달하여 일출 절경을 보기 좋은 경우가 많고, 또 금강산의 금강대 백운대와 같은 산악 경관이 뛰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려시대 안축(1330)은 관동의 경관을 노래한 관동별곡이 있고, 조선시대 정철(1580)이 금강산과 동해의 절경을 유람하고 지은 관동별곡이 있다.
표 2. 조선시대 樓?亭?臺의 변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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樓閣 |
亭子 |
臺 |
계 |
1530 |
317(47.7) |
237(35.7) |
110(16.6) |
664(100.0) |
1871~1899 |
715(24.6) |
1168(40.2) |
1023(35.2) |
2906(100.0) |
Ⅲ. 산수유람정원으로서의 樓・亭・臺
1. 자연문화경관으로서의 樓・亭・臺
흔히들 유교문화경관이라고 하면 한국의 전통마을 경관에 樓亭이나 서원이 들어가 있는 마을경관을 일컫는다. 그러나 문제는 樓・亭・臺가 마을이나 도읍지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문제점이 있다. 즉 樓・亭・臺가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경우이다. 이것을 “유교문화경관”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자연경관”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 둘 모두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을 즐기고 자연과 일치되는 양식으로서, 자연을 적절히 잘 이용 할 수 있는 지점에 樓・亭・臺를 두는 한국의 전통정원 양식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자연문화경관」이라는 개념이다. 분명 자연경관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문화경관도 아니다. 산수화 속에 작지만 핵심적으로 들어가 있는 樓亭처럼 그러한 경관을 바로 자연문화경관이라고 정의 하자는 것이다.
그림 4) . 경남 거창 강선대
또한 이 「자연문화경관」 안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이지 않는 문이 있다. 예를 들면 강선대(降仙臺)와 같은 곳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부산시에는 8景과 같이 8臺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매년 음력 11월11일이면 신선이 내려와 쉬어간다는 강선대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충북 단양, 충북 영동, 충북 괴산 갈은구곡, 경남 거창, 전북 무주 등에도 강선대가 있다. 강선대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9¾ 플랫홈과 같은 곳이다. 단지 차이점은 대도시의 기차역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것이다. 옛 한국사람들은 깎아지 른듯한 절벽 경치는 곧 신선이 내려오는 곳이고 그곳에서 자신이 놀고 있으면 자신도 곧 신선처럼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현실과 이상과 상상이 바로 이 臺에서 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경관을 자연문화경관라고 정의하자.
2. 산수유람의 거점으로서 樓・亭・臺
대한민국에서 경관이 수려한 곳에 가면 으레 樓・亭・臺가 있기 마련이다. 樓亭은 드러나고 튀어나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조금 높은 언덕에 깊숙하고 그윽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바위나 나무 그리고 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가 되어 있다. 비록 누정이 인공환경이지만 이런 동화된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선조들은 거부감 없이 오를 수 있었다. 거부감 보다는 오히려 “어떤 자연경관이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오르게 되었다.
그림 5) 관수루 : 약 1000년 전부터 낙동강을 따라서 안동 영호루, 낙동 관수루, 밀양 영남루, 남강 촉석루가 유명한 4대 누각이었다
이 기대감이 인간과 자연, 즉 주(主)와 객(客)의 상호 일치를 위한 준비 단계인 것이다. 그런데 서거정, 정인지, 권근 등과 같은 선조들은 “한 고을의 뛰어난 경치들이 모두 이 누각에 모여 있다”, 혹은 “한 고을의 뛰어난 경치들을 독차지하고 있다”, 혹은 “멀리 있는 뛰어난 경치들이 모두 주렴과 책상 사이에 다 모였다”고 했다(안계복 1991, p.5). 즉 이러한 경치를 갖고 있으니 그 경치를 보는 순간 자연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이 일치하고, 주와 객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樓・亭・臺가 한 고을의 좋은 경치를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산수유람의 거점이 된다. 다른 곳을 일일이 가 볼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한국전통정원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 6) 부소산 정상부에 있는 백화정
東文選(서거정 1473)에서 신숙주(1460)는 ‘유관(遊觀)하는 장소로서의 樓, 榭, 臺’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榭는 “정자 사”자로 亭과 같은 글자이다. 다만 정자를 이용하는 목적이 좀 더 학문적일 때 이 榭자를 붙인다. 그러므로 신숙주의 기록은 樓・亭・臺가 유관하는 장소라는 정의와 같은 말이다.
