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에 버스터미널을 만드는 일은 이 지역의 오랜 숙명이었다.
영등포, 안양시, 부천시 등등 어떤 곳에도 제대로 된 버스터미널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천에는 2007년이 되어서야 부천터미널이 새로 생기기는 했지만,
안양과 광명 일대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어 여전히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지지부진한 사업이 활기를 띤 것은 광명역 개발이 본격화된 시점이었다.
2010년대 들어 광명역에 하나 둘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광명역 북쪽 구역에 대규모의 버스터미널을 만드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결국 2013년 11월에 광명버스터미널은 문을 열었다.
그동안 시외버스 불모지였던 광명 주민들은 물론이요,
근처 안양과 광명역 환승객까지 모두 노릴 수 있는 절묘한 위치로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정작 버스터미널이 만들어지니 광명시민도, 안양시민도 이곳을 찾지 않는다.
터미널 개장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채 외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광명터미널은 광명역의 품에 폭 쌓인 것처럼 지어졌다.
애초에 광명시내와 한참 떨어진 외딴 곳에 뜬금없이 터미널이 들어선 것도,
순전히 광명역 역세권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광명역도 개통 직후에는 돈 낭비의 대명사로 엄청난 비판 세례를 받았지만,
벌써 15년 가까이 지난 현재는 다행히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광명역이 자리를 잡으면서 광명역 역세권 개발도 슬슬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코스트코를 중심으로 대형 상업시설 및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광명터미널도 이러한 시기에 발맞춰 영업을 시작했다.
이곳의 특징은 선로 위에 절묘하게 세워져 있다는 점으로,
서쪽 및 동쪽 출구 어디로 나와도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이 같다.

광명역에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철조망 옆을 살펴보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반지하로 지어져 역 일부만 하늘이 뻥 뚫린 광명역 구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에는 새로 지어진 높은 아파트단지가 조명을 가로막고 있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이 어느덧 이리 바뀌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광명역 구내가 보이는 구간이 끝이 나고 선로가 지하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딱 터널이 시작되는 위치에 광명터미널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만들어진 지 벌써 5년이 지난 곳으로 첫 개장 당시에는 기대를 모았던 터미널이다.
건축 목적에 걸맞게 광명역과 꼭 붙어 만들어져 있지만,
광명역이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역에서 여기까지 걷는데만 3~4분은 소요된다.

터미널 광장 앞에서 바라본 역세권 전경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텅텅 비어 황량하기 그지없던 땅이었는데,
이제는 빈 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건물이 꽉꽉 들어찼다.
이런 모습만 보면 광명터미널도 이제는 자리를 잡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야 할 주말 저녁인데도 광명터미널 주변은 인적 하나 찾기 힘들다.
철도 터널과 터미널 건물 사이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있어 이용객의 쉼터이자 산책로로 쓰일만하거늘,
날이 추워서 그런지 여기를 지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터미널 건물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건물로 들어가는 정문이 정면이 아닌 측면에 있다.
정면에도 입구는 있지만 아까 보인 공원 안에 있어서 찾기가 무척 힘들다.
측면에서 바라본 건물 내부를 보니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엄습한다.

나름의 기대를 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럴 수가! 가뜩이나 추운데 건물 안은 냉기가 가득하다.
난방이 안 돼서 썰렁한 것보다도 사람이 없어서 을씨년스럽고 어딘가 싸한 느낌에 가깝다.
화장실 맞은편 상점 공간은 먼지만 잔뜩 쌓인 채 문이 꽁꽁 잠겨있다.

조금 걸어서 들어가 보니 중앙에 매표소와 대기실이 있다.
나름 크게 2층으로 짓고 천장을 아주 높이 올려 세련된 멋을 한껏 살렸지만,
정작 조명이 없어 어두컴컴할 뿐 아니라 별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 시간은 저녁 주말이다. 있어서는 안 될 적막감이다.

영업을 하고 있는지 문을 닫은 건지조차 모를 만큼 오싹한 적막감이 감도는 와중에,
조그마한 매표소에만 겨우 조명과 화면을 켜놓고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매표소에 다가가도 냉기가 가득한 것은 여전하다.
매표소 안도 이렇게 썰렁하다면 직원은 하루 종일 건물 안 추위와 맞서 일을 한다는 말인가?

왠지 그럴 것이라 생각하니 약간은 안쓰럽게 느껴진다.
화면에 비친 시간표를 살펴보니 위와 같은 장면이 5초 간격으로 깜빡이는데,
화면이 전혀 바뀌지 않고 같은 장면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처음엔 고장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노선이 이것밖에 없는 것이었다.
전부 합쳐서 6개, 이게 광명터미널로 들어오는 시외버스 노선의 전부이다.

