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산 이름 중 하나로 오봉산(五峰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지도에서 찾았더니 같은 이름의 산이 무려 40곳 가까이 나왔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물론이고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에서도 둘 이상 등장했다. 옛날 임금 어좌 뒤를 꾸민 일월오봉도처럼 '오봉'의 좋은 이미지와 함께, 다섯 봉우리를 뜻하니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길 넓고 반듯해 난코스 없지만
돌 많아 걸을 때 발밑 조심해야
용추계곡 수직 낭떠러지 '아찔'
그 아래 콸콸 떨어지는 폭포 장쾌
칼바위 그늘진 부분에 햇빛 들면
숨어 있다 드러나는 원효대사 얼굴
그 많은 오봉산 중 전남 보성 것을 찾았다. 그런데 보성에만 두 개의 오봉산이 있었다. 하나는 오봉산(343.5m), 다른 하나는 작은 오봉산(288.2m)으로 산꾼들은 불렀다. 그러나 정작 보성 사람들은 작은 오봉산을 오봉산으로, 큰 오봉산은 칼바위로 호칭했다. 큰 오봉산에 칼처럼 날카롭게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두 산은 그리 높지 않은 까닭에 이어 타는 일이 많다. 산&산도 제98회(2007년 2월 22일)에서 두 오봉산을 이어 타는 코스로 한꺼번에 소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긴 우회 루트로 큰 오봉산만을 걸었다. 총 7㎞로 5시간이 걸렸다. 노량으로 걷기도 했지만 볼거리도 많았다. 코스는 용추계곡 주차장∼윗사그점골∼용추폭포 상단∼오봉산∼칼바위∼용추계곡 주차장 순의 원점 회귀로 꾸몄다.
■탁자처럼 생긴 작은 오봉산 멧부리 '눈길'
전체적으로 난코스는 없다. 길이 넓고 반듯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돌이 많아 걸을 때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옛날 구들처럼 평평하고 큰 돌들인데, 쉽게 부서져 자칫 발이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용추계곡 주차장으로 삼는다. 기남마을(전남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 끝에서 해평저수지를 따라 계곡으로 쑥 들어가면 오른쪽에 큰 주차장이 나타난다. 주차장에 설치된 출렁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시작된다. 이정표상으로는 '윗사그점골'로 방향을 잡는다.
첫 조망바위에 오르면 발아래로 해평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맑고 푸른 수면 위로 가을을 재촉하는 하늘이 내려앉았다. 멀리 기남마을도 조망된다. 조망바위는 수시로 나타나니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다. 걸음을 재촉하며 숲길과 돌길을 잇달아 지나는데, 돌길 아래로 성터 같은 흔적이 발견됐다. 나중에 알아보니 용추골 위로 길이 2㎞, 폭 7m가량의 성벽이 있었단다. 성 축성에 사용된 것인지는 몰라도 길 위에는 절편처럼 얇고 가벼운 돌이 수없이 깔렸다.
작은 오봉산은 등로에서 자주 목격된다. 탁자처럼 수직으로 솟은 뒤 정상부를 평평하게 만든 모양이 특이하다. 작은 오봉산은 도촌저수지가 나타날 즈음부터 시야에서 시나브로 사라진다.
|
칼바위 안쪽의 동굴. |
■상단에서 내려다본 계곡과 폭포 '아찔' '용추산성터' 이정표에 이르면 두 방향으로 길이 나뉜다. 능선과 계곡 방향인데, 산&길은 용추계곡을 선택했다. '백바위' 방향의 능선 길은 우회하는 코스로, 큰 기복 없이 오봉산에 오를 수 있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선택은 옳았다. 용추폭포와 계곡을 상단에서 내려다보는 '아찔함'이 생각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수직의 낭떠러지 아래로 콸콸 떨어지는 폭포는 장쾌했다.
눈이 어지러워 더 이상 계곡을 내려다볼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오봉산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절편 같은 돌을 항아리 엎어놓은 것처럼 쌓아 놓은 탑을 지나면 오봉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은 거대한 바윗덩어리다. 암봉 아래로 내곡과 청암마을, 그리고 마을 앞쪽으로 득량만과 고흥반도가 한눈에 조망된다.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득량만은 호수처럼 고요하다. 청암마을의 들은 제법 넓다. 그중 일부는 벌써 누런빛을 냈다. 가을이 물들고 있는 것일까. 봉우리가 8개라고 해서 이름이 붙은 고흥반도의 팔봉산도 멀리 보였다.