또한 동국여지승람(1486)의 서문에 노사신(1427∼1498) 등은 편목의 순서를 “건치연혁”부터 마지막 “제영”까지 어떻게 나누어 기술하게 되었는지, 각 편목을 나누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누대에 대한 편목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누대는 사신이 왔을 때 대접(待)하기 위한 곳으로 시간이 있을 때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기(遊觀) 위한 곳이다(樓臺所以時遊觀而待使臣也)”.
그림 7) 거창 안음송대 : 그림과 실제 사진. 풍류를 즐기는 두 선비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생기는 의문은 왜 본문에는 거의 대부분 “樓亭”이라고 기록하면서 왜 서문에만 “樓臺”라고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올리는 글인데다가 노사신 혼자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서거정 등 당시 쟁쟁한 선비들이 함께한 글이므로 틀림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樓臺와 樓亭은 혼용해서 쓰더라도 큰 무리가 없는 유사한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숙주와 노사신에 정의에 의하면 樓・亭・臺는 遊觀하는(시간이 있을 때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는) 곳이다.
樓・亭・臺가 산수유람의 거점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논문 결과가 이를 증명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이정화(1998 pp.132-133.)는 퇴계가 樓・亭・臺에 대해서 쓴 한시(漢詩)를 연구한 결과 ‘한국 한시 작가들은 대체로 시를 읊는 풍류의 장소로 누정을 애용하다가 경치묘사 위주의 서정시를 창작하였다. 그러나 퇴계의 누정 한시는 단순한 경치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속적 인식과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는 관조적 시를 이룬다’라고 하였다.
또 박준규(1995 pp.228-229)는 송강 정철(1536~1592)의 문학에 대한 연구에서 송강이 주로 담양의 식영정(息影亭)과 환벽당(環壁堂) 그리고 소쇄원(瀟灑園)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이는 곧 담양의 누정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송강문학에서 보이는 누정은 약 45개소며, 누정한시(樓亭漢詩)는 75題(114首)로 집계되어 그의 문학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2. 한국식 명승 팔경과 樓・亭・臺
한국의 자연문화경관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가운데 또 다른 하나가 팔경이다. 팔경은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되었는데, 우리나라로 전래된 것은 고려 19대 명종(明宗)년간(1171~1197)이라고 여겨진다. 고려후반기에는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모티브로 하여 송도팔경(松都八景)5)이 선정된다. 그런데 송도팔경 가운데 7경은 소상팔경식(장소+경관)으로 되어 있지만, 마지막 1경인 박연폭포는 “장소+경관”이 아니라 “장소”만 선정한 한국식 팔경이다.4)
그림 8) 관동팔경 가운데 총석정 일부분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신도한양팔경6)(新都漢陽八景)이 정해지는데 이것은 중국식에서 벗어나 한국식으로 팔경을 지정하고 있다. 장소만 선정하는 한국식 팔경을 “명승형”(강영조 김영란 1991, p. 27)이라고 하기도 한다.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관동팔경7)과 관서팔경8)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승 팔경이다. 이 16경 가운데 亭子가 7개소, 樓閣이 5개소, 臺가 2개소 기타가 2개소로 관동・관서 팔경 가운데 樓・亭・臺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87.5%다. 따라서 한국식 명승 팔경은 곧 樓・亭・臺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관동팔경의 樓・亭・臺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문학으로 읊어, 산수유람의 거점이 됨과 동시에 문학의 산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시대 안축의 관동별곡, 조선시대 정철(鄭澈)이 읊은 관동별곡(關東別曲), 그리고 겸제 정선(1676~1759)의 실경 산수화가 있다. 그림 8은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유명한 총석정을 실경산수화로 그린 그림의 일부분이다. 6각 현무암 절리가 발달한 꼭대기에 산수유람을 즐기는 사람이 보인다.
그림 9)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 청간정 그림 10) 청간정 부분
관동팔경 가운데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청간정(淸澗亭)에 대해서는 이식(李埴 1584-1647)이 편찬한 수성지(水城誌)에 다음과 같이 기록9)되어 있다. “청간정은 원래 역(驛)에 딸린 정자로 만경대(萬景臺) 남쪽 2리에 있었다. 계곡물(澗水)과 붙어 있기 때문에 정자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만경루가 허물어지자 역의 정자를 臺 옆으로 옮겨와 드디어 뛰어난 경치가 되었다. 정자가 바닷물과 떨어진 것이 겨우 5, 6보이지만, 만경대가 바닷물을 막아주기 때문에 예부터 수해를 입지 않았다. 비록 큰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치더라도 계단을 넘지 않으니 오히려 기이한 경관이 된다(중략) 지금 이 정자는 군수 최천(崔倩)이 1555년에 중수하였다.”