다행히도 매표소 맞은편 대기실에는 두어 명의 승객이 추위를 피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도 여전히 차가움이 느껴졌는데,
대기실만큼은 따뜻하고 훈훈한 훈풍이 살랑살랑 뺨을 간질였다.
그나마 고객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대기실 중앙 기둥에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느낌이 든다.
다시 살펴보니, 원래 설치되어 있어야 할 TV가 코드가 뽑힌 채 어디론가 사라져있다.
대기실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TV마저 철거해버린 것일까.
이러면 기둥에 붙은 금연 표시고 밑의 안내문이고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밑에 붙은 종이 쪼가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시간표였다.
매표소 위의 전자 시간표와는 다른 A4용지 인쇄 시간표가 겹겹이 붙여져 있다.
개통 직후부터 현재까지 노선 변화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다.
종이를 한 장 두 장 들추고 조심스레 살펴보니 노선이 점점 줄어든 것만 눈에 띈다.
한때 여기서 운행했던 상당수의 노선들이 이미 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붙여진 시간표에 나온 인천공항/용인 노선이 지금은 탈락된 상황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았던 광명터미널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보통 개통하고 나서 꾸준한 홍보와 입소문으로 야금야금 노선을 늘려가는 게 상식적일 텐데,
이곳은 정반대로 개통할 때 노선을 잔뜩 불려놓고 시간이 지날수록 까먹는 구도였다.
사진 속에 주차된 차량이 한 대 보이는데, 이곳에서 차를 만난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거다.

텅 빈 승차장 위 행선지는 지금 운행하지 않는 폐선된 이름이다.
즉, 승차장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 구간은 현재 전혀 이용되지 않는 버려진 승차장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길래 이제 5년 차에 불과한 터미널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심지어 버스가 주차되어 있어야 할 주차장에는 불법주차된 일반 차들만이 가득하다.
개통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니 참으로 짠하다.
분명 광명터미널을 만들 땐 전국 각지로 노선을 만들어
광명역 유동인구까지 끌어올리는 윈윈 구도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과거를 살펴보면 이 정책은 명백히 실패했다.
광명에서도 안양에서도 찾기 애매한 위치라는 점이 발목을 잡은 것인가,
아니면 시외버스로 광명역에서 KTX를 이용하기 힘든 입지라는 점이 발목을 잡은 것인가,
홍보 부족으로 이곳에 버스터미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렇게 된 것인가.
단순 방문객 입장에서 정확한 답은 내릴 수 없다.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금처럼 된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이 충격적인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바로 그 경계선에 서서 멍하니 영화 같은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첫댓글 동탄행 버스를 이용하기위해
광명터미널에 갔을때는 티비가 틀어져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용인행,인천공항행 노선도 있었죠
역시 티비가 설치되었다가 철거한 거였군요... 노선이 참 많이 사라졌네요.
@Maximum 광명터미널은 KTX때문에 승객이 없더군요.. 제가 갔을때 3명정도 있더라구요..
@Maximum 이미 인천공항은 6770번이 있으니 터미널까지 와서 이용하는 승객이 없겠죠
@[경남] 6770번을 터미널로 끌어올 생각을 안하고 왜 노선을 따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Maximum 그런데 이미 김포공항,인천공항을 같이 운행하는 노선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선도 터미널에 들어오지 않죠.. 대기 하는 일부 차량은 터미널에서 대기하더라구요...
@Maximum 6770번은 코레일이 자회사를 통해 운영하는 노선인데다 광명역에 도심공항터미널을 활용하여 지방에서 오는 공항 승객들을 모으기 위하여 만든 노선이다보니 터미널로 들어가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 이면에는 인천공항행 KTX를 폐지하고 지방에서 KTX를 이용해 공항으로 가는 승객들에게 다른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지요. 터미널로 가면 오히려 터미널 이용료와 매표 수수료 등 부대비용도 따라오게 되고요. 기존 광명역 경유 공항행 노선과는 사업자도 다르고 개설 목적도 다른 노선이다보니 터미널을 굳이 활용할 필요가 더 없었을 것입니다.
광명터미널이 안되는건 KTX광명역때문이거 같네요
KTX타면 버스로1~2시간되는지역도 금방가고대부분 서울로 올라가서 버스를 이용하고 하다보니 광명터미널은 안될수밖에없는구조인거같네요
맞습니다. KTX가 워낙 꽉잡고 있으니 경쟁이 제대로 될리가 없죠.
광명역 주변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했는데 터미널도 같이 들어왔을 줄은 몰랐습니다. 맥시멈님 글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철산동 노상정류소에서 시외, 고속버스가 출발하는 줄로만 알았겠네요. 현재도 철산역 인근의 노상정류소는 그대로 유지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 정류소를 폐지하고 터미널로 일원화했다면 더 결과가 안 좋은 쪽으로 만들어진게 아닌가 싶네요. 무엇보다 영남의 주요 대도시행 버스가 전무하고 호남 지역 노선도 전주를 제외하면 전혀 없다는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광명 정도로 규모가 성장한 도시면 고속철 외에 버스 수요도 확보할 여지가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주요 대도시행 노선이 없다는게 가장 걸리네요.
철산정류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실제 저날 철산까지 가서 시간표를 찍고 왔어요. KTX와 같이 경쟁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전주 기준으로 오산-광명역-철산 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철산에서는 강릉,속초도 운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요
네 맞습니다. 청주행도 운행하고 있지요.
차라리 그나마 광양중심인 철산역쪽 터미널을 만든다면 구로구 금천구 주민들을 흡수하지않을까요? ktx광명역으로인해 광명도 철도강세지역이다보니 영호남쪽노선은 거의 없다고봐야합니다. 안양이나 광명이나 안타까워요
철산역에 만든다해도 말씀처럼 철도가 워낙 강세라 크게 흥하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도로가 서부간선도로라는 점이 오히려 단점이 되겠네요.