|
칼바위 안쪽의 동굴로 들어가면 바위 절단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얼굴 그림이 보인다. 얼굴 그림은 이곳에서 수행 생활을 한 원효대사라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
■칼바위 유심히 바라보면 얼굴 그림이 오봉산에서 칼바위까지는 멀지 않다. 칼바위에 이르기 전에 너덜 전망대에서 먼저 칼바위를 볼 수 있는데, 한쪽 면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깎인 모습이 이채로웠다. 아주 오래전 오봉산 줄기에서 떨어질 때 깨어진 자국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다양한 암봉을 보았지만 이처럼 한쪽 면이 칼날처럼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칼바위 뒤로 작은 오봉산의 멧부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산 길에 칼바위 아래로 바싹 다가갈 수 있다. 바위 한쪽으로 뚫린 굴로 들어가면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꽤 넓은 공터를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올려다보는 칼바위도 유별나다.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바위 끝이 뚝 떨어질 듯하고,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공간은 약간 음습했다. 그때였다. 바위의 그늘진 부분에 햇빛이 살짝 비치면서 얼굴 그림이 나타났다. 눈이 아주 밝거나 불심이 깊어야 찾을 수 있다는 원효대사의 화상이다. 사진기 줌을 바싹 당겨 확인하니 틀림없는 얼굴 그림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저 위험한 곳에 올라가서 그림을 새겼을까? 전설에 따르면 원효가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
칼바위에서 가까운 지점의 돌탑문. |
칼바위를 지나면 돌탑군을 만난다. 돌탑은 오봉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이곳에는 10여 개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중 하나는 길을 막고 있는데, 가운데 부분에 문을 만들어 놓았다. 돌탑군 옆에는 풍혈도 있으니 놓치지 말기를…. 문의: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위크앤조이팀 051-461-4095.
글·사진=백현충 선임기자 choong@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 보성 오봉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초보자용 앱 지도 다운받기 사용 방법
1.스마트폰의 'Play스토어'에서 오룩스맵(oruxmaps) 앱을 다운 받는다.
2.부산일보 산&길 기사에서 '초보자용 앱 지도 다운 받기'를 눌러 GPX 트랙의 압축 파일을 스마트폰에 깐다.
3.'압축 풀기'를 하면 해당 산행지 폴더가 생긴다. 이때 폴더 안에는 2개의 파일이 있어야 한다.
4.이를 스마트폰의 오룩스맵(oruxmaps) 앱 안에 있는 '맵파일(mapfiles)'로 복사해 넣는다.
5.오룩스맵을 열어 '지도전환'을 찾은 뒤 '오프라인'에서 해당 산행지를 클릭하면 부산일보 산&길 지도와 트랙이 만들어진다.
6.산&길의 지도 위에 자신의 루트를 표시해 서로 비교하고 싶다면 오룩스맵의 'GPX시작'과 '트랙레코딩 시작'을 차례대로 클릭한다. 걷기 시작하면 자신의 트랙을 표시하는 빨간 화살표가 움직인다.
|
▲ 들머리인 용추계곡 주차장. 현수막 뒤로 주홍빛이 출렁다리다. |
| ▲ 주차장에서 이어진 출렁다리. 이곳을 지나면 산길이 시작된다. 다리 옆 이정표에서 ‘윗사그점골’로 향하면 된다. |
|
| ▲ 첫 바위 조망대. 발아래로 해평지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기남마을도 조망된다. |
|
| ▲ 오봉산 우회로에는 사진처럼 절편같은 돌이 많다. 이런 돌을 층층이 쌓아 놓은 돌탑도 여럿 볼 수 있다. 길 아래로는 석축 흔적처럼 보이는데, 마을 설명판에는 용추골 위로 폭 7m, 길이 2㎞의 석성이 있었다고 한다. |
|
| ▲ 오봉산 우회로를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오봉산이 조망된다. 남아공의 상징인 테이블 마운틴처럼 멧부리가 식탁처럼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멧부리 모양에 눈길이 쏠린다. |
|
| ▲ 발아래로 뚝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아득하다. 두 갈래의 용추폭포는 왼쪽에 있으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
|
| ▲ 오봉산 정상에서는 발아래 청암마을과 득량만, 그리고 그 너머의 고흥반도가 한눈에 조망된다. 고흥반도의 팔봉산 능선도 멀리 보인다. |
|
| ▲ 위쪽이 날카롭게 절개된 칼바위. 오른쪽 오봉산 능선에서 떨어지면서 깨어진 듯하다. 그 잔흔이 옆에 또다른 암봉으로 남았다. |
|
| ▲ 칼바위 밑에서 올려다보면 각이 꺾이는 지점에 사진과 같은 음각의 화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일설에서는 이곳에서 수련하던 원효대사의 얼굴이라고 한다. 햇빛이 잘 들 때가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다. |
|
| ▲ 칼바위에서 내려오면 용추계곡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출구에 오봉산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칼바위로 곧장 올라가고 싶다면 이곳을 들머리로 삼아도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