여기서 역에 있던 정자를 臺 옆으로 옮겨와 그림 26과 같은 뛰어난 경치가 된 것을 보면 자연경관에 적절한 樓・亭・臺를 넣어 자연문화경관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9의 청간정 그림 가운데 일부분을 확대한 것을 보면, 사람들이 만경대 위에서 경치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최완식(1993 p.82)에 나오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앞에 돌봉우리가 있는데 층층으로 솟아올라 축대와 같고, 위는 평평한 책상과 같으며 높이는 능히 수십 길이 됨직하다. 삼면이 바닷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바람이 없고 물이 맑으면 고기를 헤아릴 수 있다. 臺 위 네모퉁이에 고송(古松)이 몇 그루가 서로 그림자를 엇갈리게 교차시키고 있는데, 옛날에 동쪽 모퉁이에 작은 樓가 있어 만경루(萬景樓)라고 불렀으나, 지금은(1633) 臺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 이는 동일한 장소가 때로는 樓로 때로는 亭으로 때로는 臺로 불리워졌던 좋은 사례로 樓・亭・臺의 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송강 정철이 쓴 관동별곡 가운데 의상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일출 유상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일출을 본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의상대가 옛부터 유상의 거점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자료다.
배꽃은 벌써 지고 소쩍새 슬피 울 때
낙산사 동쪽 언덕인 의상대에 올라 앉아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쯤 일어나니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
여섯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를 때는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
하늘에 치솟아 뜨니 가는 털도 헤아릴 만큼 밝다.
혹시나 지나가는 구름이 해를 가릴까 두렵구나..(중략)
그림 11) 겸재 정선의 의상대 : 우상 화면에 일출장면이 보인다. 그림 12) 실경산수화 의상대의 일부분인 이화대 일출 유상 장면
이밖에도 의상대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권3 낙산이대성조, 관암 홍경모(1774∼1851)의 관암유사 권13 洛山寺記, 조선 숙종대왕의 관동팔경시 등에서 찾을 수 있다(최완수 1993 p. 84). 그 내용들을 종합해 그림 11의 실경산수화와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11의 좌측에 여러 채의 집이 있는 곳이 낙산사이고 그 주변에 피어있는 흰 꽃이 배꽃이다. 그 주위를 송림이 둘러싸고 있다. 낙산사 오른쪽 끝으로 해안절벽위에 앉아 일출을 즐기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이 이화대(梨花臺)이며, 그림의 우상단부에 붉은 해가 뜨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부에 바닷물이 통하고 있는 관음굴이 있고 그 위에 亭子 한 채가 신라때 의상대사의 설화와 관계있는 의상대(義相臺)로 추정된다. 순암 이병성(1675∼1735)은 「밤에 낙산사를 찾아서」라는 시에 “낙산사에 들르는 많은 사람들 아침마다 오직 해뜨기만 기다린다(多少洛山呵(?)導客 朝朝但侯日輪昇)”라는 내용이 있다. 의상대의 일출이 유명했고 이를 보기 위해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유람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지면 관계상 관동팔경 가운데 총석정, 청간정, 의상대만 사례분석 했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樓・亭・臺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일출 월출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문학으로 읊어, 산수유람의 거점이 됨과 동시에 문학의 산실이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Ⅳ. 결 론
한국에 살다보면 사계절의 뚜렷한 변화앞에서 누구라도 자연을 찾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또한 사는 것이 답답하고 지칠때면 누구라도 자연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옛 선조들은 세속을 떠나 樓・亭・臺에 찾아가 머무르면서 자연을 즐기기를 즐겨했다.
1. 樓・亭・臺는 역사적으로 서로 다르게 발달했다. 역사서에 기록된 것에 의하면 臺에 관한 기록이 樓亭보다 500년이나 앞서 있다. 臺는 일찍부터 군사적인 목적으로 발달한 반면 정자는 유상(遊賞)하는 목적으로 하는 건물로 만들어졌다.
2. 樓・亭・臺의 정의를 비교하면 樓・亭・臺는 각기 다른 양식이다. 또한 중국과도 비교하면 다르다. 우리나라는 자연에 있는 높다란 바위인데 비해 중국은 인공적인 구조물이다.
3. 조선시대 전기에는 樓・亭・臺가 664개소이었으나 후기가 되면 2906개소로 4배 이상 늘어났다. 또한 도별 분포를 보면 樓亭이 많은 곳이 臺도 많은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臺가 특별히 많은 道가 강원도인데, 臺가 많은 이유는 해안 일출 경관과 산악 경관이 뛰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4. 신숙주와 노사신의 정의에 의하면 樓・亭・臺는 遊觀(유관: 시간이 있을 때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는)하는 곳이다.
5. 한국식 명승 팔경(관동별곡 관서별곡)에는 樓・亭・臺가 많다(87.5%).
6. 樓・亭・臺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문학으로 읊어, 산수유람의 거점이 됨과 동시에 문학의 산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관동팔경, 관동별곡이다.
ABSTRACT
Everyone who lives in Korea falls into temptation to go for Nature in front of apparent changes of four seasons. And also when they feel oppressed and tired in their own life. Thus, our old ancestors enjoyed to be unworldly in Nu․Jung․Dae enjoying the Nature.
1. Nu․Jung․Dae had developed differently each other historically. According to historic records, the records about Dae antedates the records about Nu․Jung by 500 years. Dae had developed in military purpose while Jung in strolling purpose.
2. Nu․Jung․Dae have their own styles, which are different from each other. These are different from China, too.
3. There were 664 of Nu․Jung․Dae in the preceding period of Chosun Dynasty while there were 2096 of them in the latter period, which were over quadruple. Kangwon province has many of Dae especially because of outstanding sceneries of waterfront sunrising and mountains.
4. According to the definitions of Shin Suk-ju(1417-1475) and No Sa-shin(1427-1498), Nu․Jung․Dae are the places where people have their own relaxing time with beautiful scenery.
5. There are many of Nu․Jung․Dae in The Eight Scenery(87.5%).
6. Many people had visited Nu․Jung․Dae to enjoy beautiful sceneries and compose and recite Korean ode. Thus, Nu․Jung․Dae became the base of Landscape-strolling Garden, and also space for literature. Kwandong - Eight Scenery(關東八景) and Kwandong - Byeolgok(關東別曲) are typical examples of them.
key words : Nu(樓), Jung(亭), Dae(臺), garden, palace, landscape.
참고문헌
1. 강영조 김영란(1991), 韓國八景의 형식과 입지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정원학회지 10 : 27-36.
2. 계성(1634), 園冶 영인본, 도서출판 조경
3. 김영숙 안계복(1995), 臺 양식의 역사적 발달과정 및 특징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3(2) : 124-136
4. 민족문화추진회 역(1985)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울 : 민족문화문고간행회
5. 박준규(1995), 송강 정철의 누정제영고(樓亭題詠攷), 고시가연구 2, 3 : 191-230
6. 서경원(2002), Landscape Architecture, 서울, 도서출판 담디.
7. 서길수(1998),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서울, 사계절출판사
8. 안계복(1991), 한국의 樓亭양식상 諸특성 및 계획이론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19(2) : 1-11
9. 안계복(1993), 「臺」양식의 역사적 발달과정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 2(2) : 26-36
10. 안계복(1998), 邑誌圖 분석을 통한 臺의 原型에 관한 연구,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연구논문집 57 : 207-217
11. 이정화(1998), 퇴계시 연구 - 누정한시(樓亭漢詩)를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 2 : 117-132
12. 최완수(1993), 겸제 정선 진경산수화, 서울, 범우사
1) 作豁然虛敞者(작활연허창자)
2) 崇板築謂之臺
3) 園林之臺 或掇石而高上平者 或木架高而板無屋者 或樓閣前出一步而敞者俱爲臺
4) 중국의 동정호(洞庭湖) 남쪽에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합쳐지는 여덟 지점에서 계절과 기상에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일컫는다.
5) 자동심승(紫洞尋僧), 청교송객(淸郊送客), 북산연우(北山煙雨), 서강풍운(西江風蕓), 백악청운(白嶽晴蕓), 황교만조(黃郊晩照), 장단석벽(長湍石壁), 박연폭포(朴淵瀑布)
6) 기전산하(畿甸山河), 도성궁원(都城宮苑), 열서성공(列署星拱), 제방기포(諸坊碁布), 동문교장(東門敎場), 서강조박(西江漕泊), 남도행인(南渡行人), 북교목마(北郊牧馬)
7)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의상대(義湘臺),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
8)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성천의 강선루(降仙樓), 안주의 백상루(百祥樓), 영변의 약산동대(藥山東臺), 선천의 동림폭포(東林瀑布), 의주의 통군정(統軍亭), 강계의 인풍루(仁風樓), 만포의 세검정(洗劍亭)
9) 최완수(1993), 겸제 정선 진경산수화, 서울, 범우사. p.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